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8, 2016

[기고]반기문 총장님께


유엔은 참 소중한 국제기구입니다. 2차 세계대전 후 세워져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에 법과 평화를 구현하고자 한 그 야심만으로도 칭찬할 만한 일이죠. 특히나 한국 땅에서 유엔은 더욱 특별하지 않습니까? 유엔은 북한의 남침 직후 이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유엔군을 꾸려 한국을 도왔습니다. 이는 냉전 최초의 전쟁이었고 그만큼 유엔의 역할이 현대사에서 작지 않을 것을 암시했죠.

짐작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유엔은 줄곧 유니세프, 세계보건기구 등 산하 기구들을 통해 복지와 건강 증진에 매진하는 한편 국제원자력기구, 국제사법재판소 등을 통해 안정과 정의를 위해 뛰었습니다. 동티모르 분쟁을 평화적으로 끝낸 것도 한국에서 기억되는 최근 업적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그런 유엔에 2007년 사무총장으로 취임하셨을 때 많은 기대가 있었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미국 연수 시절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외교관의 꿈을 키운 고등학생이었다는 총장님의 개인사가 알려지며 그 기대는 더욱 커갔습니다. 게다가 상처와 분쟁이 그칠 날 없던 한국 현대사를 직접 지켜본 분이기에 유엔이 더욱더 적극적이 되리라는 기대도 했었습니다. 북한 핵과 관련해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사무총장이 되면 폭넓은 권한을 갖게 되므로 소위 ‘한반도 문제’에 대해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더 크다”며 드러내신 큰 포부에 뿌듯한 우리였습니다.

하지만 총장님의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그 기대가 채워지기보다는 실망이 더 많습니다. 지난 5월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총장님을 “가장 우둔하며(the dullest), 최악의 총장 중 하나(among the worst)”라고 평가했습니다. 2009년 스리랑카 내전, 2010년 아이티 지진 당시 콜레라 창궐 등 위기에 대처가 미비했다는 지적이 날카로웠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재건, 핵 확산, 난민 문제 등 주요 문제를 다루면서도 강대국의 눈치만 보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뼈아프죠.

유엔 내에서도 일벌레로 소문이 날 만큼 열심히 일하셨으니 아주 섭섭하시겠죠. 게다가 흔히들 세계 대통령으로 부르는 그 자리가 그렇게 힘 있는 자리도 아닌데 그걸 몰라주니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 때가 있지 않았을까 짐작이 갑니다.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반대도 피해야 하고 독일이나 일본처럼 기부금 많이 내는 나라의 눈치도 봐야 하는 그 입장을 본인이 아니면 상상하기 어렵겠죠. 하지만 전임자들도 이런 구조 속에서 일해왔으니 반 총장님께만 유독 특별한 문제였던 것은 아니지 않았나 싶습니다.

본인으로 인해 10년간 몸담았던 조직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누가 달가워하겠습니까. 그래서 마지막 달까지 유엔의 위상을 위해 끝까지 애쓰셔야 할 사명은 더욱 막중하다 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편지를 띄우는 것은 지금 당장 유엔을 위해서 하실 일이 하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바로 한국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겁니다.

“사무총장 자신도 (정부) 직책을 수락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1946년 결의문이 있음에도 총장님의 퇴임 후 대선 출마 가능성은 유엔 안팎에서 늘 회자돼 왔습니다. 그만큼 명분과 법을 중시하는 유엔의 권위에 해를 입히신 것이죠. 유엔이 사무총장의 정치도구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그 사실 여부를 떠나 정당성에 큰 타격을 주어 왔습니다. 이런 와중에 내년 한국에서 정치를 시작하신다면 유엔으로서는 아픈 선례가 될 테죠. 트럼프 같은 미국 제일주의자가 대통령이 되어 안 그래도 유엔 같은 국제기구에 대한 회의가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엔은,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는 웃음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유엔을 아끼는 반기문 사무총장님이 바라는 바가 결코 아닐 테죠. 당장 침묵을 깨고 한국 대선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셔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결연한 선택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Tuesday, December 6, 2016

박근혜 사퇴를 요구한다. 해외학자 성명서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

저희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치 변화에 큰 관심을 갖고 염려하는 해외 학자들입니다. 살고 있는 지역과 연구하는 주제는 다양하지만 저희는 하나의 가치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민들의 수많은 희생과 노력으로 이룩해 낸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존경과 자부입니다. 그러나 지금 드러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은 이 사태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헌법 질서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저희 해외 학자들은 한국 국민들의 깊은 절망을 통감하며, 동시에 전국민적 저항을 통해 표출되고 있는 민주주의 회복의 의지와 열망을 뜨겁게 응원합니다. 저희는 현재 한국 국내 및 해외 여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한국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운동에 동참하려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으로서의 중대한 권한과 임무를 최순실이라는 일개 민간인에게 위임했습니다. 이것은 대통령의 통치 행위를 아무런 공직을 갖지 않은 일반인에게 제멋대로 맡긴 헌정 파괴 행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과 대통령 비서실을 통해 재벌들로부터 800억에 달하는 불법 자금을 걷어들였습니다. 이는 명백하게 대통령의 권력을 남용한 심각한 부정부패 행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국정원, 검찰을 동원하여 언론을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했으며 공직과 민간 기관에 자신의 사람들을 임명하고 반대자들을 제거했습니다. 이 또한 권력을 남용하여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와 제도를 파괴한 중대한 위법 행위입니다.

박근혜 정권 하에서 언론의 자유는 크게 위축되었고 사상의 자유 또한 심각한 위협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의 활동과 발언은 블랙리스트로 억누르면서 한 개인에게 특혜를 제공하기 위해 법, 학칙, 원칙, 상식 모두를 무너뜨렸습니다. 관제 데모가 되살아났고 공작 정치도 판을 쳤습니다. 세월호의 진실은 은폐, 왜곡되고 여론은 호도되었습니다. 일본 정부와의 굴욕적인 합의로 위안부 할머니들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도 모자라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밀어붙였습니다. 국민의 뜻에 반하기는 사드 배치 강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북 정책 실패는 남북관계의 균열을 초래했고 그 결과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번 위기는 박근혜 한 개인의 일탈 행위의 결과가 아닙니다. 현 정부는 대통령 박근혜의 수족이 되어 부정과 부패의 대리 집행인 역할을 했습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자 대통령의 국정 농단 파트너입니다. 재벌은 이들에게 불법 자금을 지원한 댓가로 온갖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수구 언론은 박근혜 정권과 이들의 비리를 묵인하고 비호하였습니다. 이들은 함께 한국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공권력을 사익 추구에 사용한 공범으로서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을 조롱하고 기만하였습니다.

