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13, 2017

새 책 <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창비에서 <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게 됐습니다. 한국을 비롯 세계 이곳저곳의 정치를 이데올로기라는 렌즈로 조명해보려 했습니다.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자는 정치를 움직이는 도구로서 정치 이데올로기의 정의와 역할을 명확히 짚고, 민족주의·종교·사회주의·보수주의 등 대표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들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해설한다. 그리고 정치 이데올로기가 대중매체·조직·자본·사회제도 등을 통해 한 사회에 전파되고 유지되며 강화되는 과정을 구체적인 예와 함께 살피며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정치와 정치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낱낱이 드러낸다. 나아가 한국 사회에 다양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건강하게 공존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보도

  1. "보수단체는 집회할 때 왜 성조기를 들고나올까" 연합뉴스 (2017/10/18)
  2. "보수단체는 집회할 때 왜 성조기를 들고나올까" 파이낸셜뉴스 (2017/10/18)
  3. "보수단체는 집회할 때 왜 성조기를 들고나올까" 부산파이낸셜뉴스 (2017/10/18)
  4. "재미 정치학자 남태현 교수 '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출간" 매일경제 (2017/10/18)
  5. "이데올로기 큐대 지구촌 굴리다" 경인일보(2017/10/20)
  6. "[새책]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外" 경향신문 (2017/10/20)
  7. "[책꽂이-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정치 이데올로기' 어렵지 않아요" 서울경제 (2017/10/20)
  8. "재미 정치학자가 본 한국 정치… ‘보수’는 왜 왜곡되었나" 서울신문 (2017/10/20) 

Thursday, September 28, 2017

개헌 생각 01)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개헌 논의가 심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권력형태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죠.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개헌의 이런 저런 면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우선 현제도의 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권력을 의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나누는 제도죠. 1958년 프랑스 드골이 들고나온 5공화국 제도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고요.

‘분권형 대통령제’(semi-presidential government) 논의 선구자인 뒤베르제의 개념은 이렇습니다.
1.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선거권 행사로 선출.
2.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의 권한과 함께 상당한 실권을 보유.
3. 대통령과는 별도로 그 직이 의회의 선출권과 불신임권에 의해 유지되는 총리 및 장관들로 구성되는 행정부가 존재.

이걸 좀 더 살을 붙이면:
1.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선거권 행사로 선출 (대통령이 직접 선출됐으니 허수아비가 아니다)
2. 둘째,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의 권한과 함께 상당한 실권을 보유 (허수아비가 아닐 뿐 아니라 강력한 권한을 지닌다)
3. 대통령과는 별도로 그 직이 전적으로 의회의 선출권과 불신임권에 의해 유지되는 총리 및 장관들로 구성되는 행정부가 존재 (행정부 권한을 총리와 나눈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다만 의회의 지지가 필요하죠. 분권형 대통령제는 이름이 암시하듯 행정부 권력을 대통령과 총리가 나누는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흔히 대통령은 국가 원수직과 이른바 외치 영역에 해당하는 외교·안보·국방 정책 등을 담당하며, 총리는 내정과 관련된 그 나머지 정책들을 모두 맡는 형태를 생각하지만, 그것도 정치적 배분이지 법적 강제력은 없습니다.

권력의 분배가 제도적이 아니라 정치적이다 보니 분권이 잘 안 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적 리더가 대통령이 되고 그 대통령의 정당이 의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죠. 대통령은 자기 수하를 총리로 임명할 테고 의회는 당연히 임명안을 통과할 겁니다. 나랏일, 정부 운영, 의회 활동까지 그 카리스마적 리더가 다 챙길 수 있죠.

한 극단적 예를 들자면 러시아가 좋겠습니다. 현재 러시아 대통령인 푸틴이 잠시 총리로 물러나 있을 때 메드베데프 대통령(현재 총리)이 실권을 행사하려다 큰 코를 다쳤죠. 반대로 푸틴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총리를 압도하는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권력분배가 별 의미가 없죠. 푸틴의 정당, United Russia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떡 주무르듯 합니다.

