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March 5, 2014

安 비판마라, 걱정할 일 따로 있다

安 비판마라, 걱정할 일 따로 있다 - 남태현
Insight 2014-3-5

http://insight.co.kr/content.php?Idx=858&Code1=001


지난 3월 2일을 시작으로 한국 정치 뉴스는 거의 한 가지 소식만 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김한길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과 안철수의 새정치연합의 통합이 그것이었죠.

당장 있는 지방선거와 다가올 총선,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승리를 막고 새 정치를 구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워낙에 갑작스레 있는 일이어서였는지 논란이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논란들을 살펴보고 한국정치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논해보로록 하겠습니다.

안철수‧김한길, 밀실정치 구태 답습?


일단은 비난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조선일보(2014.3.3)가 말하듯 ‘구(舊)정치에 대한 새 정치의 백기 투항’이라는 비아냥이 그 것이죠. 그도 그럴 것이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안철수와 그의 세력은 민주당을 싸잡아 낡은 정치세력이라고 비난했더랬죠.

그러더니 며칠 사이 그 낡은 정치 세력과 통합이라니 놀랄만한 일입니다. 이러한 비난은 한나라당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진영에서도 들립니다. 정의당은 3월 2일 논평에서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양당기득권 독점체제를 깨고 '새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열망이 좌초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안철수 의원은 그동안 누차 양당독점체제를 허무는 새로운 정치를 주창해 왔으나 결국 스스로가 기득권 독점체제에 편승한 결과를 낳았다”고 했고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도 3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신당 창당이 … 혁신 대상인 양당 기득권 체제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 (새정치) 명분은 상실됐다”고 꼬집었습니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합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들어난 밀실정치의 구태를 비판합니다. 공적인 정치세력의 합당이란 것이 가벼운 일일 수 없고 최소한 그 조직 내에서만이라도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절차가 바람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밀실통합이었죠. 민주당의 김광진 의원은 "아니! 언제부터 민주당이 당대표 1인에게 당해산, 합당, 신당 창당의 권한을 줬냐"며 "이런 중대차한 일을 당원, 의원단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기자회견 5분 전에 '미리 상의하지 못해 양해를 구한다'는 문자하나 달랑 보내고 끝낼 수 있습니까"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새정치연합 윤여준 의장도 합당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린 2일 오전까지도 신당 창당 결정을 통보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주체제의 핵심, 선거의 승리


이러한 비난과 실망의 목소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민주체제의 핵심을 간과한 비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체제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양당기득권의 독점체제를 깨는 것인가요? ‘새정치’를 구현하는 것인가요? 밀실정치를 타파하는 것인가요? 물론 이들 모두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민주체제의 핵심일까요?

민주체제의 핵심은 다른 것이 아닌 선거의 승리입니다. 왕정체제에서도 당파정치를 깨는 것이 중요했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밀실정치를 욕하는 목소리도 있었죠.

하지만 이는 나라를 운영하는 이들의 숙제이었지 체제를 안정시키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왕위의 계승과 유지였습니다. 소위 민주국가라고 불리는 곳에서도 이런 저런 과업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 나라가 추구해야할 숙제이지 체제의 정체성은 아닌 것이죠.

민주체제의 정체성은 선거에서 나오고 권력은 선거의 승리에서 나옵니다. 숙제는 그 후에나 할 수 있는 것이죠. 즉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민주체제라는 것입니다. 이 당위를 곱씹어 본다면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고자 하는 욕망을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는 학생이 공부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크다고 뭐라 하는 것과 똑 같은 것이죠.

그런 면에서 합당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모두 선거에 고전할 것이라 예견되었었고 합당은 두 당 모두에게 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책인 것이었던거죠. 그런 면에서 합당의 목표나 대의가 불문명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감정적인 반응일 뿐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자신의 정치적 취향에 따라 야합, 정치공학, 구국의 결단 등으로 불리는) 합당은 늘 있어왔던 일입니다. 1990년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제2야당이던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을 해 거대 여당을 만들어 정권을 재창출했습니다.

1997년의 대통령 레이스에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과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이 손을 잡고 신한국당의 이회창을 간신히 이겼습니다. 2002년엔 민주당의 노무현은 국민통합21의 정몽준과 과감하게 손을 잡으면서 이회창을 역전했죠. 합당 또는 그에 준하는 연합이 선거에 힘을 발하는 것을 보여주는 뚜렷한 예입니다.

신당창당, 6‧4 지방선거에 활력


당장에 지지부진할 것으로 예상했던 야당의 지방선거에도 활력이 띄고 있습니다. “두 세력이 통합하면 각자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확장할 여지가 많았고, 견제도 협력도 못하는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도 견제할 것은 견제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관계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경향신문 사설 3.2)가 있고 실제로 야당의 지지율도 치솟았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국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신당 지지율은 30%로 2월 21~22일 실시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나온 민주당 10.3%, 새정치연합 13.7%를 단순 합산한 24.0%와 비교할 때 지지율이 6%포인트 가까이 오른 것입니다.

하지만 새누리당 지지율은 39.9%에서 39.3%로 0.6%포인트 줄어 별다른 변화가 없었죠. 새누리당에서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입니다. 야권이 민주당과 안철수 지지세력, 진보세력으로 갈갈이 나누어져 쉬운 싸움이 예상되었던 새누리당으로선 황당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왜 이렇게 정치판이 돌아가냐는 것입니다. 왜 계속 합당 또는 야합이 나타날까요? 이를 구태적인 정치라고 욕하던 이들도 합당을 하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고질적인 병폐인 양당기득권 독점체제를 깨기’가 이렇게 힘든 것은 왜일까요? 질문은 조금씩 다르지만 사실 대답은 하나입니다. 바로 우리의 선거제도 때문이죠 (남태현 2014 <왜 정치는 우리는 배신하는가>).

우리의 선거제는 각 선거구에서 최대의 득표를 한 후보만이 승리하는 제도입니다. 당연히 승자는 한 명일 뿐이죠. 그 선거구에서 노태우 후보처럼 36.6%의 득표를 하건 박근혜 후보처럼 과반수를 넘건 일등만 하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거꾸로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명만 이기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솔직한 지지보다는 전략적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동자의 정당에 투표하고 싶어도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그나마 조금 더 비슷한 민주당에 투표하게 되는 것이죠.

‘새누리당보다는 낫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건 아니건 우리의 선거제도에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투표형태는 결과적으로 양당제를 공고하게 만듭니다.

한국의 양당제, 안철수 혼자 바꿀 수 없다


좌건 우건 이념의 잣대에 가운데에 서있는 두 정당 말고는 살아남기 힘든 것이죠. 노동정당의 지지가 민주당에 흡수되는 것처럼, 극우정당의 지지도 새누리당으로 흡수되어 살아남기 힘든 것은 이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양당이 무슨 기득권을 조작하고 독점하는 흉계를 꾸미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스레 제도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죠. 거꾸로 양당제는 안철수 혼자 바꿀 수 있는 것도 애초에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실망을 하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기대를 한 면이 큽니다. 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판에 반영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정당 둘이 사회의 다양성을 대변할 수는 없죠.

그러므로 다양한 정당이 정권을 다투는 건전한 민주체제를 이루는 길은 선거제도를, 그리고 더 나아가 헌법을 바꾸는데서 찾아야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이번 합당을 보고 생각해봐야할 숙제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