이에 저희 해외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1.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사퇴하라.
2. 국회는 즉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절차를 시작하라.
3. 검찰은 박근혜 대통령과 공범들의 불법 행위를 철저히 수사하고 엄중히 처벌하라.
대한민국은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한국 정치와 사회, 경제의 민주화를 심화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저희 해외 학자들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재벌 및 보수 언론과 맞서 싸우고 있는 한국 국내, 국외의 모든 동포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이 이루어질 그 날까지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권경아, 오클라호마대, 미국
김선미, 라마포 뉴저지 주립대, 미국
남윤주, 버팔로대, 미국
남윤진, 도쿄외국어대, 일본
남태현, 솔즈베리대, 미국
서재정, 국제기독교대, 일본
유종성, 호주국립대, 호주
이윤경, 토론토대, 캐나다
전현진, 메릴랜드 주립대, 미국
조현각, 미시간 주립대, 미국
홍승혜, 하와이 주립대, 미국

President Park must resign immediately!

We are scholars concerned about South Korea's democracy and political change. While we live in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and study divergent topics, we share respect for and pride in South Korea's democracy built on Koreans' sacrifice and struggle. We are stunned by the recently-revealed political scandal that President Park Geun-hye and Choi Soon-sil have assaulted the Korea's Constitutional order and democratic principles. We share not only the despair and anger of Korean citizens but also their ardent desire to re-construct Korea's democracy. Today we join them in their struggle to remove Park from the presidency and restore democracy.

President Park Geun-hye has relegated the power and responsibilities that the constitution bestows to the president to her confidante Choi Soon-sil. It constitutes a wanton violation of the constitution to yield the presidential power to a private citizen who holds no public office. President Park deployed Choi and the presidential office to collect illegal fund of 80 billion won from Korea's conglomerates (chaebols), abusing the presidential power to commit a large scale corruption. She mobilized the Blue House, the 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and the Prosecutor's Office to control the media, manipulate public opinion, appoint their cronies in public and private positions, and remove critics. These actions are nothing but a gross abuse of the presidential power and a serious violation of the rule of law and democratic principles.

Furthermore, President Park has persistently suppressed basic civil liberties such as the freedom of the press and conscience. She has crafted blacklists to stifle dissenting voices while violating the law to grant special privileges to her personal connections. Her regime has sponsored counter-protests against critics and engineered political manipulations. Not only did the government fail to rescue hundreds of passengers from the slowly sinking Sewol, but it has also concealed and distorted the truth about the Sewol tragedy. Park's regime has also angered the nation with a series of measures: it concluded an illegitimate agreement with the Japanese government on "Comfort Women" it is pushing forward the scheme to nationalize history textbooks and it rushed to sign the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 with Japan. Its failed policy toward North Korea has resulted in the breakdown of the inter-Korea relationship and heightened insecurity. It is only exacerbating the situation by recklessly proceeding with the deployment of THAAD against Korean citizens' opposition.

President Park is not the only culprit. Various state institutions and officials have operated as her personal apparatuses to execute corruptions and crimes. The Saenuri Party, too, has colluded with her in her unconstitutional and illegal activities. The chaebols are suspected to have offered illegal political funds in return for the guarantee of special interest. The conservative media has shielded the regime by covering up or remaining silent on their dirty actions. These actors are accomplices who together with Park have undermined democratic rule and abused government authority for private gains.

Park and her party have turned the clock backward, rolling the proud tradition of South Korean democracy back to the dark time of the past authoritarian rule. No longer can we, the scholars abroad who are deeply concerned about Korea's democracy, sit silently watching Park's corruption and authoritarianism. We stand together with the Korean people who are waging a fight against President Park, the Saenuri Party, the chaebol, and the corrupt media in order to restore democracy, fairness, and justice.

We, the undersigned, demand the following:
1. President Park must resign immediately
2. The National Assembly must immediately start the process to impeach the president and
3. The Prosecutor's Office must thoroughly and impartially investigate President Park and her partners in crime, and the Judiciary must impose a maximum penalty on them for their wrongdoings
It is our hope that Korea takes the Park-Choi scandal as an opportunity to deepen democracy in politics, economy, and society. We the undersigned overseas scholars shall stand with the Korean people until President Park resigns and Korea's democracy is restored.

Hyunkag Cho, Michigan State University, USA
Seunghye Hong, University of Hawai'i at Mānoa, USA
Hyun-Jin Jun, University of Maryland, USA
Seon Mi Kim, Ramapo College of New Jersey, USA
Kyong-Ah Kwon, The University of Oklahoma, USA
Yoonkyung Lee, University of Toronto, Canada
Yunjin Nam, Tokyo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Japan
Yunju Nam, University of Buffalo, USA
Taehyun Nam, Salisbury University, USA
Jae-Jung Suh, International Christian University, Japan
Jong-sung You,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Australia

Saturday, November 19, 2016

Join the petition--박근혜는 하야하라

Dear colleagues, 

As you may have already learned from news media, the political scandal of President Park Geun-hye and Choi Soonsil has put South Korea’s constitutional order and democratic principles in great danger.  
A group of scholars concerned about Korean democracy has drafted a joint statement to support the collective aspiration of Korean citizens to restore democracy. Please consider endorsing the statement by adding your name to this campaign. Your solidarity for democracy and justice in Korea will greatly be appreciated.

“Overseas Scholars' Statement Calling for Immediate Resignation of South Korea’s President Park Geun-hye”:
Please email us at sewolscholars@gmail.com if you have any questions.

Your solidarity is deeply appreciated.


Hyunkag Cho, Michigan State University, USA
Seunghye Hong, University of Hawai‘i at Mānoa, USA
Hyun-Jin Jun, University of Maryland, USA
Seon Mi Kim, Ramapo College of New Jersey, USA
Kyong-Ah Kwon, The University of Oklahoma, USA
Yoonkyung Lee,  University of Toronto, Canada
Yunjin Nam, Tokyo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Japan
Yunju Nam, University of Buffalo, USA
Taehyun Nam, Salisbury University, USA
Jae-Jung Suh, International Christian University, Japan
Jong-sung You,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Australia

Thursday, November 17, 2016

시국선언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절차 중단하고 모든 외치에 손 떼라"

현재 대한민국은 비상시국이다.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정을 농단하고, 사법체계를 위반하는 행위가 청와대에서 이뤄졌다. 이로 인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 및 안전이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박근혜대통령은 이미 내치는 물론이지만 외교·안보·통일을 책임질 능력이 없음이 입증됐다. 대한민국의 현 통일·외교·안보 난맥상을 초래한 대통령이 ‘외치’를 계속 좌지우지한다면 대한민국은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는 엄중한 상황이다.

박근혜정부의 외교·안보·통일 정책은 합리적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난맥상, 바로 그 자체였다.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함으로써 자주국방의 기틀을 맞을 수 있는 기회를 던져버렸다. 위안부 문제를 앞에 내세우고 일체의 대일외교를 중단하더니, 갑자기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를 맺었다. 장관을 포함한 통일부 내의 신중론을 갑자기 뒤집어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자신의 공약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한반도 불신프로세스로 퇴락했다. 근거 없는 ‘북한붕괴’설을 무슨 예언처럼 신봉하며 제재와 압박에만 몰두했다.