이런 상황은 사실 이상하지 않습니다. 제도의 창안자인 프랑스의 드골이라는 카리스마적 리더가 제왕적 대통령을 꿈꾸면 고안한 제도니까요. 드골은 2차대전 이후 4공화국이 의원내각제를 받아들이자 이를 반대했습니다. 이후 정치위기가 이어지면서 공화국은 결국 붕괴했고 드골은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5공화국 건설을 주도했습니다. 즉 권력을 나누기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 그 반대죠. (프랑스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할 권한도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를 비롯한 비슷한 사정의 구소련 나라들이 이 제도를 선호한 겁니다.

다른 극단적 예는 프랑스처럼 대통령의 정당이 총선에서 지는 경우입니다. 대통령이 임명은 하지만 의회에서 승인이 안 되니 울고 겨자 먹기로 야당 지도자를 총리로 임명할 수밖에 없고 그런 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으로 권력을 실제로 나누죠.

한국 내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여기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앞서 살펴본 대로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려는 개헌의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공산이 크다는 점입니다. 드골처럼 제왕적으로 될 수도 있고 푸틴처럼 독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제에서의 총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정치적 현실에 따라 그 독립성의 크기는 왔다 갔다 합니다. 다당제 도입, 대통령과 총리 간 협의의 제도화 등 보안책을 제시하지만 기본 틀을 바꾸기엔 역부족(협의 제도화)이거나 상관없어(다당제) 보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이 얼마만큼 변화를 줄까 하는 점을 고려해 보죠. 앞서 살펴본 분권형 대통령제의 정의를 또 한 번 들춰보겠습니다.

1.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선거권 행사로 선출.
"제67조 ①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2. 둘째,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의 권한과 함께 상당한 실권을 보유.
외교(73조), 국군 통수(74조), 대통령령(75조)과 그 외 법률 효력의 명령 발동 (76조), 계엄 선포(77조), 공무원 임명(78조), 사면 복권(79조) 등등 광범위한 권위 보장.

3. 대통령과는 별도로 그 직이 전적으로 의회의 선출권과 불신임권에 의해 유지되는 총리 및 장관들로 구성되는 행정부가 존재.
제86조 ①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63조 ①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제65조 ①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 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제87조 ①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쉽게 말해 처음 두 사항은 현재 헌법이 이미 충족하고 있습니다. 즉 국민 직접 뽑는 대통령(조건 1)이 실권이 있죠(조건 2). 조건 3도 상당히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일단 총리가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게다가 총리임명에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점도 명시돼 있죠. 국회가 총리 해임할 수는 없지만 건의할 수는 있습니다. 총리 임명과 해임에 의회의 입김이 작용한다고 봐야죠. (문재인 정부 첫 총리로 이낙연 총리 인준이 통과됐지만, 간신히 됐습니다. 하지만 이전 정부에는 낙마의 쓴 잔을 본 후보도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도 분권형 대통령제를 이미 갖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권력의 분립이 안 되니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이는 제도적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문제에 가깝습니다. 즉 한국에서도 정치적 타협만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는 가능하다는 말이죠. 김종필 총리는 김대중 정부의 대주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예를 곱씹어 볼 만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총리도 그 예로 거론됩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후보 시절부터 '책임총리제'를 통해 권력을 분산하겠다고 여러 번 밝혔죠.

분권형 대통령제는 개헌이 굳이 필요치 않으니 개헌 논의의 한 대안으로는 적합지 않습니다.

