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1, 2018

[세상읽기]제1 야당의 ‘빨갱이 딱지’ 붙이기

경향신문(2018.04.05)

총기 살인은 미국 고질병입니다. 지난 2월 플로리다의 고등학교에서 한 범인이 쏜 총탄에 17명이 사망하며 충격을 줬지만, 그 충격이 무뎌지는 지경이죠. 네 명 이상이 희생되는 ‘총기 난사’가 거의 매일 일어납니다. 그런데도 총기 규제는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정치적으로 막강한 전국총기협회가 워싱턴 정가를 꽉 잡고 있는 게 주요 요인입니다. 총기 보유를 헌법이 보장하는 탓도 있죠. 총기에 익숙한 미국인의 정서도 한 요인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를 추가하자면 미국의 탄생 그 자체입니다. 미국 팽창은 원주민에 대한 폭력을 통해 이루어졌죠. 그 탓에 미국 전역에 퍼져있던 원주민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들의 피와 눈물이 뿌려지지 않은 곳이 없죠. 살인적 폭력이 미국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승자인 백인들이 총을 사랑할 수밖에요. 총기 폭력은 미국의 원죄라 할 것입니다. 이 원죄를 씻지 않고서는 총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딱지 붙이기는 한국 고질병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의 추악하고 비열한 범죄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기가 막히되 놀랍지는 않습니다. 이명박 시장 때 이미 많은 이가 그의 저열함을 눈치챘고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의심은 이미 ‘다스’를 향하고 있었죠. 그래도 우리는 이명박을 뽑았습니다. 입맛을 다시는 그의 등짝에 붙어있던 ‘현대건설 신화’라는 딱지와 ‘장로’라는 딱지 덕이었죠.


불행히도 한국 거리는 온통 딱지투성이입니다. 재벌을 옹호해도, 신자유주의를 추구해도 ‘진보’ 딱지는 민주당 이마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백인이면 ‘미국인’으로 떠받들고 흑인은 미국인이어도 ‘깜둥이’로 멸시하죠. 한국계 미국인은 ‘미국교포’이지만 한국계 중국인은 ‘조선족’입니다. 이 중 최고(?)의 딱지는 역시 ‘빨갱이’죠.


레드벨벳이 평양에서 공연한 2018년에도 제1야당은 사회주의 개헌저지 투쟁본부를 만들고 앉아있습니다. 누구는 윤상 평양공연 예술단 음악감독을 친북인사들과 엮는 웃지 못할 비난도 했죠. 보수정권 때에는 야당을 “종북세력의 숙주” “종북 연대”라면서 조롱했고 “북한 지령에 따른다” “차라리 월북하라”며 규탄했습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통합진보당을 빨갱이로 몰아 해산시키며 그 광기의 정점을 찍었죠.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빨갱이가 아니냐는 의심에 내내 시달려야 했습니다.


모든 딱지는 이성을 메마르게 합니다. 그 때문에 한국 사회는 비극과 비극을 넘나들었죠. 빨갱이 선동에 열을 올리며 이명박, 박근혜는 정부를 노리개로 썼습니다. 그 와중에 세월호는 가라앉았죠. 신군부 독재 정부는 저항하는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 때리고, 감금하고, 고문했습니다. 안타깝게 죽어간 이는 박종철, 이한열만이 아니었죠. 그 독재 정권의 시작은 광주 학살이었습니다.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죠. 1975년 인혁당 사건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8명은 사형 확정 후 불과 18시간 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이명박이 수상해도 그냥 찍었듯, 우리는 쉬쉬하며 넘어갔습니다. 나의 안위가 당장 급했지만 그렇게라도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 조그마한 딱지라도 하나 있어야 했죠. 권력은 금방 눈치를 챘습니다. 딱지만 붙여놓으면 사람들은 딴 곳만 쳐다본다는 것을요. 그 시작은 1948년이었습니다.


그해 4월3일, 400여명의 좌익 무장봉기가 제주도를 흔들었고 미 군정과 한국 정부는 ‘빨갱이’를 소탕한다는 이름으로 초토화 작전을 벌였습니다. 3만여명을 학살했고 마을도 불살라버렸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민간인이었죠. 살아남은 이들도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감추고 침묵으로 버텼습니다. 이들의 피를 쏟고 태어난 대한민국 권력은 빨갱이 딱지에 중독됐죠. 그러니 제주의 피는 대한민국의 원죄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딴 곳만 쳐다보는 사이 뻔뻔한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오늘까지 왔습니다. 제1야당 대표는 아직도 빨갱이 딱지 덧대기에 바쁩니다. 다행히 대통령이 사과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죠. 원죄를 씻지 않고서 우리는 온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명명백백히, 숨김없이 밝히는 일이 급합니다. 온전히 씻지 못할지도 모르죠. 그래서 더 급한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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