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31, 2018

범죄 드라마 리뷰 9 - Body Guard, 그리고 Perfume

Bodyguard는 영국 BBC의 2018년 울트라 초대형 흥행작이였습니다.

전쟁, 전쟁으로 파괴된 개인, 전쟁으로 파괴된 사회.
정부 안의 암투와 범죄조직의 어두운 손길.
테러의 위협.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 
사랑이 할 수 있는 것, 가정이 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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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불과 6회에 불과한 시리즈에 깔끔하게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주요 인물들의 강렬한 감정이 절제된듯 아닌듯 잘 들어나서 흥미를 더하죠. 특히 내무부장관(?)의 격하고, 혼란스런 감정을 잘 소화한 Keeley Hawes 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흔히 갖는 남성/여성상을 되돌아보게하는 것은 보너스.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Perfume 독일 작품을 봤습니다.

근데 어휴 이건 어두워도 너무 어두워... 시종일관, 첨부터 끝까지, 틈도 없이 어두워.
눈을 자극할 요소가 꽤 있지만 그 어두움에 묻혀버리고 맙니다. 사랑도 어둠에 묻힌다고 해야할까.
영상도 그 어두움을 짙게, 잘 찍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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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욕망은 누구나 있다"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주요 인물 모두가 그 욕망을 채우기위해 난리죠. 하지만 욕망도, 욕망의 채워짐도 향수처럼 일시적일 뿐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은 충격적입니다. 반전, 의외의 범인, 그런게 아닌 ... 그냥 충격.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Thursday, December 13, 2018

[세상읽기]선거법 개정 걸음마도 못 뗀다면

경향신문 (2018.12.13)


“국정 전반에 걸친 일대 개혁을 단행해 나갈 것입니다.” “새로운 정치를 정열적으로 추구 … 국가사회에 새로운 활력소를 주입하려는 개혁의 의지를 … 모아가야 하겠습니다.”


어제오늘 누군가가 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말들이죠. 앞은 1972년 대통령 취임사에서 박정희가 유신을 강조한 대목이고 뒤는 전두환의 취임사 한 구절입니다. 2012년 대선후보로, 촛불대통령으로 문재인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정치개혁은 늘 되풀이되는 화두입니다. 하지만 되풀이되는 만큼 갈 길이 멀다는 현실의 방증일 테죠. 그 까닭은 개혁결과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의 부재에 있습니다. 정치개혁은 수단일 뿐 그 자체로 목적일 수는 없죠.


정치개혁이 이루어지면 깜깜이 예산 심사를 통해 자기 뱃속을 채우고 공공이익은 가볍게 토스해 버리는 추태가 사라질까요? 치열한 정쟁, 끝없는 거짓말, 부끄럼 없는 부패가 끝날까요? 정치 선진국이라고 생각되는 서구를 봐도 그렇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미국 공화당은 총기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총을 보급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등 뻔뻔한 거짓말로 정쟁을 부추깁니다. 영국 보수당은 브렉시트가 쉽고 긍정적 변화를 줄 것이란 사탕발림으로 국민을 속였죠. 인종혐오로 권력을 잡은 정당이 유럽에 한둘이 아닙니다.


정치개혁은 막연히 생각하듯 반듯하고 온전한 정치로 이어지지 않을 겁니다. 염치없고 강도 같은 정치인이 거들먹거리는 꼴은 뉴스에서 끊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 정치개혁은 더 멀고 깊은 곳을 향해야 합니다.


20세기 한국 정치는 배척을 기반으로 했죠. 남과 북은 전쟁을 벌였고 영남 정권은 호남을 배척했습니다. 자본가는 노동자를 짓눌렀고 대기업은 동네가게마저 거덜 냈습니다. 남자는 여자 위에, 이성애자는 동성애자 위에 군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찍어누르며 달려온 사회는 지옥철, 입시지옥, 헬조선으로 조롱당하는 지옥이 됐죠. 올라선 자는 더는 올라가기 힘들고 깔린 이도 힘들어 무너지는 아비규환 형국입니다. 다 같이 망하지 않으려면 새 길이 필요합니다. 정치개혁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21세기 한국 정치는 포용을 지향해야 합니다. 포용은 통합이 아닙니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남자와 여자가 통합될 수 없습니다. 유치원 원장과 학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통합이란 말은 애초에 억지 환상일 뿐이죠. 하지만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의 폭을 넓힐 수는 있습니다. 조금은 참아주고 조금씩 양보할 수는 있죠. 그러나 정치적 포용은 일방적 선의나 영웅에 기대서는 안됩니다. 힘과 권력을 나눠 가졌을 때, 어느 정도 대등한 위치에 올라서야 가능합니다. 정치개혁은 힘과 권력을 나누어 진정하고 지속 가능한 정치적 포용이 가능케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선거법 개정은 그 시작입니다. 현 제도에서는 선거구에 1등한 후보만 승자가 됩니다. 지난 총선 성동 을구에서 새누리당 후보는 불과 38% 득표율로 2등(36%), 3등(24%)을 물리치고 당선됐습니다. 사실 6할이 넘는 유권자가 반대하는 이가 당선된 겁니다. 6할의 표가 사표가 된 셈이죠. 이런 제도 덕분에 새누리당은 33.5%의 전국 득표율로 40.7%의 의석을, 더불어민주당은 25.5%의 득표율로 41%의 의석을 가져갔습니다. 두 거대정당이 전체 표의 56%로 82%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공정하지도, 민의를 반영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민의를 반영하려면 이 지역구에 다섯 석을 배정해서 새누리당 두 석(전체 의석수의 40%), 민주당도 두 석(40%), 국민의당에 한 석(20%)을 주는 게 맞습니다. 그래야 공정하고, 유권자도 작은 정당에 사표 걱정 없이 표를 던질 수 있습니다. 이런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작은 정당이 생기고 커갈 수 있죠. 그래야 배척당했던 이들이 힘을 키우고 당당하게 포용의 길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정당이 이미 공감을 표시한 사안입니다. 이마저도 개혁의 걸음을 못 뗀다면 정치지도자로서 내가 뭘 하고 있나 물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궁색한 변명일 뿐임은 본인이 잘 알 테죠.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일갈이 저 멀리 맴도는 차가운 계절입니다.

Thursday, November 15, 2018

[세상읽기]가짜뉴스에 기댄 그들


경향신문 (2018.11.15)


미국 중간선거를 곱씹어 보겠습니다. 대북정책의 미래가 큰 관심이죠.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선거를 위해 북·미관계 개선을 서둘러왔습니다. 선거가 끝났으니 진전이 이전만 할 순 없겠죠. 당장 고위급회담도 취소됐고 백악관에서 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민주당이 하원을 차지했으니 국정운영 전반이 경색되고 북·미관계가 경색될 가능성도 있죠. 북·미 협상을 비판하던 빅터 차의 기관이 북한 ‘비밀’ 미사일 기지를 찾았다며 호들갑 떤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북 접근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겁니다. 미국 정치는 2020년 대선 국면을 맞습니다. 대결이 더 치열해지면서 트럼프는 의회 견제가 작은 영역, 즉 외교에 집중할 겁니다. 핵문제 해결이 정치적으로 더 중요해지면서 북한과는 대화하고, 이란과는 대결하며 성공이라 자부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중요한 이슈도 있습니다. 이민 문제가 그중 하나죠. 이는 트럼프 정부 핵심 관심사입니다. 대선 캠페인 때 멕시코 국경에 벽을 쌓자고 해 재미를 봤죠. 올해는 ‘캐러밴’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수천명의 중미 난민이 미국으로 향하자 트럼프는 이를 침략으로 규정하고 군대마저 배치했죠. 덩달아 트럼프 지지자들은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민병대를 조직해 국경으로 향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난민 행렬을 안보 위협으로 믿고 있습니다. 난민에 범죄자가, 특히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다며 트럼프 선동에 환호하죠. 난민 수천명이 미국을 흔들 수 없습니다. 이미 1000만명이 넘는 불법 이민자가 일상의 일부가 돼 있는 마당에 몇만명이 와도 표도 안 날 겁니다. 게다가 군대로 막을 수 있는 국경도 아닙니다. 겁박과 생색일 뿐이죠.


이런 선동이 먹히는 데에는 뿌리 깊은 인종주의가 있습니다. 백인 땅에 유색인종이 몰려와 백인문화를 흐리고 그들만의 미국을 바꿔버리고 있다는 불안감이 있죠. 트럼프는 자기 정치력을 위해 이를 교묘히 이용합니다. 각종 정책이나 발언을 통해 인종주의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확산시킵니다. 이제껏 그런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이들은 대통령의 ‘재가’에 황송할 수밖에요. 여기에 각종 가짜뉴스가 이런 분노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공공연한 폭력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지난달 유대교 회당에서 백인 총기 테러로 11명이 목숨을 잃었죠.


