Sunday, July 6, 2003

미국은 '미첼 위'를 보며 한국을 생각하지 않는다

남태현 <주장> '위성미'와 'Michelle Wie', 환상과 실망 사이
오마이뉴스 03.07.06 15:12 ㅣ최종 업데이트 03.07.06 13:5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31872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거리에는 애국의 물결이 넘치고 TV에는 영웅의 찬가가 퍼진다.

전쟁영웅의 이야기는 이제는 지난 이야기이고 스포츠의 영웅들이 그간 내준 자리를 되찾고 있다. TV 잠시만 보고 있으면 그날그날의 갖가지 영웅과 그들에 환호하는 '백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묘기에 가까운 야구의 명장면들은 끊임없이 재방송 된다.

어디 야구뿐이랴. 독립기념일 전날 영국의 윔블던 테니스 준결승에서 윌리암 자매들이 벨기에의 숙적들을 물리치고 결승전을 자매들끼리의 것으로 만들자, 올해 처음으로 윔블던 테니스를 중계한 미국 TV 채널 ESPN은 쾌제를 불렀다. 윌리암 자매 말고는 "아무도 초대받지 않았다"고.

골프도 예외는 아니다. 영웅 타이거 우즈의 침체에 초조해 하고 있던 미국 미디어들은 이번주 벌어진 경기에서 그가 보여준 플레이에 안심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우리의 영웅은 괜찮아'라고.

하지만 남자 골프가 미국 영웅들의 자랑스러운 무대가 되어준 것과 달리 여자 골프는 '오랑캐'들의 무대였다. 스웨덴의 아니카 소렌스탐을 선두로 한국의 박세리, 그레이스 박 등 덕에 최근 몇년간 여자 골프에서 미국의 쇠락은 너무나 뚜렸했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오랑캐들의 폭풍이 잠잠해질 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기대는 새로운 영웅 탄생, 또는 그 탄생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그 영웅은 다름아닌 바로 미셸 위이다.

미셸 위. 6피트의 장신에서 뿜어저 나오는 가공할 300 야드의 장타, 13살의 어린 나이에서 보여지는 무한한 가능성, 이 모든 것은 그런 기대가 헛된 것이 아닐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일까. 그녀가 출전하는 경기를 중계할 때면 TV는 줄곧 그녀를 따라 다닌다. 그녀의 스코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선두를 달리는 선수마저도 그녀만큼 카메라를 받지 못하는 수가 종종 있다. TV는 그녀의 미래, 그녀가 구할 미국 여자 골프계의 미래에 흥분해 있고 계속 그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며 즐거워 한다.

미국 독립기념일 아침, ESPN은 그녀와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인터뷰 내내 그녀는 밝고 자신감에 넘첬다. 패스트 푸드점 같은 데선 일하기 싫어 대학교육을 꼭 받고 싶단다. 하지만 18세가 되어서 프로로 전향하게 되었을 때 수백만불의 계약금이 생기면 어쩌겠냐는 물음엔 행복과 기대에 부푼 미소로 그냥 지금은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고만 했다.

TV 속 그녀는 패스트 푸드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과 그들의 저임금에서 이윤을 획득하는 거대자본의 속성을 이해 못 해 답답하기 보다는, 그냥 마냥 천진난만하고 맑게만 보였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복잡한 세상과 남들의 삶을 이해하기에만 어린 것이 아니다. 그녀는 아버지의 나라를 대표해 미국에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에도 아직은 너무나 어린 소녀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은 그녀가 한민족의 영웅이라도 되는 듯 치켜세우기에 바쁘다. 연일 그녀에 대한 보도, 그녀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에 대한 보도로 그 소녀가 한국을 위해 무슨 큰 일이라도 하는 듯 흥분해 있다. 제목만 보아도 그 관심이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있다.

<'미셸위 후원회' 결성> (문화일보 2003. 7. 4)
<미셸 위 "프로도 겁 안나요"> (국민일보 2003. 6. 29)
<"올해 화두는 미셸 Wie" NYT등 주요기사 취급> (경향신문 2003. 6. 30)
<'지존'도 위성미 알아주네> (세계일보 2003. 6. 28)
<소녀 위성미 美아마 '퀸'> (세계일보 2003. 6. 24)
<비즈니스위크誌, 미셸 위 상품성 특집…"5000만달러"> (조선일보 2003. 5. 7)

한국 언론은 여기서 지적한 두가지를 잊고 있거나 일부러 돌아보지 않고 있다. 첫째, 미국의 그녀에 다한 찬사는 그녀의 미래뿐 아니라 그녀의 미래가 지켜줄 '미국' 여자골프의 부흥 때문이다. 그들은 결코 미셸 위를 보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경외나 찬사를 보내지 않는다.

박세리나 그레이스 박 등을 이야기 할 때면 가끔 그녀들의 모국, 한국에 대한 멘트도 한다. 하지만 미셸 위를 대할 때는 전혀 그녀의 '아버지의 나라'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녀는 독립기념일날 두번째 라운드에서 성조기를 상기시키는 모자를 쓰고 나와서 그런 미국인들의 애정에 응답을 했다.

둘째, 그녀는 아직은 너무도 어린 소녀이다. 잔 다르크도 16세, 유관순도 17세나 되서야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다. 모국에서 자국 출신의 2세가 세계최강국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데 관심을 가져서 나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녀가 그 모국의 위상을 한층 드높히고 한국의 영웅이 되주리라는 무언의 기대는 아직 너무나 버거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대이기 보다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녀는 하루하루 경기와 학교생활에 바쁜 13살 미국인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 환상은 가져도 좋다. 하지만 행여나 그녀가 그 환상을 이루어주지 않는다고 괜히 욕하지 말자. 미셸 위는 '한국의 영웅'이 될 의도가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이름이 뭔가? Michelle Wie 아니던가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