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ly 3, 2016

브렉시트의 정치적 의미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일명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 국민투표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죠. 해리포터의 작가 롤링 등 영국 유명 인사들과 주류 정치인들 사이에서 통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유럽연합 잔류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젊은 층도 분노했습니다. 스코트랜드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독립을 다시 추진해 유럽연합 잔류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하기도 했죠. 설마 했던 금융시장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고 미국 달러와 엔화 강세를 걱정하는 국내 분석가들도 심각합니다. 영국 여행을 가야하는데 파운드를 지금 사야할까 고민하는 이도 있고 한국 수출이 덕을 보겠지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국제투자가 미국, 일본으로 쏠리리라는 걱정도 큽니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나면 지금 누리는 경제적 특혜--유럽연합 내 무관세 무역, 자유로운 인적, 자본의 이동 등--가 없어지고 금융시장에서 누리는 리더십도 독일이나 프랑스로 넘어갈 공산이 큽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새로 꾸려질 영국 정부가 유럽 연합에 신청을 하고 나서 2년이 지나고서 일어날 일들입니다. 그 동안 유럽과 영국은 각종 타협과 조약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테죠. 한국이 유럽연합과 각종 교류와 무역을 하는 것과 비슷해질 겁니다. 장기적으로 지금의 충격은 상당 부분 흡수되고 새로운 경제 질서가 빠르게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것은 정치적 변화입니다. 브렉시트는 갈수록 경제격자가 벌어지는 현실에 분노한 시민들이 이민자들을 비롯한 이방인들과 금융계, 정치적 기득권층에 분노를 표현한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보수당의 존슨 전 런던시장은 늘어만 가는 이민자들을 통제할 주권을 되찾아야한다며 브렉시트 찬성을 이끌었습니다. 영국 공산당과 사회당 등 좌파 세력의 일부도 구조조정의 압박, 신자유주의 강화에 저항하며 브렉시트를 찬성했죠. 다양한 목소리가 있지만 찬성진영의 주류는 아무래도 이민을 걱정하는 극우 정서였습니다. 비슷한 세력이 미국에서는 트럼프를 공화당 대선주자로 만들어 놨죠. 

극우파의 성장은 단지 미국과 영국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이들은 많은 유럽 국가의 의회에 진출해 있고 일부는 상당한 세력을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국민전선은 지역선거에서 선전해 다가올 대선을 눈독 들이고 있고 극우파 후보인 호퍼는 5월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49.7% 득표로 거의 당선될 뻔 했습니다. 헝가리 극우 정당 연합은 총선에서 두번이나 승리했고 폴란드도 2015년 총선에서 전국적으로 39% 득표하는 기염을 토했죠. 덴마크, 필란드, 스위스, 그리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민자에 대한 반감과 유럽연합에 대한 불신입니다. 영국의 그것과 통하기도 하죠. 따라서 이들 국가에서도 극우파들은 영국을 따라할 가능성이 큽니다. 유럽연합을 떠나자며 자국 정부를 압박해서 국민투표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국민투표로 가지는 않더라도 반유럽연합 정치공세만으로도 이들은 큰 정치적 승리를 쟁취할 수 있죠. 

유럽 각국에서 극우 세력이 커갈 수록 유럽연합은 궁지에 몰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 질서는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법, 그 합의를 자꾸 되묻고 따질수록 유럽연합이라는 질서는 흔들리게 되죠. 가장 큰 문제는 독일입니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월등한 일등이고 가장 큰 영토를 차지하고 있죠. 위치도 유럽의 딱 중앙입니다. 인구도 많고 교육수준도 높습니다. 자부심도 강해 민족의식도 강하죠. 이런 이유로 독일은 전쟁의 주역이였습니다. 프랑스와 되풀이 되는 전쟁은 결국 세계 일차 대전, 이차 대전으로 이어져 전 유럽을 파괴했죠. 2차대전이 끝난후 이런 독일을 길들이기 위해 독일을 유럽 경제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바로 1952년 시작한 유럽석탄철강연합이 그것이였습니다. 이후 1957년 유럽경제공동제가 출발해 성장을 거듭했고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정치, 사회적 연합인 유럽공동체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유럽연합이 출범했죠. 