왜 우리가 미국 이민 문제에 주목해야 할까요?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예멘 난민 논란으로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무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죠.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잔인성은 비밀이 아니니까요. 나와 다른 이를 타자로 구분해 무조건 적대시하는 경향은 ‘외국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 특정 종교 신자, 장애인, 정부 등 무차별적입니다. 가짜뉴스가 이들의 공포와 분노를 부추기고 있는 점도 미국과 비슷합니다.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이들의 선동과 극우행태도 폭력으로 이어졌죠. 미국 같은 극단적 사태가 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돌이켜 볼 점은 중간선거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미국 선거는 조금 복잡합니다. 상원의원 임기가 6년, 대통령은 4년, 하원의원은 2년이죠. 그러다 보니 2년마다 연방정부 선거가 있고 대선과 대선 중간의 선거, 즉 중간선거를 치릅니다. 덕택에 유권자들은 정부를 평가할 기회를 얻죠. 덕택에 트럼프 임기가 2년이나 남았지만 미국 유권자는 대통령과 공화당을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유권자도 그런 기회가 필요하지 않나요?


자유한국당 의석수는 현재 112석으로 총 의석의 37%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정당 지지율은 20%에 불과하고 정책 대안은커녕 말도 안되는 생떼만 부리고 있죠. 이들 대부분은 박근혜 허깨비 정부에 조력, 방관하며 사또질을 해댔습니다. 처절한 반성도 모자랄 판에 가짜뉴스에 기대서 부활을 꿈꾸고 있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었던 게 불과 몇개월 전이었지만 이제 태극기세력은 우익의 근간이라며 들썩이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다 같이 밀고 나가도 힘겨울 판에 귤상자마저 걷어차며 씩씩거리고 있죠. 하지만 우리는 2020년까지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민주주의라면 참 모자란 민주주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그들의 고함에서 배웁니다.

Thursday, November 8, 2018

미국정치 이야기 #1, Voice of America - 중간선거 분석

2018년 중간선거 분석 인터뷰 - Voice of America

행정부의 큰 기조는 변화는 없을 듯.
특히 외교정책은 원래 행정부 소관이고 의회의 간섭 여지가 적다.
트럼프가 북핵 해결을 대선용으로 소비할 듯. 그렇다면 2018년처럼 급진전하지는 않을 수도.
국내정치에서는 이제 대선국면으로 갈 듯. 민주당도 벼르고 있었으니 하원에서 목소리를 올릴테고, 트럼프도 그런 대결 국면을 정치적으로, 개인적으로 즐길듯.
혹자는 민주당의 성과를 과소평가하기도 하나 이는 실수. 제리맨더링, 치솟는 경제, 이 모든 것이 공화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음. 이를 극복한게 민주당 지도부.

Thursday, October 25, 2018

[세상읽기]트럼프의 ‘승인’ 발언에 대한 씁쓸한 반응

경향신문 2018.10.18

2013년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직접 관여를 했습니다. 보잉사 F-15SE로 거의 기울었던 결정을 뒤엎었죠. 경쟁 기종보다 기술 이전, 가격 면에서 모두 뒤진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는 “정무적 결정”이라며 록히드 마틴사의 F-35A를 밀어붙였습니다. 7조원이나 쓸 사업을 이렇게 가볍게 처리해도 되나 싶었죠. 그 의문은 올해 조금 풀렸습니다. 김관진이 록히드마틴사와 연관된 로비업체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게 드러났죠. 무기 사업은 역시 복마전이구나 하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복마전의 정말 큰손은 미국입니다. 유럽 전투기는 유독 한국 시장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미국 주요 동맹국인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독일,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유럽산 전투기와 미국 제품을 동시에 사용하죠. 우린 사실상 100% 미국에 의존합니다. 게다가 한국의 미국 무기 쏠림은 전투기뿐 아닙니다. 액수로만 따지면 90%를 미국에서 사들이고 있죠. 기술 이전은 미미하고 품질 시비도 심심하면 터져 나와도 말입니다.

이 묘한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여럿이지만 그중 가장 강력한 주술은 한·미동맹입니다. 미군과 전략적 공조를 이루어야 하니 미국 무기를 쓰는 게 효율적이라고 합니다. 다른 미 동맹국은 그렇지 않은데 왜 한국만 그럴까.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말이 동맹이지 한쪽이 다른 쪽에 일방적으로 기대고 질질 끌려다니는 게 현실입니다. 군사를 부리는 권한은 한 국가의 고유 권한이자 국가라는 개념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전권은 이미 1950년 미국으로 넘겼고 전쟁이 끝나도 찾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1994년, 겨우 반만 돌려받았죠. 하지만 전쟁이 나면 한국군은 아직도 미군 지휘를 받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논란에도 미국 무기를 묵묵히 사대고, 범죄를 저지른 미군을 조용히 내보내는 게 오히려 당연하죠. 온전한 국가는 아닌 셈입니다.

그래서 트럼프의 승인 논란이 더욱 씁쓸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우리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연거푸 강조했습니다. 트럼프의 평소 태도를 보면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난리가 났죠. 그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한편에서는 미국 심기를 건드렸다며 좌불안석이었습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승인 발언은 외교적 결례지만,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크다”며 화살을 미국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로 돌렸죠. 한국당 의원들은 비슷한 성토를 토해냈습니다. 보수당이라면 한 나라의 전통과 민족주의를 중요시하는 게 보통이죠. 그런 정당이라면 성조기를 흔드는 대신 트럼프 발언에 분노를 표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당은 그 정체성이 극우와 종미 사이를 오가니 그런 반응이 무리였다고 할까요.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는 승인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데 초점을 모았습니다. “부적절했다”(심재권 의원), “적절치 않다”(송영길 의원). 정의당 대표 이정미 의원은 “국민에 대한 모욕” “외교적 갑질”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최고조로 올렸죠. 하지만 이들도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아무도 미국이 한국 외교, 군사, 안보에 비정상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을 지적하지 못했습니다. 국민에 대한 모욕은 트럼프가 어떤 단어를 써서가 아니라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현실임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그 현실을 바꾸려 시도조차 않는 자신들 행태가 더 큰 모독임을 감히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문제든 해결의 시작은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한국의 꼬인 외교를 푸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주권국가라면 할 수 있는 게 우리에겐 너무 모자란, 차가운 현실이죠.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사태를 바닥으로 몰고 간 것도, 그것 말고는 별로 할 게 없어서인 측면이 크죠. 사태를 호전시킬 방도가 마땅치 않으니 호통치고 겁박할 수밖에요. 그만큼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한국시리즈 7차전 9회 말 전력투구입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다 공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그 노력에 행운이 곁들여져 결실이 하루빨리 나길 고대합니다. 그래서 정상 국가로 한 걸음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그 걸음에 딴지를 거는 목소리가 한국 안에서만큼은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이선옥 작가, '나의 아저씨'가 여혐이라고?

이선옥 작가의 식견이 잘 들어나는 팟방입니다. 정치적 올바름, (작가가 PC주의, politically correct ism로 부르는)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휘두르는, 지적 폭력을 진단합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으로 어떤 타협도 거부하고 내 생각을 강요하는, 이를 지적만해도 적으로 돌리고 처단하는 이 폭력에 맞서기가 쉽지 않죠.



저도 최근 '나의 아저씨'를 울고 웃으며 보다 그 논란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의아했습니다. 이게 여혐이라니?!! 도데체 뭘 보고? 여러 폐단이 있지만 이 폭력은 오히려 사람들을 지치게해 더 극단적 선택을 하게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트럼프 당선이 예라는 지적에도 상당히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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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태가 나면 이들의 도덕적 우월감은 더더욱 강고해지고, 어떤 면에선 더 신나할 가능성도 있죠. 그럼 이들의 지적 자위행위더 더 강고해질 수 있습니다. 사회는 더 양분화되고 토론과 합의는 자리를 잃을겁니다.

가치의 진보를 멈출 수는 없지만 그 가치를 담을 그릇마저 깨부셔야 되겠습니까. 부시고 다시 만들자고 할지도 모르겠군요..



Friday, September 21, 2018

[세상읽기]콜롬비아의 복병, 한국의 복병

경향신문 (2018.09.20)

한국에서 콜롬비아는 커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남미 성장을 주도하는 국가로 지난 6월 OECD에 37번째 가입했음은 잘 알려지지 않았죠. 물론 그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성장은 2016년 오랜 내전을 끝내고서야 가능했습니다. 내전은 폭력과 심해지는 빈부격차로 신음하던 농민들이 자위대를 구성하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초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으로 성장했죠. 길고 긴 내전이 이어졌고 20만명 넘는 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휴전 시도도 있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무장해제였습니다. 정부로서는 당연한 요구였지만 반군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무력은 이들을 정부가 심각하게 대화할 수밖에 없는 상대로 만든 바로 그것이니까요. 무력해제 후 정부가 말을 바꿀 수 있으니 협상은 어려울 수밖에요.

