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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February 1, 2018

[세상읽기]내각제가 ‘촛불혁명’에 걸맞은 이유

경향신문(2018.02.01)

개헌 논의를 이어 가보겠습니다. 지난 칼럼을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분권이 힘들 수 있다고 지적했죠. 더불어 논의되는 내각제는 여론조사에서 늘 꼴찌입니다. 촛불혁명의 의미를 고려할 때 내각제가 가장 알맞은 정부 형태임을 보면 이 또한 정치의 아이러니라 할까요.

2013년 체코의 네차스 총리가 사임했습니다. 임기를 마친 게 아니라 논란에 휩싸여 더 이상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죠. 최측근들이 군 정보국에 이혼 중에 있던 총리 부인을 감시하라고 명령했고 거액의 뇌물수수 등 전횡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의회 해산, 총선이 이어졌고 야당이 승리하며 정권교체가 재빠르게 이루어졌습니다. 네차스 정부의 전횡은 박근혜 집단에 비하면 그 규모나 죄질이 동네 길고양이 수준이었지만 말이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보가 기가 막힌 지는 참 오래됐었습니다. 정당성에 대한 의심은 대선이 채 치러지기 전에 시작됐죠. 언론 통제 등 권력 남용이 뻔히 지속됐습니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한탄과 눈물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JTBC에서 ‘최순실 태블릿피시’가 발견되기까지, 박근혜는 끄떡없었습니다. 그러고도 박근혜는 끝까지 버텼습니다. 100만의 인파가 차가운 광장을 뜨겁게 달구고서야 정치권이 간신히 움직였죠. 한국 민주제도의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제도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했죠.

그 짓거리를 하고도 그렇게 오래 버텼다는 게 한계입니다. 이르면 대선의 정당성이 의심됐을 때, 늦어도 세월호 참사 때는 정부를 갈아치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헌법은 대통령의 5년 임기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는 버틸 수 있었고, 버텼기에 국정은 망가져 버렸습니다. 현 제도하에서 대통령은 마치 수능을 끝낸 학생과 비슷합니다. 시험이 없으면 공부할 맛이 안 나죠. 이미 권력의 정점에 와있고 더 이상 선거 걱정도 없는 정치인, 즉 대통령도 남 눈치 볼 이유가 없습니다. 최고 권력자도 국민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의원내각제에는 있습니다. 체코 총리가 스스로 물러난 구조적 배경은 민-의회-정부-총리, 이렇게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권력 구도였습니다. 유권자는 정당에 투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석수를 나눕니다. 다수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그 당의 리더가 정부 수반이 됩니다. 여기에 유럽식 선거법을 더하면 다당제 의회가 보통이 되죠. 자연히 한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정당연합을 꾸려 다수를 만들면 정부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합을 이룬 정당들의 끊임없는 타협과 양보는 필수적이죠. 정부는 의회의 과반을 등에 업고 있으니 일하기도 쉽습니다.

반대로 의회의 신임을 잃으면 정부는 무너지게 됩니다. 물론 총리도 마찬가지죠. 자리를 잃는 것은 간단합니다. 의회가 불신임안을 처리하면 됩니다. 보통 때라면 힘들지만 민심이 싸늘해지면 사정은 돌변합니다. 야당은 불신임안을 처리하자고 목청을 높이고, 여당 측에서도 눈치를 살피다 등을 돌리는 일이 생기죠. 즉 정부와 총리의 해고 가능성이 실존합니다. 아무리 권력의 정점에 있는 총리라도 내각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원내각제가 좋지만 우리 정당의 행태를 보면 아직 안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는 앞뒤가 바뀐 지적일지도 모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살아남은 지금의 정당을 바라보고 하는 소리니까요. 제도를 바꾸면 정당들은 빠르게 탈바꿈할 겁니다. 반대로 정당이 지금 같으면 4년 중임제를 해도 대통령에게 끌려다닐 테니까요.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제를 도입한 이는 이승만과 박정희입니다. 특히 박정희는 쿠데타로 의원내각제 정부의 제2공화국을 무너뜨렸죠. 박정희가 파괴한 민주주의의 꿈을 되살릴 때가 왔습니다. 다양한 생각이 경쟁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합니다. 성장한 정당들이 권력을 갖고 제왕이 아니라 인민의 편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 촛불혁명에 맞는 이유입니다.

2012년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책임제가 훨씬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대부분 나라들이 내각책임제를 하고 있다”고 한 당시 문재인 후보의 말을 문재인 대통령이 잊지 않았길 바랍니다.

