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rch 10, 2010

[독자칼럼] 대통령에게 희망을 / 남태현

한겨레 2010-03-10
http://www.hani.co.kr/arti/opinion/readercolumn/409304.html#


김연아에게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습니다. 피겨스케이팅에 문외한인 저같은 사람도 그의 멋진 행진에 가슴이 벅찼더랬습니다. 그가 얼음위에서 보여준 용기와 아름다움은 전세계를 감동시켰죠. 하지만, 우리에겐 무엇보다도 그녀가 준 희망이 가장 큰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작은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지만, 꿈을 버리지 않으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 말입니다.

한때 젊은 독자들을 흥분케한 농구만화가 있었습니다. 전국스타 선수가 조그마한 고등학교로 진학한 이유를 사람들은 궁금해 했죠. 옛날 어느 경기에서 뒤지고 있을 때 그는 졌다고 체념합니다. 내색은 못했지만요. 마침 밖으로 나간 공을 주워주던 할아버지가 말합니다. 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경기는 끝이 난다고. 희망을 되찾은 그는 극적인 승리를 일궈냅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가 농구코치로 있는 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아도, <빠삐용>을 보아도, 희망을 가진 자들은 큰 시련을 이겨냅니다. 우리도 그런 적이 있었죠. 군사독재를 물리칠 수 있다는 꺼지지 않던 희망은 마침내 1987년 100만 시민을 길거리로 이끌어 냈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자들은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이젠 하도 엽기적인 사건이 많아서 잊혀젔지만, 옛날에는 ‘막가파’가 있었습니다. 납치와 감금, 엽기적 살인으로 세상을 암담하게 했던 그들은 사회에서 자신들의 미래와 희망을 보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희망이 없는 그들에겐, 막가는 행위가 삶의 이유였고,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희망이 없는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그래서일까요, 이명박 정부의 행보가 슬프지만, 이해가 가는 것은요? 한반도의 남북관계는 언제 그랬냐는듯 온기라곤 찾을 수 없고, 그 강자락들도 부서지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은 목숨을 잃고 개그맨은 직장을 잃었습니다. 방송국 사장들은 혼쭐이 나고, 세종시 논란덕에 세종대왕만 구차하게 됐습니다. 노동자들은 삶에 터전 하나 지켜보려다 법의 회초리를 맞고, 너무나 가진 것이 많은 자에겐 법은 한없이 상냥합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여러가지 정치적, 개인적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겐 희망이 없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이 거의 끝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기가 아직 창창한 대통령을 두고 무슨 소리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헌법은 단임을 못박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젠 더 무엇을 하겠습니까? 퇴임후 미국 전 대통령 카터나 클린턴처럼 국제외교를 펼치거나 저서활동을 하기도 쉽지 않을테고, 그렇다고 다시 시장이 되기도 뭣하고, 국회로 나가기도 뻘쭘할테지요. 학생이 시험이 없으면 공부합니까? 국회의원들도 재선이 하고 싶으니까 민심도 살피고, 생전 안가는 시장에 나와 악수라도 아는 것이죠.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이젠 선거도 없고 시험도 없습니다. 부담도 없지만 희망도 없죠. 게다가 전직 대통령들의 수모를 보고 있자니, 빨리 무엇인가 해놔야 할 절박함도 들 법 합니다. 덕택에 정치는 너무나 거칠고 아찔하게 파괴적입니다. 희망이 없는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이 대통령의 임기는 곧 끝이 납니다. 문제는 다음 대통령도 비슷한 길을 걷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숙제는 빨리 대통령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국민들만 맨날 술래가 되는 꼴이 되기 쉽습니다.

남태현 미국 메릴랜드 솔즈베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