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14, 2019

범죄 드라마 추천 17 - Thirteen

2016년 BBC에서 방송된 Thirteen 은 독특합니다. 13년 전 사라졌던 소녀가 감금에서 탈출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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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하면 이런 사건이 가끔 보도됩니다. 그 자체도 끔찍하지만 다행이 탈출해도 그 뒤의 삶도 쉽지 않겠다 싶은 생각을 했죠. 이 드라마는 그 고통스런 과정을 조금이나마 보여줍니다. 모든 이들은 제 삶은 찾아가게된 세상, 갑자기 돌아온 이로서 혼란스러울 수 밖에요.

주인공은 주변인들의 관심과 미안해하는 마음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동시에 너무 외롭고 말이죠. 그래서 어찌 보면 이중적 모습을 보이지만 그게 더 안쓰럽죠. 이 조심스럽고 미묘한 느낌을 전달하는데 Jodie Comer는 딱 맞았습니다. 그녀의 말투, 묘한 표정, 강렬한 마스크가 묘하게 어우러지며 캐릭터의 복잡한 심정을 잘 그려냈죠. Killing Eve에서와는 또 다른 카리스마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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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은 단 5회로 끝이 나서 범인의 등장과 결말이 너무 압축된 겁니다. 이 둘 사이의 대립을 좀 더 그려 한 두회 더 넣거나, 아니면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좀 더 처냈으면 좋았겠다 싶더군요.

내 추천: 꼭 봐 -- 재밌어*** -- 볼만 해 -- 그냥 그래

Wednesday, September 4, 2019

범죄 드라마 추천 16 - The Kettering Incident

The Kettering Incident, 일단 결론부터.

내 추천: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왜냐? 제가 형사물을 보다 대박 실망한 트라우마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형사물로 시작했다 괴물물로 확 뒤집힌 트라우마 (The Frankenstein Chronicles - 제목 보고 눈치 못챘냐). 또 하나는 시즌이 끝이 나는데 결론이 안 나, 걱정이 막 되, 이걸 어떻게 수습하려 그러지, 근데 마지막회에서 끝이 막 안 나 (The Killing - 제목을 Neverending Story로 했어야).
근데 이 작품은 그걸 다 겸비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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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작품으로 연기도 좋고, 숲의 마력도 흥미롭고, 풍경도 멋지고. 특히 주연 여배우의 서늘함은 꼭 옛날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느낌마저 들고. 뭔가 될듯 될듯 하다 안 된 느낌이 강렬.

시즌2가 만들다 말았다는 슬픈 전설까지.


Thursday, August 22, 2019

[세상읽기]국회의원 임기, 2년으로 줄이자

경향신문 2019.08.22

자식을 키우며 세상에 쉬운 일이 없음을 간절히 느낍니다. 김성태 의원도 아버지로서 마음고생이 많지 않았을까요. 딸은 취업은 고사하고 취업 준비도 잘 안된 듯합니다. 서류전형 탈락, 면접 최하위권 등의 성적을 보면 말입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의원은 KT에 딸을 채용하도록 청탁했고, 그 결과 정규직 자리를 꿰찼습니다. 하지만 김성태 본인은 이를 검찰의 무리한 기소, 정치보복이라는 주장 등을 하며 눈물까지 보였습니다. 최종 법적 판단을 기다려 봐야겠죠. 문제는 김성태가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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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46조는 국회의원의 청렴, 양심, 공익 추구 의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책임이 단순히 도덕적인 것을 넘어 제도적, 정치적 근간임을 말해주는 것이죠. 공익은 말 그대로 공공의 이익이고 사적일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떤 개인이 더 이득을, 다른 누구는 손해를 보기는 합니다. 지역경제를 위해 도로를 건설해도 누구는 집값이 올라 이득을 챙기지만, 다른 누구는 소음과 먼지로 괴롭죠. 어떤 공공정책도 이런 양면성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의가 중요합니다. 전체를 위했다는 대의와 명분이 없으면 어떤 정책도 효과적일 수 없습니다. 그러니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공익을, 대의를 추구한다는 대중의 신뢰는 민주사회 질서의 근본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갖는 ‘정치적’ 책임이 그만큼 엄중한 것이죠.

김성태는 그 정치적 책임을 저버린 셈이 됐습니다. 드러난 정황이 심각한 만큼 자리에서 물러나고 법적 다툼을 하는 게 맞죠. 하지만 눈물이 나오고 “피를 토할”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비슷한 일이 너무 많으니까요. 당장 KT 채용 의혹만 봐도 다른 전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의심을 받았습니다. 강원랜드 비리도 판박이 꼴이었죠. 채용비리뿐만도 아닙니다. 특활비를 줄였다지만 국회 예산을 빼돌리거나 주변에 몰아준 사례도 수없이 많습니다. 주식을 가진 회사를 위한 법안을 발의, 재산을 불리기도 하죠. 그렇다고 할 일은 제대로 하나요? 전 국민 앞에서 폭력과 폭행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파업마저 일삼습니다. 그사이 사회 곳곳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법안은 빛을 못 봤습니다. 추가경정예산안도 제출된 지 100일이 되도록 버려져 있었죠.

반면 자기 목과 밥그릇 지키기에는 열심입니다.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저지 폭행 조사를 원천무효, 정치공세라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불체포특권’을 악용해 경찰 수사를 피하는 셈이죠. 이런 식의 방탄국회는 수도 없지만 개선하려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제 목에 방울 달기 싫은 겁니다. 4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국회는 ‘김영란법’을 통과시키면서 ‘이해 충돌 방지’ 규정을 뺐죠. 김영란 전 대법관 본인이 반쪽 법안이라고 꼬집은 이유입니다. 이를 올해 정부가 다시 추진하면서 ‘국회의원’을 적용 대상으로 명시했지만, 통과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국회를 보고 있으면 “재산상의 권리·이익 또는 직위를 취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하는 데 너무 익숙하고 편안해 보입니다. 다들 하니 나도 한다. 그래서 한 것뿐인데, 내가 누군데 처벌은 말도 안된다. 모두 이러는 사이 국회의원 질은 하향평준화됩니다. 게다가 시급한 현안은 논의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국회가 신뢰도가 가장 낮은 국가사회기관 1등(올해 1.8%), 2등(2018년 2.4%)을 다투는 게 당연하죠. 국회의 정당성이 약해지면서 민주체제의 근간도 흔들립니다. 이런 자들이 만든 법에 믿음이 갈 턱이 없고, 지키자니 억울하고 벌 받아도 억울합니다. 특단의 조치를 위한 시민들의 지혜와 힘을 급히 모아야 합니다. 국회의원의 돈 씀씀이도 줄이고 임기도 미국 하원처럼 2년으로 단축해야 합니다. 임기를 줄이는 게 당장 어려우면 4년에 한 번 있는 선거를 2년에 한 번씩, 의원 절반을 뽑는 것은 어떨까요. 공수처를 빨리 만들고 고위공직자들 죄는 일반인보다 더 엄하게 다스려야 합니다. 민의를 듣고 법을 만드는 게, 거들먹거릴 일이 아닌 보통 업인 사회는 기다린다고 오는 것은 아닐 테지요.

Saturday, August 10, 2019

범죄 드라마 추천 15 - The Bridge (season 3 & 4)

드디어 다 봤습니다! The Bridge지난 포스팅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죠. 이 작품으로 전 북구 형사물에 빠져들었습니다. 차갑고 파란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춥고 고독한 느낌, 머릿속 북유럽의 그것과 잘 어울렸습니다. 사건도 잔인하고 기괴해 더 그런 느낌을 들었습니다. 멋진 비주얼과 묘한 스토리 못지 않게 절 사로잡은 것은 주인공 Saga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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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엉뚱합니다. 좀 이상하다 싶었죠. 그 엉뚱함을 처음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셔츠를 훌러덩 벗어 던지고 갈아입죠. 새로 온 남자동료는 당황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무 동요도 하지 않습니다. 저도 당황했죠. 이건 뭐지?

드라마 여기저기서 그녀의 자폐 스팩트럼 증상이 보입니다. 주로 남의 감정을 이해 못하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것조차 인식 못하죠. 덕분에 주변 사람에게 실수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취조도중 애 엄마, 아빠 앞에서 이 애는 당신 애들이 아니다. 너희 둘 다 파란색 눈인데, 애는 브라운이다. 유전적으로 불가능하다. 덕분에 엄마가 바람핀게 드러나 난리가 났죠. 일상도 그렇습니다. 전화가 오건 어디건 그녀는 자신의 소속을 늘 밝힙니다. 사적인 자리에서도, 동료에게까지도 말이죠. 그럴 필요 없다는 동료의 핀잔에 왜 그런지 이해를 못하는 얼굴을 합니다.

저 사람은 원래 그런가보다 싶은 생각이 들 때 쯤 고백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감정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했죠. 저도 아차 싶었고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녀의 그런 실수(?)는 그녀의 순수함, 정직함에서 나옵니다. Saga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착한 거짓말, 둘러대는 말, 그런 것을 할 줄을 모릅니다. 그냥 다 사실대로 말하는거죠. 그게 당연한데 그런 자기를 비난하는 세상이 헷갈릴 수 밖에요. 그 비웃음과 비난은 거짓과 위선에 익숙한 스스로를 지키고자는 또다른 위선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순진함은 사건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도 나타납니다. 사건이 있고 해결하는게 당연하다. 그 단순함은 차가운 열정으로 나타나죠. 24시간 경찰이냐는 질문에도 당연하지않아는 듯, 왜 그런것을 물어보느냐는 듯 답하죠. 거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형사로서의 탁월한 능력도 더해집니다. 그 능력도 관습에 때묻지 않는 그녀의 마음에서 나오는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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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그녀가 시즌 3시즌 4에서 다른 동료를 만납니다. Saga의 능력과 순수함을 알아보고 사랑을 하게됩니다. 그녀의 마음도 움직이고요. 동시에 그녀의 마음을 그렇게 짓눌렀던 원인도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죠. 그럴수록 극복할 산도 높아만지고요. 드라마 보면서 형사 하나를 이렇게까지 응원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녀가 잘 되기를, 모든 것을 극복하기를 너무너무 바라면서 한 회, 한 회를 봤습니다.

