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25, 2019

범죄 드라마 추천 13 - Unforgotten 시즌 1 (2015)

넷플릭스에서 범죄드라마를 찾지 점점 힘들어져 아마존을 둘러보는 순간. 눈에 딱 들어온 Unforgotten. 런던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오래된 살인사건 이야기입니다.

드라마는 여러 질문을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죄의 무게는 가벼워지나? 죄인이 다른 사람이 되면, 나중에 그 사람을 알게 됐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다르게 (죄인)으로 볼 것인가? 용서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 질문에 다양한 답이 나옵니다. 긍정적 대답,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조금은 진부한 대답이 결론인듯한 인상도 줍니다. 하지만 꼭 그것 받아들일 필요는 없죠. 죄와 용서는 정말 힘든 주제인 듯 합니다. 죄 안 지은 사람이 없으니 더 그런게 아닐까요.     

좋은 배우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형사반장(?)으로 나오는 (너무나 매력적인) Nicola Walker 는 단연 이 드라마의 얼굴입니다. 주연으로서 극을 너무 잘 이끌어 가며 전체적 톤을 정합니다. 미묘한 감정의 변화도 너무 잘 그려내고요. (그녀가 조연으로 나왔던 다른 형사물 River 은 옛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 조용한 카리스마 형사역을 한 Sanjeev Bhaskar, 복잡한 심정의 목사역의 Bernard Hill (반지의 제왕에서 King Théoden역), 지칠대로 지친 용의자를 그린 Ruth Sheen  등등 저 많은, 좋은 배우들을 어떻게 다 모았나 싶은 생각이 보는 내내 들더군요.

게다가 등장인물의 깊이와 변화마저 그려냅니다. 여섯회 밖에 안 되는데 말이죠. 괜히 횟수만 늘리며 아무 발전이 없는 드라마들과 비교됩니다. 특히 이런 면에서 영국 드라마의 내공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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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을 찾고자 하는 결기가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느껴지는 점도 좋았습니다. 거기에는 피해자에 대한, 그리고 그 가족들에 대한 애정도 느껴졌고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따뜻한 드라마라는 묘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살인사건에는 공소시효가 없는 영국을 보며 한국의 여러 사건들이 떠오르며 씁쓸하기도 하고요.

내 추천: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Tuesday, May 14, 2019

범죄 드라마 리뷰 12 - Destroyer (2018)

니콜 키드먼의 디스트로이어. 주로 리뷰하는 티브이 형사물은 아니지만 한번 곱씹어 보고 싶네요. 키드먼은 외모와 사생활로 회자되곤 했습니다. 듀란듀란의 음악성이 외모에 가려진 듯, 키드먼도 연기가 좀 저평가되는 감이 있습니다. 영화 선택도 크게 도움을 준것 같지는 않고요. 출연작은 엄청 많지만, 대표작을 고르라면 딱히 좀 애매한 그런 느낌이 들죠.

이 영화가 그 대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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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한눈에도 지칠대로 지친 여형사를 마주합니다. 외모도 폭삭 늙어버렸고, 말도 겨우 이어가죠. 가족이라곤 하나 있는 딸도 완전 막 나가는 참 안쓰러운 형사. 그의 과거를 따라갑니다. 복수가 그려지고 그러면서 숨겨진 사정이 조금씩 밝혀지죠. 약간의 스마트한 반전이 있지만 무릎을 때릴 정도는 아닙니다.

이 영화는 매력은 키드먼이 그려내는 죄의식과 거기서 오는 고통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하듯 실수를 하죠. 큰 실수도 몇번 있습니다. 다행이도 보통 사람은 그래도 살아갑니다. 용서도 받고 잊기도 하죠. 보통 사람의 실수라는게 다 거기서 거기니까요. 하지만 정말 용서하기 힘든 실수도 일어납니다. 그건 스스로 용서하기 힘든 실수죠. 그런 실수를 떠안고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너무 힘들어 스스로 내려놓고싶어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크리스찬 베일이 열연했던 영화 The Machinist 도 극단적 예를 잘 보여줬죠.

이 영화는 좀더 담담하게, 그 내면의 고통을 따라갑니다. 그런 절제된 표현이 (마지막 장면 포함) 매력입니다. 감정도, 음악도, 색깔도 조금 톤다운되서 조금 더 서글프다고 할까요. 나쁜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한 인간이 나쁜 짓을 한 것일 뿐이다. 그런 사람이 뉘우치면 우리는 용서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자기 십자가를 내려놓고 싶어 괴로워하는 사람을 봅니다. 견딜 수 없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있죠. 누구나 그런 순간이 있기에 우리는 공감하고 같이 슬퍼하기도 하죠. 

정반대의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다 그 죄를 알아도 나 혼자 뻔뻔히 떳떳한 사람.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모르는 사람. 이 세상이 오해한다는 신념과 언젠가 자기 결백을 알아주리라는 믿음. 정말 저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마음이 편할까 싶은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 속을 알 수는 없죠.

다만 내가 그런 괴물이 안 되길 간절히 기도할 수 밖에요.

그리고

잘 되야겠죠. 그런 사람들 보란 듯이 잘 되서 비웃어 주면 좀 낫지 않을까요.

Thursday, May 9, 2019

책 <목호의 난: 1374 제주>

민족이란 틀에서 본 현실과 개인이 삶으로 겪은 현실은 너무나 다르다. 개인의 삶은 아무리 아파도 쉽게 잊혀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거대담론이 채운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각색되고 잊혀진다. 그리고 남는 역사는 누구의 것인지.