박근혜정부의 외교·안보·통일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신장이다. 대한민국의 안보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동맹국인 미국과 일본마저도 안보를 우려해야 할 지경에 처했다. 이러한 사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대신, 박근혜정부는 사드 배치 결정을 덜컥 내려 대한민국과 동북아전체를 위기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그 결과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은 동북아 불안·긴장 상태로 귀결됐다.

외교·안보·통일 정책의 총체적 파국은 오롯이 박근혜대통령의 책임이다. 박근혜대통령 뒤에 비이성적 비선실세가 있었다는 언론보도는 그간의 난맥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박근혜대통령의 책임을 면제하는 구실이 되지는 않는다. ‘외교’는 ‘외유’가 아니다. 비선실세가 골라준 옷을 입고 미소 지으며 패션쇼를 펼치는 자리가 아니다. 다른 나라 정상을 마주하고 "밤잠을 못자며 걱정하고" 있다고 하소연하는 자리가 아니다. 안보와 관련된 비밀정보를 "오랜 인연을 갖고 있었던" 한 개인과 공유하고, 통일 정책을 발표하는 연설문을 사이비 종교인이 수정하게 했다면 대통령은 외치를 담당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미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은 박근혜대통령을 로봇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미신적 종교에 의해 국정이 농락당했다는 등 조롱조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전 세계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재외동포들도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는데, 대통령이 얼굴을 들고 외교를 할 수 있겠는가. 박근혜대통령은 외교·안보·통일의 총체적 혼란을 초래한 장본인이다. 우리는 박근혜대통령이 당장 외치에서 손을 뗄 것을 요구한다. 아울러 그 동안 사드 배치 및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논의 등 국민을 분열시키고 대한민국과 동북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정책 등은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박근혜대통령은 내치든 외치든 국정을 이끌 능력과 정당성을 상실했으므로 마지막 남은 국민에 대한 의무로서 퇴진해야 마땅하다.

정부에 요구한다! 나라의 혼란한 틈을 타서 나라의 미래가 걸린 한일정보보호협정과도 같은 중요한 조약이나 협약을 추진하려는 모든 시도를 멈추고, 다음 정부로 넘겨야 한다. 시급한 사안이라면 국회비준을 통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추진하도록 하라.

야당들에 요구한다! 외치를 마치 박근혜대통령이 내치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한 교환조건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지 말라. 내치와 외치는 분리할 수 없을뿐더러, 외치는 우리의 미래를 더욱 파국으로 이끌어갈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재차 강력히 요구한다! 트럼프 당선 이후 대응을 국면 전환용으로 삼지말라. 외치의 중요성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하루빨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공백을 최소화하라.


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정세현(한반도평화포럼공동대표)

문정인(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이종석(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고경빈(한반도평화포럼 이사)

구양모(미 노스위치대 교수)

김광길(변호사)

김근식(경남대 교수)

김동엽(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김서진(개성공단기업협회 전무)

김용현(동국대 교수)

김연철(인제대 교수)

김한정(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김준형(한동대 교수)

김화순(한양대 글로벌다문화연구원 연구원)

남태현(미 솔즈베리대 교수)

박순성(동국대 교수)

박진원(한반도평화포럼 사무처장)

백학순(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서재정(국제기독대 교수)

서보혁(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 HK연구교수)

양기호(성공회대 교수)

양성철(고려대 석좌교수)

여혜숙(전 평화를만드는여성회상임대표)

이장희(한국외대 명예교수)

이수훈(경남대 교수)

이선종(원불교 교무)

이오영(남북경협포럼 공동대표)

이제훈(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

이창희(동국대 연구교수)

인기영(의사)

정완숙(디데모스 대표)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정현태(전 남해군수)

조현장(의사,부산참여자치21 대표)

진희관(인제대 교수)

최종건(연세대 교수)

한정숙(서울대 교수)

함보현(변호사)

홍석률(성신여대 교수)

홍순계(남북경협포럼 공동대표)

황방열(오마이뉴스 기자)

황준호(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

황인성(전 청와대시민사회 수석) 이상 42명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3352#csidx63398f3afb7a2b4a656921b6d3abfeb

Monday, November 14, 2016

[왜냐면] 또 다른 박근혜를 막아야 합니다

한겨레 (2016.11.14)

드디어 사임했습니다. 최측근 권력 남용이 문제였죠. 여기에 뇌물 등 여러 혐의가 겹치며 여론이 악화됐고 더는 버틸 수 없었습니다.

2013년 6월 체코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페트르 네차스 총리 최측근이자 연인이었던 나기오바가 이혼 중이던 총리 부인을 감시하기 위해 공권력을 쓴 것이 큰 쟁점이었습니다. 뇌물 등 비리도 있었지만, 권력을 사유화했던 나기오바의 전횡은 공분을 샀죠.

체코 국민의 분노가 이해는 가지만 어디 우리 분노만 할까요. 그 분노는 광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두 주말 연속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잠을 자는 공주처럼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거국중립을 미끼로 시간을 끌고 있죠. 민주당 지도부도 하야, 탄핵, 거국내각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우리의 분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공권력 개입으로 선거의 정당성을 훼손했고 오만으로 남북관계의 파탄을 낳았습니다. 무능으로 국정운영은 무너졌고 무관심은 목숨을 앗아가기까지 했죠. 취업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경제성장률도 크게 둔화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크게 위축됐고 사상의 자유마저 침해를 받았습니다. 관제 데모가 되살아났고 공작 정치도 판을 쳤죠. 이제 국민이 준 권력을 남에게 던져주고 놀이하듯 사리사욕을 채웠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헌법을 통째로 뒤흔든 그런 대통령을 몰아내는 게 이렇게 힘들다는 게 우리를 분노케 합니다.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지만 몇몇 검사의 판단과 의지에만 기대야 하는 이 현실이 우리를 분노케 합니다. 힘없는 이들은 죽이고 재벌들은 살렸지만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대통령의 미소가 우리를 분노케 합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임에도 체코 총리가 사임한 데에는 정치체제가 이를 강제했기 때문입니다. 체코도 다른 유럽국가들처럼 비례선거제도와 의원내각제를 바탕으로 민주체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권자는 의회선거만 하고 여기서 과반을 얻은 정당 또는 정당 연합이 정부를 꾸립니다. 비례선거 덕에 한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정당 연합이 주로 그 일을 하죠. 이렇게 꾸려진 정부의 수반, 즉 총리는 그 과반의 의석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반의 지지를 잃으면 정부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니까요.

권력을 잃을 가능성이 제도화돼 있으니 항상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의 마음입니다. 연합 내 소수정당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체코에서처럼 말이죠. 체코 민심이 싸늘해지자 연합정부를 이루던 다른 정당들로서는 불안했습니다. 그런 총리를 감쌌다가는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참패할 것이 뻔했고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차스 총리가 인격이 더 훌륭해서 자리에 물러난 것이 아닙니다. 정치체제가 정부 수반을 정치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스위치를 국민에게 줬기 때문이죠.

박근혜는 곧 물러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박근혜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를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부를 해고할 힘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의 헌법으로는 그럴 힘이 없죠. 개헌해야 합니다. 그 개헌은 의원내각제를 향해야 합니다.