콜롬비아의 산토스 정부는 혁명군에게 공간과 시간을 내줬습니다. 여기서 반군은 제한적 활동을 이어가며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지 지켜봤습니다. 동시에 반군이 콜롬비아 사회에 참여할 기회도 주어졌죠. 이런 점진적 방식 덕에 2016년 평화협정이 가능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들이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산토스 대통령의 후임자인 두케 대통령이었죠. 평화협상을 재검토하겠다고 공언한 그가 대통령이 되자 옛 혁명군들은 들썩이기 시작했죠. 전 혁명군 지도자 몇몇은 조직 재건에 나서고 있습니다. 내전의 기운이 다시 꿈틀대는 상황입니다.

북한의 사정도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 아주 다르지 않습니다. 평화를 원하지만 북한도 핵무기를 쉽게 내줄 수는 없습니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하는 이유가 북한 핵무기가 이제 미국을 위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그러니 핵무기를 포기하는 순간, 북한은 대화 상대로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핵화 이후의 미국을 믿을 수 있을까요? 불안할 수밖에요. 협상이 더딜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산토스 정부가 그랬듯이, 미국과 한국도 북한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시간을 줘야죠. 북한은 단계적으로 핵을 포기하고, 한국과 미국도 이에 맞는 조치를 하나씩 취해나가야 합니다. 비핵화 이후에도 우리가 공존의 길을 함께 걸으리라는 확신을 줘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평양 정상회담은 의미가 깊습니다.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정상화, 서해경제공동특구와 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등 다방면 협력 강화 조치와 비무장지대의 확대, 비행금지구역 설정, 해상기동훈련 중지 등 군사 부문의 협약 모두 북한의 염려를 덜 수 있는 중요한 기재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복병은 한국에도 있습니다. 바로 자유한국당입니다. 이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에 발맞춰왔습니다. 평화와 안정보다는 북한 핵무기 제거에 초점을 맞춰왔죠. 긴장 고조는 2017년 한반도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반북 멸공 이데올로기를 태생적 근간으로 하는 이들로서 사태 해결보다는 극한 대결을 추구한 결과였죠.

촛불정국에 꿇은 무릎도 잠시, 이들은 다시 2018년 평화 분위기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4월 판문점 회담 당시 당대표는 “위장평화쇼”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적은 것” 등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심지어 “다음 대통령은 아마 김정은이 되려는지 모르겠다”며 그들의 속내를 내보였죠. 원내대표는 ‘4·27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 처리도 단칼에 거절했고 이번에는 “평양에서 점심으로 무엇을 드셨는지 모르지만 심각한 오류에 빠졌다”며 억지와 심술을 이어갔습니다.

이들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답은 뻔합니다. 남북 인민이 다 같이 환영하는 오늘의 성과가 개성공단 닫히듯 황당하게 사라질 테죠. 우리는 다시 전쟁 위협과 외세 놀음에 휘둘리게 될 겁니다. 촛불혁명에도, 6월 지방선거에서도 정신을 못 차린 사람들이니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겠죠. 우리의 안위를 위해서 당장 항의 편지라도 써야 합니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는 2020년 4월15일. 앞으로 570여일 남았습니다.

Wednesday, August 29, 2018

범죄 드라마 리뷰 8 - Secret City 와 Happy Valley

최근 참 다른 두 드라마를 재밌게 봤습니다.

먼저 Secret City (프랑스어 광고)는 호주 드라마로 수도 캔버라에서 벌어지는 정치/스릴러 물입니다. 정치부 기자가 시체를 건지는 장면을 우연히 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죠. 이 사건에 정보기관과 정부가 끼여들고 게다가 중국 공작기관도 등장하면서 스케일이 점점 커집니다. 뭐랄까요 그런 면에서 좀 전형적인 면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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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주인공 기자(안나 토르 분: Mindhunter라는 미국드라마에서 아주 차갑고 이성적인 범죄심리학 전문가로 등장합니다), 야심찬 장관, 중국 보스 등 (사진에 보이듯) 주요 인물이 모두 여자인 점이 눈에 띄였죠. 더군다나 여성으로 성전환한, 주인공의 전 남편인 정보분석관 까지 등장합니다. 뭐랄까요. 한국 드라마에서는 볼 수 있는 면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훌륭한 쇼였습니다. 연기도, 가 본적 없는 낯선, 아름다운 도시도 볼 만했습니다. 게다가 태평양, 특히 호주에서 커지는 중국의 영향을 반영한 면에서도 흥미로왔습니다.

마지막 반전은 살짝 아쉬운 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국회 보좌관으로 등장하는 시즌 투가 안 기다려진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이어 본 드라마는 Happy Valley. 영국 시골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룹니다. 별 생각없이 홧김에 시작한 범죄가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구성은 명작 Fargo랑 굉장히 비슷합니다 (교훈: 세상에 뜻대로 되는 일 없다; 그럼 다 잘 살게). 덕분에 이른 나이에 할머니가 된, 몸도 잘 듣지 않는 경찰의 평범한 일상이 완전히 산산조각 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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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잃은 아픔과, 손자, 가족간의 갈등이 다시 불거저 나오면서 우울증도 심각해지는 모습에 너무너무 공감이 가게 됩니다. 너무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한 Happy Valley죠. 하지만 사건이 해결되면서 주인공은 희미한 미소를 짓습니다. 그 미소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세상에 그렇게 가슴 아프고 괴로운 일이, 일상이 없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일상을 견디며 살고. 또 그렇게 넘기고. 그게 사는게 아닌가. 그래서 그래도 Happy Valley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되는 따뜻한 드라마입니다.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Friday, August 24, 2018

[세상읽기]미래는 이미 도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향신문 (2018.08.23)

말레이시아 슈퍼리그. 말레이시아 프로축구리그의 이름입니다. 2017년 통계를 보면 총관중이 87만2108명이었습니다. 경기당 평균 6607명이 관람한 셈이죠. 2014년부터 우승을 휩쓸어온 조호르 다룰 탁짐(JDT)의 수치를 보면 작년 총관중이 18만7557명으로 경기당 1만7051명의 관중을 불러모았습니다. 비슷한 팀이 한국에도 있습니다. FC서울로 총관중 수 31만61명, 경기당 평균 1만6319명이었죠. 흥행이 비슷하다 싶지만 속사정은 너무 다릅니다.

서울 인구는 990만명, 수도권까지 합치면 2500만명입니다. JDT의 근거지 조호르바루 인구는 160만명, 조호르주는 300만명 정도입니다. 광역인구를 비교해 보면 서울이 8배 큰 셈이죠. 한국과 말레이시아 축구 열기가 비슷하다면 서울 평균 관중 수가 지금의 8배여야 맞습니다. 즉 13만명이 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단순한 계산이지만 한국 축구 열기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반대로 말레이시아의 축구 열기를 상상해 볼 수 있죠. 한국대표팀이 말레이시아에 진 것이 놀랍지만 예상할 수 있었던 미래가 온 셈이죠.

사실 텅 빈 축구장과 꽉 찬 골프장을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점입니다. 축구를 하지 않는 나라에서 축구 관중 수가 급감하는 것이 이상할 게 하나 없죠. 오히려 이상한 것은 축구 열기입니다. 월드컵 때만 되면 광장이 들어차고 ‘치맥’이 동이 납니다. 평소에 축구에 전혀 관심 없고, 심지어 규칙도 모르는 이조차 온몸을 빨갛게 물들이고 소리를 지릅니다. 축구에 대한 애정은 이미 식었으니 그 열기의 뿌리는 아마도 축구는 아닐 테죠.

이는 민족주의입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다는 우월감을 근간으로 하는 민족주의가 그 뿌리입니다. 일제 치하에서는 긍정적 에너지였을지 모르지만 21세기 한국에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민족주의는 우리가 특별하다는 환상을 만들어주는 증거를 필요로 합니다. 양궁, 태권도, 한글, 김치, 첨성대, 직지심체요절, 삼성. 세계 최고, 동양 최고라는 자부심에 감격합니다. 사실 세계 어디를 가도 자랑스러운 유물과 전통 없는 나라는 없죠. 다들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즉 아무도 최고는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은 중요치 않죠.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고인 것만 자랑스러워할 뿐 그 배경인 고려말 불교의 망국적 행태는 논하지 않습니다. 당시 구시대의 유물이었던 직지심체요절과는 반대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유럽 전체의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일으켰죠. 하지만 ‘우리가 더 빨랐다’는 데에만 만족해할 뿐입니다.

