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29, 2012

[시론] 미국의 동아시아 진출과 남북한의 미래 - 남태현

한겨레 2012.09.26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3530.html

리언 파네타 미국 국방장관이 일본, 중국, 뉴질랜드를 방문했다. 하필 대만 바로 위에 있는 댜오위다오(센카쿠) 섬을 놓고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주장으로 감정이 한창 고조될 때 이 지역을 찾은 것이다. 이런 상황을 미국이 예상했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두 나라의 영토분쟁에 묘하게 끼어들게 됐다. 하지만 파네타의 일본 방문에서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미·일 양국은 파네타의 방문을 통해 레이더 설치에 합의했다. 혼슈 북쪽에 있는 기지에 이어 미사일 방어 레이더를 하나 더 설치하는 데 기본적인 합의를 한 것이다. 이 ‘AN/TPY-2’로 불리는 레이더는 특히 탄도미사일을 겨냥한 것으로,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을 포착할 수 있다. 파네타는 이 레이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위협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는 “레이더의 설치 목적은 미국의 일본방위력을 증가시키고… 미국 본토를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지키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중국을 의식한 듯 이미 중국에 북한의 위협에 대한 미국의 걱정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북한을 겨냥한 이 레이더 설치를 두고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미·일 양국의 대북 인식이다. 계속되는 호전적 발언과 국지적 도발, 핵개발로 인해 두 나라는 북한이 ‘언제 어떤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위험한 국가’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는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두 나라 국민들 사이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 결과가 두 나라로 하여금 더더욱 안보를 걱정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똑같은 야구방망이도 야구선수가 들고 있을 때와 검은 가죽점퍼에 험상궂은 얼굴을 한 이가 들고 있을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조처는 파네타의 말대로 두 나라, 더 나아가 이 지역 안보를 위해 자연스런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는 실제 힘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다. 북한에 탄도미사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거듭된 실패에서 보이듯 아주 초보적인 수준임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면 미국엔 탄도미사일이 몇 개나 있을까? 냉전이 끝난 뒤 수천개에 이르던 것을 줄여 현재는 488개를 갖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지상 탄도미사일만을 말하는 것이고, 잠수함 탄도미사일 288개와 핵폭격기 115대 등을 뺀 숫자다. 그리고 정작 미사일에 실을 내용물, 즉 핵탄두만도 미국은 5000여개를 보유하고 있다. 10개 안쪽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초보적인 핵탄두들과는 비교 자체가 되질 않는다.

이 많아야 10개 안쪽인, 그것도 극히 초보적인 수준의 핵폭탄으로 북한이 미국 본토에 미사일 공격을 할 수 있을까? 그 순간 스스로 초토화될 것을 알면서.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을 위협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러니 이 새 레이더가 겨냥한 것은 북한만이 아닌 것이다. 정작 그 상대는 중국이라고 보는 게 맞다. 여기서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떤 설명을 쓰더라도 북한의 위협은 미국의 동아시아 진출에 좋은 구실이 된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의 진출은 중국의 군비확장과 일본의 대응을 순차적으로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강대국들 사이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한반도는 또 한번 격동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상황은 역설적으로 남북간의 긴장 완화가 절실함을 웅변하기도 한다. 새 대통령이 누가 되건 남북간의 긴장 완화는 정치적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임을 직시하길 바란다.

Friday, April 8, 2011

[왜냐면] 영어 망국병은 병이 아니라 사기다 2

[왜냐면] 영어 망국병은 병이 아니라 사기다 2 / 남태현
한겨레 기사등록 : 2011-04-08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472092.html