고려인에게 '난'이었던 '오랑캐'의 삶과 싸움이 아름답게 그려진 책. 감사히 읽었다. 개인의 서사까지 담겨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해서 좋았다. 보았던 제주의 풍경도 생각나고. 그래서 더 마음이 짠하다.

제주는, 제주의 사람들은 어찌 이리 외지인의 발톱에 계속 뜯겨야 했는지. 안타깝다. 이재수의 난, 4-3항쟁. 이제는 경제/문화적 침공. 오키나와, 하와이, 대만. 비슷한 운명의 섬들도 생각나고.

꼭 한번 읽어 보시길.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180208430

경향의 책소개도 재미있다. 이 책을 알게 된 계기. 기자가 베네딕트 앤더슨을 언급한 것이 눈에 확 띄었다. 민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했던 책 의 저자.



Thursday, May 2, 2019

[세상읽기]죽은 제갈량 일화가 떠오르는 이유

경향신문 2019.05.02

<삼국지>를 보면 당대 최고의 재상 제갈량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죽은 제갈량이 적이자 최고의 라이벌이던 사마의를 쫓아낸 일화죠.

오랜만에 들른 광화문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한 건물에 걸린 독립운동가 초상화가 크기도 했지만 너무 현대적이고 세련됐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3·1운동과 임시정부 관련 행사가 많았습니다. 100주년이어서 그랬겠지만, 민간 행사뿐 아니라 정부 주도 포럼, 전시회, 기념회 등이 열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소녀상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황사처럼 전국을 강타했죠.

모든 사상은 한계를 갖습니다. 하지만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것은 한계가 더 도드라집니다. 정체성의 경계는 인위적이지만 결국 절대적이 되니까요.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민족’은 현대국가가 세워지며 생겼죠. 순수한 혈통은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민족주의에 환호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또한 역사에 기대는 사상이다 보니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진보적 미래를 꿈꾸기에는 부족하죠.

그러니 정치판이 과거에 머무를수록 나은 미래를 기다리는 국민은 피곤합니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닌 듯합니다. 이 정부는 그릇된 과거를 타파하는 사명으로 출발했습니다. 그것에 집중하는 게 당연했죠. 덕분에 도덕적 우위를 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옳고 저쪽은 적폐라는 구분은 그렇게 그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그어진 선은 정부를 옭아맸습니다. 적폐로 지목된 이들은 물러설 곳이 없었고, 배수진을 친 이들의 저항은 치열했죠. 과거에 대한 전투가 치열할 때 거리엔 촛불이 꺼졌습니다. 은행빚과 취업난이 그 거리를 채웠죠. 싸움이 힘들어질수록 쉬운 상대가 눈에 띄는 법. 100년 전 일본만큼 만만한 상대가 있을까요. 시선은 자꾸 과거로 가고 미래에서는 멀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가졌던 과거청산의 소명은 이제 그 유효기간이 지난 듯합니다. 박근혜와 주변 인물들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정치적 영역을 벗어난 셈이죠. 이제 정치에 충실할 때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노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첫째, 정치 외연을 넓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총칼 없는 전쟁이죠. 갈등 당사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논의하는 공적 장입니다. 상대가 좋건 싫건 말이죠. 싫다고 배척하는, 내가 옳다고 외면하는 순간 정치의 영역은 좁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갈등의 당사자들은 주먹과 칼에 기댈 수도 있죠. 둘째, 정치적 미래를 제시하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싸움을 과거로 몰아가도 판을 흔들어야 합니다. 불과 1년 전 평화가 있는 미래를 보여줬을 때 국민은 열광했죠. 남북평화가 중요한 미래이지만 그것뿐이라면 곤란합니다. 문재인 정부 탓만은 아니지만, 정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쥐고 있습니다.

정치판에서 미래를 보여주지 못하고 그 판마저 좁아지면서 싸움은 국민 사이로 파고든 형국입니다. 정치적 논쟁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적 공간이 허약해집니다. 분노와 무시당했다는 감정은 해소되지 않고 쌓이기 쉽죠. 이들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고함에 쉽게 동화해 정치세력화할 수 있습니다. 벌써 그런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태극기부대죠. 오는 토요일이면 태극기집회는 122차에 접어듭니다. 그들은 열정과 확신이 있습니다. 울릉도에서 배를 타고 옵니다. 부산에서,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옵니다. 매주 오는 이도 많습니다. 사비를 털어 시위용 트럭을, 동지들 먹일 식사를 준비합니다. 명확한 비전도 갖고 있습니다. 맨주먹으로 정당을 꾸렸다는 자부심도 강합니다. 하지만 공존을, 다양성을 강조하는 진보는 이들만큼은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무시당한 이들을 모아 트럼프는 대통령이 됐죠. 브라질에서도, 독일에서도, 헝가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만 언제까지 예외일까요?

이런 와중에 자유한국당 해산 국민청원이 2일 현재 170만명에 육박한다니 걱정스럽습니다. 통합진보당 해산의 광기가 생각나는 것은 저뿐인가요? 대화와 설득은 좋아서가 아니라 대안이 없어 하는 겁니다. 하루빨리 정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미래에의 비전을 두고 싸워야 합니다.

죽은 박정희 손에 산 문재인이 실패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