의원내각제가 익숙지 않은 듯하지만 이미 시행했었습니다. 바로 독재자 이승만을 몰아낸 4·19혁명의 기운으로 말이죠. 일인독재를 막기 위해 시작한 의원내각제 민주체제는 일인독재를 꿈꾸던 박정희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박근혜는 예를 찾아보기 힘든 유령독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덕택에 그 아비가 파괴한 의회주의 전통을 되살릴 기회를 준 셈이죠. 국민의 정부 파면 권력을 되찾을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Wednesday, September 28, 2016

[시론]‘백인우월주의’와 미국의 현실


경향신문 (2016.09.28)


지난 26일 오는 11월8일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분수령으로 평가됐던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1차 TV 토론이 열렸다. 토론 때마다 억지와 호통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며 공화당 주자들을 무장 해제시켰던 트럼프가 백전노장 클린턴을 상대로도 승리할 수 있을까 걱정과 기대가 넘쳤다. 덕택에 미국의 가정과 직장, 학교에서는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TV를 지켜봤다. 승패는 곧 갈렸다. 한마디로 트럼프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클린턴은 사안마다 구체적 사례와 통계, 관련자들의 이름을 제시하며 토론을 이어갔다. 정치인과 관료로서의 오랜 관록이 묻어나왔다. 트럼프는 그의 장기라고 여겨지는 임기응변조차 발휘하지 못하고 어물쩍대고, 토론에 임하는 자세에서도 보는 사람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클린턴의 발언 시간에 사사건건 끼어들 뿐 아니라, 난데없이 “아닌데” “틀렸어”라며 김을 빼다가, 나중에는 “내가 대통령이 될 기질이 있다”며 소리쳤다. 그 덕택에 트럼프는 ‘대통령 자질이 없음’을 몸소 보여주며, 토론을 지켜보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황당한 웃음을 선사했다.

TV 토론이 끝나고 나온 CNN 여론조사에서도 60%가 넘는 응답자가 클린턴의 승리였다고 답했다. 이 판정에는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압도적 승리에도 클린턴은 고전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직도 신뢰의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덕택에 많은 잠재적 민주당표가 제3후보에게 가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TV 토론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클린턴으로 마음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무리 트럼프가 횡설수설에 억지, 거짓, 무능력을 보여줬어도, 그를 향한 지지자들의 믿음은 굳건하기 때문이다.

상당수 공화당 지도자와 당원마저 지지를 포기한 트럼프가 이렇게 선전하는 이유가 뭘까. 바로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공유하는 ‘백인우월주의’ 덕분이다. 클린턴이 토론에서 지적한 대로 사업가 트럼프가 정치를 시작한 것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출생을 문제 삼으면서였다.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따라서 시민이 아니므로 오바마의 대통령직은 무효라는 주장이었다.

트럼프는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미국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이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그는 곧바로 이민자 문제에 집중했다. 멕시코에서 범죄자, 강간범들이 몰려온다고 주장하고, 이들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했다. 게다가 국경 수비를 위한 비용도 멕시코 정부가 부담하게 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지난 26일 열린 1차 TV 토론에서 트럼프가 ‘법과 질서’를 되풀이한 것도 이런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이민정책 말고는 별다른 정책이 없는 것이 트럼프 캠프의 현실이기도 하다.

‘백인우월주의’라는 괴물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눈앞에 놓인 미국의 현실 때문이다. 이민자가 늘면서 이들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있고, 향후 30년, 불과 한 세대 후에는 어쩌면 백인이 소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근거 없는 불안에 휩싸인 일부 백인들은 과거 좋았던 시절, 즉 백인이 절대다수이고 우대받던 시절을 내심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가는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 찍히니 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미국인들의 마음을 트럼프가 파고든 것이다. 덕택에 이들은 공화당 지명자라는 정당성 뒤에 숨어 이제껏 발산하지 못했던 ‘뒤틀린 욕망’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일그러진 정치이데올로기가 한 사회를 망가뜨린 것은 나치 독일뿐만이 아니다. 트럼프의 등장을 보며 우리네 괴물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Sunday, July 3, 2016

브렉시트의 정치적 의미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일명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 국민투표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해리포터의 작가 롤링 등 영국 유명 인사들과 주류 정치인들 사이에서 통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유럽연합 잔류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젊은 층도 분노했습니다. 스코트랜드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독립을 다시 추진해 유럽연합 잔류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기도 했죠. 설마 했던 금융시장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고 미국 달러와 엔화 강세를 걱정하는 국내 분석가들도 심각합니다. 영국 여행을 가야하는데 파운드를 지금 사야할까 고민하는 이도 있고 한국 수출이 덕을 보겠지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국제투자가 미국, 일본으로 쏠리리라는 걱정도 큽니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면 지금 누리는 경제적 특혜--유럽연합 내 무관세 무역, 자유로운 인적, 자본의 이동 등--가 없어지고 금융시장에서 누리는 리더십도 독일이나 프랑스로 넘어갈 공산이 큽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새로 꾸려질 영국 정부가 유럽 연합에 신청을 하고 나서 2년이 지나고서 일어날 일들입니다. 그 동안 유럽과 영국은 각종 타협과 조약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테죠. 한국이 유럽연합과 각종 교류와 무역을 하는 것과 비슷해질 겁니다. 장기적으로 지금의 충격은 상당 부분 흡수되고 새로운 경제 질서가 빠르게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것은 정치적 변화입니다. 브렉시트는 갈수록 경제격자가 벌어지는 현실에 분노한 시민들이 이민자들을 비롯한 이방인들과 금융계, 정치적 기득권층에 분노를 표현한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수당의 존슨 전 런던시장은 늘어만 가는 이민자들을 통제할 주권을 되찾아야한다며 브렉시트 찬성을 이끌었습니다. 영국 공산당과 사회당 등 좌파 세력의 일부도 구조조정의 압박, 신자유주의 강화에 저항하며 브렉시트를 찬성했죠. 다양한 목소리가 있지만 찬성진영의 주류는 아무래도 이민을 걱정하는 극우 정서였습니다. 비슷한 세력이 미국에서는 트럼프를 공화당 대선주자로 만들어 놨죠. 

극우파의 성장은 단지 미국과 영국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이들은 많은 유럽 국가의 의회에 진출해 있고 일부는 상당한 세력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은 지역선거에서 선전해 다가올 대선을 눈독 들이고 있고 극우파 후보인 호퍼는 5월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49.7% 득표로 거의 당선될 뻔 했습니다. 헝가리 극우 정당 연합은 총선에서 두번이나 승리했고 폴란드도 2015년 총선에서 전국적으로 39% 득표하는 기염을 토했죠. 덴마크, 필란드, 스위스, 그리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민자에 대한 반감과 유럽연합에 대한 불신입니다. 영국의 그것과 통하기도 하죠. 따라서 이들 국가에서도 극우파들은 영국을 따라할 가능성이 큽니다. 유럽연합을 떠나자며 자국 정부를 압박해서 국민투표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국민투표로 가지는 않더라도 반유럽연합 정치공세만으로도 이들은 큰 정치적 승리를 쟁취할 수 있죠. 