Tuesday, September 12, 2017

[세상읽기]북한의 생존방식 인정 외에 다른 길은 없다

경향신문 2017.09.07

북한 6차 핵실험과 예상되는 추가적 도발에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핵·미사일 분야 기술을 더 이상 고도화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며 “실제적이고 강력한 조처”를 다짐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북한과 거래하는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미국과 무역을 중단할 수 있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죠. 이번 실험을 “고립무원 속에서 김정은의 광기 어린 핵무기 집착”쯤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태를 왜곡해 목청 높이기에만 좋을 뿐 해결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해결은 올바른 인식에서 시작합니다. 첫째, 그 동기입니다. 아직도 북한 의도에 의아함을 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북한 핵무기에 불안감을 느낀다면 답을 이미 알고 있다 하겠습니다. 1990년대 초 주한미군 전술핵 철수 때까지 북한은 코앞에서 미군 핵무기를 마주했었고 지금껏 인류 역사상 최강이라는 미군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미군은 태평양 전역을 둘러싸고 있고 실전 배치된 핵탄두만 1400여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의 거의 반을 쓰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북한 핵무기에 우리가 불안하다면 미국 군사력에 북한은 훨씬 불안한 겁니다.

미국은 북한 정권처럼 공격적이지 않다고요? 이라크 후세인 대통령은 한때 미국 중동 정책 교두보였지만 2003년 미국 침공으로 후세인은 처형당했습니다. 이에 겁먹은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는 핵무기를 포기하고 서방과의 교류확대에 나섰죠. 하지만 내란이 일어나자 미국은 카다피 정권을 공격했습니다. 카다피도 처형당했습니다. 힘과 무력만이 정권 안정에 필수적이라는, 미국이 신봉하기도 하는, 현실주의 이론에 딱 들어맞죠.

북한 김씨 왕조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안 봐도 훤합니다.

둘째, 북핵에 대한 대응입니다. 정권 안정에 사활이 걸린 핵무기를 포기할 리가 없죠. 이런저런 경제 제재가 논의되고 있지만, 그 무용함은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미 잘 드러나 있습니다. 북한 대외무역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정권 2기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게다가 북한을 흔들어 생길 실이 득보다 훨씬 큼을 알고 있죠. 설사 중국이 석유 금수 조치를 공세적으로 취하더라도 북한 인민만 괴롭히고 말 공산이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 주도의 경제봉쇄는 탱크에 화염병 던지기로 끝날 겁니다.

무력행사는 득은 작고 불확실하지만 실은 혹독하고 명확합니다. 외과 수술하듯 핵시설만 도려내는 폭격은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습니다. 성공해도 북한이 확전의 길로 갈 공산이 크죠. 폭격이 성공하고 확전이 안돼도 북한 내 혼돈, 중국 개입 등 그 결과는 한반도 일대의 혼란일 겁니다. 이제 북한은 미국과 한국이 어떻게 말하건 핵보유국입니다. 게다가 미국 서부까지 사정권 안에 있죠. 무력행사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기저기서 혼돈과 흥분에 가득 찬 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말이라도 하지 못하면 체면이 떨어지니까요. 유권자들한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곧 미국은 현실을 직시하게 될 겁니다. 벌써 미국은 주판알 튕기기를 시작했죠. 농산물 관세 철폐를 포함한 자유무역 협상을 재개하고 수십억달러어치 무기를 사라며 한반도 위기를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를 내주고 서울을 살릴 리 없는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테이블에 앉을 테고 북한의 요구, 즉 주한미군 철수와 북한 인정을 상당 부분 들어주게 될 겁니다. 싫어도 대안이 없으니까요.

그 미래는 애써 부정해도 옵니다. 시간문제죠. 이는 한국에 도전이자 기회가 될 겁니다. 중·미 수교에 완전 제외된 대만이 될 수도 있고, 통일을 주도한 독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장 발 벗고 나서서 정치적 해법을 준비해야 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생존, 통치 방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국을 설득해 한국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북한의 불안도 완화되고 남북의 평화적 공존이 가능합니다. 싫어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Saturday, August 19, 2017

볼 만한 범죄 드라마

어려서 셜록 홈즈, 괴도 루팡 전집을 읽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커서도 범죄물을 즐겨보게 된 듯합니다. 그 동안 즐겨 보아온 범죄 드라마를 간단히 소개해볼까 합니다. 드라마 하나하나 소개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제가 주목하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논해볼까 합니다.

