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25, 2019

[세상읽기]참의원 선거가 보여준 세 가지 일본

경향신문 2019.07.25

지난주 어느 더운 오후 아들과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인랑>을 골랐죠. 내친김에 다음날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인 <아키라>를 봤습니다. 한국뉴스에 아베 총리가 나와 한·일관계에 대해 설명을 해준 뒤였습니다. 한편으로 일본에 비판적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는 아빠의 모습에 아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내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아 보입니다. 식민지 역사 해석을 두고 시작한 갈등은 결국 양국 간 무역분쟁으로 번지는 양상입니다. 정부 사이 거친 말이 오가고, 감정도 격해졌습니다. 덕분에 21일 열린 참의원 선거에 한국 사회의 관심이 이례적으로 뜨거웠죠. 실권 있는 중의원 선거도 아니고, 일본 유권자의 참여도 시들했지만 말이죠. 선거 결과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지만, 논의가 좀 덜 된 부분 세 가지만 돌아보겠습니다.

첫째, 무역분쟁 원인으로서의 선거입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을 에칭가스 등 세 품목에 대한 포괄적 수출 허가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포문을 열었죠. 당황스러웠고 그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곧 그럴듯한 설명 하나가 나왔습니다. 바로 참의원 선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한국을 때려 반한 감정을 자극, 우파표 모아 의석 3분의 2를 차지, 평화헌법을 개헌해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 건설. 아베의 잘 알려진 숙원을 고려할 때 앞뒤가 딱 맞아 보였습니다.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선거용이었던 수출규제는 끝나야겠죠. 하지만 그럴 기미는 안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무역규제 뒤에 선거 말고 다른 그 무엇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그것에 대한 탐구와 토론이 당장 있어야겠죠. 그래야 더 명확한 사태 이해, 더 효과적 대응이 나올 테니까요. 하지만 기존의 주장이 오히려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좀 더 유연하고 다양한 사고가 필요해 보입니다.

둘째, 일본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선거였습니다. 일본 사회는 획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은 집단에 희생하고 그 안에서 비슷하게 살려는 구심력이 강합니다. 태평양전쟁에서 보여준 전투력, 남을 배려하는 공공질서 준수, 외국인에 대한 차별 등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죠. 그 반작용일까요. 의외로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말이죠. 입헌민주당의 이시카와 다이가는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한 후 당선됐습니다. 루게릭병을 앓는 후나고 야스히코, 뇌성마비 장애인인 기무라 에이코도 당선됐죠.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듭니다. 소수자를 존중하고 공존하는 게 현대사회의 척도라면 이번 선거는 일본의 위상을 돋보이게 한 것이죠.

셋째, 일본 정치구조도 잘 드러난 선거였습니다. 일본 선거, 정당구조는 한국과 아주 다릅니다. 어디가 더 낫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죠. 하지만 눈에 확 띄는 장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다양한 정당의 의회 진출입니다. 우리는 일본 공산당의 존재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7석을 얻어 13석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한 석 줄어들기는 했지만, 전체 의석의 5%를 차지하고 있죠. 중의원에서도 12석(전체의석의 2.5%)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침은 있지만, 공산당이 의석 획득에 실패한 경우는 전후 딱 한 번밖에 없습니다. 한국에는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유는 많지만, 그중 하나는 국가보안법 때문임에 이견이 없을 겁니다. 국가보안법의 모델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이었습니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등에 맞서 ‘천황제’를 지키고자 만들어진 대표적 악법이었죠. 전후 일본에서는 사라졌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마저 일본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죠.

결국 일본은 크고 복잡한 나라입니다. 아베 정부가 주요 세력이지만 거대 사회의 일부일 뿐이죠. 뜨거운 ‘전쟁’의 대상인 일본은 게이, 한인, 공산주의자, 평화주의자, 방탄소년단 팬 등을 포함합니다. 서방 경제 제재가 북한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한 데서 볼 수 있듯, 경제 제재는 큰 효과가 없습니다. 수출규제도, 불매운동도 마찬가지죠. 유연한 사고와 깊은 성찰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성찰은 우리가 어떤 모습인가를 돌아보는 데도 미쳐야 합니다. 우리의 발전이 저들을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니 말이죠.




Sunday, July 7, 2019

[세상읽기]‘무서운 중2’ 뺨치는 한국당

경향신문 (2019.06.27)

“밥 안 먹어.”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별별 생떼를 다 듣습니다. 사춘기가 되면 그렇게 사랑스럽던 아이는 떠나고 괴물이 눈을 비비며 마루로 나오죠. 이제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억지. 잘못은 전부 남의 탓. 귀찮다, 내버려 두라는 고함. 부모가 아닌 원수를 바라보는 눈빛. 잘못은 아이가 했지만, 그 애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해야 합니다. 밥 안 먹겠다는 말은 실소마저 나오죠. 화나죠. 슬프고 답답합니다. 한심해 실망스럽기도 하죠. 배 속에 다시 넣고 싶기도 하고,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아무도 안 볼 때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당황한 부모는 책도 읽고 강연도 듣습니다. 여러 조언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비슷하고 크게 새롭지도 않죠. 신뢰와 사랑도 보여주어야 하며 대화의 끈을 놓지 말라는 충고도 빠지지 않습니다.