유럽 각국에서 극우 세력이 커갈 수록 유럽연합은 궁지에 몰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 질서는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법, 그 합의를 자꾸 되묻고 따질수록 유럽연합이라는 질서는 흔들리게 되죠. 가장 큰 문제는 독일입니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월등한 일등이고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고 있죠. 위치도 유럽의 딱 중앙입니다. 인구도 많고 교육수준도 높습니다. 자부심도 강해 민족의식도 강하죠. 이런 이유로 독일은 전쟁의 주역이였습니다. 프랑스와 되풀이 되는 전쟁은 결국 세계 일차 대전, 이차 대전으로 이어져 전 유럽을 파괴했죠. 2차대전이 끝난후 이런 독일을 길들이기 위해 독일을 유럽 경제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바로 1952년 시작한 유럽석탄철강연합이 그것이였습니다. 이후 1957년 유럽경제공동제가 출발해 성장을 거듭했고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정치, 사회적 연합인 유럽공동체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유럽연합이 출범했죠. 

독일은 유럽 통합의 주역으로서 정치적 지도자 역할을 했습니다. 유럽의 통합이 뜨거워 질수록 전쟁의 화마는 차갑게 식어갔죠. 잔존해 있는 신나찌 세력의 부활을 누를 수 있었던 여러 요인들 중 하나는 바로 유럽연합의 발전이였습니다. 독일의 전쟁 망령을 봉하는 부적인 셈이였죠. 그 봉인을 전쟁 피해 당사자인 영국이 브렉시트로 흔들어놓았습니다. 1차대전후 유럽국가들이 고립주의를 선택하고 이민자들을 공격하며 민족주의 찬가를 불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브렉시트가 걱정스런 진짜 이유입니다.  

Friday, April 1, 2016

범죄 드라마 리뷰 1 - 브로드처치 (Broadchurch)

요즘 한참 영국드라마에 빠져있는 중입니다. 워낙에 형사물을 좋아하는데 보다보니 유럽 형사물이 맘에 들더군요. 미드처럼 총과 폭력이 난무하지도 않는 것이 일단 신선했죠. 폭파장면 등 물량공세 대신 음악과 분위기, 풍경, 화면의 구도를 통해 시청자를 빨아들이는 것도 좋았습니다.

최근에 본 것은 비비씨의 브로드처치(Broadchurch)였습니다. 한 소년의 죽음으로 가족과 작은 마을 전체가 혼란에 휩싸이는 비극을 잘 다루었죠.


저 사진에 나오는 절벽은 마치 주요 등장인물처럼 압도적이고 중요한 기재입니다. 저 장면은 주인공인 하디(Hardy)반장이 범인을 짐작하고 생각에 잠긴 장면입니다.


이 두 형사가 수사를 이끌어가면서 이야기가 전개가 됩니다. 까칠하고 무덤덤한 하디 반장과 친근하고 동네 주민인 밀러형사의 관계도 재밌습니다. 좋은 드라마가 그렇듯 캐릭터의 개발이랄까요 그런 것도 감칠맛 나죠.

시즌1을 봤는데 무엇보다도 피해 가족의 슬픔이 아름다운 음악과 멋진 화면에 정성껏 실린 것이 인상적이였습니다. 특히 범인이 잡힌 마지막회는 정말 가슴이 아팠죠. 시작하자 마자 범인은 바로 잡히고 나머지는 주변 사람들의 상처를 그렸습니다. 눈물을 짜내는 것도 아니면서 가슴을 후비는 아주 놀라운 에피소드였습니다.

참, 저 하디 반장을 한 배우는 데이빗 테넌트로 영국 국민 배우입니다. 미국에선 넷플릭스 제작의 제시카존스에서도 나왔죠. 정반대로 악역이였지만 두 캐랙터 모두 살짝 비슷한 맛이 나기도 합니다.




클론워에도 목소리 연기를! 한번 나왔지만 인상적이였던 라이트세이버를 만드는 드론의 목소리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Sunday, March 6, 2016

평등

나눌 수 있는 자가 욕심을 덜 갖고 나누려는 것이 해결방법이지,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가지려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해결방법이 아닙니다. 서로 나누는 것, 그것이 서로가 화평을 누리며 서로 미워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 아닙니까. 자연의 섭리가 바로 화평이고 균등입니다. 물이 낮은 곳과 빈 곳을 채워 언제나 수평을 이루는 이치가 그것입니다.

그 원리가 깨짐으로 해서 빼앗긴 사람들은 빼앗은 사림들에게 대들수 밖에 없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나누려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결국에는 모든 것을, 목숨까지도 잃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조정래, 태백산맥 7권. 인천상륙 작전 직후 법일의 단상.  

Saturday, February 13, 2016

[updated] 박근혜 대북조치 비판

북한이 4차핵실험(2016년 1월 6일)을 강행하고 곧이어 위성발사(2월 7일)도 성공적으로 마치자 박근혜 정부는 대북 초강경 조치(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협상; 개성공단 폐쇄)를 잇달아 내놓았다. 하지만 정작 북한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할 전망이다. 도데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없나?




  •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 THAAD·사드는 대기권 안밖에서 상대방의 미사일을 요격해서 인구밀집 지역이나 주요 시설을 포괄적으로 보호하는 시설을 통칭한다.   
  • 왜? 
  • 효과 
    • 대북억지력이 전혀 없다는 것은 큰 문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북한이 남한을 공격한다면 미사일을 쏠 일이 없다. 쏴도 단거리 미사일이고, 가장 큰 위협을 휴전선 이북의 포대이다. 그런데 사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론 미군이 버젓이 중무장하고 기다리고 있는 남한을 북한이 선재공격할 일도 없다.   
    • 그럴 일도 없지만 북한이 쏜다 치자. 안 쏜다니까. 북한 미사일을 떨어뜨릴 수는 있기나 할까? 미국 전문가도 북한 미사일에 무용지물이라고 단정한다 [한겨레, 북 로켓추진체 폭파 기술에 사드 무용지물]. 추진체가 이번 실험때 처럼 자폭하면 그 파편들과 탄두가 구분이 불가능. 여러 문제를 뻔히 아는 미국장군들이 사드를 요구하는것 자체가 충격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 문제 
  • 얼떨결에 권력을 얻은후 한편으로는 "아, 몰라, 몰라"를 외치며 내정을 내버리고 또한편으론 사대주의를 철저히 따랐던 인조. 덕택에 호란을 두번이나 겪어야했던 조선백성. 인조와 너무나 비슷한 박근혜에게 한명기의 병자호란을 읽어보길 권한다.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 51회 - 한명기: '병자호란'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 집에 책이 없다던데?