민족주의는 남을 비하해서 우월감을 충족시켜주기도 합니다. 똑같은 동포라도 미국에서 오면 교포고, 중국에서 오면 조선족이 됩니다.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인이 아니면 누구라도 낮게 보죠. 심지어 미국인도 흑인은 ‘깜둥이’라고 비하해 부릅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에게 우리는 무자비합니다. 선장은 선원을 바다에 빠뜨리고, 농장주는 노동자 가슴팍에 니킥을 날립니다. 성추행도 다반사고, 다치면 버려집니다. 휴일·휴식도 제때 보장하지 않고 임금체불도 흔하죠. 심지어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권력기관에 의한 폭행과 불법감금도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가게에서 나가라고 고함치기도 하고, ‘쟤들은 뭐야’라는 빈정거림은 너무나 일상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특정 집단을 향한 공공연한 증오발언·폭행 등 이른바 혐오범죄를 규제할 법조차 없습니다. 상식과 인권의 차원은 물론 실질적 이유에서도 이래서는 안됩니다. 2013년 기준 외국인 노동자는 25만여명. 매해 2만건이 넘는 국제결혼으로 2017년 전체 혼인 중 다문화 혼인의 비중은 7.7%. 다문화 학생은 2017년 10만명을 돌파해 5년 사이 2배 증가. 이런 수치만 보더라도 한국은 이민자 없이는 지탱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 고갈도 마찬가지죠. 인구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근본적 해결책은 젊은 노동력의 증가이고, 여기에 이민 문호 확대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이민 확대, 이민자 보호, 전반적 노동권 확대 등 정부가 할 일이 산적합니다. 게다가 민족주의적 반대와 두려움과도 다퉈야 할 겁니다. 정책을 마련하고 사회 인식을 바꾸는 노력에도 공을 들여야 하죠. 비정부기관의 활동도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국민연금 위기 같은 근본적 위기가 폭발할 한국의 미래는 이미 문 앞에 와있으니까요.

Saturday, August 18, 2018

범죄 드라마 리뷰 7 - The Break 그리고 The Forest

우연히 프랑스어로 된 작품을 연이어 보았습니다

The Break (La Trêve) 는 처음 보는 벨기에 작품 (최근 뜨고 있는 벨기에 티브이 시리즈를 다룬 가디언 기사: 시장이 작고 그나마도 여러 언어를 쓰는 사정으로 제한이 많았는데 오히려 그런 점을 독특한 색깔로 승화시켰다는 지적) 이였죠. 큰 기대를 안 했는데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보통 시리즈를 보면 형사가 용의자를 찾고 막 추적하다 다른 사람이 범인으로 밝혀지죠. 반전의 묘미인데요. 이 작품에서는 거의 매 회 그런 반전이 이루어 집니다. 중반 이후로 가면서 이거 어떻게 수습을 하려나 걱정이 될 정도였죠. 조그마한 마을 하나가 다 탈탈 털리는 지경이 되니까요.

아프리카 난민인 희생자가 백인 마을에서 겪는 일을 통해 사회적 모습도 조용히 들어납니다. 하지만 전형적이지는 않아서 더 좋았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두 가지가 눈에 띄는데요. 하나는 시작하는 방식입니다. 전 회가 끝날 무렵에 강조된 인물의 꿈이나 환상으로 시작하죠. 거기선 늘 희생자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죄책감이 들어나면서 희생자와 어떤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죠. 어? 이사람도? 이런 생각이 들며 흥미를 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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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주인공 형사의 번민입니다. 개인적으로 형사의 내적 갈등이 들어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선악이 딱 구분이 되지 않는 세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람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이 드라마에선 정말 딱할 정도로 망가지는 형사를 봅니다. 그 고통이 주인공 얼굴에 잘 들어나죠. 처음에는 이 모든 것을 가리는 무뚝뚝함으로 마지막에는 터져나오는 고통을 수습해보려는 절규로요. 그 연기(Yoann Blanc: 위키페이지도 제대로 없는, 미국에선 무명인)가 참 인상적입니다.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The Forest (La Forêt)는 벨기에 국경의 프랑스 시골을 배경으로 합니다. 작품 자체는 뭐랄까 그냥 평균작이랄까요. 그런데 이 작품을 독특하게 만드는게 있는데요. 한 등장 인물입니다. 선생님(Alexia Barlier 분)이 등장하는데 범인도 아니고 희생자도 아니고 목격자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고...  참 애매한 위치에 있죠. 그런데 뭔가 있다는 느낌을 처음부터 지울수가 없는, 참 특이한 인물입니다. 은근히 극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새롭고 인상적이였죠. 묘하게 매력적인 그 인물이 어떤 과거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한 재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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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Tuesday, August 7, 2018

범죄 드라마 리뷰 6 - The Sinner

아주 신선한 드라마를 봤습니다, <The Sinner>. 보통 범죄 드라마는 누가 범인이냐를 놓고 이야기가 펼쳐지죠. 이 드라마에서는 전혀 아닙니다. 첫회, 시작하자마자 누가 범인인지 다 까발립니다. 전혀 여지가 없죠. 시청자 뿐 아니라, 극중에서도 비슷합니다. 살인은 강가 공원에서 사람들이 보는 대낮에 일어납니다. 범인도 자기가 했음을 곧 인정하고요.

문제는 범인도 동기를 모른다는 것이죠. 평범한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가족들과 수영하러 와서, 아들에게 사과를 깍아주던 채로 갑자기 그 과도로 사람을 죽입니다. 왜?

제목과 첫회에서 곧 들어나듯 종교가 한 몫을 했겠다 싶은 느낌도 들죠. 하지만 충분하지 못합니다. 궁금하죠. 끝까지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한 시즌으로 끝나는 형태고 이야기의 전개도 빠릅니다. 너무 산만하지도 않아서 즐기기에 딱입니다. 여자 주인공 Jessica Biel는 좀 낯설더군요. 그런데 어쩜 그렇게 연기를 잘 하던지! 알고보니 이 쇼의 제작자이기도!! 저스틴 비버의 아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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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주인공도 참 특이합니다. 결혼의 괴로움과 이를 달래는 방법이 참 ... 독특하죠. 감정이 얼굴에 잘 들어나는 좋은 연기도 인상적입니다.

시즌 2가 방송을 막 시작했으니 어디 뜰러면 한참 기다려야 할듯 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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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ly 29, 2018

[세상읽기]이런 군이 정말 필요할까

경향신문 (2018.07.26)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정당성은 “사리에 맞아 옳고 정의로운 성질”을 뜻합니다. 한 집단의 정당성은 사회에서 주어진 몫을 다함으로써 얻습니다. 교사는 학생을 잘 가르칠 때, 의사는 환자를 돌볼 때 우리는 그들의 정당성을 인정하죠. 학생 성 학대, 의료사고가 불거질 때마다 정당성이 약화함은 당연합니다.

군대의 정당성은 특별합니다. 그들이 가진 폭력의 독점 때문이죠. 외적의 위협을 막는 대신 가공할 살인 무기를 지니고 거대한 조직을 유지할 정당성을 가집니다. 그 정당성이 흔들리는 순간 군은 소임을 하기 힘들어질 뿐 아니라 사회를 위협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존재 이유마저 의심받을 수밖에 없죠.

1950년 여름 한국군은 치욕적 패배를 경험했습니다. 불과 며칠 만에 서울을 적군에 내주었고, 한강 다리를 끊어 수많은 피란민을 죽였습니다. 미군 덕에 낙동강 전선을 겨우 지켰고, 미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간신히 전세를 역전했죠. 작전권을 다 내준 군은 그렇게 오욕의 역사를 열었습니다. 외국군에 기댄 초라한 초상화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국방비의 여러 배를 … 한두 해도 아니고 근 20년간 이런 차이가 있는 국방비”를 쓰고 있는데도 국방력이 약하다고 징징거리며 “미국한테 매달려서, 미국 뒤에 숨어서” 있는 군, 2006년 당시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증언한 모습이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외적’을 막는, 가장 중요한 사명을 온전히 못하는 군대입니다.

기본적 사명이 뒷전이니 심심한 걸까요. 수십억원대의 방산비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왔죠. 음료수 하나라도 건네지 않고서는 일이 되지 않는 일상적 부패도 군을 뼛속까지 오염시켰습니다. 고질적 병영 내 폭력은 또 어떤가요. 보도되지 않는 폭력과 인권 유린이 얼마나 흔한지 다 압니다. 이런 군대니 사고가 잦은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가장 최근 해병 헬기 ‘마린온’은 회전날개가 빠지는 어이없는 사고를 내며 5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마린온의 모델인 ‘수리온’ 헬기도 이미 몇 년 전에 기체 및 엔진 등의 결함으로 안전사고가 잇따랐고 조사 후 검찰에 수사 의뢰하는 등 조처가 내려진 기종이었습니다.

