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29, 2014

요조의 뒷모습


우울이 묻어나는 느낌의 요조의 목소리와 기타소리. 그에 장단을 맞추는 뮤지션들. 어울리는 검은 배경. 멋진 무대다. 그리고 그런만큼 요조라는 예술인의 색이 잘 들어난다.

난 요조를 좋아한다. <에구구구>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고 <슈팅스타>를 들으면 깔깔 웃었다. <바나나파티>를 들으면서는 미소를 거둘 수가 없었다. 가장 최근의 앨범은 보다 더 대담하고 보다더 깊다. 앨범이 나오고 공연을 할 때마다 달라지는 색깔을 보며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는 락커의 진지한 노력을 보는 듯 해 기쁘다.

이는 쉬운 것이 아니다. 성공한 지난 앨범에서 그 성공요소를 찾아 재탕하는 것이 쉽고, 더 돈이 많이 벌리는 길일 것이다. 실제로 그런 가수, 많다. 너무 많다. 하지만 요조는 그런 길을 걷지 않았다. 고민하고 고생하고 그렇게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계속 찾는다. 창작이라는 예술인의 숙명에 충실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어디 예술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랴. 음식을 해도, 글을 써도, 주짓수를 해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찾는 노력이 없다면 도태되기 마련아닌가. 특히나 목표가 있었을 때, 그것이 희미해지는 지경까지 도태가 되었다면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돌이켜 보고, 또 돌이켜 보고 새롭게 노력을 더해야할 때다.

Saturday, December 27, 2014

이번 주 뉴욕타임즈 - 흑백 갈등

이번주 뉴욕타임즈는 흑백간의 갈등이 한 주요 주제였습니다. 사실 인종의 문제는 문화적, 역사적으로 깊고 복잡한 문제죠. 사회적으로도 그 불평등은 뿌리가 깊고요. 언제 기사가 나오면 여기서도 다루겠습니다. 요즘의 문제는 백인이 주를 이루는 경찰들과 이들이 흔히 두려워하고 범법자로 보는 흑인들간의 갈등입니다. 비무장 흑인 용의자를 죽인 경찰을 기소하지 않기로 하자 흑인사회는 분노로 들끓고 있죠. 이 와중에 뉴욕에선 지난 주 경찰 두명이 보복살인을 당했죠. 이러자 안그래도 나뉘었던 민심이 더욱 갈라지고 있습니다. 흑인을 중심으로 하는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백인을 중심으로하는 경찰지지자들간의 간극이 그것이죠.

이 사이에 낀 것이 바로 흑인 경찰관들입니다. At Home and at Work, Black Police Officers Are on Defensive (12/25/2014). 한편으로는 흑인들에 대한 차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 피해자이기도 하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부분이 백인인) 경찰들의 고생과 스트레스를 이해하는 경찰의 입장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입장에서 고생도 하지만 또 흑인주민들은 이들의 말을 더 존중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흑백 갈등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주에 영화 <셀마>가 개봉했습니다. Film Shows a Selma Some Would Rather Not Revisit (12/25/2014). 이 영화는 알라마바의 셀마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한 영화죠.


1960년대 남부에서는 갖가지 방법으로 흑인들의 선거권을 제한했습니다. 등록을 하러가면 어려운 질문을 해서 떨어뜨리거나 폭력을 동원하는 식으로요. 영화는 이런 남부의 한 마을에 마틴루터킹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흑인 인권운동진영과 백인 인종주의 지방정부의 갈등을 그립니다. 영화가 개봉되자 셀마의 주민들은 불편해합니다. 굳이 옛날 일을 또 다시 꺼낸다는 것이죠. 실제로 옛날에 차별을 한 그 당사자들도 있으니까요. 이제 도시는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백인들의 학교는 이제 거의 흑인들의 학교가 되어있고, 백인들은 대부분 사립학교에 갑니다. 도시의 의회도 흑인들이 주도하지만 경제력은 여전히 백인들의 손에 있죠. 사실 이는 남부의 어느 도시를 보더라도 흔한 현상입니다. 킹 목사 등의 운동 덕분에 정치적, 형식적 차별은 사라졌지만 두 집단의 거리는 어찌보면 더욱 늘어난 미국의 현실이죠.