탄탄한 스토리는 기본이죠. 범죄 드라마가 보통 한 두회에 사건 하나를 해결해 나가는게 전통이였습니다. 수사반장이 그랬죠! 제가 최근 즐겨 본 드라마 중에도 그런 예가 있습니다 (Henning Mankell's Wallandar; Setland). 한 시즌이 하나의 사건 해결하는 형식도 있죠. (Paranoid; Marcella; Deep Water; The Bridge). 그 중간도 있습니다. 한 시즌을 끌고 가는 중심 스토리가 있고 소소한 사건들이 해결되는 그런 식으로 말이죠 (Luther). 여러 시즌에 걸쳐 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대형 드라마도 있습니다 (Breaking Bad; Broadchurch; London Spy; The Killing).

어떤 형식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면 따라가기 쉽지 않다고 느낄 때도 있죠 (The Killing). 하루를 마치며 맥주 한 잔하며 즐기기엔 한 회로 끝나는게 딱이죠 (Henning Mankell's Wallandar). 하지만 그 긴 이야기가 길다고 느낄 틈도 없이 느껴지는 드라마(Breaking Bad; Broadchurch)를 만나는 것도 행운입니다. 이런 경우 주변 인물들까지 부각될 시간이 충분해 드라마가 좀더 깊어지기도 합니다.      

인물(보통 형사)에 공감이 가야합니다. 조금씩 그 삶이 보여질 때, 또는 사건과 관련이 있을 때 (Deep Water),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이 좋습니다. 삶이 보이고 고민이 느껴지면 마치 오랜 친구의 고민을 훔쳐 보는 듯한 느낌도 들죠 (Marcella; Setland). 특히 부모의 고민이 보이면 반갑습니다 (Setland; The Killing; Henning Mankell's Wallandar). 거칠지만 창호지처럼 약한 내면을 겨우겨우 숨기며 달려가는 모습에 연민이 가는 형사도 있고 (Henning Mankell's Wallandar; River; Paranoid) 영웅심이 없이 쿨하게 일하지만 그래서 더욱 강철같은 형사(The Bridge)를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사람의 깊은 본성인 애정이 그 와중에 들어난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Luther; River; London Spy). 캐릭터의 성장을 보는 것(Breaking Bad; London Spy)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죠. 그래서 저에게 셜록 홈즈같은 번득이는 천재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면 Luther를 들겠습니다. 왜냐고요? 보세요 :)

현실에서 볼 만한 딱 그런 형사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단연코 The Wire입니다. 사실 이 드라마는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형사들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캐릭터, 스토리, 배경 등이 현실에 아주 가깝습니다. 미국 사회에 대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죠.

메인 캐릭터와 주변 관계도 흥미를 더해주는 요소입니다. 형사 끼리 좋은 친구나 파트너로 툭탁 거리는 것도 재밌지만 적당히 긴장이 있는 것(Broadchurch; Hinterland; The Bridge)도 좋습니다. 그 관계가 꼬이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볼만 하죠 (The Honorable Woman; The Bridge; River).

여기서 잠깐. 내맘대로 어워드! 
독특한 형사 어워드는 The Bridge;
독특한 범인 어워드는 The Wire;   
독특한 형사-범인 커플 상은 Luther

시청자들의 심미안이 발달되서인지 촬영도 예전같지 않습니다. 인물을 잡는 각도도 과감해졌습니다. 아름다운 배경을 강조하는 것도 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죠. 뉴욕 같은 대도시를 떠나 어디 시골 구석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Hinterland; Setland; Broadchurch)를 보고 있으면 배낭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한 두 시즌 보고 있노라면 거기 꼭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죠.

Setland는 스코트랜드 영토이지만 문화적으로 노르웨이에 더 가깝다고 하더군요. 언젠가는 가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쓰고 보니 뻔한 이야기네요. 결국 좋은 스토리와 인물, 아름다운 화면이라는 소리이니까요. 훌륭한 드라마들이니 보고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드라마 추천도 완전 환영입니다!