범죄 드라마이지만 사실 주인공의 성장기라고나 할까요. 그녀가 어떻게 됐을지, 어디서 무엇을 할지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나오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유럽을 가게되면 촬영지를 꼭 가보고 싶습니다.



내 추천: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Thursday, July 25, 2019

[세상읽기]참의원 선거가 보여준 세 가지 일본

경향신문 2019.07.25

지난주 어느 더운 오후 아들과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인랑>을 골랐죠. 내친김에 다음날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인 <아키라>를 봤습니다. 한국뉴스에 아베 총리가 나와 한·일관계에 대해 설명을 해준 뒤였습니다. 한편으로 일본에 비판적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는 아빠의 모습에 아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내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아 보입니다. 식민지 역사 해석을 두고 시작한 갈등은 결국 양국 간 무역분쟁으로 번지는 양상입니다. 정부 사이 거친 말이 오가고, 감정도 격해졌습니다. 덕분에 21일 열린 참의원 선거에 한국 사회의 관심이 이례적으로 뜨거웠죠. 실권 있는 중의원 선거도 아니고, 일본 유권자의 참여도 시들했지만 말이죠. 선거 결과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지만, 논의가 좀 덜 된 부분 세 가지만 돌아보겠습니다.

첫째, 무역분쟁 원인으로서의 선거입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을 에칭가스 등 세 품목에 대한 포괄적 수출 허가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포문을 열었죠. 당황스러웠고 그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곧 그럴듯한 설명 하나가 나왔습니다. 바로 참의원 선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한국을 때려 반한 감정을 자극, 우파표 모아 의석 3분의 2를 차지, 평화헌법을 개헌해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 건설. 아베의 잘 알려진 숙원을 고려할 때 앞뒤가 딱 맞아 보였습니다.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선거용이었던 수출규제는 끝나야겠죠. 하지만 그럴 기미는 안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무역규제 뒤에 선거 말고 다른 그 무엇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그것에 대한 탐구와 토론이 당장 있어야겠죠. 그래야 더 명확한 사태 이해, 더 효과적 대응이 나올 테니까요. 하지만 기존의 주장이 오히려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좀 더 유연하고 다양한 사고가 필요해 보입니다.

둘째, 일본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선거였습니다. 일본 사회는 획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은 집단에 희생하고 그 안에서 비슷하게 살려는 구심력이 강합니다. 태평양전쟁에서 보여준 전투력, 남을 배려하는 공공질서 준수, 외국인에 대한 차별 등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죠. 그 반작용일까요. 의외로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말이죠. 입헌민주당의 이시카와 다이가는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한 후 당선됐습니다. 루게릭병을 앓는 후나고 야스히코, 뇌성마비 장애인인 기무라 에이코도 당선됐죠.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듭니다. 소수자를 존중하고 공존하는 게 현대사회의 척도라면 이번 선거는 일본의 위상을 돋보이게 한 것이죠.

셋째, 일본 정치구조도 잘 드러난 선거였습니다. 일본 선거, 정당구조는 한국과 아주 다릅니다. 어디가 더 낫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죠. 하지만 눈에 확 띄는 장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다양한 정당의 의회 진출입니다. 우리는 일본 공산당의 존재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7석을 얻어 13석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한 석 줄어들기는 했지만, 전체 의석의 5%를 차지하고 있죠. 중의원에서도 12석(전체의석의 2.5%)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침은 있지만, 공산당이 의석 획득에 실패한 경우는 전후 딱 한 번밖에 없습니다. 한국에는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유는 많지만, 그중 하나는 국가보안법 때문임에 이견이 없을 겁니다. 국가보안법의 모델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이었습니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등에 맞서 ‘천황제’를 지키고자 만들어진 대표적 악법이었죠. 전후 일본에서는 사라졌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마저 일본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죠.

결국 일본은 크고 복잡한 나라입니다. 아베 정부가 주요 세력이지만 거대 사회의 일부일 뿐이죠. 뜨거운 ‘전쟁’의 대상인 일본은 게이, 한인, 공산주의자, 평화주의자, 방탄소년단 팬 등을 포함합니다. 서방 경제 제재가 북한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한 데서 볼 수 있듯, 경제 제재는 큰 효과가 없습니다. 수출규제도, 불매운동도 마찬가지죠. 유연한 사고와 깊은 성찰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성찰은 우리가 어떤 모습인가를 돌아보는 데도 미쳐야 합니다. 우리의 발전이 저들을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니 말이죠.




Sunday, July 7, 2019

[세상읽기]‘무서운 중2’ 뺨치는 한국당

경향신문 (2019.06.27)

“밥 안 먹어.”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별별 생떼를 다 듣습니다. 사춘기가 되면 그렇게 사랑스럽던 아이는 떠나고 괴물이 눈을 비비며 마루로 나오죠. 이제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억지. 잘못은 전부 남의 탓. 귀찮다, 내버려 두라는 고함. 부모가 아닌 원수를 바라보는 눈빛. 잘못은 아이가 했지만, 그 애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해야 합니다. 밥 안 먹겠다는 말은 실소마저 나오죠. 화나죠. 슬프고 답답합니다. 한심해 실망스럽기도 하죠. 배 속에 다시 넣고 싶기도 하고,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아무도 안 볼 때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당황한 부모는 책도 읽고 강연도 듣습니다. 여러 조언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비슷하고 크게 새롭지도 않죠. 신뢰와 사랑도 보여주어야 하며 대화의 끈을 놓지 말라는 충고도 빠지지 않습니다.

자유한국당을 보면 딱 그런 사춘기 아이 같습니다. 생떼와 투정이 무서운 중2를 뺨치는 듯합니다. 국회 가출을 한 게 지난 4월. 거의 석 달이 다 되도록 아무 일도 안 하지만 목청과 기상만큼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자기 당 의원조차 설득시키지 못한 채 “소외정치, 야합의 정치로 제1야당을 찍어 내리려 한다면 이제 국회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이라는 말로 자신의 민망함을 감추려 하고 있습니다. 민망할 수밖에 없는 게 이 논란의 원인 제공도 자유한국당이 했기 때문이죠. 국회가 마냥 손 놓고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바로 그 패스트트랙을 막고자, 즉 국회를 멈추기 위해 자유한국당은 폭행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서 국회법 위반·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고발되자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는 자기에게 불리할 선거법 개정을 막고자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입만 열면 “좌파독재”라며 억지를 이어가고 있죠. 딱 사춘기 시작한 애들 꼴입니다.



 중앙일보 "대통령·국회의원도 수사 대상" 靑, 공수처법 홍보 정은혜 기자  - 중앙일보 2019.04.25. 21:29



아이들이 아무리 힘들게 해도 버릴 수 없듯 자유한국당도 버릴 수는 없습니다. 한국 정치의 엄연한 한 축이니까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오냐오냐하며 내버려 둘 수도 없죠. 애들처럼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대화가 필요합니다. 정치권 내의 대화는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원내대표 간 합의는 좌초됐고 청와대 회동도 무산됐죠. 자유한국당에 다른 정당과 청와대는 행패의 대상일 뿐 대화 상대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러니 유권자가 나서야 합니다. 유권자의 목소리는 선거개혁을 통해 커질 수 있습니다. 지금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선거제도 개편안은 충분치 않습니다. 비례대표의 의석수를 늘리고 비례성도 강화해야 합니다. 다양할 수밖에 없는 유권자 목소리를 대변할 여러 정당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합니다. 4년에 한 번 있는 국회의원 선거도 2년에 한 번씩, 의원 절반을 뽑아야 합니다. 선거가 자주 있어야 유권자 눈치를 더 볼 테니까요. 중앙당 공천이란 구시대적 제도도 끝을 내야 합니다. 후보도 당원과 시민 손으로 뽑아야죠.

동시에 단호해야 합니다. 대화를 원치 않는 아이들을 붙잡고 사정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합니다. 규칙을 정했으면 지키라고 요구하고 어기면 벌도 내려야죠.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법은 그간 국회폭력을 없애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이 법과 전통을 뻔뻔하게 파괴했습니다. 패스트트랙과 관련한 정치권의 고소·고발 사건은 엄격하게 판단하고 죄가 드러나면 단호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법을 우습게 아는,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적폐를 놔두고 과거의 적폐청산은 불가능합니다. 힘, 돈, 연줄로 법 위에 군림한 이들을 끌어내려 우리와 같은 곳에 세워야 합니다. 국회의원의 갖가지 특권도 모두 공개하고 대폭 줄여야 합니다.

지난 몇 년 삼권분립의 두 축인 청와대와 대법원 모두 개혁 대상이 됐습니다. 하지만 국회는 그 시작조차 없었죠. 여기엔 자유한국당의 분탕질이 큰 몫을 했습니다. 이제 자유한국당이 사춘기 정치를 멈추고 성숙할 수 있도록 검찰, 법원, 유권자 모두가 힘을 합쳐 도와야겠습니다. 밥 안 먹겠다는 아이, 밥 주지 맙시다.