저의 ‘영어 망국병은 병이 아니라 사기다’(<한겨레> 3월26일치 왜냐면)라는 글을 읽고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트위트를 보내주셨습니다. 원래 해도 잘 안되는 것을 내 탓이려니 자책하며 더더욱 열심히 하고, 또 그럴수록 자신이 아닌 사회 기득권층의 권위만 더욱 세워주는 ‘사기’를 당하고 있는 이 기막힌 현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공감은 하지만 현실을 어쩔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방법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영어를 배워야 하는 중요성은 타당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국제화 시대의 중요 언어로서 그 쓰임이 확산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시각은 국제화라는 것이 ‘미국화’는 아니라는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 리비아의 내전이 세계 각지의 에너지 수급에 영향을 미치듯 우리는 분명 국제화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모든 것이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는 미국화된 세상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어의 쓰임과 필요는 한정되어 있고 영어는 그에 맞는 사람들만 하면 되는 것이죠. 소수의 잠재적 영어 우수자를 가리기 위해 사회 전체가 영어로 멍드는 것은 낭비이자 파쇼적인 현상입니다.

많은 분들이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다들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현실이, 사실은 우리를 속이고 있음을 잊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 타협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일방적인 타협일 뿐 다른 쪽에선 애초에 타협할 마음조차 없던 짝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영어가 그냥 하나의 교과 과목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독일어 같은 발음으로 영어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에, 너덜너덜해진 <성문영어>가 다였습니다. 영어를 잘해봐야 거기서 거기였고, 경쟁은 있었지만 비교적 공평했습니다. 영어도 중요했지만 국어·수학·국사도 중요했고, 어제 있었던 축구 내기와 내일 있을 농구 내기도 꽤나 중요했죠. 하지만 이제 한국의 모습을 보면 이건 사람들이 비행기 안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인 듯합니다.

요즘 한국의 영어 공부는 무슨 미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영어유치원이 있더군요. 금발의 선생님이 영어로 가르치고 아이들은 영어로 노래를 부르며 소풍을 가더군요. 이 아이들에겐 미국의 명절도 낯설지 않습니다. 저도 미국에 와서야 알게 된 핼러윈 데이가 버젓이 학교 행사입니다. 마이클, 클라라 같은 미국 이름도 있습니다. 그 부모는 물론 마이클 엄마, 클라라 아빠입니다. 가는 학교도 외국인학교입니다. 이젠 미국계 학교로 갈지, 영국계 학교로 갈지도 고를 수 있더군요. 물론 외국인이 아니어도 돈이 있으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연수도 갑니다. 휴가 때도 하와이에 해수욕을 가거나 로키산맥에서 스키를 타는 게 눈이 휘둥그레질 일이 아닙니다. 사는 게 이러하니 친구들을 만나도 “하이, 마이클”이고, 집에서 식구끼리 영어를 써도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영어는 그 집에선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주제는 미국의 어느 대학에 갈 것인가도 아닌 미국의 어느 명문 고등학교에 갈 것인가입니다. 고등학교를 고르러 미국에 가서 이곳저곳 탐방도 합니다. 학교 행사가 있을 때 고등학생 자녀들을 보러 마이클 엄마, 클라라 아빠는 태평양을 휙 건너기도 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사람들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있어도 이상하게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들은 선망의 대상이자 따라가야 할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미친 듯이 뛰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따라가자는 마음으로요. 사교육비로만 7조원을 쓰고, 나라에선 또 따로 원어민 교사를 고용하고, 영어 교사 재교육이다 뭐다 해서 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과연 저 사람들의 영어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이게 따라가지는 건가요?


한때는 명품이었던 핸드백을 너도나도 들게 되면,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더 귀하고 비싼 물건을 사서 자신들을 ‘차별’하지요. 쇼핑몰에 가면 이젠 읽기도 힘든 브랜드, 들어가기에도 멋쩍은 가게 천지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다들 영어학원을 다니면,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더 어릴 적부터 영어 공부를 시키거나 더 효과적인 그리고 비싼 방법으로 대응합니다. 하는 만큼은 따라해보지만, 빈부 차는 보통사람들의 영어 교육을 제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교육비로 가계가 흔들리고 무리한 기러기 생활로 가정이 무너져도 그렇게 시킨 영어 공부가 결국엔 그들을 따라잡는 데는 별 소용이 없는 것이죠. 보통사람들에게 영어 격차는 애초부터 극복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니 사기입니다.