독일은 유럽 통합의 주역으로서 정치적 지도자 역할을 했습니다. 유럽의 통합이 뜨거워 질수록 전쟁의 화마는 차갑게 식어갔죠. 잔존해 있는 신나찌 세력의 부활을 누를 수 있었던 여러 요인들 중 하나는 바로 유럽연합의 발전이였습니다. 독일의 전쟁 망령을 봉하는 부적인 셈이였죠. 그 봉인을 전쟁 피해 당사자인 영국이 브렉시트로 흔들어놓았습니다. 1차대전후 유럽국가들이 고립주의를 선택하고 이민자들을 공격하며 민족주의 찬가를 불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브렉시트가 걱정스런 진짜 이유입니다.  

Friday, April 1, 2016

비비씨 드라마] 브로드처치 (Broadchurch)

요즘 한참 영국드라마에 빠져있는 중입니다. 워낙에 형사물을 좋아하는데 보다보니 유럽 형사물이 맘에 들더군요. 미드처럼 총과 폭력이 난무하지도 않는 것이 일단 신선했죠. 폭파장면 등 물량공세 대신 음악과 분위기, 풍경, 화면의 구도를 통해 시청자를 빨아들이는 것도 좋았습니다.

최근에 본 것은 비비씨의 브로드처치(Broadchurch)였습니다. 한 소년의 죽음으로 가족과 작은 마을 전체가 혼란에 휩싸이는 비극을 잘 다루었죠.


저 사진에 나오는 절벽은 마치 주요 등장인물처럼 압도적이고 중요한 기재입니다. 저 장면은 주인공인 하디(Hardy)반장이 범인을 짐작하고 생각에 잠긴 장면입니다.


이 두 형사가 수사를 이끌어가면서 이야기가 전개가 됩니다. 까칠하고 무덤덤한 하디 반장과 친근하고 동네 주민인 밀러형사의 관계도 재밌습니다. 좋은 드라마가 그렇듯 캐릭터의 개발이랄까요 그런 것도 감칠맛 나죠.

시즌1을 봤는데 무엇보다도 피해 가족의 슬픔이 아름다운 음악과 멋진 화면에 정성껏 실린 것이 인상적이였습니다. 특히 범인이 잡힌 마지막회는 정말 가슴이 아팠죠. 시작하자 마자 범인은 바로 잡히고 나머지는 주변 사람들의 상처를 그렸습니다. 눈물을 짜내는 것도 아니면서 가슴을 후비는 아주 놀라운 에피소드였습니다.

참, 저 하디 반장을 한 배우는 데이빗 테넌트로 넷플릭스 제작의 제시카존스에서도 나왔죠. 정반대로 악역이였지만 두 캐랙터 모두 살짝 비슷한 맛이 나기도 합니다.




클론워에도 목소리 연기를! 한번 나왔지만 인상적이였던 라이트세이버를 만드는 드론의 목소리


결론: 브로드처치, 강추!

Sunday, March 6, 2016

평등

나눌 수 있는 자가 욕심을 덜 갖고 나누려는 것이 해결방법이지,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가지려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해결방법이 아닙니다. 서로 나누는 것, 그것이 서로가 화평을 누리며 서로 미워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 아닙니까. 자연의 섭리가 바로 화평이고 균등입니다. 물이 낮은 곳과 빈 곳을 채워 언제나 수평을 이루는 이치가 그것입니다.

그 원리가 깨짐으로 해서 빼앗긴 사람들은 빼앗은 사림들에게 대들수 밖에 없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나누려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결국에는 모든 것을, 목숨까지도 잃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조정래, 태백산맥 7권. 인천상륙 작전 직후 법일의 단상.  