범죄 드라마 추천 14 - Ordeal By Innocence (2018)

Argyll 집안의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드라마, Ordeal By Innocence. 아마존 프라임에서 봤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원작 소설을 극화한 2018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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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리더인 어머니가 살해되고 아들 중 하나가 범인으로 잡히면서 비극은 시작돼죠. 하지만 비극이란게 어디 번개치듯 한번에 벌어지나요. 집안 모든 이들 마음에 숨어있던 각자의 비극이 조금씩 춤을 추듯 들어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크리스티의 손끝에서 기대할 수 있는 반전을 즐기게 됩니다.

어느 형사물에서 한 형사가 말하죠. "살인 동기는 셋중 하나야. 사랑, 돈, 마약." 형사 드라마를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싶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작품도 비슷합니다. 다만 식구가 다들 얽혀있다는게 특이하죠. 이 가족의 배경과 그 사이의 긴장을 이해하면서 가족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부모, 형제, 피로 엮인 관계.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다라는 것을 점점 더 알게 됐죠. 피가 섞였어도 남보다 못할 수 있고, 혈육이 아니어도 누구보다 가까울 수 있다는 것. 혈육은 단지 특별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특별한 관계일 뿐인걸 말이죠.

집안의 일이고 식구 중 하나가 범이이다 보니 극은 거의 집에서 벌어집니다. 집 자체도 뭔가를 말하는 듯한 인상을 주죠. 커다란 공간은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마지막 반전에 공간도 한 몫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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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은 1958년 작입니다. 핵무기로 전쟁을 끝내고 그 공포로 냉전을 잉태하던 시대죠. 그 공포가 뭍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외로움과 분노, 억제와 욕망이 뒤엉킨 사람들을 잘 그려낸 배우들 모두 훌륭했습니다. 그 중 어머니 역을 했던 Anna Theodora Chancellor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에서도 나왔던)가 가장 눈에 들었습니다. 분량은 크지 않지만 나올 때 마다 존재감을 과시하며 긴장을 끌어올리는 훌륭한 연기였습니다.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Sunday, June 2, 2019

[세상읽기]‘공당 대표’ 황교안을 위한 기도

경향신문 (2019.05.30)

한 사람의 내면은 치열한 싸움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 싸움은 어딘가를 엄숙하게 향하기도 하죠.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던 고상돈이나 모두가 꺼리던 소록도를 향하던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싸움이 그랬습니다. 때로는 무엇인가를 반대하기 위한 싸움도 합니다. 하얼빈 역에서 방아쇠를 당기던 안중근의 손길, 1987년 종로 한 골목길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소녀의 눈물, 뻔히 질 것을 알며 부산으로 내려가던 한 정치인의 발길에는 아무 말 없어도 그 사람의 진심이 보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고개를 숙이게 되죠.

황교안도 진심을 솔직히 드러냈습니다.

5월17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한다 … 정치적 입장에서도 동성애는 우리가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하며 교육을 통해 동성애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했죠. 정체성 이슈인 동성애를 선택의 문제로 본 그릇된 시각보다 그 배경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의 반대, 그의 싸움이 어디 있는가. 바로 성경입니다.

2017년 한 기독교 강연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니죠. 황교안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50년 동안 주일 예배를 단 한번도 빠진 적이” 없는 독실한 기독교 전도사입니다. 검사 시절에도 부임하는 곳마다 예배 모임을 만들어 ‘검찰 복음화’를 외쳤죠. 가난하고 공부도 못했던 자기가 관직에 오른 것도, 총리 시절 가뭄을 극복한 것도, 법안 통과도 예수 덕이라며 자기 믿음을 자랑했다죠. 다른 종교를 어떻게 보는지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한 절을 찾은 황교안은 합장도, 예법에 따른 반배도, 의식 참여도 거부했죠. 내 신만 정당하고 그의 가르침 그대로, 온전히 따르며 세상과의 타협을 반대한다는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시각을 기독교 근본주의라고 하죠.

어떤 종교건 근본주의가 활개를 칠 때는 정치적 이유가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디 왕가처럼 권력을 유지하고 공고히 하는 데 쓰곤 하죠. 정부가 역할을 못하면 그 공백을 채우기도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가자지구의 하마스가 그런 경우죠. 정책으로 승부가 안되니 종교를 동원해 표를 모으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 인도 모디 총리가 그랬고 미국의 공화당도 그랬습니다. 미국 공화당은 기독교 세력을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낙태, 동성애 등 가치 이슈를 들고나와 보수 기독교 표를 쓸어 모았죠. 덕택에 공화당은 부자 배를 불리는 경제정책을 내면서도 가난한 다수의 표를 끌어모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 삶은 점점 힘들어지고 그럴수록 성서의 외침을 더 크게 틀어댔죠. 대립과 불신은 커갔습니다. 극단적 정파성은 최근 유례가 없을 정도로 깊어져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교활한 정치가 공화당 자기 발등마저 찍고 있습니다. 극우 정치에는 종교와 가치뿐 정책이 상관이 없죠. 그러다 보니 정책에 무지하고 목소리만 큰 사람이 활개를 칠 판을 깔아준 셈이 되었죠. 거기에 트럼프가 등장한 겁니다. 이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어 공화당 주류를 다 삼켜버렸습니다. 하긴 공포정치와 전쟁도 벌어지는 마당에 이런 종교의 폐해는 얌전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문제는 심각합니다.

어떤 종교를 따르고 그 믿음이 근본주의적일지 아닐지 선택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교회가 아닌 공당의 대표라면 좀 생각해봐야겠죠. 황교안이, 자유한국당의 정책과 주장이 공익을 해치면서 자기 믿음만 따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당대표직을 맡은 지 두세달 만에 근본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는 듯한 황교안의 행보가 걱정스럽습니다. 다른 종교를 무시하는 것과 다른 정치세력을 무시하는 것. 자기 신만 신이라는 환상과 좌파독재를 물리쳐야 한다는 환상. 과연 무관한 것일까요?

그냥 정치적 레토릭일 뿐 그의 종교적 신념과 아무 상관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주 고약한 길로 황교안은 향하고 있으니까요. 사상과 지역 갈등으로 찢긴 나라를 종교로 또 나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 일 없게 정화수 떠 놓고 간절히 기도라도 해야겠습니다.

Saturday, May 25, 2019

범죄 드라마 추천 13 - Unforgotten 시즌 1 (2015)

넷플릭스에서 범죄드라마를 찾지 점점 힘들어져 아마존을 둘러보는 순간. 눈에 딱 들어온 Unforgotten. 런던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오래된 살인사건 이야기입니다.

드라마는 여러 질문을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죄의 무게는 가벼워지나? 죄인이 다른 사람이 되면, 나중에 그 사람을 알게 됐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다르게 (죄인)으로 볼 것인가? 용서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 질문에 다양한 답이 나옵니다. 긍정적 대답,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조금은 진부한 대답이 결론인듯한 인상도 줍니다. 하지만 꼭 그것 받아들일 필요는 없죠. 죄와 용서는 정말 힘든 주제인 듯 합니다. 죄 안 지은 사람이 없으니 더 그런게 아닐까요.     

좋은 배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형사반장(?)으로 나오는 (너무나 매력적인) Nicola Walker 는 단연 이 드라마의 얼굴입니다. 주연으로서 극을 너무 잘 이끌어 가며 전체적 톤을 정합니다. 미묘한 감정의 변화도 너무 잘 그려내고요. (그녀가 조연으로 나왔던 다른 형사물 River 은 옛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 조용한 카리스마 형사역을 한 Sanjeev Bhaskar, 복잡한 심정의 목사역의 Bernard Hill (반지의 제왕에서 King Théoden역), 지칠대로 지친 용의자를 그린 Ruth Sheen  등등 저 많은, 좋은 배우들을 어떻게 다 모았나 싶은 생각이 보는 내내 들더군요.

게다가 등장인물의 깊이와 변화마저 그려냅니다. 여섯회 밖에 안 되는데 말이죠. 괜히 횟수만 늘리며 아무 발전이 없는 드라마들과 비교됩니다. 특히 이런 면에서 영국 드라마의 내공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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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찾고자 하는 결기가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느껴지는 점도 좋았습니다. 거기에는 피해자에 대한, 그리고 그 가족들에 대한 애정도 느껴졌고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따뜻한 드라마라는 묘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살인사건에는 공소시효가 없는 영국을 보며 한국의 여러 사건들이 떠오르며 씁쓸하기도 하고요.

내 추천: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Tuesday, May 14, 2019

범죄 드라마 리뷰 12 - Destroyer (2018)

니콜 키드먼의 디스트로이어. 주로 리뷰하는 티브이 형사물은 아니지만 한번 곱씹어 보고 싶네요. 키드먼은 외모와 사생활로 회자되곤 했습니다. 듀란듀란의 음악성이 외모에 가려진 듯, 키드먼도 연기가 좀 저평가되는 감이 있습니다. 영화 선택도 크게 도움을 준것 같지는 않고요. 출연작은 엄청 많지만, 대표작을 고르라면 딱히 좀 애매한 그런 느낌이 들죠.

이 영화가 그 대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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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한눈에도 지칠대로 지친 여형사를 마주합니다. 외모도 폭삭 늙어버렸고, 말도 겨우 이어가죠. 가족이라곤 하나 있는 딸도 완전 막 나가는 참 안쓰러운 형사. 그의 과거를 따라갑니다. 복수가 그려지고 그러면서 숨겨진 사정이 조금씩 밝혀지죠. 약간의 스마트한 반전이 있지만 무릎을 때릴 정도는 아닙니다.