혹 다들 영어에 성공했다고 칩시다. 모든 젊은이들이 ‘오렌지’ 대신 ‘어륀지’라고 하는 날이 왔다고 칩시다. 그럼 이들은 모두 성공할까요? 아닐 테죠. 또다른 무언가를 찾아 경쟁에 나서겠죠. 그리고 그 경쟁에서 있는 자들은 항상 저 멀리서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이 중국어가 됐건 독일어가 됐건 또 우리 사회는 이 사기를 되풀이할 겁니다. 그러니 영어망국병의 핵심은 영어 격차가 아닌 벌어져만 가는 빈부 격차와 이를 숨기고자 하는 정치적 최면인 듯합니다.

이것이 사기라면 사기당한 사람이 “어쩌란 말이냐”라고 묻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피해자니까요. 대신 우리는 피해를 주고 있는, 피해를 방조하고 있는 자들을 추궁해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정책은 이제까지 이 사기를 악화시키는 데 큰 일조를 했습니다. 이제라도 정부는 문제가 아닌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한편으로 정부는 영어에 대한 국가적 특혜를 없애야 할 것입니다. 학교 교육에서 영어는 하나의 외국어일 뿐임을 강조하고, 대학 입시에서도 영어를 외국어 영역의 여러 외국어 중 선택할 수 있는 한 과목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극단적이고 비뚤어진 경쟁과 갈수록 악화되는 빈부 격차가 우리 모두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가를 돌이켜보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당장 마련해야 합니다.

Friday, March 25, 2011

영어 망국병은 병이 아니라 사기다

한겨레 [왜냐면] 남태현 미국 메릴랜드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기사등록 : 2011-03-25 오후 06:21:21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469926.html

얼마 전 캐나다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만난 한국 교수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화제가 영어로 옮겨졌을 때 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영어강의 능력이 신입교원의 필수 조건이다. 프랑스에서 박사를 딴 사람도 영어로 강의를 해야 되고, 동양철학도 영어강의가 있다”는 믿기 힘든 괴담을 서울의 유명 대학의 교수에게서 들으니 기가 막혔습니다.
믿기도 힘들었죠. 그런데 정말이더군요. 한 대학의 철학과 개설 과목을 보니 ‘포스트모더니즘과 동양사상(영어강의)’, ‘형이상학특강1(영어강의)’가 있었습니다. 일이 이 정도가 되었으니 영어 망국병이라고 한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전 이것은 병이 아니라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0년에 영어 사교육비로 7조원이 쓰였답니다. 이는 수학 사교육비를 훨씬 뛰어넘고(6조원) 전체 사교육비(21조원)의 3분의 1입니다. 그리고 부산시의 2010년 예산(7조8000억)에 거의 맞먹는 엄청난 돈입니다. 학원이다, 국제중이다, 연수다 해서 어린 학생뿐 아니라 대학생, 직장인까지 영어에 광기 어린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무엇을 얻었습니까?

제 지인 하나는 미국에서 고등학교, 대학 교육을 마치고 한국에서 유명한 회사를 다닙니다. 그 회사 부장님도 영어를 매일같이 공부한다더군요. 외국인도 회사에 있고, 외국 기업과 왕래도 많아 회사에서 영어를 강조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영어로만 회의를 한답니다. 그런데 회의를 다 하고 나서 같은 회의를 또 한답니다. 이번엔 한국말로요. 아니면 제 지인에게 와서 무슨 회의를 했느냐고 물어본답니다. 물론 조용히요. 광기 시퍼런 영어 투자의 초라한 성적표입니다.

하지만 우린 자신의 초라한 영어 실력을 자책하며 영어 공부를 계속합니다. 아침 라디오를 들어도, 거리의 광고를 봐도 온통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 반복합니다. 옆집 애도 연수 갔다 오니 다른 것 같습니다. 그뿐입니까? 티브이 쇼를 봐도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가수가 나옵니다. 영어를 못하면, 내 잘못인 듯하고 자괴감은 커져만 갑니다. 하지만 이건 사기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기당한 것입니다.