  • 개성공단 
    • 2004년 문을 연 공단에서는 약 5만명의 북한 노동자가 한국 공장에서 근무를 하며 신발, 속옷 등 소비재를 주로 생산해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2월 10일 아무 경고도 없이 가동을 중단했고, 북한은 이에 맞서 군사지역으로 선포, 군대가 공단을 접수해버렸다. 
  • 왜 닫았나? 
    • 북한 핵실험, 위성발사 등에 대응을 모색하고 있는 서방은 이미 경제봉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별다른 대응을 못찾고 있는 상황.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이 중국-북한 무역과 개성공단. 전자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니 후자를 통해 북한을 벌주고자하는 기류가 있었다. 
    • 이런 국제정세에 반응한 것일 수 있다.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 해이고 한창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다. 특히나 공화당 쪽에서는 북한, 중국 등에 맞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 선두주자 트럼프는 김정은을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헛소리까지 하고 있으니 [Daily Mail, Donald Trump vows to make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disappear' and says the 'bad dude' dictator will face a fate worse than assassination], 온건책을 내면 매국노로 몰리는 분위기다.  
    • 하지만 이런 국제 정세보다는 국내정치를 고려한 측면이 강할 듯 하다. 우선 총선이 두달 앞으로 다가 왔으니 보수층을 결집시켜야 하고 여기엔 북풍만한게 없다. 문제를 할 수 있는 게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 확성기도 있잖아. 하나 남은 고리가 개성공단이였고 결국 마지막 카드를 써버린 것. 
  • 효과
    • 대북 강경기조를 유지한다는 면에서는 일관성이 있다. 미국으로서야 이란과의 핵협상도 끝나고 쿠바와의 외교관계도 재개된 마당에 이제 남은 골치덩어리는 북한과 이슬람세력이다. 미국의회도 최대의 경제제재조치를 호기롭게 통과시켰지만 그 효과가 신통치 않을 것임은 자신들도 안다. 뻘춤하던 차에  남한의 조처가 반가울 수 밖에. 당장 케리 국무장관이 환영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연합뉴스, 한미 외교장관 대북압박 공조가속…케리 "개성공단 중단 지지"]  
    • 하지만 북한이 타격을 입을까? 온갖 제재조치 속에서 수십년간을 버틴 북한정권이 개성공단 닫는다고 충격에 빠지지는 않을 듯 하다. 한 리포트를 보면 "지난 10년간 남한에게는 32.6억 달러의 내수 진작 효과를, 북한에게는 3.8억 달러의 외화 수입을 가져다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현대경제연구원, 개성공단 가동 10년 평과와 발전 방안]. 결고 적은 돈은 아니지만 없어도 핵계발을 못하거나, 정권이 붕괴되고 막 그런 돈은 아니다. 북한의 2014년 무역규모는 76억 달러. 대부분이 중국과의 무역이니 [코트라, 보도자료] 이를 막지 않는 경제 제재는 무의미하다. 
    • 게다가 북한 근로자에게 지불되는 대부분의 돈이 공단내 마트에서 소모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마트의 주인은 호주동포로 박근혜 대통령의 주장처럼 노동당 자금으로 흘러갔다는 말은 억측에 불과하다. 국회연설에서 나온 이 주장이 억측임은 증거가 없다고 고백한 통일부장관 입에서 확인할 수 있다 [SBS, 비디오머그] 그러니까 개성공단 자금이 미사일 개발에…어떻게 된거죠?].   
 

  • 문제 
  • 효과도 없는 정책을 심각한 논의도 없이 정치적 계산에서 즉흥적으로 해치운 듯하다. 물론 보수층을 집결시키고 이번 조치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종북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긴 하다. 선거의 여왕답다. 
  • 한가지 걱정스런 것은 이런 일련의 경제제재 조치가 이어지고 북한이 강경대응으로 이어가면 긴장이 높하지고 미국의 무력조치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미 1994년에도 폭격 코앞까지 간 경험이 있고, 2003년 이라크 침략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피혜는 고스란히 남과 북의 인민의 몫인데, 지도자들은 상관치 않는다.  

Thursday, February 4, 2016

영화 존 윅(John Wick)

다 늦게본 존 윅의 간단한 평을 해야겠다. 슬며시 미소 짓는 장면이 한둘이 아니니. 주인공 존 윅이 아침에 일어나며 시계알람을 끄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메크릭스 1에 대한 오마주다. 에이전트가 미스터 앤더슨(역시 키아누 리브스)을 잡아 배에 도청장치를 넣자 주인공은 절규를 하는데 시계알람을 끄며 일어난다. 마치 악몽이였다는 듯이.
오마주는 아니지만 콘티넨탈 호텔에 들어서면 또다른 작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미드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와이어>의 주요 인물이 둘이나 나오기 때문. 프론트의 매니져와 옆 방의 손님이자 옛친구는 와이어의 형사역을 맏았던 배우들.

 그리고! 브라질 무술인 주짓수!! 존윅도 그렇지만 호텔에서 그와 싸우는 여자 암살자는 자기 옷으로 목조르기 (Lapel choke), 발로 한쪽 팔을 고정시키고 다른 팔을 꺽는 기술 (crucifix), 어깨를 부시기(Kimura)까지 시전한다. 실제로 한달이나 리브스는 무술 연마에 집중했었다고. 2편이 개봉한다는데 완전 기대중.

Tuesday, February 2, 2016

샌더스 돌풍의 한계

민주당 경선에 나선 사회주의자 샌더슨. 아이오아 경선에서 클린턴과 사실상 무승부를 내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의원 44표가 걸려있었는데 50%씩 표를 얻어서 21표나 가져갔기 때문.




돌풍임이 분명하지만 한계가 있는 돌풍이다. 민주당 지도부 등 수퍼대의원들이 이미 클린턴쪽에 쏠려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걸 다 합한 표수를 보면 385:29. 클린턴은 이미 400표를 바라보고 있고 샌더슨으 30표를 향하고 있는게 현실. 

샌더슨의 주요지지층인 좌파백인 남자가 많은 이곳에서 이기지 못한 것도 뼈아픈 현실. 

샌서슨 갈 길은 험하고도 멀다.

Monday, February 1, 2016

그 골목에는 ‘판타지’가 산다

그 골목에는 ‘판타지’가 산다

Sisain 2016. 02. 01 변정수 (미디어 평론가)  |  webmaster@sisain.co.kr




<응답하라 1988>(‘응팔’)이 드라마 장르에 온전히 포섭될 수 있는 성격의 프로그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수많은 시청자가 ‘응팔’을 ‘아련한 추억을 소환해내는 드라마’로서 소비했다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드라마’는 (드라마라면 반드시 있게 마련인) ‘타자’도 ‘갈등’도 따라서 ‘서사’도 없는, 실은 차라리 ‘반(反)드라마’이다.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드라마로서 (심지어 케이블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열광적으로) 소비하는 역리가 가능했을까.
주인공 덕선의 시선에서 소환되는 27년 전의 기억은 철저하게 ‘골목 안’으로만 제한된다. 골목 밖의 세상은 (적어도 드라마 안에서는) 그저 풍경으로 스쳐갈 뿐 골목 안과 어떤 갈등도 일으키지 않는다. 가령 시청자들은 선우를 괴롭히던 선배 ‘미친개’의 개인사적 배경 따위는 궁금해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렇듯 그 시절을 주인공과 얽혀 함께 살아냈음에 틀림없는 ‘어떤’ 주체의 기억을 손쉽게 배제한 채로도 이 드라마가 그 시절의 ‘공통 기억’을 소환해낸다고 기꺼이 믿는다. 그러나 골목 밖의 세상이 삭제되어 있다는 건 사소한 실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더 심각한 건 골목 안에조차 아무런 갈등이 없다는 점이다. 아이고 어른이고 골목 안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이미 충분히 익숙한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어떤 새삼스러운 ‘낯섦’의 계기도 없고, 그로 인한 갈등을 통해 좀 더 익숙해져가는 ‘과정’도 없다. 이웃이라기보다는 이미 가족이다.
 