이번 주에는 비지니스 면에 재밌는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24일에는 비지니스 섹션을 펼치고서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뭐랄까 좀 흉한 사진덕이였는데요.


Plastic Surgery Tourism Brings Chinese to South Korea (12/24/2014)에서는 성형수술을 위해 한국에 찾아오는 중국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에 무리하게 많은 수술을 한번에 해버리는 것에 대한 지적도 있었고 한국배우의 사진을 들고와 이대로 해달란다는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별에서 온 그대>의 전지현의 이름도 덕택에 거명이 되었죠.

미국에서 요즘 밤에 티비를 틀면 심심치 않게 보게되는 것이 자동차 론에 관한 것입니다. 쉽게 오분이면 차와 현금을 들고 나갈 수 있다며 유횩을 하는데요, 이에 관한 기사가 났습니다. Rise in Loans Linked to Cars Is Hurting Poor (12/26/2014) 집을 담보로하는 론이 까다로와 지면서 자동차 론이 성장을 한 것이죠. 문제는 그 살인적인 이자입니다. 80-500%에 이르는 연이자 덕에 많은 이들이 차를 뺏기고 있다죠. 차는 미국에선 뉴욕과 같은 일부 지역만 제외하면 필수입니다. 그런지라 차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필사적이라고 합니다. 덕택에 론을 주는 입장에서는 아주 쉬운 장사라는 거죠. 이자도 높고, 회수도 잘 되고. 하지만 사람들, 특히나 빈곤계급일 수록 그 피해가 크다는 지적입니다.

이상 이번 주 뉴욕타임즈의 주요 기사들이였습니다.

Friday, December 26, 2014

삐라가 뿌려지는 한국

박근혜의 2002년 방북시 김정일과 찍은 사진과 발언을 담은 삐라가 홍대일대에 뿌려졌다. 삐라에서는 박근혜의 친북발언을 지적하면서 지금의 종북몰이를 꼬집었다. 경찰은 명예회손 등의 혐의가 적용되는지 검토하겠단다.
[속보]서울 홍대 앞서 박근혜 대통령 비난 전단 수백장 살포 - 경향신문 (2014-12-26 )

지금은 21세기다. 한국은 인터넷 최강국으로 꼽히는 나라이다. 그런 곳에서 80년대 유행했던 삐라가 뿌려지고 있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은 이미 정부의 모니터링과 조작이 만연하게 되었고, 발언의 자유는 명예회손의 명분으로 심각한 회손이 된지 오래다. 인터넷 초기, 우리는 장미빛 희망으로 들떠있었다. 활발한 토론, 심지어 직접민주주의까지 꿈꾸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박근혜의 공안정국의 현실은 그 꿈이 얼마나 순진했던 것인가를 빠르게 보여주었다. 결국 길거리 삐라로 나서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일이 뉴스가 된다는 것또한 참담하다. 민주국가에선 반정부 메세지가 잡초처럼 흔한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수첩에 눌려, 경찰버스에 같쳐, 종북몰이에 몰려, 반정부의 목소리는 작고 초라해졌다. 조그만 삐라조차 신기한 세상이 된 것이다. 그나마 경찰의 조사를 무릅써야하는 곳이 지금의 남한이다.

남한은 정말 자유로운 것인가? 자유롭다면 무엇하기에 자유로운 곳인가? 북한에 비해, 프랑스에 비해 얼마만큼 자유로운 것인가?

새해는 이런 물음에 답을 구하는 일이 필요하다.

Saturday, December 20, 2014

이번 주 뉴욕타임즈 - 러시아 경제위기, 미-쿠바 관계 정상화

이번주 뉴욕타임즈에서는 두 이야기가 중심적으로 다루어졌습니다.

첫번째는 계속되는 러시아의 경제 위기죠. 우크라이나 침공/내전으로 국제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유가의 급격한 하락으로 러시아 경제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오바마가 대러시아 경제제재를 강화할 것을 명시했죠. U.S. Tightens Crimea Embargo to Pressure Russia (DEC. 16, 2014).