언급된 드라마들:
Broadchurch
Breaking Bad
Deep Water
Henning Mankell's Wallandar
Hinterland
London Spy
Marcella
Luther
London Spy
Paranoid
River
Setland
The Bridge
The Fall
The Honorable Woman
The Killing
The Wire


Friday, August 18, 2017

[세상읽기]미군 없는 한국을 준비해야 한다

경향신문 (2017.08.10)

지난 6일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안 2371호는 북한 총 수출액의 3분의 1가량 타격을 주리라 예상됩니다. 게다가 이달 중순부터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되죠. 북한이 추가적 도발을 예고하면서 8월 위기설이 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북 제재, 한·미 군사훈련, 북한의 반발, 위기설 증폭 등에도 불구하고 이후 진정국면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한국 시민들은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구 언론에서 연일 뉴스로 다루고 있음에도, 이러한 평온함은 남북이 싸울 수 없는 한반도 현실을 반영한 겁니다.

이와 더불어 반세기 넘게 변하지 않는 현실은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입니다. 사드 배치는 가장 최근의 예입니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은 한국 안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결정적 요소는 아닙니다. 장사포 등 재래식 무기와 단거리 미사일이 주요 위협이죠. 사드는 이와 상관이 없는 무기체계입니다. 그나마 수도권은 성주 사드 방어권 밖에 있습니다. 사드가 한국 방어용이 아님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 안보와 사드를 연결하는 알쏭달쏭한 소리만 쏟아냈습니다. “사드 배치는 나날이 고조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국가적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내린 자위적 방어 조처”라거나 “잔여 사드 발사기의 조기 배치” 등을 통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시키고자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죠. 앞은 박근혜의 2016년 발언이고 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달 발언입니다. 이런 주장이 흐리고 있는 사실은 사드가 미국 방어용이라는 점, 한반도 안보의 정책은 미국 안보와 얽혀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와중에 한국 정부는 마땅히 꺼낼 외교카드도 없어 보입니다. 금강산 관광은 잊힌 지 오래고 개성공단은 어처구니없게 문을 닫았습니다. 지원을 ‘퍼주기’로 매도하는 정치공세도 사납습니다. 외교라는 것이 줄 게 있어야 하는데 한국이 쥔 것이라고는 헛기침뿐이죠.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코리아 패싱’을 걱정합니다. 북한이 대화의 상대로 한국을 무시하고 미국을 지목할 만합니다.

이번 ‘위기’가 일상적이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에 줄 ‘선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바로 미국과의 평화죠. 북한은 크고 작은 도발로 한반도의 평화를 깨뜨릴 수도, 이를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그 무대는 주로 한반도에 국한됐었죠. 이제 미국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굉장히 작은 가능성이지만 그 결과가 끔찍하기에 무시할 수 없죠. 거꾸로 평화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핵과 미사일이 발전될수록 북한과 미국은 테이블에 앉을 공산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오랫동안 원했던 것은 북·미관계 정상화와 미군의 철수입니다. 미국이 이를 당장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죠. 북핵이 현실적 위협이 되는 수준에 오르면 미국은 한국을 지킬 의지가 약해질 겁니다. 북·미 대립이 미국 본토로의 핵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한국을 지킬까요? 그러지 않을 공산이 있습니다. 북·미 간 타협으로 미군 감소나 철수도 가능합니다. 여기에 커져만 가는 중국 입김이 실리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지죠.

설마 싶지만 1979년 중국과 국교 정상화가 되면서 하루아침에 대만을 버린 전력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50년 맥아더 장군이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라고 부른 대만의 가치도 1979년 상황에서는 급락했듯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언제 폭락할지 알 수 없죠.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요? 미군이 없는 한국을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만의 국방정책, 자주적 대북외교 프로그램, 지역안보를 넓게 보는 독자적 프레임을 짜야 합니다. 준비할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끊이지 않는 군내 인권유린, 만성화된 방산비리, 성조기를 휘두르는 극우. 그 미래를 준비하기는커녕 논의를 시작하기에도 벅차보이는 한국의 모습을 보며 드는 질문입니다.


