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15, 2015

[시론]‘거짓말’ 그 후 - 경향신문

[시론]‘거짓말’ 그 후 - 경향신문 남태현 |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2015.02.15)



지난주 미국의 언론계는 밥 사이먼과 브라이언 윌리엄스라는 큰 별을 둘이나 잃었습니다. CBS의 사이먼 기자는 2월11일 뉴욕에서 차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외신보도를 맡아온 베테랑으로 유명했고 <추적 60분>과 비슷한 <60미니츠>라는 방송에서도 맹활약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2003년 이라크 침공 직전 거의 모든 언론인들이 애국 칵테일에 취해 이라크 지도자 사담 후세인을 9·11 공격에 옭아매던 미국 정부의 놀음에 놀아날 때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한 것으로 유명했죠. 자신과 조국을 냉정하고 정직하게 볼 줄 아는 그였기에 그의 죽음에 미국 사회의 안타까움은 더더욱 깊습니다.

NBC의 윌리엄스도 베테랑 기자로서 연봉 1000만달러, 약 110억원대의 메인뉴스 앵커로 최근까지 활약했습니다. 그 역시 이라크전을 취재했고 그 활약으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헬기를 타고 취재활동을 하던 중 포격을 당하고 비상착륙을 했다는 무용담을 늘어놓았죠. 그 일이 2003년에 있었고 2004년부터 앵커를 맡았으니 유명세가 도움이 됐으리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주 이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이 들통났고 윌리엄스 본인이 직접 뉴스에서 사과를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10일 NBC는 신뢰가 생명인 앵커의 거짓말은 용납할 수 없다며 6개월간 무보수 정직을 발표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조롱거리가 됐음은 물론입니다.

윌리엄스의 경우, 한국의 잣대로 보면 좀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크게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남에게 상처를 준 것도 아닌데, 게다가 뉴스에서 사과까지 했는데 무보수 정직은 좀 심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 잣대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잣대라는 것은 거짓말을 삼시 세끼에다 커피, 간식까지 챙겨먹는 것처럼 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생긴 것이니까요.

이완구 총리 후보자도 기대를 버리지 않고 거짓말을 토해냈습니다. 병역회피 의혹이 일자 1971년 첫 신검을 받은 홍성이 시골이라 X레이 기계가 없어서 찍지 못하고 1975년 대전에 가서 X레이를 찍어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고 변명을 했지만 이 또한 거짓말이었죠. 1971년 첫 신검을 받은 곳은 서울의 육군수도병원이고 X레이에서 ‘정상’이라고 나왔던 것입니다. 언론인을 대학 총장과 교수로 만들어줬고, 언론사와 기자들이 곤욕을 치르도록 ‘김영란법’을 통과시키겠다며 협박을 했지만 이를 부인하다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수습을 하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국회 재경위에서 활동하며 얻은 정보로 분당에서 성공적인 땅투기를 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나, 타워팰리스의 시세차익을 노리고 짧은 시일 안에 매매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 1시간당 특강료 1000만원의 황제강연을 한 것은 아니라는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해명 또한 거짓말일 수 있는 것이죠.

이완구 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을 보면 국정을 책임질 총리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소돼야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것은 계속되는 거짓말과 거짓말을 했다는 창피함도 안 보이는 뻔뻔함입니다. 어떤 총리가 될지 미래를 알 수가 없으니 그 사람의 과거를 보는 것이고 그래서 청문회를 하는 것이죠. 거짓말로 이어지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은 그가 이끄는 정부가 어떤 모습일지를 가늠하게 해줍니다.

이 정도 가지고 심한 거 아니냐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동료 국회의원들과 청와대에는 정직과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왜 중요한 것인지 NBC의 대응을 보고 곰곰이, 진지하게, 오래 생각을 해보길 권합니다. 하긴 그게 그렇게 오래 생각해야 할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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