루블은 말그대로 반토막이 났고, 더 가치가 하락할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현금을 물건으로 바꾸려고 발버둥치기도 하고요. "One Kazakh man was seen walking around a Jaguar dealership, which like several luxury brands had run out of cars, with a little rolling suitcase full of cash. Sales were up 50 percent this month, a manager said."
As the Ruble Swoons, Russians Desperately Shop (DEC. 16, 2014)

유명 칼럼니시트인 폴크루그먼 교수(최근에 플픽사진을 바꾼!!!)는 경제적 요인외에 정치적인 결과도 지적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주요 지지세력들에게 돈을 마구 쓸수 있게 했는데요. 이들의 과소비와 해외투자가 오일에서 나오던 것이고 이젠 그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이죠. Putin’s Bubble Bursts (DEC. 18, 2014)


두번째 주요토픽은 쿠바와의 관계정상화입니다. 전격적으로 드라마틱하게--두 대통령이 동시에 티브이 연설을!!--이루어진 것도 그렇지만 지난 50년간의 적대적 관계를 돌이켜 보면 정말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죠. 여기엔 지난 일년 반 동안의 캐나다와 바티칸 등에서 이루어진 비밀회동이 주요했죠. 게다가 교황 프란시스코의 개인적인 노력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Journey to Reconciliation Visited Worlds of Presidents, Popes and Spies (DEC. 17, 2014)

관심은 당연히 경제봉쇄가 풀리면 어떤 경제적 영향이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쿠바의 무역을 보기쉽게 해놓은 분석 What U.S. Companies Can Expect in Cuba (DEC. 19, 2014)

북한발 해킹으로 영화<인터뷰>가 내려진 것, 그리고 그에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오바마, 숀팬 등)도 주요 기사였고 토요일에 있었던 뉴욕의 경찰 두명의 사살 또한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Monday, December 15, 2014

그곳의 오늘

한쪽에서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지든 취해 살고,
다른 한쪽에서는 무엇하나 없어 목숨을 거는, 
그곳. 
그곳. 
그곳.



100억대 벼락부자가 유흥업소에서 난동을 피우고 경찰관까지 폭행, 폭언 "내가 10억만 쓰면 너희 옷 모두 벗긴다” 후 법정구속되고 버려진 그의 슈퍼카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2151527011&code=940202




뉴욕발 비행기에서 땅콩을 빌미로 승무원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퍼붓고 비행기를 돌려 한 승무원을 내리게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http://www.moneyweek.co.kr/news/mwView.php?no=2014121209548028566





복직을 요구하며 경기도 과천 코오롱 본사 앞 천막에서 40일 째 단식농성 중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옮겨진  최일배 위원장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62670




수도권 최대 유선방송업체인 씨앤앰(C&M)에서 해고된 109명을 대표해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 20m 높이의 광고판에 올라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는 노동자 2명.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1691

Thursday, December 11, 2014

조현아의 '초능력', 차라리 소설이었으면


서울 시내에서 택시를 후진시켜본 일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후진하자고 말했다간 욕만 실컷 먹기 딱 좋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뉴욕에서 버스도 아니고 대형항공기를 후진시키기도 한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말 한 마디에 뉴욕을 출발해 한국으로 가려던 대한항공 비행기가 공항 활주로로 이동하다가 후진을 해 사무장을 내려놓았다. 견과류 서비스를 제대로 못한 승무원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덕택에 수백 명의 승객의 객실 서비스와 안전을 책임지는 사무장이 없는 상태로 비행기는 한국까지 날라왔다. 조현아의 고함은 일등석 뒤의 일반석까지 들릴 정도로 컸다고 한다.

그런 일로 사람들 다 들리게 고함을 친 것이나 그 고함에 비행기를 '후진'한 것, 또 사무장이 없이 비행을 강행한 것 모두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자연히 지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슈퍼 갑질,' '진상 손님 조현아,' '이건 갑질을 초월해 법조차 무시' 등의 지탄이 따랐고 국토부조차 위법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해명은 이런 반응과 사뭇 달랐다. 회사측에 따르면, 사무장은 "부사장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규정과 절차를 무시했으며, 매뉴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히 둘러댔"고, 회사는 "승무원 교육을 더욱 강화해 대고객 서비스 및 안전 제고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승무원들만 혼난 것이다.