영어는 우리말과 완전히 다른 언어체계이자 사고체계이기도 하고, 하나의 문화입니다. 문법을 익히고 회화를 연습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제 영어의 밑천은 대학원 수업이었습니다. 영어로 글을 쓰고 토론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식 사고와 문화를 익혀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절박함이 영어선생이었던 셈이죠. 두 시간 죽어라 공부하고 나머지 22시간, 꿈까지 한국말로 꾸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 불가능한 것을 하려니 다들 힘들고 괴롭고 돈만 듭니다. 영어는 여건이 되는 사람만, 필요한 사람만 하면 되는 것이죠. 산책을 즐기면 되지 모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한국 사회는 성공하려면 무조건 영어를 하라고 강요합니다. 심지어 동양철학을 공부하려고 해도요. 말도 안 되는 것을 왜 강요하느냐는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사전에 막는 것은 강요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숙제입니다. 너도 할 수 있다는 달콤한 사탕발림은 그들의 가장 큰 무기이자 당하는 사람들에겐 처절한 사기입니다.

그들은 영어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미국 교육으로 승진하거나 남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권력을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영어로 이미 득을 본 사람들이고 자식들에게 미국 문화를 통째로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사회 전체의 영어 숭배가 자기들의 이익인 셈이지요.

한국에서 영어의 고질적 병폐가 고쳐지지 않는 것은 교육의 문제로 보고 교육에서 답을 찾기 때문인 듯합니다. 하지만 이미 영어의 문제는 계급과 정치의 문제가 된 지 오래이고 답도 그곳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Monday, March 7, 2011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 믿기 어려워

한국일보 (와싱턴 디씨판)"이명박 대통령 지지도 믿기 어려워"
http://dc.koreatimes.com/article/648102

남태현 솔즈베리 대학 정치학 교수, MD
입력일자: 2011-03-07 (월)

한국일보 오피니언란(2월 28일자)에 실린 정진영 경희대 교수의 글 (http://dc.koreatimes.com/article/646621)을 반박하고자 한다.
정 교수의 글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한국국민의 놀라운 지지를 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50% 정도의 지지도를 얻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 지지의 주요한 원인으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그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 “적극적인 경제외교의 전개” 그리고 “한미 관계의 강화와 대북정책의 정상화”를 그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정 교수의 글은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이 썼다면 C를 주기도 힘든 글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말하는 이명박에 대한 지지도 자체가 허황되다는 점이다. 그 놀라운 50% 정도의 지지율을 보라. 이 지지율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는 한나라당 의원들조차도 의심하는 것이다. 지역구를 돌아본 많은 의원들이 수치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대통령 지지율 50%에 대해 “대체 그런 조사는 어디서 나온 거냐?(한나라당 박성효 최고위원)”는 힐난 섞인 질문이 나왔다(경향신문 2월 16일자).

더구나 지역에 따라서는 민심이반이 더욱 심하다. 그럼, 왜 이렇게 지지도와 실제 피부로 느끼는 지지의 정도가 다른 것일까? 이는 바로 여론조사 방식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여론조사는 전화로 하는데, 이는 주로 집 전화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요즘 집 전화로 전화를 하는 한국 사람은 대부분 핸드폰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에 국한된다. 그러므로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나이 많은 기존 지지층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많이 반영된 조사라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지지가 저조한 중년, 청년들의 목소리는 조사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으로, 이 대통령의 지지가 놀랍다는 그의 관찰은 학자로서는 더욱이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결론이 허황되므로, 그 결론을 입증하는 그의 논의는 더욱 허망하다. 사실 논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살펴보자.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라는 말은 도무지 무슨 소리일까. 여기 계신 동포들은 미국 뉴스를 조금이라도 보셨다면 아실 듯이, 20개국의 정상이 모였다고는 믿어지기 힘들만큼 이 정상회담은 지면을 장식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성공이라면, 아무 탈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 외에는 도대체 무엇을 이루었는지 알 수 없는 벌써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가는 아무 성과가 없는 것이었다.

