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12, 2015

루시타냐호와 천안함

1915년 영국의 거대 여객선 루시타냐호는 독일의 유보트의 어뢰 한방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18분만에 완전히 가라앉았죠. 승객 등 1200백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최근 잠수부들이 이 배의 흔적을 찾고 여러 잔해들 특히 수많은 총알을 건져올려 화제가 되었습니다.

Erik Larson’s ‘Dead Wake,’ About the Lusitania - NYTimes.com

물론 세계는 독일군의 잔혹함에 경악을 하고 확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나 미국의 참전을 부추기는데 큰 공을 했다고 여겨지죠.

문제는 여기에는 이상한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유보트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을 알면서 호위함이 없었을까? 어뢰피격 이후 배에 있었던 두번째 폭발은 무엇이였을까? 구조선은 왜 갑자기 되돌아갔을까? 해군지도자였던 처칠은 왜 마치 기다렸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을까? 


John Shuley & Company/Library of Congre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독일은 영국군이 민간인 배를 군수물자를 나르는 데 사용했다며 이들에 대한 공격을 정당하다고 주장했었죠. 루시타냐호의 두번째 폭발과 최근 건진 수많은 총알은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처칠이 루시타냐호가 공격을 당할 것을 알고서도 미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희생시킨 것이라면 정말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승리를 위해 자국 시민을 사실상 죽인 것이니까요.

하지만 불행한 것은 이런 조작이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있지도 않았던 북베트남의 공격을 조작해 베트남전을 일으킨 미국의 통킨만 사건도 그렇고 천안함 침몰로 종북열풍을 일으킨 한국의 예도 비슷한 경우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정치가 바로 서지 못하면 말이죠.




 

Sunday, March 8, 2015

스타디바리우스의 허상

스타디바리우스는 이태리 최고의 현악기 브랜드입니다. 그 특유의 소리에 최고의 바이올린니스트들이 매료되고 자기도 하나 손에 넣으려고 애를 쓰죠. 문제는 이 세상에 많이 있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타디바리우스 가족이 만든 현악기들은 주로 17, 18세기에 만들어졌고 그 명맥이 끊겼으니까요. 더더욱 귀하고 값이 비싸지는 이유입니다.

1967년산 '몰리토르'라고 불리는 바이올린은 2010년에 있었던 경매에서 3백60만 달러에 팔려 최고가를 갱신했으니 그저 놀랄 뿐이죠. 



문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소리의 마력이 과연 그 소리에서 나오는 것인지 브랜드에서 나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연주가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합니다. 하지만 막상 눈을 가리고 테스트를 해보면 그 결과는 달라지는 것이 문제요. 

2010년의 한 연구에서는 여섯 대의 바이올린을 두고 테스트를 했습니다. 두개만 스타디바리우스고, 나머지 하나는 다른 브랜드의 오래된 바이올린, 세 개는 요즘 바이올린이었습니다. 연구를 진행한 사람들은 연주자의 눈을 가리고 코도 막은 채 실험을 했죠. 이들은 이중 한대만 스타디바리우스라고 말을 했습니다. 

17명의 연주자중 7명은 분간을 할 수가 없다고 했고 7명은 틀렸고 단지 3명만이 스타디바리우스를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 실험만을 놓고 보자면 사람들의 스타디바리우스에 대한 경배는 그 소리가 아닌 그 이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실험뿐 아니라 여러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는데 있습니다. 

결국 전문가조차도 이름에 팔려 판단이 흐려질 뿐 아니라 자신이 판단할 수 있다는 착각에 있는 것이죠.

브랜드에 홀린, 착각에 허우적 거리고 있는 예가 어디 바이올린 뿐일까요? 술도 그렇고 학교, 영화, 정당, 나라도 그런 경우가 많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고 스스로 근심해 보는 시간이 점점 더 아쉽습니다.  

Sunday, March 1, 2015

가자지구의 한 예술가

이스라엘의 점령이 모든 이들의 숨을 막히게 하고 있는 땅, 가자 지구. 그곳의 한 여성 아티스트의 기사(A Gaza Artist Creates 100 Square Feet of Beauty, and She’s Not Budging)가 참 인상적이였다. 그녀는 계속 커가는 종교적 억압과 전쟁, 파괴에 좌절하고 집밖에 나오길 거부하며 스스로 내면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 돌파구는 바로 사진. 마치 중세 유럽의 진한 그림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그녀의 작품은 정치적이지 않음에도 은은하고 묵직하게 숨막히는 가자지구의 모습을 옇보게 하는듯 하다.

그녀의 웹사이트: http://www.nidaabadw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