Friday, July 14, 2017

[세상읽기]광주·세월호에서 보존할 기억 찾기

경향신문 (2017.07.13)

‘광주사태’를 쉬쉬하던 시대에 자라난 저는 우연히 눈에 띈 ‘금서’를 보고 광주의 1980년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 충격적 상흔이 광주시민 가슴에 아직도 절절히 박혀있음을 알게 되기까지 또 많은 시간이 흘렀죠.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난 이번 여름,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전남도청을 찾았습니다.

광장 앞에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둘러진 테이블과 몇몇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끝에 계신 한 분에게 도청에 관해 여쭤보고 탄원서에 서명했습니다. 계엄군을 상대로 승산은 없지만, 마지막 저항을 벌인 바로 그곳에서 고작 이름과 주소를 적어놓고 뒤돌아서려니 새삼 죄송스럽더군요. 인사를 드린 뒤 멀어져가는 저를 그분이 따라오셨습니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손을 내미셨죠. 자그마한 핀과 5·18민주화운동 안내 책자를 건네며 멀리서 온 사람에게 줄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삼일빌딩 앞에서 총을 맞았다며 총상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며 멋쩍어하셨죠. 미안하다는 말에, 또 그 멋쩍어하는 얼굴에 터지는 울음을 참느라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약간은 더운 평일 아침이었습니다. 텅 빈 광장이었지만 혼자는 아닌 듯했습니다. “그때의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는 상투적 표현 말고는 달리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죠. 그 함성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 그래서 편안히 살아버린 저의 부채의식만큼이나 크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도청은 깔끔한 ‘아시아문화전당’이 돼 있었습니다. 1980년의 기억을 찾는 저에게 직원은 옆에 있는 기념관으로 가보라고 친절하게 알려줬죠. 그제야 도청을 둘러싼 논란이 기억났습니다. 2008년 시작한 문화전당 공사 탓에 항쟁의 흔적이 훼손되거나 사라져 반발이 심했고 논쟁은 아직 진행형이라는….

광주의 비극은 1980년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두환과 그 부하들은 오랫동안 굴종과 망각을 강제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헐뜯으며 그 장단에 춤을 추었죠. 전라도 출신이어서 승진에 밀리고, 결혼도 못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북한이 사주했다는 악담도 서슴지 않죠. 민주주의를 피와 몸으로 외친 광주 시민들로서는 어처구니없을 수밖에요.

한국 민주주의는 박근혜 정권을 끝내며 재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지만 이를 가능케 한 전남도청은 제 모습을 찾지 못한 채 남겨져 있습니다. 다행히도 문재인 대통령이 복원을 약속했지만, 복원의 정도와 비용, 기존 시설 이전 등 문제와 도전 과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약속, 광주 유가족의 염원으로는 부족한 게 현실이죠. 전 국민의 성원이 필요합니다.

전 국민의 성원과 관심은 뉴욕 9·11 박물관을 가능케 했습니다. 정부와 유족, 전문가 사이에 오랜 대화 끝에 들어선 박물관은 참담했던 비극만큼이나 인상적이죠. 부서진 무역센터가 있던 그 자리에 들어선 박물관에는 휘어진 철근, 부서진 계단, 불타버린 소방차 등 건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습니다. 뉴스, 소방관 교신, 희생자에 대한 추억 등도 잘 전시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저리게 합니다. 꼼꼼히 보지 않아도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면 그날 느꼈던 충격과 슬픔이 온전히 떠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촛불항쟁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런 투쟁을 광주는 1980년에 외롭게, 피를 흘리며 해냈습니다. 그 의로운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가족과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전문가와 광주 시민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처절한 기억이 생생히 보존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광주를 지나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은 무엇인가. 광주처럼 지켜야 할 아픔은 무엇인가. 광주처럼 잊고 있는 것은 없는가. 저는 세월호가 그 시작이길 소망합니다. 선체와 유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오늘, 기억과 슬픔이 아직 생생한 오늘, 우리는 세월호가 어디서 어떻게 기억돼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수습과 조사가 끝나는 대로 그 기억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 훗날 우리 손자, 손녀에게 이 아픔을 그대로 전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읽기]문재인 정부 갈 길, 민의가 나침반