이런 군대지만 유독 시민들 앞에서는 당당하고 무자비했습니다. 제주 항쟁에서 약 3만명의 시민이 군경의 손에 학살을 당했습니다. 4월의 혁명은 박정희 소장의 탱크로 좌절됐고 1980년의 봄은 전두환의 헬기로 쓰러졌죠. 이런 삐뚤어진 전통은 민주화로도 꺾을 수가 없나 봅니다. 이들이 또다시 국민을 짓밟으려 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을 전제로 군은 서울 광화문·여의도에 장갑차를 배치하고 국회와 언론을 통제하려 했습니다. 정부조직을 장악하고 평화적 시위를 진압할 꿍꿍이를 꾸미고 있었죠.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계엄사를 편성하고 3사관학교 출신인 이순진 합참의장을 배제한 흔적도 보입니다. 계엄이라기보다는 친위 쿠데타에 가까운 사태가 날 뻔했지만 이를 보고받은 현 국방부 장관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죠.

누구의 변명대로 비상사태를 대비한 계획일 뿐이었다고 해도 사태는 심각합니다. 당시 서울 시내는 시민의 성숙한 시위로 평화롭기만 했죠. 협박은 박근혜 지지층에서 나왔고, 위험은 박근혜와 그 측근들만의 것이었습니다. 군이 나서서 처리할 어떠한 위협도 없었죠. 그러니 당시 군의 근심은 국민의 안위가 아닌 박근혜의 안녕이었던 겁니다.

부패와 각종 문제로 곪을 대로 곪은 군은 외부의 위협을 처리할 능력도 의사도 없어 보입니다. 오직 정권을 위해서만 총칼을 휘둘러 왔죠. 시민은 군의 보호 대신 협박과 폭력에 더 익숙해졌습니다. 그런 군대에서 “사리에 맞아 옳고 정의로운 성질”은 이미 오래전에 없어진 듯합니다. 오늘 기무사 계엄 문건 사태는 이런 현실의 작은 예일 뿐입니다. 그러니 기무사 ‘개혁’을 떠드는 소리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요. 그 개혁이 가능하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지만, 설사 개혁이 이루어저도 충분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죠. 그러니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군이 정말 필요할까요. 2년씩 청춘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대답을 기다려봅니다.

Thursday, June 28, 2018

[세상읽기]대통령만 바라보는 시민들에게

경향신문(2018.06.28)

2011년 사극 <뿌리 깊은 나무>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석규가 오랜만에 티브이에 출연해서 관심을 끌었죠. 팬으로서 침체기에 있던 배우가 걱정이었지만 이는 한낱 기우였습니다. 드라마는 세종과 밀본이라는 비밀조직의 다툼을 그렸습니다. 양측은 정반대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추구했죠. 세종은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고, 밀본은 정도전의 뜻에 따라 왕이 아닌, 재상 중심의 정치를 추구했습니다.

실제로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군주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고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다. 그러므로 재상은 군주의 아름다운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바로잡을” 임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능력 없는 이도 임금이 될 수 있으니 능력 위주의 관료가 중심에 서야 한다는 지적이죠.

드라마고, 왕조시대 이야기지만 밀본의 걱정은 오늘날 정치와도 무관치 않습니다. 정치 안정을 한 개인에게 기댈 수 없다는, 그래서 다수가, 민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점에서 현대 국가의 통치, 특히 민주주의와 닿는다고 할 수 있죠. 이런 점에서 최근 한반도 정세는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먼저 북핵 문제를 보면 개인의 영향력이 도드라집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로 대화의 물꼬가 트였고 평창 올림픽을 거쳐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렸습니다. 내부 사정을 잘 알 수는 없지만, 관료들을 제쳐놓고 김여정 부부장, 김영철 부위원장 등 소수의 최측근을 통해 거침없이 진행됐음을 짐작할 수 있죠. 더 특이한 것은 미국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특사를 만나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초청을 수락했습니다. 북·미 협상도 국무부는 쏙 빼놓은 채 최측근인 폼페이오 당시 중앙정보부 국장과 트위터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의 걱정과 반대도 완전히 무시했죠. 개인 치적과 자존심을 앞세운 트럼프에 의해 지난 반세기를 이어온 대북 정책이 뒤집힌 것입니다.

김정은과 트럼프라는 개인이 주도하는 협상이었던 만큼 일 처리가 KTX처럼 빨랐습니다. 하지만 신속했던 만큼 구체적 성과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웃는 얼굴로 악수했지만, 비핵화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 확인은 어떻게 할 것인지 어느 하나도 구체적으로 결정난 것이 없죠. 게다가 두 지도자의 추진력이 주요했던 만큼 둘 중 하나라도, 무슨 이유에서든, 마음만 돌아서면 상황은 쉽게 악화할 수 있습니다. 북·미 협상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입니다.

다행히도 한국이라는 중재자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지도자와는 달리 정부를 십분 활용하고 민심을 추스르며 남북 문제를 추진하고 있죠. 불안한 북·미 협상에 중심을 잡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정치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방선거가 민주당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습니다. 설마설마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월세 내는 날이 또박또박 오듯 예견된 결과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능숙한 외교를 통해 전에 없던 남북 간 평화를 끌어냈고, 70%를 오가는 지지를 받아왔죠. 자연히 민주당은 문재인마케팅에 올인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기대기는 민주당뿐 아닙니다. 시민도 대통령만 바라보는 형국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그 한 예죠. 이는 불통의 아이콘이던 박근혜의 추억을 지우기 위한 방책이었을 겁니다. 덕택에 막힌 하수구가 뚫린 듯 청원이 뜨겁습니다. 하지만 종편방송 허가 취소, 용의자 처벌 등 대통령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일마저 요구합니다. 권력은 나누어져 있고 법과 제도가 있지만, 시민은 대통령이 봐주고 처리해주길 바라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잘해서 인기도 얻고 국정운영도 잘되고 남북 문제도 잘 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개인에게 기대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그 업적도 쉽게 무너질 수 있죠. 그 여파가 국내정치에 그치지 않고 남·북·미관계에 여파가 미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박근혜에게 환호하며 올인했던 보수의 꼴이 보수만의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21세기, 아직도 덕이 많은 군주 덕에 태평성대가 오고, 폭군 때문에 난세가 오는 중세에 사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Sunday, June 17, 2018

[세상읽기]당위가 무너진 정글, 먼 나라 얘기일까

경향신문 (2018.05.31)

시리얼이 몸에 나쁘지야 않겠지만 정성스레 준비한 아침 밥상만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바쁜 아침, 아이들 깨우고 도시락을 준비하다 보면 아이들에게 시리얼 먹으란 말을 하게 됩니다. 부모 노릇을 하면서 이렇게 타협하는 일이 흔합니다. 우는 애에게 TV를 틀어주고 심심해하는 아이에게 전화를 쥐여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집안에서는 현실과 마땅히 해야 하는 일, 즉 당위의 마찰이 일상적으로 벌어지죠.

늘 현실에만 눌러앉아 있지는 않습니다. 시리얼 준 다음날이면 괜히 미안해 시간을 내 달걀이라도 부치죠. 당위를 향하는 마음은 사랑과 부모의 의무감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개인 노력만으로는 모자랍니다. 파트너의 질책이나 주변의 눈초리도 도움이 되죠. 현실과 당위의 마찰이 너무 심해지면 국가가 간섭하기도 합니다. 아동복지법은 한 예입니다. 

집안 현실과 당위의 마찰은 쉽지 않지만 사회의 그것에 비하면 소소해 보입니다. 특히 법질서의 현실과 그 당위의 괴리는 너무 크고 심각해 보입니다. 나쁜 짓을 하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재산과 권력의 유무를 떠나 똑같이 처벌받아야 하죠. 그 당위는 법 집행의 핵심입니다. 법 집행의 공정성이 의심받는 순간, 사람들은 경찰·검찰·법원 등 법 집행 기관과 법을 믿을 수가 없게 됩니다. 내가 잘못해서 처벌받는 게 아니고 돈이 없어서, 힘이 없어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자연히 돈과 힘에서 정의를 찾을 수밖에 없고 결국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될 겁니다.

지금 한국이 그런 정글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그 정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나요?

재벌 총수에 대한 처벌은 한없이 관대합니다. 형을 선고받아도 실형을 살지도 않고 집행유예로 끝나기 일쑤죠. 사면 복권도 공식처럼 따라다닙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사면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보통 사람은 돈 백만원, 천만원으로도 감옥에 가지만 이들은 수십억원의 비자금, 수백억원의 배임·횡령 등에도 끄떡없습니다.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감옥에서 걸어나왔습니다.