이 영화는 매력은 키드먼이 그려내는 죄의식과 거기서 오는 고통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하듯 실수를 하죠. 큰 실수도 몇번 있습니다. 다행이도 보통 사람은 그래도 살아갑니다. 용서도 받고 잊기도 하죠. 보통 사람의 실수라는게 다 거기서 거기니까요. 하지만 정말 용서하기 힘든 실수도 일어납니다. 그건 스스로 용서하기 힘든 실수죠. 그런 실수를 떠안고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너무 힘들어 스스로 내려놓고싶어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크리스찬 베일이 열연했던 영화 The Machinist 도 극단적 예를 잘 보여줬죠.

이 영화는 좀더 담담하게, 그 내면의 고통을 따라갑니다. 그런 절제된 표현이 (마지막 장면 포함) 매력입니다. 감정도, 음악도, 색깔도 조금 톤다운되서 조금 더 서글프다고 할까요.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한 인간이 나쁜 짓을 한 것일 뿐이다. 그런 사람이 뉘우치면 우리는 용서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자기 십자가를 내려놓고 싶어 괴로워하는 사람을 봅니다. 견딜 수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있죠.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기에 우리는 공감하고 같이 슬퍼하기도 하죠. 

정반대의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다 그 죄를 알아도 나 혼자 뻔뻔히 떳떳한 사람.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모르는 사람. 이 세상이 오해한다는 신념과 언젠가 자기 결백을 알아주리라는 믿음. 정말 저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마음이 편할까 싶은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 속을 알 수는 없죠.

다만 내가 그런 괴물이 안 되길 간절히 기도할 수 밖에요.

그리고

잘 되야겠죠. 그런 사람들 보란 듯이 잘 되서 비웃어 주면 좀 낫지 않을까요.

Thursday, May 9, 2019

책 <목호의 난: 1374 제주>

민족이란 틀에서 본 현실과 개인이 삶으로 겪은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개인의 삶은 아무리 아파도 쉽게 잊혀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거대담론이 채운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각색되고 잊혀진다. 그리고 남는 역사는 누구의 것인지.

고려인에게 '난'이었던 '오랑캐'의 삶과 싸움이 아름답게 그려진 책. 감사히 읽었다. 개인의 서사까지 담겨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해서 좋았다. 보았던 제주의 풍경도 생각나고. 그래서 더 마음이 짠하다.

제주는, 제주의 사람들은 어찌 이리 외지인의 발톱에 계속 뜯겨야 했는지. 안타깝다. 이재수의 난, 4-3항쟁. 이제는 경제/문화적 침공. 오키나와, 하와이, 대만. 비슷한 운명의 섬들도 생각나고.

꼭 한번 읽어 보시길.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180208430

경향의 책소개도 재미있다. 이 책을 알게 된 계기. 기자가 베네딕트 앤더슨을 언급한 것이 눈에 확 띄었다. 민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했던 책 의 저자.



Thursday, May 2, 2019

[세상읽기]죽은 제갈량 일화가 떠오르는 이유

경향신문 2019.05.02

<삼국지>를 보면 당대 최고의 재상 제갈량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죽은 제갈량이 적이자 최고의 라이벌이던 사마의를 쫓아낸 일화죠.

오랜만에 들른 광화문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한 건물에 걸린 독립운동가 초상화가 크기도 했지만 너무 현대적이고 세련됐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3·1운동과 임시정부 관련 행사가 많았습니다. 100주년이어서 그랬겠지만, 민간 행사뿐 아니라 정부 주도 포럼, 전시회, 기념회 등이 열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소녀상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황사처럼 전국을 강타했죠.

모든 사상은 한계를 갖습니다. 하지만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것은 한계가 더 도드라집니다. 정체성의 경계는 인위적이지만 결국 절대적이 되니까요.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민족’은 현대국가가 세워지며 생겼죠. 순수한 혈통은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민족주의에 환호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또한 역사에 기대는 사상이다 보니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진보적 미래를 꿈꾸기에는 부족하죠.

그러니 정치판이 과거에 머무를수록 나은 미래를 기다리는 국민은 피곤합니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닌 듯합니다. 이 정부는 그릇된 과거를 타파하는 사명으로 출발했습니다. 그것에 집중하는 게 당연했죠. 덕분에 도덕적 우위를 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옳고 저쪽은 적폐라는 구분은 그렇게 그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그어진 선은 정부를 옭아맸습니다. 적폐로 지목된 이들은 물러설 곳이 없었고, 배수진을 친 이들의 저항은 치열했죠. 과거에 대한 전투가 치열할 때 거리엔 촛불이 꺼졌습니다. 은행빚과 취업난이 그 거리를 채웠죠. 싸움이 힘들어질수록 쉬운 상대가 눈에 띄는 법. 100년 전 일본만큼 만만한 상대가 있을까요. 시선은 자꾸 과거로 가고 미래에서는 멀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가졌던 과거청산의 소명은 이제 그 유효기간이 지난 듯합니다. 박근혜와 주변 인물들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정치적 영역을 벗어난 셈이죠. 이제 정치에 충실할 때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노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첫째, 정치 외연을 넓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총칼 없는 전쟁이죠. 갈등 당사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논의하는 공적 장입니다. 상대가 좋건 싫건 말이죠. 싫다고 배척하는, 내가 옳다고 외면하는 순간 정치의 영역은 좁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갈등의 당사자들은 주먹과 칼에 기댈 수도 있죠. 둘째, 정치적 미래를 제시하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싸움을 과거로 몰아가도 판을 흔들어야 합니다. 불과 1년 전 평화가 있는 미래를 보여줬을 때 국민은 열광했죠. 남북평화가 중요한 미래이지만 그것뿐이라면 곤란합니다. 문재인 정부 탓만은 아니지만, 정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쥐고 있습니다.

정치판에서 미래를 보여주지 못하고 그 판마저 좁아지면서 싸움은 국민 사이로 파고든 형국입니다. 정치적 논쟁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적 공간이 허약해집니다. 분노와 무시당했다는 감정은 해소되지 않고 쌓이기 쉽죠. 이들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고함에 쉽게 동화해 정치세력화할 수 있습니다. 벌써 그런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태극기부대죠. 오는 토요일이면 태극기집회는 122차에 접어듭니다. 그들은 열정과 확신이 있습니다. 울릉도에서 배를 타고 옵니다. 부산에서,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옵니다. 매주 오는 이도 많습니다. 사비를 털어 시위용 트럭을, 동지들 먹일 식사를 준비합니다. 명확한 비전도 갖고 있습니다. 맨주먹으로 정당을 꾸렸다는 자부심도 강합니다. 하지만 공존을, 다양성을 강조하는 진보는 이들만큼은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무시당한 이들을 모아 트럼프는 대통령이 됐죠. 브라질에서도, 독일에서도, 헝가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만 언제까지 예외일까요?

이런 와중에 자유한국당 해산 국민청원이 2일 현재 170만명에 육박한다니 걱정스럽습니다. 통합진보당 해산의 광기가 생각나는 것은 저뿐인가요? 대화와 설득은 좋아서가 아니라 대안이 없어 하는 겁니다. 하루빨리 정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미래에의 비전을 두고 싸워야 합니다.

죽은 박정희 손에 산 문재인이 실패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Thursday, April 4, 2019

[세상읽기]국회에서 뭉개진 ‘합리적 의심’

경향신문 2019.04.04 

청문회장, 의원들 말투는 거칠고 언성은 높습니다. 긴 연설과 장황한 훈계 사이로 질문과 답변은 고춧가루처럼 뿌려질 뿐이죠. 위장 전입, 논문 표절, 탈세, 병역 면제, 부동산 투기 등이 드러나면 눈높이가 맞지 않았다, 잘 몰랐다, 배우자가 했다며 머리를 조아립니다. 공수는 바뀌지만, 내용은 같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욕하고 책임지라는 요구도 전형적입니다. 인재풀이 적다는 비판도 빠지질 않죠. 이렇게 식상한 연속극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청와대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그냥 한국 지도층의 민낯이 드러나는 것 아닐까요.

문재인 정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명망과 전문성을 고루 갖췄다는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도 부동산 의혹을 받았죠. 다운계약서 작성, 아파트 분양권 전매, 부동산 차명 거래 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후보자는 처제 탓으로 돌렸고 송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막말 논란이 더해졌습니다. 한 예로 2016년 김종인 당시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박근혜가 씹다 버린 껌”이라 했다고 논란이 됐죠.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천안함 사건을 “북한 소행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김 후보자의 과거 발언이 문제 됐습니다. 이제 와서 북한 소행이라고 입장을 바꾼 데 대한 추궁이 있었습니다. “편향적 인식”, “친북주의자”, “북한 대변인”, “북한 통일전선부장 후보감” 등 야당 의원들의 원색적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김 후보자는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공격을 받아 침몰당했다는 것은 일관적인 입장이었다”고 해명했죠.

사실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침몰 직후부터 나왔던 의혹 중 시원하게 풀린 게 거의 없죠. 우선 북한 어뢰에 의해 두 동강이 났다는 정부 설명은 너무 미흡합니다. 배 밑에 긁힌 자국, 깨끗한 절단면, 생존자들에게 고막 파열, 화상 등이 전무한 점 등은 폭발이 있었다면 설명하기 힘듭니다. 정부가 제시한 증거도 미덥지 않습니다. 기껏 찾은, 유일한 증거인 어뢰추진체에는 그 유명한 ‘1번’이라는 글씨가 선명해 논란이 됐죠. 여기서 나온, 폭발 과정에서 생겼다는 알루미늄 산화물은 침전으로 생긴 알루미늄 수화물임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억지로 공개한 CCTV 화면도 조작이고, TOD 화면에 나온 물체는 확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즉 어뢰폭발이 있었는지, 그 증거는 있는지, 다른 원인은 없었는지, 아무 대답도 없는 게 정부의 설명 아닌 설명인 겁니다.