“적극적인 경제외교의 전개”라는 것도 한미자유협정을 말하는 것인데, 이 또한 이대통령이 아닌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이었다. 글의 시작에 “세계 금융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건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겠다. 1997년의 위기라면, 김대중 대통령이 극복했고, 현재의 세계 금융위기라면 미국과 유럽의 위기를 말하는 것일테니까. “녹색성장”이라는 그의 표현은 사실 이 대통령도 들으면 웃을 일이다. 4대강 사업으로 강산이 파헤쳐지고 있는데 이걸 녹색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억지나 무지다.

“한미관계의 강화와 대북정책의 정상화” 또한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일 수 없다. 한미 관계는 미국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이지 한국의 대통령이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은 손을 들고 미국에 굴복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대북정책의 정상화 또한 정 교수의 안목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북한에 적대적이건 아니건, 현재 이명박의 정책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그의 정책은 결국 평화를 지키는데 실패했고, 이를 가리켜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태풍으로 무너진 집터에 남아 짖고 있는 개를 보고 집 잘 지켰다고 칭찬하는 것과 같다.

말도 안 되는 근거로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뒷받침하려는 정 교수의 글은 정말이지 말이 안 된다. 평생 공부와 글쓰기로 시간을 보낸 정진영 교수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형편없는 글이 한국 어디도 아닌, 이 먼 타향에 실린 이유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Sunday, December 19, 2010

[주장] 남북통일, 해야 하나? 남태현

오마이뉴스 2010.12.17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94742

합동참모본부가 18-21일 연평도 일원에서 해상사격 훈련을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한 가운데, 연평도에서 장병들이 해안 순찰을 하고 있는 사진이 실렸습니다. 그 장병들은 통일이라고 씌여 있는 노란띠를 철모에 두르고들 있었습니다. 이 시점에 젊은 장병들을 통해 정부가 말하고 있는 통일은 무엇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없습니다. 긴장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역설적이게도 통일은 최근들어 정부의 화두가 되는 듯 싶습니다. 말레지아를 방문중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다"면서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통일이 어떤 것인지, 정당성이 있는지를 논하는 목소리는 정부 안팎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습니다.

남북통일이 정당한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흐르도록 교육 받아온 탓일 겁니다. 통일이란 말이 언제나 가슴 벅차게 들리는 것은, 한민족으로서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갈라져서, 서로 총을 겨누웠고, 덕택에 남과 북, 모두 군사독제하에 허덕인 대중으로선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때문에 통일은 정말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선 진지한 토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은 크지 않습니다. 기껏 있는 토론도, 왜 젊은이들은 통일에 대한 의지가 점점 없어지는가 걱정이다, 왜이러는가, 정도로 머물러왔습니다. 하지만, 왜 통일을 해야하나요?

"외세에 의해 수백년간 지속되온 단일정치체제가 부당하게 남북으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이 슬픈 역사는 물론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이혼한 부부더러 한때같이 살았으므로 무조건 다시 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이혼하고 십년 이십년이 지난 부부가 합치는 것, 쉬울까요? 되려 생뚱맞지 않나요? 남과 북은 한때 한나라였지만, 이제는 엄연히 다른 나라입니다.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는 물론이고, 문화적으로도 둘은 너무나 다릅니다. 어휘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듣는 음악도 다르며, 쉬는 날도 다르고, 즐기는 스포츠도 다릅니다. 한민족이라고 말하기에도 쉽지 않아보입니다. 우리는 저들의 주체사상이 우습고, 그들은 우리의 물질숭배가 한심합니다. 한때 한 나라였다는 역사의 기억이 있지만, 그 기억마저 이젠 개개인의 것이 아닌 교과서의 그것으로 남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옛기억으로만으로 합치기엔 남북은 너무나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통일은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많은 분들이 경제적 혜택을 말씀하십니다. 특히 군사비가 적게 들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통일이 됐다고 군지도자들이 과연 자발적으로 군을 축소할까요? 이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위해서 군의 자주국방과 현대화를 최대한 방해한 주범들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건, 통일된 나라건 아니건, 이들은 현재와 같이 낭비가 심한 거대한 군대를 유지하는 것이 밥그릇과 직결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들에게는 북한이 아니더라도 좋은 변명 꺼리는 충분합니다. 중국의 정치적, 군사적 팽창이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고, 다른 쪽에선 일본의 재무장이 공공연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미국이 통일된 한국이 평화를 추구하게 놔둘리가 만무합니다.