Saturday, February 13, 2016

[updated] 박근혜 대북조치 비판

북한이 4차핵실험(2016년 1월 6일)을 강행하고 곧이어 위성발사(2월 7일)도 성공적으로 마치자 박근혜 정부는 대북 초강경 조치(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협상; 개성공단 폐쇄)를 잇달아 내놓았다. 하지만 정작 북한에 미치는 영향은 미비할 전망이다. 도데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없나?




  •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 THAAD·사드는 대기권 안밖에서 상대방의 미사일을 요격해서 인구밀집 지역이나 주요 시설을 포괄적으로 보호하는 시설을 통칭한다.   
  • 왜? 
  • 효과 
    • 대북억지력이 전혀 없다는 것은 큰 문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북한이 남한을 공격한다면 미사일을 쏠 일이 없다. 쏴도 단거리 미사일이고, 가장 큰 위협을 휴전선 이북의 포대이다. 그런데 사드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론 미군이 버젓이 중무장하고 기다리고 있는 남한을 북한이 선재공격할 일도 없다.   
    • 그럴 일도 없지만 북한이 쏜다 치자. 안 쏜다니까. 북한 미사일을 떨어뜨릴 수는 있기나 할까? 미국 전문가도 북한 미사일에 무용지물이라고 단정한다 [한겨레, 북 로켓추진체 폭파 기술에 사드 무용지물]. 추진체가 이번 실험때 처럼 자폭하면 그 파편들과 탄두가 구분이 불가능. 여러 문제를 뻔히 아는 미국장군들이 사드를 요구하는것 자체가 충격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 문제 
  • 얼떨결에 권력을 얻은후 한편으로는 "아, 몰라, 몰라"를 외치며 내정을 내버리고 또한편으론 사대주의를 철저히 따랐던 인조. 덕택에 호란을 두번이나 겪어야했던 조선백성. 인조와 너무나 비슷한 박근혜에게 한명기의 병자호란을 읽어보길 권한다.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 51회 - 한명기: '병자호란'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 집에 책이 없다던데?

  • 개성공단 
    • 2004년 문을 연 공단에서는 약 5만명의 북한 노동자가 한국 공장에서 근무를 하며 신발, 속옷 등 소비재를 주로 생산해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2월 10일 아무 경고도 없이 가동을 중단했고, 북한은 이에 맞서 군사지역으로 선포, 군대가 공단을 접수해버렸다. 
  • 왜 닫았나? 
    • 북한 핵실험, 위성발사 등에 대응을 모색하고 있는 서방은 이미 경제봉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별다른 대응을 못찾고 있는 상황.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이 중국-북한 무역과 개성공단. 전자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니 후자를 통해 북한을 벌주고자하는 기류가 있었다. 
    • 이런 국제정세에 반응한 것일 수 있다.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 해이고 한창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다. 특히나 공화당 쪽에서는 북한, 중국 등에 맞서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 선두주자 트럼프는 김정은을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헛소리까지 하고 있으니 [Daily Mail, Donald Trump vows to make North Korean leader Kim Jong-un 'disappear' and says the 'bad dude' dictator will face a fate worse than assassination], 온건책을 내면 매국노로 몰리는 분위기다.  
    • 하지만 이런 국제 정세보다는 국내정치를 고려한 측면이 강할 듯 하다. 우선 총선이 두달 앞으로 다가 왔으니 보수층을 결집시켜야 하고 여기엔 북풍만한게 없다. 문제를 할 수 있는 게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것. 확성기도 있잖아. 하나 남은 고리가 개성공단이였고 결국 마지막 카드를 써버린 것. 
  • 효과
    • 대북 강경기조를 유지한다는 면에서는 일관성이 있다. 미국으로서야 이란과의 핵협상도 끝나고 쿠바와의 외교관계도 재개된 마당에 이제 남은 골치덩어리는 북한과 이슬람세력이다. 미국의회도 최대의 경제제재조치를 호기롭게 통과시켰지만 그 효과가 신통치 않을 것임은 자신들도 안다. 뻘춤하던 차에  남한의 조처가 반가울 수 밖에. 당장 케리 국무장관이 환영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연합뉴스, 한미 외교장관 대북압박 공조가속…케리 "개성공단 중단 지지"]  
    • 하지만 북한이 타격을 입을까? 온갖 제재조치 속에서 수십년간을 버틴 북한정권이 개성공단 닫는다고 충격에 빠지지는 않을 듯 하다. 한 리포트를 보면 "지난 10년간 남한에게는 32.6억 달러의 내수 진작 효과를, 북한에게는 3.8억 달러의 외화 수입을 가져다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현대경제연구원, 개성공단 가동 10년 평과와 발전 방안]. 결고 적은 돈은 아니지만 없어도 핵계발을 못하거나, 정권이 붕괴되고 막 그런 돈은 아니다. 북한의 2014년 무역규모는 76억 달러. 대부분이 중국과의 무역이니 [코트라, 보도자료] 이를 막지 않는 경제 제재는 무의미하다. 
    • 게다가 북한 근로자에게 지불되는 대부분의 돈이 공단내 마트에서 소모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마트의 주인은 호주동포로 박근혜 대통령의 주장처럼 노동당 자금으로 흘러갔다는 말은 억측에 불과하다. 국회연설에서 나온 이 주장이 억측임은 증거가 없다고 고백한 통일부장관 입에서 확인할 수 있다 [SBS, 비디오머그] 그러니까 개성공단 자금이 미사일 개발에…어떻게 된거죠?].   
 