일반 대중들의 분노는 '너무 했다'는 느낌에 기초한 것이다. 너무 했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흔히 할 반응에 비교해 과했다는 것이다. 이는 조현아 부사장을 일반적인 대중의 잣대로 판단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전제가 과연 옳은 것일까? 조현아 부사장은 보통 사람일까?

조현아는 거대 자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큰딸로 미국 남가주대 경영학석사 취득 후 대한항공에 입사, 7년 만에 임원이 됐고 곧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계열사 '칼 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를 맡았고 한진관광 등기이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미생>을 봤건 대기업에서의 경험이 있건, 이런 승진이 보통 사람에게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본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시대에서 자본가들에게서나 일어나는 소설과도 같은 일이다. 그 소설에서는 자본가들은 고함으로 비행기도 후진시킬 초능력이 있는 것이다.

물론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세상은 소설이길 바란다. 나와는 전혀 다른 그들, 그들의 숨막히는 지배와 초능력에 가까운 권력이 소설에서나 나오고, 실제에서는 모두가 비슷하고, 서로 아껴주는 훈훈한 곳이길 바란다. 물론 이 또한 망상인 것을 우리는 뿌연 연무 뒤의 치솟은 빌딩을 보듯 알고 있다. 조현아의 갑질은 그 연무를 걷어내, 우리가 보기 싫은, 검고 높디 높은 빌딩을, 차가운 현실을 온전히 보게 한다.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현아의 갑질이 우연히 우리 눈에 띄었을 뿐 사실 당연한 것이다. 착한 양반도 있었고, 악독한 양반도 있었지만 어짜피 양반은 양반이었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과는 그 힘과 권위에서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면에서 대한항공의 반응, 조현아 부사장을 말그대로 윗어른으로 모시는 입장에서 나온 반응이 더 솔직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분노는 번짓수를 잘못 적은 것인지도 모른다. 조현아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체제에 대한 분노와 성찰이 더 급한 것이 아닐까.

Wednesday, December 3, 2014

[기고]백악관 문서 유출과 청와대 문건 유출


정부 문건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망신거리가 되자 대통령은 언론인들과 이들을 접촉한 정부 내 인사의 엄벌을 지시한다. 그리고 그 정부 인사는 정부 문건을 탈취했을 뿐 아니라 안보를 위협했다는 혐의로 고소를 당한다.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추악한 미국의 면모를 담은 ‘펜타곤 보고서’가 1971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공개되면서 보인 닉슨 대통령의 반응이다.

펜타곤 보고서는 원래 베트남전 정책에 대한 분석을 위해 국방부가 비밀리에 준비한 것이었고 극비문서였지만 전쟁을 반대한 대니얼 엘스버그라는 군사분석가가 언론에 유출하는 덕에 공개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전쟁이라는 끔찍한 일을 진행하고 있는 정부 정책들이 미국 국민과 의회에 대한 거짓말에 기초하고 있다는 자각에서였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정부는 남베트남의 고 딘 디엠 정권을 몰아내고, 디엠을 살해한 쿠데타에 직접 관여했고, 북베트남을 의도적으로 자극해 확전을 도모했으며 북베트남뿐 아니라 캄보디아, 라오스 등 이웃 나라에도 공습을 가하는 등 수많은, 추악한 일들을 비밀리에 감행했다.