한국 산업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결국 북한의 싼 노동력을 남한의 자본이 착취하자라는 말입니다. 남한의 재벌들은 쾌재를 부르겠지요. 말도 통하는 양질의 노동자. 가까우니 물류비도 줄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남한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를 보면, 통일되 한국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보이지 않나요? 갑자기 들어닥친 빈부격차로 인한 그들의 고통은 놀랍고도 뼈저린 것일 것입니다. 또한 남한의 노동자들도 북한 노동자들과 결국엔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질 것입니다. 결국 통일의 경제적 공헌이 있다면, 그것은 남북 민중의 것이기 힘들 것입니다.

"통일은 정치적, 군사적 안정을 가져다준다." 특히나 연평도 사태 이후 통일을 더 절실히 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연평도 사태에서 보듯 긴장은 두 나라가 갈라저서 생긴것이 아닙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캐나다와 미국으로 갈라지고, 1812년 전쟁을 치루었죠. 하지만 이들은 지금 너무나 가까운 이웃입니다. 말레지아와 싱가포르가 나누어 ?어도 군사적 긴장은 높지 않습니다. 즉, 나라가 나뉘였다는 것이 바로 정치적, 군사적 위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평도 사태에서 보듯, 두 나라간의 긴장은 두 나라 지도자들의 정치적 이해가 긴장을 원함으로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긴장의 완화를 정치적으로 추구하면 원하는 군사적 안정은 찾아집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좋은 예라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두 나라를 합치는 것, 즉 통일이 정치, 군사적 안정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희망은 희망일 뿐입니다.

통일은 반드시 평화와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요? 되려, 내전으로 한쪽이 완전히 승리해서 상대방을 굴복시켜 통합하지 않는 한, 두 세력은 나누어져 있는 것이 또 다른 군사적 충돌을 피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실제로 통일을 이룬 예맨은 다시 내전을 겪었고, 나눔을 선택한 아일랜드와 영국은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어떻게하면 잘 나눌까하는 문제로 아직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면, 남북이 공존하고 있는 것은 부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돌아 보더라도 평화와 신뢰가 전무한 상태에서 통일의 논의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드리대게 하는 구실 노릇만 하고 있습니다. 북은 남의 흡수통일이 두려워서 전쟁을 준비하고, 남은 북의 적화통일이 두려워 전쟁을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는 곧 남북간 긴장을 높혔습니다. 즉, 통일에의 열망이 오히려 평화를 이룩하는데 방해가 된 셈입니다. 특히나, 천암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의 앙금이 채 가라앉지도 않은 이 시점에서의 현정부의 통일에대한 희망어린 전망은 북측을 자극해서 남북간 긴장만 더 높히기 쉽습니다.

남북통일은 필요한가요? 남북통일이 남북간의 평화보다 더 중요한 것인가요? 캐나다와 미국처럼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해 같이 번영하는 것, 오히려 더 값지고 더욱 실현 가능한 미래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대통령은 자신의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뒤로 하고, 북한을 자극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조롱하기보다는, 남북간 평화와 공영을 모색하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야할 것입니다.