  • 문제 
  • 효과도 없는 정책을 심각한 논의도 없이 정치적 계산에서 즉흥적으로 해치운 듯하다. 물론 보수층을 집결시키고 이번 조치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종북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긴 하다. 선거의 여왕답다. 
  • 한가지 걱정스런 것은 이런 일련의 경제제재 조치가 이어지고 북한이 강경대응으로 이어가면 긴장이 높하지고 미국의 무력조치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미 1994년에도 폭격 코앞까지 간 경험이 있고, 2003년 이라크 침략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피혜는 고스란히 남과 북의 인민의 몫인데, 지도자들은 상관치 않는다.  

Thursday, February 4, 2016

영화 존 윅(John Wick)

다 늦게본 존 윅의 간단한 평을 해야겠다. 슬며시 미소 짓는 장면이 한둘이 아니니. 주인공 존 윅이 아침에 일어나며 시계알람을 끄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메크릭스 1에 대한 오마주다. 에이전트가 미스터 앤더슨(역시 키아누 리브스)을 잡아 배에 도청장치를 넣자 주인공은 절규를 하는데 시계알람을 끄며 일어난다. 마치 악몽이였다는 듯이.
오마주는 아니지만 콘티넨탈 호텔에 들어서면 또다른 작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미드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와이어>의 주요 인물이 둘이나 나오기 때문. 프론트의 매니져와 옆 방의 손님이자 옛친구는 와이어의 형사역을 맏았던 배우들.

 그리고! 브라질 무술인 주짓수!! 존윅도 그렇지만 호텔에서 그와 싸우는 여자 암살자는 자기 옷으로 목조르기 (Lapel choke), 발로 한쪽 팔을 고정시키고 다른 팔을 꺽는 기술 (crucifix), 어깨를 부시기(Kimura)까지 시전한다. 실제로 한달이나 리브스는 무술 연마에 집중했었다고. 2편이 개봉한다는데 완전 기대중.

Tuesday, February 2, 2016

샌더스 돌풍의 한계

민주당 경선에 나선 사회주의자 샌더슨. 아이오아 경선에서 클린턴과 사실상 무승부를 내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의원 44표가 걸려있었는데 50%씩 표를 얻어서 21표나 가져갔기 때문.




