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이성적인 사람들의 정치 - 남태현
인사이트 2014-01-14
http://insight.co.kr/content.php?Idx=473&Code1=001뉴스를 보면 ‘사람의 탈을 쓰고 어쩜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탄식을 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건 제 정신이 아냐’, ‘미친 거지’ 하고 혀를 차는 것 또한 흔한 일입니다. 멀리는 딱 20년 전 지존파의 엽기적인 연쇄살인행각이 있었고 작년에도 용인에서 엽기 살인이 있었습니다. 모두 도저히 제정신으로 했다고는 믿기지 않는 범행들이었죠. 하지만 과연 제정신이 아니고 미친 사람들이나 끔찍한 일을 하는 것일까요?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테러 용의자들을 상대로 고문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나 침대에 꼼짝할 수 없이 누워 얼굴을 천으로 가린 채 물을 얼굴에 부어 숨을 쉴 수 없게 하고 따라서 죽음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물고문(Waterboarding)은 그중 악명 높은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정부는 이를 고문이라는 용어 대신 ‘강력한 조사기법’이라고 부르며 합법화 했었죠. 십여 년이 지났지만 고문을 주도했던 미중앙정보국(CIA)의 당시 변호사 존 리죠는 올해 초 한 인터뷰에서 그 조사기법들은 그 당시에도 고문이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미법무부에서 고문이라고 했다면 중앙정보국이 그런 기법을 이용했을 리가 없다고 단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은 미국 내 다수의 목소리에 반하는 것이죠. 미국 내 인권단체까지 볼 것도 없고 우선 오바마 대통령부터 이러한 기법을 ‘고문’이라고 했고 더군다나 미군이 적군의 고문을 소개하는 문건을 보아도 그 ‘강력한 조사기법’들을 고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중들 또한 대테러전 초기만 하더라도 이를 고문으로 보는데 주저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조사가 고문이라는 데에 많은 공감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이런 논란을 다 떠나서 자신이 그런 조사를 받을 상상을 해보면 누구라도 몸서리를 칠 것입니다. 자연히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차분한 목소리로 고문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리죠의 인터뷰는 어찌 보면 참으로 끔찍한 것입니다. 미친 사람도 아니고 아이비리그인 브라운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도 유명한 조지와싱턴 법대를 나온 수재가 고문을 정당화하는 주장을 마치 법의 정의를 말하듯 하고 있으니까요.
리죠를 비롯한 부시 행정부의 지도자들의 이러한 확신에 찬 지휘하에서 감금, 고문, 살인, 사체유기 등 끔찍한 범행이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자행되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막가파’의 만행은 댈 것도 아니었던 것이죠. 이는 자연히 미국의 대테러 전쟁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했고 미정부에 대한 신뢰마저 추락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들은 고문과 더불어 정치체제를 약화시키는 이중의 심각한 죄를 저지른 셈인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끔찍한 비극은 미치거나 나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을 해하기 힘든 상황에 있고 정신질환으로 인해 상해를 가하는 경우에도 그 피해는 대부분 극히 제한적입니다. 나쁜 사람도 나빠서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을 해서 나쁜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일 뿐입니다. 정말 나쁜 일은 대부분 지극히 평범하고 정상적이며 착한 사람들이 벌이죠. 그리고 그 나쁜 정도가 더한 경우—피해자가 수천수만에 이르는 전쟁과 같은 예—는 비범하고 영특한 나라의 엘리트가 벌이는 경우가 거의 다입니다.
둘째는 너무 끔찍해서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라 해도 사회 어느 구석에서는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문이 한 인간을 파괴하는 끔찍한 공권력의 행사임에도 미국사람들의 많은 수가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고문을 지지한 것은 좋은 예입니다. 더욱이 아직도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안타깝지만 그런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한민국, 정상적인 민주체제?
그런 면에서 1월 6일 하루에 접한 일련의 보도는 한국은 역시 사람 사는 냄새가 정말 진하게 나는 곳임을 새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자신을 선출한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권위주의적 행보를 거듭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간신히 마련한 기자회견에서도 “불법으로 막 떼를 쓰면 적당히 받아들이곤 했는데 이런 비정상적 관행에 대해 원칙적으로 대응하는 걸 ‘소통이 안돼서 그렇다’고 말하는 건 저는 잘못이라고 생각한다”며 소통인지 호통인지 애매한 말들을 이어갔습니다. 김무성 의원은 “교육부의 엄격한 검정을 거쳐 통과된 역사 교과서를 전교조의 테러에 의해 채택되지 않는 나라는 자유대한민국으로 볼 수 없다”며 테러와 자유의 정의를 재정립했습니다.
그날 한 보수단체 회원이 권총과 실탄을 허리춤에 버젓이 차고 한 반정부 시위대를 위협하는 사진도 보도가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민주체제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일들이었죠. 실망과 개탄의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당연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날의 뉴스는 하지만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들의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행위이기에 더욱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즉 정신이 나간 사람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더 무서운 것이죠.
모두들 자유대한민국을 지킨다는 확신이 있기에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해도, 불법선거를 방치해도, 공존을 거부해도, 역사를 왜곡해도 웃으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확신이 있기에 이들은 자신들이 그 동안 애써 쌓아온 소통, 공정한 선거, 공존, 민족의 역사, 즉 한마디로 민주체제의 초석을 하나하나 파괴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민주체제와 그 전통이 파괴되지는 않았지만 그에 하루 더 가까워진 것이죠.
대한민국의 민주체제는 오늘 아주 안녕치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