특권을 몸에 달고 태어난 이들은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도 없는 언행을 보였습니다. 경주장 셔터를 내리고 4억원이 넘는 고성능 차를 혼자 모는가 하면, 깡패처럼 보복 폭행을 하기도 합니다. 열 받는다고 비행기를 돌리는가 하면, 손에 닿는 것은 무엇이건 집어 던지기도 합니다.국회의원들도 몸에 특권이 문신처럼 그려져 있는 듯합니다. 자유한국당은 6월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했죠. 강원랜드 취업청탁 의혹을 받는 권성동 의원의 체포를 막기 위한 ‘방탄국회’일 가능성이 큽니다. 국회 안에서 비난의 목소리도 있지만, 특권을 주고받는데 여야가 따로 있을 리가요. 바로 얼마 전 뇌물수수·배임 등 혐의를 받는 홍문종 의원과 강원랜드 채용비리에 연루된 염동열 의원 체포 동의안도 여당 의원들 이탈에 부결됐었죠. 

이런 뉴스를 삼시 세끼 챙기듯 보는 우리는 좌절하고 분노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믿었습니다. 현실은 어려워도, 가끔 실수해도, 가끔 잘못해도, 정의의 여신은 당위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요. 그 칼날이 무뎌지고, 저울이 기울어지고, 눈가리개가 헐렁해 보여도 우리는 믿었죠.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알게 됐죠. 그 여신은 일상을 다투며 살아가는 부모보다 못하다는 것을요. 당위를 위해 애쓰다 실수하고 가끔 현실에 타협하는 범부만도 못하다는 것을요. 놀랍게도 당위가 아닌 사익을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뒷거래하고, 아첨하며, 겁박하는 여신을 보았습니다. 그의 뒷발질에 정의는 땅에 떨어지고 힘없는 이들은 절규했습니다. 그 여신의 칼질에 직장을 잃고 목숨마저 잃었습니다.

이런 마당에 그들은 또 법복을 입고 근엄한 얼굴로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울 겁니다. 우리는 압니다. 다행히 조사가 이루어지고 책임자가 처벌을 받더라도 당위가 아득하게 보이는 정글 언저리에서 멀어지지 않을 것을요. 재벌 총수는 수십억원을 횡령하고 초울트라슈퍼 갑질을 계속하고, 권력가들은 방탄국회 노래를 흥얼거릴 것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촛불이 아니라 횃불을 들어대야 할 이들이 한둘이 아닌데 그 명단이 늘기만 해 마음이 바빠지는 초여름입니다.

Wednesday, June 13, 2018

범죄 드라마 리뷰 5 - "Safe" 와 "Marcella - Season 2"

SafeMarcella는 여러 면에서 참 다른 드라마입니다. 전자는 형사가 아닌 피해자의 아빠가 리드를 하죠. 후자는 제목 그대로 마첼라라는 여자형사가 중심입니다. 전자는 한 시골 동네 안에서 전개가 되는 반면, 후자는 런던 안팎을 정신없이 휘젓고 다닙니다. Safe의 남자 주인공은 Dexter 역을 했던 Michael C. Hall 이고, Marcella는 제가 너무 애정하는 스웨덴 형사물 The Bridge를 만든 사람이 제작했습니다. 그래서 뭐랄까요 칙칙하고 습기가 찬 느낌이 강하게 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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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하지만 결정적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 모두 처절한 비극에서 무서울 정도로 가깝게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말 한마디, 손짓 하나로 평범한 일상에서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오대수도 생각나네요...)

사실 그 점은 잘 만들어진 범죄 드라마의 필수 요소일겁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이 어디 있나요. 대부분은 좋은 사람이지만 나쁜 짓을 하는 거죠. 평범한 사람이 영웅적 행동 하나로 영웅이 되듯이요. 그래서 좋은 드라마는 그 착하고 선량한 사람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묻죠. "너도 그런 적 있지 않니? 까딱하면 저런 일 저지를뻔 했잖아?"

그래서 좋은 범죄 드라마를 보면 끝나도 마음이 착찹해지죠. 찔리기도 하고요. 일상에 감사한 마음도 듭니다. 착하게 살자 하는 다짐도 하게되죠.

이런 싸해지는 마음이 극도로 드는게 이 두 드라마입니다.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그 마음이 더해지는 것도요. 특히 후자는 마지막 회를 보면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가슴이 팍팍해진다고 해야할까요. 

Safe는 한 시리즈로 깔끔하게 끝나고 Marcella는 시즌 1, 2가 나왔고 3도 나올 예정입니다. 이 중 여기서 살펴 본 Marcella 시즌 2가 제일 나은 듯 합니다. 아뇨. 강추입니다.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좀 산만한 느낌도 들지만요. 시즌3은 완전히 다른 드라마가 될 듯해서 좀 아쉽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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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May 21, 2018

[세상읽기]이 땅에서 걷어내야 할, 질기고 오래된 ‘공포’

경향신문(2018.05.03) 

“완벽한 군인이다. 늘 용감하고, 잠들지 않으며, 적을 놓치지 않는다.” 로봇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인 지뢰를 평한 말이죠. 이렇게 효과적인 무기가 또 저렴하기까지 합니다. 지뢰 하나를 생산, 설치하는 데 싸게는 3달러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적은 다리를 잃고 목숨마저 잃을 수 있습니다. 인기가 있을 수밖에요. 1960년대 이후 세계 곳곳에 1억개가 넘는 지뢰가 설치되어왔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뢰의 공포는 전쟁이 끝나도 쉬 가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문제죠. 숨겨진 지뢰 제거에는 하나에 300달러에서 1000달러나 듭니다. 비용이 많이 드니 뒷전으로 밀리기 쉽고, 이 때문에 민간인 희생이 커집니다. 밭을 일구다, 공을 차다 지뢰를 밟는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개인과 가정의 비극임은 물론 경제 개발에 큰 걸림돌이기도 하죠. 지뢰 제거는 그래서 인권의 문제이자 사회 발전의 당면 과제이기도 합니다.


한번 심어 놓으면 제거하기 힘든 것은 지뢰뿐 아닙니다. 비 올 때마다 한 뼘씩 솟아나는 대나무도 있고, 날마다 뿜어져 나오는 공장 굴뚝의 검은 연기도 있죠. 공포도 그렇습니다.


한국 사회 공포의 근원에는 좌우 대립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친일 세력은 해방과 더불어 몰락의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군정의 은혜를 입은 이들은 ‘빨갱이’에 대한 공포 때문에 부활하죠. 그 공포는 신앙이고 복음이었습니다. 사활이 달린 문제였으니 필사적으로 전파했죠. 한국전쟁으로 정권을 거의 잃을 뻔했던 이들은 자신도 공포를 마음 깊이 심었습니다. 그 공포가 깊어질수록 미국에 대한 애정은 깊어만 갔죠.


그래서 이들은 공화당, 민정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이름도 바꾸고 얼굴도 바꿨지만, 친미, 반공 말고는 별 사상적 기반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죠. 그 공포만 지키면 권력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공포 장사는 또 얼마나 쉬웠던가요. 북한은 간간이 도발을 해주었고 필요하면 간첩사건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몸서리 치며 입을 닫고 눈을 감았습니다. 유럽에서도 북한 식당 들어가기 겁이 났고, 온라인에서도 종북이란 딱지가 붙을까 눈치를 봤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K팝이 전 세계를 흔들어도 공포는 그렇게 떨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해방부터 이제껏 공포로 연명해온 자유한국당 대표의 최근 발언들은 하나도 놀랍지 않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위장평화쇼” “주사파들이 남북관계를 보는 눈”이라는 독설을 이어갔죠. ‘비핵화 논의’가 안되면 무의미하다며 투정부리다 논의가 되자 ‘북핵 폐기’가 아니라 소용없다며 생떼도 썼습니다. 극우표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자의 정치쇼일 수도 있고 민심을 못 읽는 무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웃을 수만은 없죠. 우리 모두의 공포를 대변하는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다행히도 그 공포를 걷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촛불집회에서, 미투 운동을 통해서 공포를 극복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용기와 연대가 당장 해결책은 아니지만, 괴물에 대한 공포만큼은 이기게 해준다는 경험을 말이죠. 공포가 없어지면 괴물도 허수아비일 뿐임도 수의를 입은 전직 대통령을 통해 보았습니다.


남북 문제의 절반은 우리 마음속의 공포입니다. 그러니 용기와 남북 연대만 되살릴 수 있다면 문제는 뜻밖에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이 더더욱 성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만남보다 용기를, 그리고 연대에의 희망을 주었으니까요. 갈 길은 멀고 험합니다. 실패와 실망에도 대비해야죠. 하지만 ‘빨갱이에 대한 공포’를 걷어낸 것만으로도 큰 성과입니다.