Friday, November 26, 2010

연평도 사태의 정치적 해결

한겨레 2010/11/27

[왜냐면] 연평도 사태의 정치적 해결 / 남태현

국익을 걱정하는 지도자라면
무력의 대결을 마치고
정치의 장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남쪽이 먼저 손내밀어야 합니다

연평도 사태에 대한 논의가 분분합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확전을 못한 것이 안타까워 언성을 높이고, 대통령도 발언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들은 말뿐입니다. 입에서 침이 튀고, 얼굴은 분노로 벌게지지만, 그걸로 끝이죠. 정작 바쁜 것은 미국입니다. 미 항공모함이 올 예정입니다. 물론 이지스함, 구축함들이 따라옵니다. 그 화력은 웬만한 나라의 그것 이상이죠.
미국의 이러한 결정은 이번 사태를 진정시킬 수도, 확대시킬 수도 있는 중요한 군사적, 정치적 변수입니다. 안타깝게도, 동시에 한국의 지도자들이나 국군은 또다시 종속변수로 전락하는 꼴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군사적 사태로 치닫게 되면 우리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주국방을 입으로만 외치면서 정작 자주국방을 애써 회피한 군 지도자들과 현 정부 덕에, 위기 상황에 국군을 의지하기보다는 미 통치권자의 입을 바라보는 처지이기 때문이죠.

이번 사태는 수습되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한-미 통상 문제와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이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는 지금, 우리는 미국에 목소리를 내기 더 힘들어질 것이 뻔합니다. 우리의 국익을 정말 걱정한 지도자라면 하루 속히 이 상황을 정치 문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즉 말로 싸우고 말로 해결하는 상황이 와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 이미 우리 모두 경험한 것입니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대북 정치력은 남북관계를 호전시켰을 뿐 아니라 미국의 입김을 제어하는 데도 큰 몫을 했습니다. 국민들은 북으로 피서를 갔고 출근을 했습니다. 이런 정치적 성공의 산물을 현 정부는 애써 외면하고 있고, 덕분에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계속 더 꼬여만 갑니다.

어떻게 정치 문제로 전환할 수 있을까요? 그 시작은 문제의 근원을 바라보는 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원지는 바로 남북간 영토분쟁에 있습니다. 전쟁은 끝이 났지만, 우리는 아직 영토분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바로 서해가 그곳입니다. 연평도를 시작으로 서해 5도는 남북 모두가 자기 영토로 여기는 곳입니다. 전후, 합의가 아닌 미국의 일방적 선언으로 북방한계선이 그어졌고, 남쪽의 실질적 지배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합의가 없었던 만큼 북쪽은 이를 부정해왔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1999년 서해 5도를 북에 포함시키는 해상군사경계선을 일방적으로 공표합니다. 결국 양쪽의 일방적인 주장들은 서해교전으로 이어지고 이번 사태를 불러왔습니다.

남한은 서해 5도의 이런 분쟁에 대해 별반 대책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실질적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현상 유지가 대책이어서겠지요. 아쉬운 쪽은 북한이고 우리가 알 바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대책을 논하는 사람은 현상 유지를 반대하는 사람으로, 곧 북한을 동조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이런 모순은 어느 영토분쟁에서나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정착촌 내 유태인들은 정치적 해결을 원하는 다른 유태인들을 나라의 혼을 팔아먹는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덕택에 이스라엘은 점점 국제정치에서 고립되어 가고, 폭력과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치력이 부재한 자리는 폭력이 드셀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또다른 예입니다.


남과 북은 아무 답이 없는 무력의 대결을 마치고 정치의 장으로 되돌아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쉬울 것이 좀 덜한 남쪽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서해 5도이어야겠습니다. 어떠한 형태로의 합의이건 두 나라의 통일보다는 쉽지 않을까요?

거창한 통일의 구호는 접고, 정치를 통한 평화만이라도 구축할 수 있는 지도력을 기대합니다.