북한 어뢰가 아니면 뭐라는 소리냐고 짜증 낼 수도 있지만, 그 답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아닌, 정부가 내놓아야 합니다. 정부가 설마 거짓말을 했겠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크고 작은 범죄를 돌아보면 이는 그냥 희망 사항일 뿐임을 쉽게 알 수 있죠. 그 반대입니다. 그 많은 거짓과 전횡을 언제 다 되돌아볼까 오히려 걱정입니다. 물론 천안함 침몰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 사건으로 46명의 목숨이 사라졌습니다.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최소한의 의심을 갖는 게 예의가 아닐까요. 더군다나 정치 엘리트들이라면 말이죠. 하지만 청문회에서 그런 모습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을 밝히고 거짓을 점검하는 대신 야유와 선동으로 일관했습니다. 그것도 색깔 공세를 펴가며 말이죠. 김 후보자도 자신의 의심이 합리적이었음을 주장하기보다 꼬리를 내리며 이에 동조한 셈이 됐죠.

우리 사회는 반공이 국교인 듯합니다. 일부 목회자들은 북한이 범인이라는 믿음을 퍼뜨리고 입맛에 맞는 증거만 축복합니다. 반론과 의심은 불경이라며 처단하죠. 신자들은 멸공의 노래를 부르며 안도합니다. 그 축복 덕택에 우리는 제주도, 광주의 학살에 눈을 감았고 독재를, 그들의 고문과 살인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렇게 피를 불러온 “빨갱이” 딱지를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게 21세기 한국입니다. 그러니 태극기부대가, 박근혜를 향한 그들의 애정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공산주의가 몰락한 게 1990년대 초이지만 여의도는 1950년대 초에 아직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그런 국회에 미래를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그냥 국민의 생떼가 아닐까요. 그러면, 그 미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그 국회는 왜 있는 걸까요. 그 대답을 위해서라도 국회는, 정부는 천안함 침몰에 대한, 과거 정부의 대응에 대한 조사를 서둘러야 합니다.

Sunday, March 3, 2019

범죄 드라마 리뷰 11 - Break (season 2)

저번에 소개한 적이 있는 The Break (La Trêve) 의 두 번째 시즌을 봤습니다.

이 작품을 볼 정도 범죄 드라마 매니아라면 스토리 전개에 감이 쉽게 올겁니다. 사실 범죄 드라마에서 스토리가 짐작이 간다면 그것만큼 맥빠지는 것도 없죠. 하지만 그럼에도 흥미롭게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물들의 감정이 잘 표현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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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스토리의 중심은 형사입니다. 그의 감정이 너무나 잘 들어나 있죠. 상실감, 불안, 의무감, 죄책감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에서마저 복잡한 감정이 잘 들어납니다. 특히 첫번째 시즌에서 있었던 일에서 생기는 죄책감과 싸우는 그의 모습은 안타깝죠.

여기에 첫번째 시즌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하지만 그 존재감이 줄곧 느껴졌던 정신과 의사의 감정도 잘 들어납니다. 굳은 책임감과 사명감. 여기에 여기저기 자그마한 균열이 느껴집니다. 이 뿐 아닙니다. 첫번째 시즌처럼 여기 등장 인물도 거의 다 탈탈 털립니다. 그럴 때 마다 그 사람의 감정도 너무 잘 나타나죠.

이런 사람들의 모습에, 그들의 감정에 끌릴 수 밖에 없는 드라마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 휴 그 감정들이 모이고 모여 폭발한다고 해야할까요.

이 와중에 보통 경찰이 하나 껴있습니다. 특별한 공도 없고, 격한 감정도 없는, 그냥 일상적인 그의 존재가, 코믹하지도 않지만 그냥 보통의 모습으로 긴장을 완화해주죠. 일상의 고마움을 상기시킨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벨기에 드라마여서 그렇겠지만 어쩜 저런 전형적인 모습의 배우들을 찾았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벨기에, 하면 상상할 수 있는 모습의 사람들. 그 연기또한 극찬하고 싶습니다.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Monday, February 25, 2019

황교안, 기독교, 종교

“2015년 국무총리로 있을 때 가뭄이 극심했다. 함께 동역하는 분들과 기도를 시작했는데 2주 후에 비가 내렸다. 또 국정의 어려움 중 하나가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인데 생명을 살리는 법안인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이 10여년이 지나도 통과가 안돼 기도를 시작했는데 두 달 후에 통과가 된 일도 있었다.”
[양권모 칼럼]‘어대황’이라고, 기독교 근본주의 제1야당 대표의 출현
경향신문 (2019.02.25) 

"잘못된 믿음"이라고 조소할 수 없다. 멀쩡한 교회의 전도사가 아닌가! 그들의 잣대로 보면 보통을 넘는 "진실된 신자"이다.
"개독교"라며 무시할 수 없다. 믿음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가는 역사가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황교안을 보며, 태극기 부대를 보며 종교의 의미와 문제를 곱씹어봐야한다.
황석영의 <손님>이 생각나는 아침...

Monday, February 18, 2019

미국 정치 이야기 #6, 비상사태 선포

결국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했죠.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은 선거 공약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하원을 민주당에게 빼앗기고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자 장벽 카드를 빼냈습니다. 물론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이 50억 달러가 넘는 예산을 승인할리가 만무했죠. 트럼트는 정부를 셧다운하는 벼랑끝 전술을 썼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은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민주당은 14억 달러를 장벽에 쓰라고 예산을 편성했죠. 트럼프는 마지못해 예산안에 서명했고 또다른 정부셧다운은 피했습니다. 대신 비상사태를 선포한거죠.

비상사태는 말 그대로 비상사태에 대통령이 선포해왔습니다. 9/11 공격 뒤처럼 말이죠. 그 위기를 공감하는게 보통이여서 정치적 논란은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죠.

첫째, 비상사태라고 할 만한 위기가 국경에 없습니다. 국경은 평화롭습니다. 밀입국자의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죠. 트럼프가 말하는 테러리스트, 마약 등은 국경을 몰래 건너는 사람들이 아닌 합법적 경로를 통해 몰래 들어오는게 훨씬 많습니다. 즉 위기는 허상인거죠.

둘째, 그 허상 덕에 정작 중요한 위기는 전혀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가짜라며 폄하하고 총기문제는 완전히 방치하고 있죠. 공화, 민주 모두가 찬성하는 인프라 구축은 논의조차 안 되고 있습니다.

셋째, 트럼프 스스로도 이 조치가 당장 필요한게 아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른 방법도 있지만 장벽을 빨리 지으려고 선포한거다라고 했죠. 그것도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그 자리(참 이상하고 기괴한 회견)에서 말입니다. 스스로 위기가 없음을 고백한 꼴이 됐습니다.

넷째, 그나마 트럼프가 하자는 대로 해도 그 장벽은 그가 말하던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굉장한 것이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국경은 1954 마일. 그 중 654 마일 (맨 오른쪽 옅은 파란색)은 이미 장벽이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통과한 예산 14억 달러로는 55마일쯤 (짙은 파란색) 새로 쌓을 수 있죠. 트럼프가 요구한 대로 57억 달러(이 숫자도 한참 오락가락했죠)를 통과했어도 234마일 정도밖에 지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군비를 유용하니 정작 써야될 때 예산이 모자랄 수 있어 걱정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 특유의 쌩깜을 시전했죠. "학교? 국경이 안전한게 학생들에게도 나아."

다섯째, 헌법상 명확한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조치입니다. 정부 지갑은 의회 고유 권한입니다. 그런데 의회가 돈을 안 쓰니 내가 알아서 쓰겠다는 셈인것이죠. 긴급조치 등 유신정권이나 독재국가에서 흔히 보는 수법입니다. 그래서 미국 정계는 당황하고 있습니다. 공화당측도 나중에 민주당 대통령이 비슷하게 할 수 있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나섰죠.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것인가? 민주당은 두 갈래 대응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첫째, 의회 차원의 대응입니다. 의회에서 비상사태를 거부하는 안을 체결할 수 있습니다. 공화당 상원의원이 몇명이나 동참할 것인가가 관건이죠. 이게 극복이 되도 문제는 남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의회안을 대통령이 서명해야합니다. 이를 거부하면 의회의 2/3가 찬성해야 합니다. 쉽지 않죠. 두번째, 법원(어느 쪽으로 판결 내던 힘든 결정이 될 전망입니다)을 통해 소송전을 펼지는 겁니다. 벌써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고 있죠. 민주당이 직접 할 수도 있고, 텍사스 등 땅을 빼앗길 주민이 할 수도 있습니다. 어째 되건 최종 판결은 대법원까지 갈테고, 많은 시간이 흐를 겁니다.

정치적으로 트럼프는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오르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고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게 새로운 것도 아니죠. 이런 상황은 쭉 계속돼왔습니다. 지지율도 35%를 왔다갔다 하며 유지하고 있고요. 뭘해도 끄떡없는 지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당장 이번에도 장벽은 시작도 못 했지만 시작했다, 끝을 내자며 정치전을 벌이고 지지자는 환호하는 기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지만 트럼프 지지층에게는 잘 먹히고 있습니다. 문제는 공화당이죠. 당장 이 년 후 선거를 어떻게 치러야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대통령을 따르자니 중도층 표를 잃을 걱정. 거스르자니 예비선거에서 트럼프충성 후보에 밀릴 수 있는 걱정. 계산이 복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허풍과 억압으로 정계를 휩쓸고 있는 대통령. 하지만 한 방에 훅 갈 수 있는 가능성도 있죠. 그게 뭘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요.