돌풍임이 분명하지만 한계가 있는 돌풍이다. 민주당 지도부 등 수퍼대의원들이 이미 클린턴쪽에 쏠려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걸 다 합한 표수를 보면 385:29. 클린턴은 이미 400표를 바라보고 있고 샌더슨으 30표를 향하고 있는게 현실. 

샌더슨의 주요지지층인 좌파백인 남자가 많은 이곳에서 이기지 못한 것도 뼈아픈 현실. 

샌서슨 갈 길은 험하고도 멀다.

Monday, February 1, 2016

그 골목에는 ‘판타지’가 산다

그 골목에는 ‘판타지’가 산다

Sisain 2016. 02. 01 변정수 (미디어 평론가)  |  webmaster@sisain.co.kr




<응답하라 1988>(‘응팔’)이 드라마 장르에 온전히 포섭될 수 있는 성격의 프로그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수많은 시청자가 ‘응팔’을 ‘아련한 추억을 소환해내는 드라마’로서 소비했다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드라마’는 (드라마라면 반드시 있게 마련인) ‘타자’도 ‘갈등’도 따라서 ‘서사’도 없는, 실은 차라리 ‘반(反)드라마’이다.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드라마로서 (심지어 케이블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할 만큼 열광적으로) 소비하는 역리가 가능했을까.
주인공 덕선의 시선에서 소환되는 27년 전의 기억은 철저하게 ‘골목 안’으로만 제한된다. 골목 밖의 세상은 (적어도 드라마 안에서는) 그저 풍경으로 스쳐갈 뿐 골목 안과 어떤 갈등도 일으키지 않는다. 가령 시청자들은 선우를 괴롭히던 선배 ‘미친개’의 개인사적 배경 따위는 궁금해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렇듯 그 시절을 주인공과 얽혀 함께 살아냈음에 틀림없는 ‘어떤’ 주체의 기억을 손쉽게 배제한 채로도 이 드라마가 그 시절의 ‘공통 기억’을 소환해낸다고 기꺼이 믿는다. 그러나 골목 밖의 세상이 삭제되어 있다는 건 사소한 실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정작 더 심각한 건 골목 안에조차 아무런 갈등이 없다는 점이다. 아이고 어른이고 골목 안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이미 충분히 익숙한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어떤 새삼스러운 ‘낯섦’의 계기도 없고, 그로 인한 갈등을 통해 좀 더 익숙해져가는 ‘과정’도 없다. 이웃이라기보다는 이미 가족이다.
 

그나마 덕선과 적잖은 긴장관계에 있는 언니 보라의 성격은 이 드라마가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덕선에게(따라서 덕선의 시선을 따라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보라의 ‘더러운 성질머리’는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일 뿐, 가끔 짜증나게는 하지만 굳이 그 내면을 짐작해볼 이유는 없는 ‘익숙함’의 영역에 있다. 고작 세 살 터울의 동세대에 속한 언니가 도대체 무엇을 왜 고민하고 있는지는 부모 세대의 내면만큼도 드라마 내적 구조 안에서 설명되지 않는다. 덕선과 보라 사이엔 티격거림이 아무리 격렬해도 서로의 내면을 긴장시키는 갈등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들이 현실의 자매라면 설마 그럴 리가 있는가. 그런 계기들은 덕선의 ‘선택적 기억’에서 삭제된 것뿐이다.