경향신문 (2017.06.15)

늘 그렇듯 이번 정부 인사청문회도 요란합니다. 비난과 고성이 오가고 사과와 변명이 따릅니다. 지지율이 14%인 제1 야당 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위장협치’ ‘독선’을 하고 있다며 비난을 퍼부었죠. 하지만 야당의 고함이 큰 것과는 달리 여론은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80% 안팎에 이르고 있죠. 아주 드문 일입니다. 논란이 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에 찬성이 62.1%로 반대 의견 30.4%에 두 배가 넘었습니다. 대통령의 임명강행을 주문하는 의견도 과반 이상이죠. 민의가 어디 있는지는 분명합니다.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 민주체제라는 가정을 놓고 보면 야당의 법석 떠는 모습은 이상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 기이한 풍경이 그렇게 낯설지도 않죠. 민의를 거스르는 자유한국당의 전통은 아주 오래된 탓입니다. 박근혜가 2012년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한나라당이었고, 이는 이회창이 1997년 15대 대선을 준비하며 꾸린 정당이었습니다. 그 전신인 신한국당은 1995년 김영삼이 당내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바꾼 이름이었고 그 전에는 민주자유당이었죠. 민자당은 1990년 3당 합당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 핵심인 민주정의당은 전두환의 정당으로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의 명맥을 이었습니다. 공화당은 5·16 군사정변을 주도한 군부 세력이 구 자유당 세력, 일부 시민사회단체를 흡수해 1963년 창당했죠.

굳이 독재와 총칼의 과거를 들추지 않아도 됩니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염원을 뿌리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4대강 사업을 강행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병적 독단과 저열한 음모로 헌법을 짓밟았습니다. 그의 정치보복은 정치세력을 넘어 문화예술인까지 무자비하게 짓밟았죠. 그 탓에 지지도가 4%까지 내려간 박근혜를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하겠다는 신념 하나”뿐이라며 감싼 이가 바로 자유한국당의 정우택 원내대표입니다.

억압과 의전에 익숙해져 온 사람들에게 민의는 다만 어르고 다스려야 하는 것일 뿐일지도 모르죠. 민의를 듣고 받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직도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듯합니다. 그러니 협치는 언감생심 꿈도 꾼 적이 없을 테죠. 여의도로 입성하는 첫날 한강 중간쯤에서 던져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1961년 한강 다리를 건넜을 때, 또는 1950년 인도교 폭파 때 이미 버렸을지도 모르죠.

2009년 이상적이고 젊은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게다가 첫 흑인 대통령이었으니 여러 소외계층의 기대가 컸죠.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 또한 정권 초기 협치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의료보험 개혁에 상당한 공을 들였죠. 야당이 된 공화당과 재계를 상대로 설득과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이어갔고 결국 개혁안에 한 표도 던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공화당은 오바마의 제안을 무조건 반대하는 정당으로 변모했고 오바마 정부도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죠. 애초에 그런 기대가 없었더라면, 애초에 현실을 직시했더라면 오바마 정권의 성과가 더욱 빛났을 겁니다.

자유한국당 또한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홍준표의 억지가 사그라지던 당의 불씨를 되살렸고, 청문회 분탕질에 보수층 지지가 모이는 것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20% 안팎의 지역표가 있는 이상 독단의 유전자는 활개칠 것이 분명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제 갈 길을 가야 합니다. 협치의 기억이 없어 협치할 의지도 없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 한가한 때가 아닙니다. 그 손길은 대신 그간 소외됐던 이들을 향해야 하죠. 노동자, 실업자, 성소수자, 이민자, 여성, 양심수 등의 손을 잡고 당당히 나가야 합니다. 길이 험하고 멀겠지만 도도한 민의의 물결에 몸을 싣고 가다 보면 이를 거슬러온 자의 쪽배와는 다른 내일을 맞이할 겁니다. 이는 얼마전 박근혜가 직접 보여준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죠. 그런 세상을 온전히 만드는 것이 문재인 정권의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