그나마 덕선과 적잖은 긴장관계에 있는 언니 보라의 성격은 이 드라마가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덕선에게(따라서 덕선의 시선을 따라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보라의 ‘더러운 성질머리’는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일 뿐, 가끔 짜증나게는 하지만 굳이 그 내면을 짐작해볼 이유는 없는 ‘익숙함’의 영역에 있다. 고작 세 살 터울의 동세대에 속한 언니가 도대체 무엇을 왜 고민하고 있는지는 부모 세대의 내면만큼도 드라마 내적 구조 안에서 설명되지 않는다. 덕선과 보라 사이엔 티격거림이 아무리 격렬해도 서로의 내면을 긴장시키는 갈등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들이 현실의 자매라면 설마 그럴 리가 있는가. 그런 계기들은 덕선의 ‘선택적 기억’에서 삭제된 것뿐이다.

‘갈등 없는 세상’으로 숨고 싶은 사람들
물론 선택적 기억이 그 자체로 이상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의 기준이고 배경이다. 왜 어떤 기억은 선택하여 굳이 소환하고, 어떤 기억은 그 선택에서 배제하는가. 나아가 그 이전에 질문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도대체 누구의 시선인가. 가령 그 골목 안 아이들의 우정을 부러워하거나 촌스러워하는 골목 밖의 누군가의 시선이 아니라, 혹은 골목 안 아이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감정선에서 가장 중립적인 위치에 있었던 동룡의 시선이 아니라, 왜 하필 덕선이었어야 했는가. 좀 더 노골적으로, 어려서부터 대중의 주목을 받은 독특한 이력의 남편을 둔, 대기업(이 분명한 업종)의 중간관리자임을 짐작하게 하는 안정된 직장을 가진, 심지어 소꿉친구 첫사랑과 결혼할 수 있었던 인물이 굳이 소환해낼 수 있는 기억이란 얼마나 일반적인 것일까.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가장 격렬하게 소비한 것은 ‘그 시절의 공통 기억’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응팔’은 흔한 비판처럼 ‘복고 취향’의 ‘추억팔이’가 결코 아니다. 현실에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한 적도 없는 ‘갈등 없는 세상’을 향한 ‘판타지’다.
 

이 점은 주인공들의 성장기에 초점을 두면서도, 정작 ‘사회적 성장’의 기억은 통째로 삭제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이와 관련하여 전작 <응답하라 1994>(‘응사’)가 비슷한 분량인데도 1996년 초까지 2∼3년의 시간 동안 저마다 성장배경을 달리하는 주인공들이 서로 부대끼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수박 겉핥기로나마 훑고 지나간 것과는 달리, 1년도 채 안 되는 시기의 ‘단면’만을 파편적으로 나열한 뒤에 곧장 6년 뒤로 드라마 속 시간을 ‘점프’해버린 구성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응사’에서도 후반부에 주인공들이 본격적인 ‘짝찾기’에 나서는 시점으로 점프하긴 했지만, 대학생 때와는 조금은 달라진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저마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낸 그 시간의 흔적을 담아내려는 ‘성의’는 보였다. 그러나 ‘응팔’에서 6년 뒤에 만난 주인공들은 열여덟 살 고등학생에서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는 듯 ‘골목 안’에 머물러 있다. 하다못해 골목 밖 세상을 떠돌다 결국 그 골목으로 되돌아왔다는 식의 흔해빠진 ‘복고적’ 서사조차도 과감히 생략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회적 성장의 서사’를 삭제해놓고도 마치 자신들이 성장기를 보낸 그 골목이 자신들을 성장시켜주기라도 한 양 회고한다. 그러나 거기엔 ‘타자’도 ‘갈등’도 없었다. 굳이 있었다면 오로지 ‘가족’뿐이었지만, 사실 그런 가족은 왜곡되고 파편화된 기억 속에나 존재하는 환상일 뿐이다. 이 환상 속에서 가족이란 그저 ‘갈등할 이유가 없는’ 타인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족 판타지’를 탐닉하는 이유다. 타자와 직면하는 것도, 그래서 갈등을 감당하는 것도 버겁기만 한 나머지 ‘갈등 없는 세상’으로 숨고 싶은 것이다. 그 열망이 강할수록 타자와의 갈등은 더 힘겨워진다. 이 판타지 안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성장도 서사도 없다. 흔히 사회적 성장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피터팬 신드롬’이라고 일컫곤 하지만, ‘응팔’이 소비되는 양상을 곰곰 짚어보면 <피터팬>이 좀 억울할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후크 선장이라는 ‘타자’가 없었다면 아예 이야깃거리조차 안 되었을 테니까. 이러한 퇴행은 사회적 성장이 지체된 개인에게 혹시 ‘위로’가 될지는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심각한 ‘재앙’이다. ‘갈등 없는 세상’의 판타지는 언제나 ‘갈등의 제도화’를 향한 정치적 상상을 봉쇄하고,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는 공공 영역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아예 타자의 존재가 삭제된) 가족을 향한 충족 불가능한 욕망의 악순환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가 누군가에게는 존재를 삭제당한 ‘골목 밖’ 사람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헬조선’의 정체가 아닐까.

Tuesday, January 12, 2016

제정임, "대한민국 ‘철밥통’ 회장님"