[세상읽기]이쪽 저쪽 편 가르는 ‘부족 마인드’

경향신문 2019.02.07

한국에서는 자기 부족에 충실하고, 어떤 부족에 속하는지 따지는 게 중요합니다. 한 부족끼리는 편의도 봐주고 서로 끌어줍니다. 계약도 쉽고 돈거래도 수월해집니다. 서로 참견과 잔소리도 주고받죠. 내부 위계질서도 중요합니다. 나이, 지위 등 권위가 귀할 수밖에요. 여기서 옳고 그름을 따지다간 큰일입니다. 모난 놈이 되죠. ‘사회성’도 없는 놈이 됩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조심조심, 그렇게 우리는 자신을 길들였습니다. 개인으로 온전히 서기가 불안하고 그렇게 서 있는 개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것은 그 부작용일 겁니다. 게다가 판단마저 흐려지기 쉽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주장을 교환하기보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는 게 익숙하니까요. 우리 부족인지 저쪽인지, 우리 부족이면 내 밑인지 위인지 가늠합니다. 그 판단에 따라 옳고 그름마저 달라지기도 하죠.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미국 뉴욕에서 공무 연수 중 일행과 스트립바를 방문,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스트립바에 가서 옷 벗은 무희 춤을 즐겼다는 제보가 있었죠. 최 의원은 술집에 갔지만, 계산은 사비로 했다고 맞받았습니다. 공무 수행과 사적 행위의 구분은 따져볼 만합니다. 세금으로 묵은 호텔에서 사비로 술 마시는 것은 괜찮은가? 그렇다면 어디서 선을 그어야 하는가? 미국과 한국의 술 문화 비교도 해볼 만합니다. 노래방 도우미랑 어깨동무하는 것과 옷 벗은 무희를 쳐다보기만 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성 노동의 소비는 정당한가? 그렇다면 어디까지 정당한가? 하지만 치열하고 건전한 토론 대신 논의는 부족 따지기로 전락했습니다. 최 의원은 제보자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라고, 저쪽 부족이니 믿을 말이 아니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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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댓글조작 관여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구속까지 됐습니다.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죄는 1995년에 만들어진 뒤 단일 혐의로 실형이 선고된 적이 없어서 충격을 줬죠. 하지만 이 판결은 놀라운 기술 변화에 따른 우리 사회, 그리고 민주체제에 대한 숙제 또한 주었습니다. 누구나 위키피디아, 유튜브 등에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오늘, 이 법을 어떻게, 얼마만큼 적용해야 하나? 댓글 위력이 얼마나 큰가? 이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인터넷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당장 논의해야 할 문제들이죠. 하지만 김 지사와 지지자들은 판사가 속해있다고 추측되는 부족을 도마에 올렸습니다.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심의관을 지냈으며 사법농단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에서 근무한 경력을 지적했죠. 저쪽의 판단이니 객관적일 수 없다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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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의 보복이라는 주장은 여러모로 비생산적입니다. 첫째, 이미 지적한 대로 생산적 논쟁의 기회를 앗아갑니다. 둘째, 주장의 진위 판단이 불가능합니다. 동기를 알아야 판단할 수 있지만 마음속 그것을 확인할 길이 없죠. 그러니 논쟁은 보복이다, 아니다 사이를 맴돌기만 합니다. 자기들 분노 게이지를 한껏 높이는 데 도움은 되겠지만 그것뿐이죠. 문제 해결은커녕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셋째, 치열한 논쟁 대신 부족의 깃발만 가리다 보면 스스로도 퇴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어느 부족에 속하는지 가리기는 쉽습니다. 증거를 살피고 주장을 가다듬는 게 어렵죠. 쉬운 해결책만 좇다 보면 지성은 마비되고 정체성마저도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한인이 많이 사는 미국 버지니아는 정치 추문으로 요즘 시끄럽습니다. 주지사 노덤의 대학 졸업앨범에서 백인테러집단인 KKK 복장을 한 사람과 흑인으로 분장한 백인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공개됐습니다. 이들 중 하나가 노덤 주지사라는 의혹과 함께요. 분노가 폭발했고 사임 요구가 거셉니다. 민주당 진영에서도 말이죠. 인종 갈등 극복은 민주당의 주요 과제이고, 그런 만큼 좌시할 수 없죠. 보수 쪽 정치 공세로 볼 만한 정황증거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를 들먹이는 대신 대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누가 의혹을 제기했건, 그 동기가 무엇이건 민주당 정체성을 위협할 사태임을 직감한 탓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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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편 잘못에 적극적으로 침묵하는 부족 마인드는 솔직한 고백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회 발전에 큰 관심 없어. 우리는 이 정도로 퇴화한 부족이야. 우리는 그 정도 잘못은 잘못으로 보지 않아. 고백을 들었으니 선택을 해야겠죠. 부족 멤버십에 흡족하며 같이 퇴화할 것인가. 성찰하며 앞으로 나갈 것인가.

Wednesday, January 30, 2019

범죄 드라마 리뷰 10 - Deadwind (Karppi)



핀란드의 Deadwind을 봤습니다. 2018년 작품으로 큰 반응을 었었죠. 노르딕 느와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싶게 덴마크의 The Killing 그리고 덴미크-스웨덴의 The Bridge과 비슷합니다. 여성의 스트롱 리드에 남자 형사가 보조로 가는 점, 추운 북구의 경치와 어두운 색감도 상당히 비슷합니다. 확인은 못했지만 백그라운드 음악이 The Killing에서 나오는 것을 다시 쓴게 아닌가 싶고요. 두 작품이 미국에서 리메이크됐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죠. 이 작품도 그렇게 될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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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소피아는 남편을 잃고 바로 일에 복귀합니다. 일로 슬픔을 이겨보려고 하고 그만큼 일에 몰두하죠. 그럴 수록 그 슬픔은 큰 짐이 되고요. 그게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보며 응원하게 됩니다. 큰 줄기는 아니지만 왠지 마음이 가게되더군요.


남자 신입을 마땅치않아하다 아주 살짝 마음이 열리는 지점이 여기가 아닐까 합니다. 눈이 펑펑 오는데 차 밖에서 뭔가 먹는 이 장면. 아무리 핀란드 사람들이여도 정말 저럴까 싶지만 극중에서는 상당히 인상적이였습니다.

살인사건은 조금 복잡합니다. 잘 짜여진 스토리가 그렇듯 이 드라마도 시청자를 이쪽, 저쪽으로 정신없이 몰아댑니다. 알겠다 싶으면 뭔가 더 있는 듯 하고, 아하 싶으면 다른데로 가고 말이죠. 좀 헷갈리기도 하지만 흥미로운 전개입니다.

다만 우연이 몇 군데 눈에 띄었고 사건의 해결이 저로서는 살짝 아쉬운 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작은 티일 뿐 여러모로 수작입니다. 무뚝뚝한 차가움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절제된 감정 표현을 잘 연기한 주연 배우들이 눈에 띕니다. The Bridge 처럼 세련된 영상미는 아니지만 투박하게 그려진 핀란드 경치도 볼만 하구요. 낯선 언어로의 대화를 듣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특히 노르딕 느와르의 팬이라면 꼭 확인해보세요.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아 참, 위에서 언급한 두 작품까지 셋 중에서 아직 저는 The Bridge가 단연 최고입니다.

Tuesday, January 29, 2019

미국 정치 이야기 #5, 미연방정부 셧다운 계산서

연방정부가 실질적으로 문을 연 오늘 (1월 29일) 상원 정보위에서는 흥미로운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FBI, CIA, 그리고 National Intelligence 국장들이 출석해 안보 위협에 관한 보고를 했죠. 이들은 북한과 이란의 위협을 진단했습니다. 북한 정권은 핵무기를 정권 안정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행정부 내에서 북핵 포기가 힘들거란 전망이 이렇게 공식적으로 나온 것은 최근에 드문 일이였습니다. 반대로 이란은 핵무기 포기에 관한 국제협약을 준수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후보 시절부터 트럼프는 이란과의 협상을 비난했죠. 트럼프 행정부는 협약을 박차고 나오며 이란이 핵무기를 계발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혔습니다. 반대로 김정은 위원장과는 밀월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즉 오늘의 청문회는 이들의 상관인 대통령의 평가를 공개적으로 뒤집은 셈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장악력이 흔들린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미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는 트럼프에게 치명적으로 보입니다. 2020년 대선전이 멀기는 하지만  그 시작이여서 부담이 될 수 밖에요. 그는 늘 '협상의 달인'이라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았죠. 하지만 이번 협상은 그가 겁박과 협박에 이은 구슬리기 말고는 아무 전략이 없음을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그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준 펠로시 의장이 여성이라는 면도 마초 성향의 지지자들에게는 감점요인일겁니다.  다양한 목소리와 정치 이데올로기를 품은 민주당의 대오가 흐트러질만도 했지만 펠소시 의장의 지도력이 이를 막고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상대했대는 평가를 받습니다.