베트남전의 치부가 드러나자 미국 정부는 이들을 법정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미국의 법원은 언론과 엘스버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보도로 인해 국가안보가 크게 위협받은 것도 명확지 않고, 언론의 자유 또한 국가의 안보라는 이유에서였다. 유출 그 자체가 문제냐, 문서가 담은 그 내용이 문제냐 하는 갈림길에서 후자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2014년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정윤회씨 등의 국정개입 의혹을 담은 청와대 문건 유출 파문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문건을 “근거 없는 루머” “흔들기”라면서 문건 유출에만 초점을 맞췄다. “국기문란” “적폐”라고 비난하면서 검찰의 수사를 직접 지휘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청와대 내부 문건이 유출되었으니 대통령이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유출 그 자체에 있는 것이냐 그 내용이냐에 대한 판단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으로서는 바쁜 와중에 이런 일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문제일 것이다. 체면도 말이 아니다. 그러니 유출 그 자체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하지만 문건이 밝히는 대로 정부가 선거에 바탕을 둔 권력이 아닌 비선 실세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면, 사안은 심각해진다. 선거를 통한 국민과 정권의 정당한 관계가 위협을 받는 셈이니까.

그렇다면 유출 내용에 방점이 찍혀야 할 것이다. 많은 국민은 유출된 문건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밝혀서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민주체제를 옹호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

Monday, December 1, 2014

수능과 개헌

학력고사를 보고 난 이후가 생각납니다. 물론 기말고사가 남아있었지만 인고의 세월을 보낸 피끓는 학생들의 해방감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죠. 세월은 흘러 학력고사는 수능으로 바뀌고 입시도 복잡해지긴 했지만 수능 다음날의 상황은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수능이 또 끝났습니다. 정답논의가 또 일어났듯, 수험생 사정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 합니다.한쪽에서는 이곳저곳을 몰려다니며 못다한 유흥을 이어나고 다른쪽에서는 여행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겠죠. 등교를 해도 잠을 자거나 멍하니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지친 것은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측도 단축수업이나 각종 변칙운영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학부모들도 애들을 학교에 굳이 보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이때입니다. 교육청에서 아무리 공문을 내려보내고 대응책을 마련해도,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죠.

수능이라는 커다란 시험을 향해 달려온 모든이들에게는 더 이상 학업에 매달릴 여력도 없거니와 그럴 이유도 없는것이 사실입니다. 시험이 없는 학생이 공부할 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의 탈선을 묵인해 주는 것 일테죠. 돌아보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대 가기전 휴학생, 전역을 코앞에 둔 말년병장, 은퇴를 오늘내일하는 직장인 등이 있죠. 모두들 일을 열심히 할 뚜렷한 이유가 없고, 그걸 주변에서도 알고 있다는 것이 비슷합니다.

여기에 추가할 또 하나의 부류가 있습니다. 바로 ‘선거 없는 정치인’입니다. 공부를 아무리 잘 하고 성실한 학생이여도 시험이 있어야 공부하는 것처럼 아무리 착한 정치인이라도 선거가 있어야 유권자들에게 몸을 낮추는 것입니다. 수능이 끝나면 공부할 의욕도, 이유도 없어지는 것이 학생이듯, 선거가 없으면 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의욕과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 정치인이죠. 그러니 아무리 민을 향해 도도하고 권위적이여도 다음 선거가 없으면 유권자들로서는 답답할지만 딱히 어쩔 수가 없는 것이죠. 한국엔 제도적으로 그런 정치인이 딱 하나 있습니다. 한번의 임기로 끝이 나는, 재선이 없는 대통령이죠.



민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낮추려고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도 치를 선거가 없으면 점점 민에서 멀어지기 쉽습니다.애초에 그럴 생각조차 없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다면 그것이 더 빨리, 더 염치없게, 더 확실하게 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필요한 것은 바로 대통령에게 시험을 되찾아 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선거 이전의 겸손을 되찾게 또는 애초에 잃지 않도록 강제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죠. 답은 개헌입니다. 4년 중임제면 중간고사가있는 셈이여 낫고, 내각제이면 시험의 불안이 항시 있어 더 좋겠죠.

개헌논의가 정국을 혼란케 하니 논의를할 수 없다는 말은 수능을 마친 학생이 할일도 많은데 학기말 시험이 왠말이냐고 불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 나와도 정국의 핵이 될 개헌논의는 이를 수록 좋고 시험이 많은 방향으로 끝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기왕이면 박정희가 파괴한 제이공화국의 의원내각제를 박근혜의 손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