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1, 2014

고승덕 후보 딸의 ‘폭로’와 한국의 ‘패거리 문화’

고승덕 후보 딸의 ‘폭로’와 한국의 ‘패거리 문화’ - 남태현
인사이트 2014-06-01

http://insight.co.kr/content.php?Idx=3345&Code1=001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딸 고희경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우리 남매를 버리고 돌보지 않은 내 아버지 고승덕은 서울시교육감 후보로서 자격이 없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지방선거가 며칠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고 후보로서는 더욱 당황스러울 것이고 앞으로 논란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고희경씨의 주장에 고승덕 후보도 할 말이 있을테죠. 진실이라는 것은 항상 주관적인 것이므로 양측의 주장을 들어보고 잘 판단을 할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딸이 아버지를 비판했다는 것입니다.

고희경씨의 이름은 캔디 고로서 미국에서 성장하고 미국에서 생활을 하는 듯 합니다. 실제로 고씨의 글도 간결하고 명확한, 좋은 영어로 작성이 되었습니다. 고씨의 지적에 따르면 고후보는 가족을 돌보는데 일체 도움을 주지 않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금전적 도움은 고사하고 옆을 지켜주지도 않았고 연락조차 완전히 끊은 채, 사실상 두 자녀와 처를 완전히 내팽개친 것으로 보입니다. 고씨의 주장은 이러한 고 후보의 개인적 행위를 볼 때 다른 자리도 아닌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으로서 고후보는 적합지 않다는 것이죠.

이러한 비판은 고후보의 자질을 검토하는 데 중요한 단서의 일부이며 유권자로서 꼭 알아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고씨가 한국에서 자라고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면 이와 같은 비판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가능했겠죠. 하지만 여러분 모두가 짐작하시듯, 그 가능성이라는 것은 사실 한여름 해운대에서 군고구마 찾는 것만큼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본인의 아버지가 헛점이 너무나 많아 공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도 그것을 말하지 못하는 한국의 풍토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본능적으로 나를 낳아준 사람에 대한 연민의식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한국사회에 오래 뿌리를 내린 소위 유교적 전통에 따른 부모 공경의 의무감또한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 집단을 배신한 개인에 대한 처벌에 대한 두려움도 한국에선 중요한 것이죠. 이런 식의 공포는 사실 조폭들 뿐 아니라 조직을 중요시 하는 한국사회 전반에 깔려있습니다. 선배를 무시한 후배, 고참을 깐 신참, 상사를 재낀 회사원들의 삶이 고달픈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일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들은 조직의 화합을 해쳤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형태의 형벌을 받습니다. 더우기 형벌은 그 집단 내에서 그치지 않는 경우도 드물지 않죠. 덕택에 집단의 단결은 공고해 지지만 집단의 결함 또한 깊어지는 까닭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집단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은 갖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던저버리지 못합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니까요. 게다가 적당히 굴러갈 때 떨어지는 떡고물 (연대감, 술자리, 자리, 이권 등) 또한 작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어쩌다 한번씩 보는 영웅적 굴레 던저버리기에 환호하게 됩니다. 히딩크 감독의 서열무시에 우리는 찬사를 보냈고, 박칼린의 합리적 지도력에 감탄했습니다. 이들 모두 연줄, 서열 등을 무시한 채 개개인의 능력만을 보았고 이를 통해 오히려 그 집단의 성공을 이끌어 냈다는데 새삼 놀랐던 것이죠.

이들의 리더십을 배우자는 열기는 뜨거웠지만 냄비처럼 식어버렸습니다. 우리의 집단에의 중독은 그리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오늘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집단의 중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하는 것을요. 일의 능률과 옳고 그름은 뒷전이 되고 우정과 의리가 쌓이고 쌓여 우리는 세월호 참극을 맞았습니다. 끊임없는 향응과 접대로 쌓아온 집단의식은 그 어떤 규제와 법률, 양심도 무너뜨릴만큼 지독했습니다.

“우리가 남이가"로 유명한 정치의식 또한 마친가지입니다. 정치지도자의 공과는 상관없이 우리편만 찍어온 우리내의 정치는 이제 우리를 짓밟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남을 욕할 일일까요? 한국 사회에서 집단의 중독에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요?

우리가 절실한 것은 이 집단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이가" 대신 “우리가 남은 아니지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남은 아니지만 잘못한 것을 지적하고 토론하고 고처가고, 심지어는 법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남은 아니지만 산은 산이라하고 물은 물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 이의 세월호 참사, 제 이의 삼풍 백화점 붕괴, 제 이의 성수대교 붕괴가 멀지 않은 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고희경씨에게 힘든 결정을 한 것에 대한 감사와, 아버지가 없어 느꼈던 고통에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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