때마침 트럼프 골프장 등에서 이민자들을 불법으로 고용했었음이 밝혀졌죠. 트럼프가 욕했던 이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이민자들이 우리 취업자리를 뺏고 있다! 멕시코 국경 장벽로 이들을 막아야한다! 근데 정작 자기 사업체가 이들을 고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뮬러 특별 검사의 대통령 측근에 대한 조사가 점점 열기를 더해하고 있습니다. 며칠전에는 트럼프의 오랜 친구이자 참모인 로저 스톤이 체포됐죠. 곧 결과가 나오리나는 전망입니다. 그러면 정치적으로 트럼프에겐 큰 상처가 될겁니다.




한 여론 조사를 보면 지지율은 37%대로 내려갔고 반대한다는 의견이 58%를 넘어섰습니다. 이미 공화당 상원의원들도 재선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이들은 셧다운을 반대했었습니다. 트럼프의 국정 장악력이 더 떨어지면 당 내 반대의 목소리도 커질 겁니다.

그 순간이 오면 트럼프 행정부는 아무 일도 못하는 상태를 맞겠죠.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는 감이 드네요.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체를 더 이상 외면하긴 힘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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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역시나 트럼프 대통령의 반론이 트윗으로 나왔습니다.

정보조직이 이란에 대해서 수동적이고 수동적이라고 꼬집고 학교로 돌아가 공부나 더 하라고 쏘아 붙혔습니다. 나중에 백악관으로 불러 수습을 하긴 했지만 중부를 휩쓸고 있는 북극발 추위만큼 그 사이가 얼어붙었다는 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화당 상원의원들도 서서히 트럼프의 명을 거스르는 움직임이 포착됐죠. 없던 일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그 파장은 점점 더 커지지 않을까 합니다.



Friday, January 25, 2019

미국 정치 이야기 #4, 연방정부 셧다운

지금 막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정부 셧다운을 끝낼 법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 미국의 셧다운은 의회가 보낸 정부예산안을 대통령이 서명하지 않아 생기죠. 가끔씩 있는 일인데 이번에는 여러모로 논란이 컸습니다.

첫째, 이 사태가 무려 35일이나 지속됐죠. 최장 기록입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셧다운을 위협/사용하는 사례가 늘었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예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특히 오늘은 금요일로 연방정부 노동자들이 두 번째 급여를 못 받는 날입니다. 미국은 통상 연봉을 나누어 두 주에 한번, 금요일에 받는데 오늘이 그 금요일이였던거죠. 80만여명의 직원들이 급여도 못받고 일을 했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습니다. 강제로 출근하니 사기도 떨어지고 교통비 등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고생하는 이도 많았습니다. 원성이 자자했죠. 비행장 안전 요원, 국제청 직원, 국방경비대 등 생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이들이 곤란을 많이 받으며 걱정을 더했습니다. 더우기 비행 관체탑 근무자들의 안위도 걱정이였죠. 항공안전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라고 단호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디씨 등 연방정부 노동자가 많은 곳 경기 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도 문제였죠. 사태가 길어질수록 백악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대통령이 무릎을 꿇은 셈이죠.

둘째, 이런 고통이 별 일도 아닌 일로 불거졌습니다.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 지역이 위기 상황이다며 거짓 협박을 이어갔습니다. 멕시코 등에서 이민자가 막 몰려온다, 범죄자다, 테러범도 있다, 이들이 넘어와 국가안보가 흔들리다.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되풀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장벽을 지어야한다며 5억 달러를 예산안에 편성하라며 생때를 썼죠. 사실 그런 위기는 없습니다. 이민자의 수는 오히려 줄고 있죠. 이민자들의 범죄율은 오히려 낮습니다. 게다가 정작 기후 변화등 진짜 위기는 무시하고 있죠. 생때도 이런 생때가 없습니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 지도층의 선민의식이 잘 들어났습니다. 안 그래도 직,간접적으로 고생이 많고 국민들 걱정이 깊어가는데 "밥 없으면 빵 먹으면 되지" 식의 발언으로 기름을 부어댔죠. 로스 상무부 장관은 "이해가 안 간다 ... 왜 은행 융자를 받지 않냐"며 일반인들의 고초에 무지한 발언을 했습니다. 트럼프 며느리는 "약간의 고통일 뿐 국가 장래를 위한 것이다"라는 발언으로 무리를 일으켰습니다. 이어 백악관 경제 참모인 커드로우는 셧다운을 "사소한 고장일 뿐이다. 내가 현실감이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며 분노와 조소를 불러일으켰죠. 황금수저인 트럼프와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이들을 보며 트럼프 지지자들조차도 실망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넷째, 달라진 정치 지형이 잘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공고하다고 해도 이젠 민주당이 하원을 차지하고 있으니 자존심 빼면 시체인 트럼프도 어쩔 수가 없었던거죠. 온갖 공격을 다 하던 트럼프도 펠로시 하원의장을 당할 수 없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연례 행사인 대통령의 의회 연설을 취소한다는 편지를 보냈죠. 의전에 중독되다시피 한 트럼프로서는 울화가 치밀 수 밖에요. 보복한답시고 펠로시 의장단의 아프카니스탄 방문에 딴지를 걸었습니다. 무리수였죠. 이 일로 (정치 첫 경험이 대통령인 정치 왕초보) 트럼프는 정말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 의장, 그것도 의장 하고 또 의장 하기로는 미국 역사 처음인 정치 구 단의) 적수를 만난 셈입니다. 러시아 게이트 등 트럼프를 정조준하고 있는 특별검사팀의 조사가 마무리 되고 있는 이 시점에 펠로시의 존재가 더 주목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Friday, January 18, 2019

JTBC 드라마 고찰에 대한 단상

이 드라마를 보지는 않지만 들어는 봤습니다. 이에 관한 오수경의 글, "[시선]나는 이 파국을 응원한다" (경향신문 2019.1.18)의 첫번째 포인트 상당히 공감합니다. "자신만의 정의가 앞서면 그만큼 깊은 확신의 함정에 빠지기 마련이다. 내가 옳고, 이 일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량하게 무례하다." 이런 정의감를 권력자가 가지면 살인적 폭력(박정희 유신)이 되고 시민운동가(이선옥 작가가 "넷페미니스트"로 부른)가 가지면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사회는 같이 살 수 밖에 없는 곳. 합의를 찾고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폭력과 그 사회 자체가 깨지는 길로 가기 쉽죠. 그걸 또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그렇지않고서는 (내가 맞다고 확신하는) 변화는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한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급진적 변화는 흔치 않은 것이고, 성공적이기는 더더욱 드물죠 (러시아 혁). 변화를 이루어도 그 결과가 원하던 것이 아닐 수도 있고요 (모택동 치하의 중국). 그러니 그 과정에서 나올 온갖 상상할 수 있는, 없는 고통에 변화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정치 이야기 #3, 트럼트의 인종차별



미국은 인종 문제에 예민합니다. 건국 자체가 유럽 백인의 원주민 학살로 시작했죠. 거기에 흑인을 노예로 삼았고 이를 두고 내전까지 치렀습니다. 이민은 계속 되면서 그 때마다 논란과 논쟁이 계속 됐습니다.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을 카톨릭 첩자로 봤고, 중국인 노동자에 대한 법적 차별도 있었죠. 지금은 그 대상이 중남미계 이민자입니다.

그 인종차별이란 어떤 것일까. 일단 그 기본은 한 무리가 같다고 보는 것이죠. 공통점이 있다는 것과 같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데 말이죠. 이런 무지에서 한 발 더 나가면 인종적 다름(피부색, 머리결, 키)을 가지고 그 외의 것 (지능, 감수성, 생활습관)을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흑인은 게을러." 
"백인은 정이 없어." 
"한국인은 정말 똑똑해."     
물론 똑똑하지 않은 한국인도 많죠. 똑똑한 한국인도 있습니다. 즉 인종 그 자체는 그 집단의 지능과는 무관합니다. (한 집단의 지능을 측정할 수 있지도 않죠. 한다면 뭘로 할까요? 대학 진학률? 한국 사람들이 제일 똑똑하겠네요. 하지만 북한에서는 그 수치가 떨어질텐데 그럼 북한 사람들은 안 똑똑한 셈이겠죠. 하지만 인종적으로 한 민족 아니였던가요? 과학 부문 노벨상 수여자 숫자? 그럼 한국은 아프리카 나라들과 전혀 차이가 없을테죠.)

그리고 그런 선입관을 그 인종에 속한 개인에게 적용합니다. 그러면서 인종에 대한 선입관도 강화시키죠: 
"마이클 일은 않고 어딨어? 누가 흑인 아니랄까봐." 
"제인은 백인이라서 그런지 정이 없어." 
"영희 이번에 하버드 갔데요. 역시 한국사람들은 달라."

여기에 더해 가치 판단, 정책 입안 등 전형적 반응까지 더하기도 합니다:
"흑인은 게을러. 그러니까 가난하지. 마이클 봐. 사회보장을 줄여야되. 일도 안 하는 놈들을 왜 도와줘?" 
"제인은 정이 없어. 뭐 백인들 다 그렇지. 그래도 일은 잘 해. 잘 생겼고. 코 봤어? 어쩜 그렇게 오똑한지. 눈도 파랗고 너무 부럽더라. 나도 코 그렇게 해야겠어." 
"영희는 하버드 갔고 걔 언니도 이번에 의사됐지? 참 대단해. 우리 애라고 못할게 뭐야. 한국사람인데." 