그 질기고 오래된 공포를 없애는 참에 지뢰도 제거해야겠죠. 한반도에는 100만개도 넘는 지뢰가 묻혀있다고 알려졌습니다. 휴전선 지뢰 제거는 꼭 필요한 일이고 남북 간의 연대가 필수적입니다. 남과 북이 더 가까워지고 휴전선 일대가 진정한 평화의 영토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죠. 공포와 지뢰가 없어진 그 땅 너머로 우리의 아이들이 농구공을 주고받고 웃음을 이어갈 미래가 기다려집니다.

Tuesday, May 1, 2018

[세상읽기]제1 야당의 ‘빨갱이 딱지’ 붙이기

경향신문(2018.04.05)

총기 살인은 미국 고질병입니다. 지난 2월 플로리다의 고등학교에서 한 범인이 쏜 총탄에 17명이 사망하며 충격을 줬지만, 그 충격이 무뎌지는 지경이죠. 네 명 이상이 희생되는 ‘총기 난사’가 거의 매일 일어납니다. 그런데도 총기 규제는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정치적으로 막강한 전국총기협회가 워싱턴 정가를 꽉 잡고 있는 게 주요 요인입니다. 총기 보유를 헌법이 보장하는 탓도 있죠. 총기에 익숙한 미국인의 정서도 한 요인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를 추가하자면 미국의 탄생 그 자체입니다. 미국 팽창은 원주민에 대한 폭력을 통해 이루어졌죠. 그 탓에 미국 전역에 퍼져있던 원주민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들의 피와 눈물이 뿌려지지 않은 곳이 없죠. 살인적 폭력이 미국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승자인 백인들이 총을 사랑할 수밖에요. 총기 폭력은 미국의 원죄라 할 것입니다. 이 원죄를 씻지 않고서는 총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딱지 붙이기는 한국 고질병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의 추악하고 비열한 범죄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기가 막히되 놀랍지는 않습니다. 이명박 시장 때 이미 많은 이가 그의 저열함을 눈치챘고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의심은 이미 ‘다스’를 향하고 있었죠. 그래도 우리는 이명박을 뽑았습니다. 입맛을 다시는 그의 등짝에 붙어있던 ‘현대건설 신화’라는 딱지와 ‘장로’라는 딱지 덕이었죠.


불행히도 한국 거리는 온통 딱지투성이입니다. 재벌을 옹호해도, 신자유주의를 추구해도 ‘진보’ 딱지는 민주당 이마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백인이면 ‘미국인’으로 떠받들고 흑인은 미국인이어도 ‘깜둥이’로 멸시하죠. 한국계 미국인은 ‘미국교포’이지만 한국계 중국인은 ‘조선족’입니다. 이 중 최고(?)의 딱지는 역시 ‘빨갱이’죠.


레드벨벳이 평양에서 공연한 2018년에도 제1야당은 사회주의 개헌저지 투쟁본부를 만들고 앉아있습니다. 누구는 윤상 평양공연 예술단 음악감독을 친북인사들과 엮는 웃지 못할 비난도 했죠. 보수정권 때에는 야당을 “종북세력의 숙주” “종북 연대”라면서 조롱했고 “북한 지령에 따른다” “차라리 월북하라”며 규탄했습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통합진보당을 빨갱이로 몰아 해산시키며 그 광기의 정점을 찍었죠.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빨갱이가 아니냐는 의심에 내내 시달려야 했습니다.


모든 딱지는 이성을 메마르게 합니다. 그 때문에 한국 사회는 비극과 비극을 넘나들었죠. 빨갱이 선동에 열을 올리며 이명박, 박근혜는 정부를 노리개로 썼습니다. 그 와중에 세월호는 가라앉았죠. 신군부 독재 정부는 저항하는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 때리고, 감금하고, 고문했습니다. 안타깝게 죽어간 이는 박종철, 이한열만이 아니었죠. 그 독재 정권의 시작은 광주 학살이었습니다.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죠. 1975년 인혁당 사건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8명은 사형 확정 후 불과 18시간 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이명박이 수상해도 그냥 찍었듯, 우리는 쉬쉬하며 넘어갔습니다. 나의 안위가 당장 급했지만 그렇게라도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 조그마한 딱지라도 하나 있어야 했죠. 권력은 금방 눈치를 챘습니다. 딱지만 붙여놓으면 사람들은 딴 곳만 쳐다본다는 것을요. 그 시작은 1948년이었습니다.


그해 4월3일, 400여명의 좌익 무장봉기가 제주도를 흔들었고 미 군정과 한국 정부는 ‘빨갱이’를 소탕한다는 이름으로 초토화 작전을 벌였습니다. 3만여명을 학살했고 마을도 불살라버렸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민간인이었죠. 살아남은 이들도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감추고 침묵으로 버텼습니다. 이들의 피를 쏟고 태어난 대한민국 권력은 빨갱이 딱지에 중독됐죠. 그러니 제주의 피는 대한민국의 원죄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딴 곳만 쳐다보는 사이 뻔뻔한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오늘까지 왔습니다. 제1야당 대표는 아직도 빨갱이 딱지 덧대기에 바쁩니다. 다행히 대통령이 사과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죠. 원죄를 씻지 않고서 우리는 온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명명백백히, 숨김없이 밝히는 일이 급합니다. 온전히 씻지 못할지도 모르죠. 그래서 더 급한 숙제입니다.

Sunday, March 18, 2018

범죄 드라마 리뷰 4 - Collateral

런던을 배경으로하는 형사물입니다. 네 편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리즈이지만 놀라운 작품입니다. 피자를 배달하는 한 청년의 죽음에서 시작하죠. 

우선 네 편밖에 안 되는데도 수 많은 인물이 복잡하게 연결될 뿐 아니라 이들의 감정과 고통, 분노, 슬픔이 잘 들어납니다. 나쁜 놈이 그냥 나쁘기만 할 수 없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또 드라마는 영국 사회 다양한 모습도 비춥니다. 이민, 난민, 이들을 바라보는 영국사회의 편견, 조직내 성폭력, 전쟁과 이를 치르는 이들의 비극 등, 현대 사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제들이 다루어집니다.

처음에는 그냥 그렇게 문제가 묘사되는 정도로 시작하지만 곧 '시스템'과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개인과의 대립이 들어나죠. 그 대립도 입체적이여서 마지막에 탄성을 지르게 만듭니다.

David Hare이 각본을 썼습니다. 영화, 연극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 그 중 나찌 과거를 가진 여인의 사랑을 그린 2008년 영화 "The Reader"의 각본을 쓰기도 했습니다.

여성이 주도하는 것또한 눈에 띄는 점입니다. 여성 형사물이 이젠 드물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선 주인공 형사는 여자에 임신까지 했죠. 뭐랄까요. 남성들이 흔히 저지르는 폭력과 살인의 대척점에 서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주요 축을 이루는 모든 인물들이 거의 다 여자라 할 수 있습니다.



오프닝 음악으로 나오는 팝송이 매번 다르고 그또한 참 위트있게 틀어댑니다. 장면이 넘어갈 때 쓰는 카메라도 잘 썼고요.

여러 모로 잘 즐길 수 있는 수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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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rch 11, 2018

[세상읽기]영화 ‘블랙 팬서’의 발랄한 상상력

경향신문 (2018.03.08)

영화 <블랙 팬서> 열기가 한국에서도 뜨겁습니다. 한 주요 장면이 부산 자갈치 시장을 배경으로 하니 한국 팬으로서 더욱 반가울 수밖에요. 만화를 기본으로 한 이 슈퍼히어로 영화는 가상의 아프리카 나라 와칸다 안팎의 싸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작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죠. 미국에 슈퍼히어로 영화가 많았지만, 흑인 영웅은 처음이니까요. 게다가 배우의 대부분이 흑인이고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도 다수가 흑인이어서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발랄한 상상력입니다. 영화 속 와칸다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유럽 제국주의에 희생당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비밀 광물인 비브라니움 덕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전을 이뤘지만, 외부에는 숨기고 살죠. 뛰어난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최고 무사인 왕은 미남에 통찰력과 애타심을 겸비했습니다. 왕비는 우아함을, 공주는 재치와 비범함이 몸에 배어있죠. 천연자원이 풍부함에도 정치 혼란과 내전 등으로 힘겨워하는 아프리카의 현실과 크게 다르죠. 대중매체에서 흔히 묘사하는 흑인들의 모습과도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백인들의 부정한 손을 타지 않았다면 오늘의 아프리카는, 흑인은 어땠을까를 상상하게 합니다. 강산과 전통을 짓밟고 살육과 노예화를 서슴지 않은 백인의 침략이 없었다면 아프리카는 훨씬 평화롭고 풍족한 땅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말입니다. 노예의 후예인 미국 흑인들도 훨씬 더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았겠죠. 미국 흑인 장년층이 애들도 없이 와서 보고 열광하는 이유죠. 빈민층 흑인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기 위한 모금 운동이 큰 호응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흑인들이 느낀 감동을 우리가 온전히 느끼기는 힘들 테죠. 평창의 감동을 외부인이 짐작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전쟁이 나는 것 아니냐며 미군 가족들 동향을 보며 안심해야 하는 우리였습니다. 하지만 북에서 내려온 그들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손짓 하나하나에 우려는 조금씩 누그러져 갔죠. 그리고 우리는 상상했습니다. 1945년 8월10일 미군 대령 둘이서 38선 따라 줄을 긋지 않았더라면, 이 땅에 전쟁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그 비극에 기생하는 정치 권력이 민중을 짓밟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하고 말이죠.

