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2, 2014

[기고]‘대통령 희화’를 허하라

[기고]‘대통령 희화’를 허하라 - 남태현
경향신문 2014-06-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6012030465&code=990304

미국은 풍자의 천국입니다. TV에서 코미디언들이 정치인들을 희화화하는 것은 흔하디흔한 일입니다.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죠. 인터넷에서 오바마의 사진을 찾아보면 온갖 희화와 조롱이 난무합니다. 심한 것은 화제가 되기도 하고 오바마 또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아무 일 없이 넘어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전임자인 부시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죠. 심지어 1년에 한 번 백악관이 백악관 출입기자들을 모아 만찬을 여는 자리에서 코미디언이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것이 백악관의 전통이기도 합니다.

그런 풍자를 거의 20년을 보아서 이제는 일상적으로 느끼지만 처음에는 나라의 지도자를 저렇게까지 해도 되나 걱정 반, 부러움 반의 심정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나라님인데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처음에 가졌던 그런 생각은 애초에 잘못되었던 것입니다. 대통령은 나라님이 아니었으니 말이죠.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안 볼 때는 나라님 욕도 한다죠. 거꾸로 보면 볼 때는 하면 안된다는 소립니다. 이제는 그냥 하는 소리가 됐지만 옛날에는 정말 큰일 날 일이었습니다. 나라님을 바꾸는 공론만으로도 삼대가 멸하는 조선이었죠. 왕조시대엔 동서 어디나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도 비슷한 곳이 있습니다. 멀리 아랍의 왕조국가들까지 갈 것도 없이 가까운 데 있는 태국만 가도 국왕을 욕하면 15년형에 처해질 수 있고 실제로 이 법으로 반정부 인사들이 처벌을 받기도 하죠.

이들 국가는 나라의 주권이 왕조의 정통성에 근거하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들입니다. 조선왕조는 말할 것도 없고, 헌법이 국민주권을 명시한 태국 같은 경우에도 정치문화가 왕조와 주권을 동일시하다시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체제에서는 왕을 욕하고 풍자하는 것은 나라 전체를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처벌이 정당화되는 근거죠.

하지만 국가의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체제에서는 정부 지도자를 희화화하는 것은 나라를 욕되게 하는 것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한 사람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위임받았기에, 다른 국민에 비해 많은 권력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희화와 조롱에 너그러워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자리입니다. 미국의 대통령들이 그런 조롱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권력에 아무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희화와 조롱에 발끈하는 대통령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첫째로 민주체제의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라님이라도 됐거나, 나라님을 모시고 있는 듯한 착각을 갖게 되면 자신 또는 그분에 대한 어떠한 희화나 조롱도 참을 수가 없을 수 있습니다. 나라님인데요. 대통령 개인에 대한 조롱이 아닌 나라 전체의 조롱인 셈이 되는 것이죠. 언성이 높아지는 것이 이해가 갑니다.

둘째로 이들은 국민의 조롱에 신경이 쓰이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건 자신의 권력이 포스터나, 코미디, 농담 등으로 약화되었거나,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죠.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정당성에 자신이 없거나, 정당성이 약화되었다고 판단을 했을 수 있죠. 어찌되었건 그런 판단을 했다면 조롱이 실제로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정당성이 더욱 약화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그들로서는 그런 조롱을 막는 것이 심각한 정치적 사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민주체제의 원칙에 충실하고,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으로써, 자신에 대한 희화나 조롱에 신경을 쓰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대통령들이, 그런 대통령을 갖고 있는 국민들이 무척이나 부러운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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