미국 인종차별은 정서적 차별로 끝나는게 아니라 정책, 나라의 정체성 등 논란으로도 이어집니다. 돈과 힘을 겨루는 정치문제이죠. 60년대 흑인 주도의 Civil Rights Movement를 시작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 주류의 목소리가 됐습니다. 남부에 있던 백인전용 식당 등이 없어졌죠. 흑인을 비하하는 용어도 금기시하게 됐습니다. 흑인들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졌죠. 덕택에 동양인 등 비백인 미국인의 지위도 덩달아 향상됐습니다. 게다가 이들의 인구가 백인의 앞지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죠. 일부 백인들이 불안을 느꼈고 저항심마저 느꼈습니다. 이를 이용한 세력이 여럿 있었죠. KKK나 Aryan Nation 같은 테러집단 등 변방에 머물렀던 백인우월주의는 점차 주류로 스며들었습니다. 심지어 공화당도 커가는 백인우월주의에 조금씩 익숙해졌죠. 완전히 외면할 수 없게된  뿐 아니라 사안에 따라 이용/동참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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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변화는 트럼프를 낳았습니다. 사실 트럼프의 인종차별 발언을 보려했는데 너무 서론이 길어졌네요. 너무 많아서 대통령이 된 후의 주요 사례만 살펴보겠습니다.

언제발언인종차별
2017-03흑인의원들과 만난 자리. 한 의원이 사회보장 축소로 자기 지역구 사람들이 피해볼 것이다. 그 사람들이 다 흑인이 아니다라고. 그러자 트럼프, "정말? 그럼 그 사람들은 누구인가?"라고 되물음.  사회보장 혜택 받는 사람은 다 흑인으로 착각 
2017-06이민자들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아이티 이민자들은 "모두 에이즈 있어." 나이지리아의 집은 다 "오두막이야."특정지역 사람 (흑인)은 다 문제가 있다는 착각 
2017-08버지니아 샬롯츠빌에서 니오나치주의자와 이에 반대하는 운동가 남부군 리 장군의 동상을 두고 충돌. 한 극우참가자가 차로 운동가들로 돌진해 한명 살해. 트럼는 "양쪽 다 잘못이 있다... 운동가측도 굉장히 폭력적이였다."백인이면 살인적 인종차별도 두둔  
2017-11워런 상원의워(원주민 피가 섞여있다고 주장; 나중에 DNA 테스트로 입증)을 (전설적 원주민으로 디즈니 만화영화로도 제작된) "포카혼타스"로 지칭  한 집단을 한 사람으로 축약 (동양인은 다 재키찬)
2018-01정보브리핑 중 동양계 분석가에게, "어디 출신이냐?" "뉴욕인데요." 그래도 계속 추궁하자 부모가 한국계라는 대답을 듣고서야 멈춤. 이후 "저 한국 여자"가 북한과 교섭에서 빠저있냐고 질문.  동양외모는 미국외모가 아니라는 편견 
2018-01이민에 관한 발언. 아이티 등 남미, 아프리카 나라들을 "시궁창 (Those shitholes)"으로 여러번 지칭하며 노르웨이나 아시아 이민을 늘려야한다고 주장. 특정지역 사람 (흑인)은 다 문제가 있다는 착각; 특정지역 사람(백인, 동양인)은 다 괜찮다는 착각





결론:
인종차별적 발언이 일상적이고 지속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차별주의자다. 

관련 기사:
"Donald Trump’s Racism: The Definitive List" The New York Times (JAN. 15, 2018)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18/01/15/opinion/leonhardt-trump-racist.html

Sunday, January 13, 2019

미국정치 이야기 #2, 주목할 미국 정치 신인, 오카시오-코르테즈

이번 미국 중간선거의 민주당 승리가 흥미로운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게 된 것이 그 중 눈에 띄죠. 당장 의회 차원에서 여러 조사가 이루어질 전망입니다. 뮬러 특별검사의 조사도 끝이 난 듯 해서 발표를 기다리고 있죠.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다양성입니다. 총 435명 하원에 여성 의원은 84명을 넘긴적이 없지만 이번엔 102명 입성했죠. 성소수자도 최소 10명, 23명의 초선의원이 유색인종 등으로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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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이는 단연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29·민주·뉴욕주)입니다. 푸에트리코 출신 아버지를 둔 바텐더 출신으로 10선의 민주당 중진을 무너뜨리고 후보가 될 때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죠. (최연소) 당선되면서 그 유명세는 점점 커져만 가는 듯 합니다. 최근 60 Minutes 인터뷰도 그 한 예죠. 좋건 싫건 그녀의 이름은 오르내리고 중진들도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된 듯 합니다.

사회주의자, 급진주의자 등의 딱지를 전혀 두려워하지도 않죠. 변화는 급진주의자들이 만들어왔다. 내 주장이 비현실적이라는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더 비현실적이다라는 당찬 주장을 환한 미소와 함께 내놓습니다. 특히 환경분야에서는 굉장히 강경파고요. 12년 안으로 화석연료를 없애는 경제체제로 완전히 전환하자는, Green New Deal 이 그 핵심입니다. 이 운동가들이 민주당 지도자 펠로시 의원 사무실을 점거했는데 거기에 들려 응원한 용기(?)를 보이기도 했죠.



그녀의 정책이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정치 논쟁의 지평과 방향을 새롭게하는데는 큰 구실을 하리라 예상됩니다. 아직 29세의 젊은 정치 초보. 그 앞날을 주목해봐야 하겠습니다.   


Thursday, January 10, 2019

[세상읽기]화석처럼 굳어버린 1953년

경향신문 (2019.01.10 20)

미국 연방정부 예산이 처리되지 않아서 필수 분야를 제외한 업무가 일시적으로 정지된 지 3주가 다 됐습니다. 멕시코 국경 장벽이 이 사태의 발단입니다. 현실적이지도 않고 아무 소용도 없지만, 정치적 이유로 이를 세우겠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야당인 민주당 주도의 의회가 충돌한 겁니다. 트럼프가 정치경험이 전혀 없는 탓에 이런저런 탈도 많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엉뚱한 질문을 던지곤 하죠.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 미군 한국 배치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매년 35억달러나 쓰면서 남을 지켜주는 게 장사꾼 트럼프로서 이해가 안 갔던 겁니다. 당황한 참모들은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려 안간힘을 썼죠. 한 경제참모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항공모함을 더 배치해야 하며 10배가 넘는 돈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정부 협조 덕에 민감한 첩보도 덤으로 얻는다고 했죠. 한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은 미국 안보를 위해 매년 40억달러를 후원하는 셈이라고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트럼프의 엉뚱한 질문이 주한미군의 가치를 조명해준 셈입니다.

그 가치는 ‘미국’ 수호입니다. 미군이 미국 이익을 위한다. 이 간단하고 명확한 사실이 유독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군이 한국을 수호하기 위해 큰 희생을 치를 것처럼 믿기도 하지만 이는 착각일 뿐입니다. 2017년 4월 이제는 고인이 된 매케인 상원의원과 그레이엄 상원의원을 백악관으로 초대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정세에 대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매케인은 “아주 복잡합니다. 북한 재래식 무기 도발로 서울 시민 100만명이 사망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그레이엄은 “100만명이 죽는다면 여기 말고 거기서 죽어야 합니다”라고 맞섰죠. 미국 매파의 시각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미군 주둔은 한국 안보가 그 목적이지만, 한국 안보만을 위하지 않습니다. 애초 주둔 결정도 한국 안보보다는 한국전쟁을 빨리 끝내고 지역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죠. 휴전 협정이 마무리되어가자 불안해진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요구했습니다. 미국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휴전협정을 준수하지 않겠다고 미국을 위협했습니다. 반공포로 석방 등 일련의 시위까지 벌이고서 얻어냈습니다. 이 조약은 미군의 남한 주둔 근거가 됐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왔던 미군은 또 그렇게 떠날 겁니다. 영원히 있기야 하겠습니까? 설마 그러랴 하겠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영원한 제국은 없습니다. 수백년 동아시아를 호령한 청 왕조도 19세기가 되면서 급격히 쇠약해졌고, 청일전쟁 패배로 조선에서 군사를 물렸죠. 아프가니스탄 공산당 정권을 지키던 소련군도 무자히딘의 저항에 철수했습니다. 이라크전쟁에서 승리한 미군도 정치적 비용이 커져 철수했죠. 필리핀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1986년 민주혁명으로 탄생한 아키노 정권은 100년간 주둔한 미군에 결별을 선언했죠. 민주체제에서 꿈틀대기 시작한 민족주의가 정치권을 움직인 덕이었습니다. 미국은 주둔 연장을 사정하며 수억달러를 제시했지만, 필리핀은 거부했습니다. 미군 주둔지 경제, 즉 상권, 임금 등의 손실도 감수하고 말이죠. 자의건 타의건 미군은 한국에서도 떠날 겁니다.

안 가본 길을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나은 곳을 찾고 먼저 가보는 게 지도자의 책무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삐걱대고 있습니다. 9600억원 수준인 한국 분담금을 1.5배, 즉 1조4000억원 정도까지 올리려고 한다죠. 다른 나라에 비해 이미 높은 수준을 부담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당장 한·미동맹을 걱정하는 절규가 터져 나오고 협상은 지지부진합니다. 한국 정부가 이렇게까지 끌려다닐 필요가 있을까요? 주한미군을 더 요구하는 게 혹시 미국 아닐까요? 미군이 떠난다고 북한이 쳐내려올까요? 중국이 미사일을 쏠까요? 일본군이 독도를 점령할까요? 미군을 언제,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한·미동맹을 건국신화로, 종교로 숭배하며 반세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고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미국 눈치를 안 볼 수야 없겠죠. 하지만 새로운 사고와 유연한 상상력이 더더욱 필요합니다. 2018년 남북 화해는 1953년에 화석처럼 굳어버린 동아시아 정세 전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 변화에 휩쓸리는 대신 변화를 이끄는 정부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