자유한국당을 보면 딱 그런 사춘기 아이 같습니다. 생떼와 투정이 무서운 중2를 뺨치는 듯합니다. 국회 가출을 한 게 지난 4월. 거의 석 달이 다 되도록 아무 일도 안 하지만 목청과 기상만큼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자기 당 의원조차 설득시키지 못한 채 “소외정치, 야합의 정치로 제1야당을 찍어 내리려 한다면 이제 국회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이라는 말로 자신의 민망함을 감추려 하고 있습니다. 민망할 수밖에 없는 게 이 논란의 원인 제공도 자유한국당이 했기 때문이죠. 국회가 마냥 손 놓고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바로 그 패스트트랙을 막고자, 즉 국회를 멈추기 위해 자유한국당은 폭행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서 국회법 위반·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고발되자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는 자기에게 불리할 선거법 개정을 막고자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입만 열면 “좌파독재”라며 억지를 이어가고 있죠. 딱 사춘기 시작한 애들 꼴입니다.



 중앙일보 "대통령·국회의원도 수사 대상" 靑, 공수처법 홍보 정은혜 기자  - 중앙일보 2019.04.25. 21:29



아이들이 아무리 힘들게 해도 버릴 수 없듯 자유한국당도 버릴 수는 없습니다. 한국 정치의 엄연한 한 축이니까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오냐오냐하며 내버려 둘 수도 없죠. 애들처럼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대화가 필요합니다. 정치권 내의 대화는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원내대표 간 합의는 좌초됐고 청와대 회동도 무산됐죠. 자유한국당에 다른 정당과 청와대는 행패의 대상일 뿐 대화 상대가 아니었던 겁니다. 그러니 유권자가 나서야 합니다. 유권자의 목소리는 선거개혁을 통해 커질 수 있습니다. 지금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선거제도 개편안은 충분치 않습니다. 비례대표의 의석수를 늘리고 비례성도 강화해야 합니다. 다양할 수밖에 없는 유권자 목소리를 대변할 여러 정당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합니다. 4년에 한 번 있는 국회의원 선거도 2년에 한 번씩, 의원 절반을 뽑아야 합니다. 선거가 자주 있어야 유권자 눈치를 더 볼 테니까요. 중앙당 공천이란 구시대적 제도도 끝을 내야 합니다. 후보도 당원과 시민 손으로 뽑아야죠.

동시에 단호해야 합니다. 대화를 원치 않는 아이들을 붙잡고 사정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합니다. 규칙을 정했으면 지키라고 요구하고 어기면 벌도 내려야죠.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국회법은 그간 국회폭력을 없애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이 법과 전통을 뻔뻔하게 파괴했습니다. 패스트트랙과 관련한 정치권의 고소·고발 사건은 엄격하게 판단하고 죄가 드러나면 단호하게 처벌해야 합니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법을 우습게 아는,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적폐를 놔두고 과거의 적폐청산은 불가능합니다. 힘, 돈, 연줄로 법 위에 군림한 이들을 끌어내려 우리와 같은 곳에 세워야 합니다. 국회의원의 갖가지 특권도 모두 공개하고 대폭 줄여야 합니다.

지난 몇 년 삼권분립의 두 축인 청와대와 대법원 모두 개혁 대상이 됐습니다. 하지만 국회는 그 시작조차 없었죠. 여기엔 자유한국당의 분탕질이 큰 몫을 했습니다. 이제 자유한국당이 사춘기 정치를 멈추고 성숙할 수 있도록 검찰, 법원, 유권자 모두가 힘을 합쳐 도와야겠습니다. 밥 안 먹겠다는 아이, 밥 주지 맙시다.

범죄 드라마 추천 14 - Ordeal By Innocence (2018)

Argyll 집안의 대저택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드라마, Ordeal By Innocence. 아마존 프라임에서 봤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원작 소설을 극화한 2018년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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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리더인 어머니가 살해되고 아들 중 하나가 범인으로 잡히면서 비극은 시작돼죠. 하지만 비극이란게 어디 번개치듯 한번에 벌어지나요. 집안 모든 이들 마음에 숨어있던 각자의 비극이 조금씩 춤을 추듯 들어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크리스티의 손끝에서 기대할 수 있는 반전을 즐기게 됩니다.

어느 형사물에서 한 형사가 말하죠. "살인 동기는 셋중 하나야. 사랑, 돈, 마약." 형사 드라마를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싶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 작품도 비슷합니다. 다만 식구가 다들 얽혀있다는게 특이하죠. 이 가족의 배경과 그 사이의 긴장을 이해하면서 가족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부모, 형제, 피로 엮인 관계.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다라는 것을 점점 더 알게 됐죠. 피가 섞였어도 남보다 못할 수 있고, 혈육이 아니어도 누구보다 가까울 수 있다는 것. 혈육은 단지 특별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특별한 관계일 뿐인걸 말이죠.

집안의 일이고 식구 중 하나가 범이이다 보니 극은 거의 집에서 벌어집니다. 집 자체도 뭔가를 말하는 듯한 인상을 주죠. 커다란 공간은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마지막 반전에 공간도 한 몫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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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은 1958년 작입니다. 핵무기로 전쟁을 끝내고 그 공포로 냉전을 잉태하던 시대죠. 그 공포가 뭍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외로움과 분노, 억제와 욕망이 뒤엉킨 사람들을 잘 그려낸 배우들 모두 훌륭했습니다. 그 중 어머니 역을 했던 Anna Theodora Chancellor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에서도 나왔던)가 가장 눈에 들었습니다. 분량은 크지 않지만 나올 때 마다 존재감을 과시하며 긴장을 끌어올리는 훌륭한 연기였습니다.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