남태현 미국 메릴랜드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Saturday, October 30, 2010

OhMyNews [주장] 구차한 개헌 논의, 하루 빨리 끝내자

2010.10.30 16:15 ⓒ 2010 OhmyNews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70074

[주장] 구차한 개헌 논의, 하루 빨리 끝내자
남태현 (polisci) 기자

최근 한 토론회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검토할 가치가 있다, 다만 다음 정권에 가서 개헌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최근의 개헌논의는 집권세력이 그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구차한 발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개헌 논의가 구차합니다. 그 이유를 살펴봅니다.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또 개헌 논의는 유력한 정치인의 소신 피력으로 계속 되다가 서로의 진정성을 매도하며 슬그머니 사라질 것 같습니다. 모두 자신의 정치적 계산만 하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는 것,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면, 또 유권자들은 으레 그려려니하며 쓴웃음을 짓거나 무심하게 넘어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정치적 계산 없이는 이런 논의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적 술수를 부린다고 욕하면서 언제까지고 정치인들의 진정성만 논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인의 진정성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가 요즘 말하듯 박정희의 진정성이 복지국가 건설에 있었든 아니든 알 수 없는 노릇이죠. 그보다는 그의 행위, 예를 들어 군사정권의 전통을 세웠다든가 노동탄압의 기원을 열었다든가 하는 것을 보고 그를 평가하는 것이죠. 김대중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다만 그가 한 것, 예를 들어 남북 관계를 개선한 것을 보는 것이죠. 그러므로 누구의 진정성을 알 수 없으므로 반대한다는 식의 주장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알맹이가 없는 주장이자, 현재의 개헌 논의가 구차한 첫째 이유입니다.

정치권내 개헌의 논의는 대충 두 안으로 좁혀집니다. 분권형 대통령제와 4년 연임제가 그것이지요. 하지만,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총리에게 많은 권한을 내주는 분권형 대통령제도 말이 좋아 분권이지 운영하기에 따라서는 드골의 프랑스나 푸틴의 러시아처럼 대통령의 권한이 오히려 더욱 거대해 질 수 있습니다.

4년 중임제 또한 한 개인이 행정의 전권을 독점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들, 특히 대권후보들은 이 두 제도를 선호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고 싶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식으로는 개헌을 설사 한다해도 우리가 지금 지긋지긋해 하는, 그리고 정작 없애고자 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전횡을 막는 것은 제도적으로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안들이 문제를 해결할 듯 공허하게 주장되는 것은 현재의 개헌 논의가 구차한 두 번째 이유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문제가 없는 제도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합의와 그에 맞는 선택을 함으로써 그 제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그의 단점은 모두가 치러야할 값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사회가 헌법을 통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지난 정치사를 잠시만 돌아보아도 우리네 정치지도자들은 정말 무섭게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방직후에는 서로 폭력과 살인도 서슴지 않았고, 전쟁통에는 국민을 짐승처럼 처단하기도 했죠. 전쟁은 끝이 났어도 전쟁같은 정치는 계속됐습니다. 폭력은 피를 뿌렸고 고문은 비명을 불렀습니다.

수백만 호남사람들은 순식간에 간사한 놈들이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바보가 되었습니다. 광주는 피바다가 되었고, 청송은 생지옥이 되었습니다. 우리네 백성이 믿고 따르기엔 위정자들의 왕좌를 향한 정쟁은 너무나도 서슬이 퍼렇지 않았습니까? 덕택에 우리는 선거랍시고 해도 누가 잘하고 못 하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내 편이냐가 유일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덩달아 우리도 치열한 정쟁에 휘말렸습니다. 이러니 국민은 정말 피곤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편안하고 따를 수 있는 정치, 그리고 그것을 위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이에 대한 자각이 없는 듯합니다. 현재의 개헌 논의가 구차한 세 번째 이유입니다.

문제는 이런 구차한 논의를 탈피 하루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한 개인의 야심과 무능으로 정치를 좌지우지하게 하는 대통령을 없앨 수 있는, 화합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할 수있는 정치제도를 만드는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에겐 정치화합이라는 역사적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