상상은 상상일 뿐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상마저 하기 힘든 날이 얼마나 많았나요. 통일은 대박이라는 공허한 외침과 북을 처단하라는 고함 사이에서 우리네 마음은 움츠러들었습니다. 마음이 움츠러든 만큼 운신의 폭도 줄었죠. 우리는 스스로 그린 좁은 원 안에서 쪼그려 앉았고, 저들은 그 금밖에서 칼춤을 추었습니다. 이를 구경하며 전쟁의 찬가를 부르는 이마저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창은 우리를 그 금 안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상상은, 마음은, 지지는 급물살을 탔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평창에 선수단을 보내도 되냐며 걱정이었지만 이제 4월이면 정상회담까지 열립니다. 정상 간 핫라인도 설치됩니다. 앞으로의 길이 쉽지만은 않겠죠. 안팎에서 딴지를 거는 이도 있을 겁니다. 사건, 사고도 있을 수 있죠. 누구는 당장 정상회담을 ‘정치 쇼’로 폄하했습니다. 하지만 간신히 잡은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정세를 정확히 판단해야 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이렇게까지 나온 이유는 핵무기를 통한 대미 억제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신을 미국이 공격하기 힘들다는 자신감이 이들을 움직였죠. 대북 공격을 들먹이는 이들도 실제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남은 길은 좋든 싫든 대화뿐입니다. 대화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서로 양보할 때 대화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영화 <블랙 팬서>는 비브라니움과 발전을 숨겼던 방침을 버리며 끝이 납니다. 외부와의 접촉이 와칸다에 줄 부정적 영향을 감수하면서 전 인류와 공존의 길을 걷습니다. 북은 남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죠.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마련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태권도 시범단 뒤를 이어 경제 투자, 인적 교류, 정치 협력이 따르고 제도화되어야 합니다. 개성공단을 열고 금강산 관광을 시작했던 상상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범죄 드라마 리뷰 3 - Berlin Babylon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독일 드라마 <베를린 바빌론>은 나찌가 일어나기 직전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 재미가 쏠쏠합니다. 우선 끄는 매력은 그 배경 자체입니다.



우선 독일영화하면 늘 나찌나 전쟁을 떠올리죠. 하지만 문화나 기술 면에서 최고의 수준이였던 사회 실상을 볼 기회는 많이 없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당시 최고의 도시 베를린을 구경하는 재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엘레베이터, 음악, 춤 등 신기할 뿐입니다.

전쟁이 끝났지만 아직도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극우와 군인들의 정서도 잘 들어나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시작하는 정치불안정, 좌우의 극한 대립, 나찌의 성장도 이곳 저곳 잘 맞춰져있어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두번째 재미는 단순하지 않고 계속 변하는 등장인물들입니다.

여주인공 샬롯떼의 발전을 보는 것도 큰 재미입니다. 어려운 삶에서도 희망, 강인함, 재치를 잃지 않는 그녀가 어떻게 커가는지 아주 흥미롭습니다.



악역인 브르노가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습니다. 정도 많고, 그가 품은 꿈이 그리 낯선 것만도 아니죠. 하긴 '악인'이라는 굴레가 너무 일반화시키는 거죠. 그래서 악인이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 주인공 게리온 또한 여러 면을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볼 때 비로소 그의 공포를, 그의 슬픔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외도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습니다. 우아한 자태와 멋진 노래를 부르던 여가수, 샬롯떼의 친구, 브르노의 아내 등을 포함해서 말이죠.

셋째는 물론 스토리입니다.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를 풀어가는게 전체 줄거리이긴 하지만 다양한 인물만큼이나 여러 이야기들이 얽혀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시원하게 풀어지지 않아서 좀 아쉽기는 하지만, 뭐 인생도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 시즌이 또 나오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아주 인상적인, 흥미로운, 재밌는 형사 드라마의 발견이였습니다.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Thursday, February 1, 2018

[세상읽기]내각제가 ‘촛불혁명’에 걸맞은 이유

경향신문(2018.02.01)

개헌 논의를 이어 가보겠습니다. 지난 칼럼을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분권이 힘들 수 있다고 지적했죠. 더불어 논의되는 내각제는 여론조사에서 늘 꼴찌입니다. 촛불혁명의 의미를 고려할 때 내각제가 가장 알맞은 정부 형태임을 보면 이 또한 정치의 아이러니라 할까요.

2013년 체코의 네차스 총리가 사임했습니다. 임기를 마친 게 아니라 논란에 휩싸여 더 이상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죠. 최측근들이 군 정보국에 이혼 중에 있던 총리 부인을 감시하라고 명령했고 거액의 뇌물수수 등 전횡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의회 해산, 총선이 이어졌고 야당이 승리하며 정권교체가 재빠르게 이루어졌습니다. 네차스 정부의 전횡은 박근혜 집단에 비하면 그 규모나 죄질이 동네 길고양이 수준이었지만 말이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보가 기가 막힌 지는 참 오래됐었습니다. 정당성에 대한 의심은 대선이 채 치러지기 전에 시작됐죠. 언론 통제 등 권력 남용이 뻔히 지속됐습니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한탄과 눈물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JTBC에서 ‘최순실 태블릿피시’가 발견되기까지, 박근혜는 끄떡없었습니다. 그러고도 박근혜는 끝까지 버텼습니다. 100만의 인파가 차가운 광장을 뜨겁게 달구고서야 정치권이 간신히 움직였죠. 한국 민주제도의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도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죠.

그 짓거리를 하고도 그렇게 오래 버텼다는 게 한계입니다. 이르면 대선의 정당성이 의심됐을 때, 늦어도 세월호 참사 때는 정부를 갈아치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헌법은 대통령의 5년 임기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는 버틸 수 있었고, 버텼기에 국정은 망가져 버렸습니다. 현 제도하에서 대통령은 마치 수능을 끝낸 학생과 비슷합니다. 시험이 없으면 공부할 맛이 안 나죠. 이미 권력의 정점에 와있고 더 이상 선거 걱정도 없는 정치인, 즉 대통령도 남 눈치 볼 이유가 없습니다. 최고 권력자도 국민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의원내각제에는 있습니다. 체코 총리가 스스로 물러난 구조적 배경은 민-의회-정부-총리, 이렇게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권력 구도였습니다. 유권자는 정당에 투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석수를 나눕니다. 다수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그 당의 리더가 정부 수반이 됩니다. 여기에 유럽식 선거법을 더하면 다당제 의회가 보통이 되죠. 자연히 한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정당연합을 꾸려 다수를 만들면 정부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합을 이룬 정당들의 끊임없는 타협과 양보는 필수적이죠. 정부는 의회의 과반을 등에 업고 있으니 일하기도 쉽습니다.

반대로 의회의 신임을 잃으면 정부는 무너지게 됩니다. 물론 총리도 마찬가지죠. 자리를 잃는 것은 간단합니다. 의회가 불신임안을 처리하면 됩니다. 보통 때라면 힘들지만 민심이 싸늘해지면 사정은 돌변합니다. 야당은 불신임안을 처리하자고 목청을 높이고, 여당 측에서도 눈치를 살피다 등을 돌리는 일이 생기죠. 즉 정부와 총리의 해고 가능성이 실존합니다. 아무리 권력의 정점에 있는 총리라도 내각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원내각제가 좋지만 우리 정당의 행태를 보면 아직 안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는 앞뒤가 바뀐 지적일지도 모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살아남은 지금의 정당을 바라보고 하는 소리니까요. 제도를 바꾸면 정당들은 빠르게 탈바꿈할 겁니다. 반대로 정당이 지금 같으면 4년 중임제를 해도 대통령에게 끌려다닐 테니까요.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제를 도입한 이는 이승만과 박정희입니다. 특히 박정희는 쿠데타로 의원내각제 정부의 제2공화국을 무너뜨렸죠. 박정희가 파괴한 민주주의의 꿈을 되살릴 때가 왔습니다. 다양한 생각이 경쟁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성장한 정당들이 권력을 갖고 제왕이 아니라 인민의 편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 촛불혁명에 맞는 이유입니다.

2012년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책임제가 훨씬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대부분 나라들이 내각책임제를 하고 있다”고 한 당시 문재인 후보의 말을 문재인 대통령이 잊지 않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