<조선일보> 오피니언 초판에 실렸다 사라진 칼럼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대항마로 잠깐 관심을 끌었던 칼리 피오리나는 1999년 루슨트 테크놀로지 사장에서 HP의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됐을 때 ‘록스타급’ 인기를 누렸다. 포춘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여성 기업인’ 1위를 6년 내리 차지했고 ‘IT의 여제(女帝)’로 불렸다. 하지만 컴팩 인수 후유증 등으로 주가가 추락하자 2005년 굴욕적으로 쫓겨났다. 지난 2007년 폭스바겐 CEO를 맡아 2015년 상반기 판매량 세계 1위까지 키운 마틴 빈터콘은 창업자 가족을 이사회에서 몰아내며 ‘장기집권’의 토대를 다졌다. 그러나 배출가스 조작사건으로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외부 투자펀드 등의 압력으로 지난해 9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화려한 실적과 명성을 자랑하던 CEO라도 경영실패나 과오가 드러나면 사정없이 칼을 맞는 게 서구 기업들에겐 일상이다. 최대주주라고 해서 당연히 회장이 되지 않고, 회장을 맡아도 문제가 있으면 축출된다. ‘잘못하면 쫓겨난다’는 긴장감이 분발을 낳고, 실패한 경영자를 걸러내는 시스템이 혁신을 가속화한다. 하지만 CEO가 무슨 잘못을 해도, 심지어 중범죄로 법의 심판을 받아도 절대 쫓아내지 않는 기업들 역시 세상에는 있다. 바로 한국의 재벌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4월 발표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서 개인 대주주가 지배하는 재벌 순위를 보자. 1위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1996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받았지만 이듬해 사면복권 됐다. 2007년 삼성비자금사건이 터진 후 탈세와 배임 등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지만 또 사면복권 돼 경영에 복귀했다. 2위 현대차의 정몽구 회장은 2008년 횡령 등으로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지만 금방 사면복권 돼 활동을 재개했다. 3위인 SK의 최태원 회장은 분식회계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가 2008년 사면복권 됐고, 2014년 횡령 등으로 징역 4년의 실형이 확정됐지만 다시 사면복권 돼 경영일선을 누빈다. 이밖에도 8위 한진 조양호, 9위 한화 김승연, 12위 CJ 이재현 등 여러 총수들이 횡령, 배임 등을 저지르고도 경영에 복귀하거나 교도소에서도 보수를 챙겼다.

현행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거액의 횡령, 배임, 사기 등을 특별히 무겁게 처벌해야 할 범죄로 보고, 재범을 막자는 취지에서 취업제한 조항을 두었다. 형 집행이 끝났거나 사면된 후 5년까지, 집행유예기간이 끝난 후 2년까지 관련기업에서 일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회장님’들은 ‘복권이 됐으니 문제없다’, ‘미등기 임원이니 상관없다’며 법의 취지를 무시한다. 그들이 같은 범죄를 또 저질렀을 때, 피해는 수많은 외부 주주와 직원, 그리고 국가 경제에 돌아간다.
최근 ‘혼외자 고백’으로 파문을 일으킨 최태원 회장은 특히 눈길을 모은다. 그는 1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와 배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사면복권 된 후 ‘윤리경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또 회사 자금을 빼돌려 개인 투자를 했다가 400억원대의 횡령, 배임혐의로 실형을 살았다. 두 번째 사면복권 후인 지난 연말 혼외 관계를 밝힌 다음에는 SK계열사와 하청기업을 동원한 부동산 거래로 내연녀에게 부당이득을 안겼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그의 결혼생활에 어떤 고통이 있었는지 모르니 사생활을 무조건 비난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대 경제범죄를 거듭 저지르고, 자신의 ‘두 집 살림’을 위해 회사를 동원했다는 의혹을 명쾌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는 이가 “솔직과 신뢰의 기업문화를 만들자”고 당당히 연설하는 모습에서는 현기증을 느낀다. ‘무슨 일을 저질러도 반드시 돌아오는 회장님’의 그 신년사를 듣는 직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외국인 중엔 탈세범, 횡령범 등이 한국의 대규모 상장기업 회장을 한다는 사실에 놀라는 이가 많다.

빼앗긴 조국을 찾기 위해서도 아니고 독재 치하에서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던 것도 아닌, 개인의 탐욕으로 범법자가 된 이들이 부끄럼 없이 호령하는 현실은 사회의 도덕적 기반을 흔든다. ‘투명성’과 ‘법의 지배’를 조건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발전을 막는다. 대통령이 올림픽과 세계박람회를 유치하라고, 경제를 살리라고 탈법 경제인 사면복권을 반복하는 한 현실은 더 나빠진다. 국민들이 이에 분노할 줄 모르고 동조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다. 대형 재벌비리가 석연찮은 수사와 재판에 이어 사면복권으로 마무리될 때마다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고 아이들이 배울까 두렵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우리 모두가 지금 이런 두려움을 절실하게 느끼고 분노해야, 사회가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Monday, January 11, 2016

[왜냐면] 10억엔에 나라 안위까지 팔아넘겼다



위안부 논쟁을 타결하면서 일본 정부가 지원하기로 한 예산은 10억엔, 한화로 약 100억원입니다. 일본이 매해 부담해온 유네스코 예산의 약 10%인 37억엔, 원래 800억엔으로 잡았다 2520억엔으로 커져 문제가 되고 있는 도쿄올림픽 주경기장 정비예산과 비교해도 참 초라한 금액입니다. 일본은 헐값으로 230여명의 등록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한국 정부의 침묵을 사들인 셈이죠.

한국에서는 100억원으로 무엇을 할까요? 내년 예산안을 살펴보겠습니다. 100억원이 국가보훈처의 유치원 안보교육 예산으로 배정됐습니다. 대전 서구 공영주차장 건설사업 총사업비로, 내년도 달 탐사 사업에, 부천시 인도 정비에, 내년 영농기까지 용수 부족이 예상되는 저수지 103곳의 정비 등에 각각 100억원이 잡혀 있습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100억원에 팔아넘긴 것이 이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사 문제에 관한 한-일 외교분쟁의 타결은 미국 정부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중국의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정치적·군사적 팽창은 태평양 세력의 지도국으로 남고 싶어하는 미국에 큰 도전일 수밖에 없습니다. 동아시아 지역 동맹국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수밖에요. 2013년 미-일 군사동맹 강화조약,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제주의 해군기지 건설은 이런 국제 정세의 변화를 반영한 것입니다. 한-미, 미-일 공조는 잘되지만 한-미-일 삼각 공조를 꿈꾸는 미국으로서는 답답한 것이 한-일 관계입니다. 역사 문제로 계속 삐거덕거리고 있으니까요.

이런 정세 판단에 미·일이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지난해 4월의 정상회담이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동남아국가들의 분쟁을 지적하며, 중국은 대화가 아닌 무력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했죠. 바로 이어서 아베 신조 총리는 한국과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10월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오바마는 중국이 국제법을 어기면 한국 정부도 미국 정부처럼 이를 비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협박 아닌 협박을 했죠. 이어 그는 한-일 간 역사 문제 타결이 필요하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그리고 두달 만에, 몇십년이 지나도 안 되던 타결이 된 것이죠. 당장 수전 라이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공식 성명을 통해 “국제사회로부터 환영받을 것”이라며 치켜세웠습니다.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중국은 우리와 멀어질 수 없는 나라입니다. 경제적으로 이미 최대 교역국이고 북한과의 문제에서도 중국의 협조는 절대적이죠. 하지만 대놓고 중국과 각을 세우는 길로 접어드는 형국입니다. 덕택에 한국은 앞으로 펼쳐질 미국과 중국 사이의 대결에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단돈 100억원에 팔아넘긴 것은 위안부 생존자들의 명예, 한국인들의 자존심만이 아닙니다. 나라의 안위까지 떨이로 넘긴 것입니다. 

위안부의 문제가 나라가 없어져서 생긴 일인데, 그 처리를 놓고 또 한번 불장난을 치는 정부가 야속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