‘갈등 없는 세상’으로 숨고 싶은 사람들
물론 선택적 기억이 그 자체로 이상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의 기준이고 배경이다. 왜 어떤 기억은 선택하여 굳이 소환하고, 어떤 기억은 그 선택에서 배제하는가. 나아가 그 이전에 질문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도대체 누구의 시선인가. 가령 그 골목 안 아이들의 우정을 부러워하거나 촌스러워하는 골목 밖의 누군가의 시선이 아니라, 혹은 골목 안 아이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감정선에서 가장 중립적인 위치에 있었던 동룡의 시선이 아니라, 왜 하필 덕선이었어야 했는가. 좀 더 노골적으로, 어려서부터 대중의 주목을 받은 독특한 이력의 남편을 둔, 대기업(이 분명한 업종)의 중간관리자임을 짐작하게 하는 안정된 직장을 가진, 심지어 소꿉친구 첫사랑과 결혼할 수 있었던 인물이 굳이 소환해낼 수 있는 기억이란 얼마나 일반적인 것일까.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가장 격렬하게 소비한 것은 ‘그 시절의 공통 기억’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응팔’은 흔한 비판처럼 ‘복고 취향’의 ‘추억팔이’가 결코 아니다. 현실에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한 적도 없는 ‘갈등 없는 세상’을 향한 ‘판타지’다.
 

이 점은 주인공들의 성장기에 초점을 두면서도, 정작 ‘사회적 성장’의 기억은 통째로 삭제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이와 관련하여 전작 <응답하라 1994>(‘응사’)가 비슷한 분량인데도 1996년 초까지 2∼3년의 시간 동안 저마다 성장배경을 달리하는 주인공들이 서로 부대끼며 성장해가는 ‘과정’을 수박 겉핥기로나마 훑고 지나간 것과는 달리, 1년도 채 안 되는 시기의 ‘단면’만을 파편적으로 나열한 뒤에 곧장 6년 뒤로 드라마 속 시간을 ‘점프’해버린 구성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응사’에서도 후반부에 주인공들이 본격적인 ‘짝찾기’에 나서는 시점으로 점프하긴 했지만, 대학생 때와는 조금은 달라진 모습을 통해 간접적으로 저마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낸 그 시간의 흔적을 담아내려는 ‘성의’는 보였다. 그러나 ‘응팔’에서 6년 뒤에 만난 주인공들은 열여덟 살 고등학생에서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는 듯 ‘골목 안’에 머물러 있다. 하다못해 골목 밖 세상을 떠돌다 결국 그 골목으로 되돌아왔다는 식의 흔해빠진 ‘복고적’ 서사조차도 과감히 생략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회적 성장의 서사’를 삭제해놓고도 마치 자신들이 성장기를 보낸 그 골목이 자신들을 성장시켜주기라도 한 양 회고한다. 그러나 거기엔 ‘타자’도 ‘갈등’도 없었다. 굳이 있었다면 오로지 ‘가족’뿐이었지만, 사실 그런 가족은 왜곡되고 파편화된 기억 속에나 존재하는 환상일 뿐이다. 이 환상 속에서 가족이란 그저 ‘갈등할 이유가 없는’ 타인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족 판타지’를 탐닉하는 이유다. 타자와 직면하는 것도, 그래서 갈등을 감당하는 것도 버겁기만 한 나머지 ‘갈등 없는 세상’으로 숨고 싶은 것이다. 그 열망이 강할수록 타자와의 갈등은 더 힘겨워진다. 이 판타지 안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성장도 서사도 없다. 흔히 사회적 성장을 회피하려는 경향을 ‘피터팬 신드롬’이라고 일컫곤 하지만, ‘응팔’이 소비되는 양상을 곰곰 짚어보면 <피터팬>이 좀 억울할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후크 선장이라는 ‘타자’가 없었다면 아예 이야깃거리조차 안 되었을 테니까. 이러한 퇴행은 사회적 성장이 지체된 개인에게 혹시 ‘위로’가 될지는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심각한 ‘재앙’이다. ‘갈등 없는 세상’의 판타지는 언제나 ‘갈등의 제도화’를 향한 정치적 상상을 봉쇄하고,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는 공공 영역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아예 타자의 존재가 삭제된) 가족을 향한 충족 불가능한 욕망의 악순환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가 누군가에게는 존재를 삭제당한 ‘골목 밖’ 사람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헬조선’의 정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