Thursday, December 7, 2017

[세상읽기]분권형 대통령제엔 분권이 없다

경향신문 2017.12.07

지난 11월 국회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투표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도 11월 말 논의를 시작했죠. 일정이 빠듯하지만, 개헌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커녕 특위 내 논의마저 아직 시작 단계입니다. 개헌의 주요 주제인 정부 형태는 정치 전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기본적 이해조차 부족하죠. 어떤 형태가 있는지, 그 효과는 어떤지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국민투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대통령으로의 권력 집중과 5년 단임으로 요약할 수 있는 현 체제의 수명이 다했다는 공감은 있습니다. 재선 걱정이 없는 대통령이 권력을 멋대로 휘둘러도 막기 힘들다는 것을 박근혜가 몸소 보여줬죠. 문제는 대안입니다. 지난 대선 전 문재인 후보는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제시했고 안철수 후보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했습니다. 홍준표 후보는 이 둘을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했죠. 문재인 대통령의 복안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분권형 대통령제의 면모를 포함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이 분권형 대통령제가 개헌 후 정부 형태의 큰 뼈대가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이원집정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 제도의 핵심은 국민이 직접 선거하는 대통령의 존재,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의회에 책임을 지는 총리와 정부의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정부 권력을 대통령과 총리가 나누고 동시에 의회의 행정부 견제를 강화할 길을 열어 놓았죠. 흔히 대통령은 국가원수직과 외교·안보·국방 정책 등을 담당하며, 총리는 내정을 맡는 형태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온전히 맞지도 않습니다.

우선 분권이라는 말이 문제입니다. 이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를 보면 대통령과 총리의 권력 배분은 정치적 배분이지 헌법적 강제력은 거의 없으니까요. 정치적 사정에 따라 분권이 일어나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죠. 여당이 총선에서 패하면 분권이 가능합니다. 우선 대통령의 총리 지명이 야당 주도의 의회에서 통과가 안됩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의회를 장악한 야당 지도자를 총리로 임명할 수밖에요. 복잡한 정치적 타협이 이어지고 이에 따라 행정부 권한도 나눠집니다. 하지만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카리스마적 리더가 대통령이 되고 그 여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 대통령은 자기 수하를 총리로 지명하고 의회는 이를 수용합니다. 그러면 대통령은 행정부를 오롯이 지휘하고 의회마저 휘두를 수 있습니다. 분권은커녕 거의 독재에 가까운 대통령이 나올 수 있죠. 오늘날 러시아는 좋은 예입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총리를 압도하는, 제왕적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즉 분권형 대통령제는 분권을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 그 반대죠. 그러므로 대통령 권력을 축소한다는 오늘날 한국의 시대 요구와 맞지 않습니다.

게다가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은 오늘날과 비슷한 정부 형태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되고 있습니다(67조 1항). 정부를 주도하는 총리 또한 존재합니다. 그리고 총리임명에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점도 명시돼 있습니다(86조). 국회가 총리 해임을 할 수는 없지만 건의할 수는 있습니다(63조). 즉 최소한 제도적으로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우리는 이미 갖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현 제도로도 정치적 조건만 맞으면 분권은 가능합니다. 실제로 김종필 전 총리는 김대중 정부의 대주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후보 시절부터 ‘책임총리제’를 통해 권력을 분산하겠다고 여러 번 밝혔죠.

결론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은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데 맞지 않고 굳이 필요치도 않습니다. 이를 대단한 개혁인 양 말하는 것이 의아할 수밖에요. 의아함과 의심을 해소할 활발한 개헌 논의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Thursday, September 28, 2017

개헌 생각 01)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개헌 논의가 심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권력형태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죠.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개헌의 이런 저런 면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우선 현제도의 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권력을 의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나누는 제도죠. 1958년 프랑스 드골이 들고나온 5공화국 제도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고요.

‘분권형 대통령제’(semi-presidential government) 논의 선구자인 뒤베르제의 개념은 이렇습니다.
1.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선거권 행사로 선출.
2.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의 권한과 함께 상당한 실권을 보유.
3. 대통령과는 별도로 그 직이 의회의 선출권과 불신임권에 의해 유지되는 총리 및 장관들로 구성되는 행정부가 존재.

이걸 좀 더 살을 붙이면:
1.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선거권 행사로 선출 (대통령이 직접 선출됐으니 허수아비가 아니다)
2. 둘째,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의 권한과 함께 상당한 실권을 보유 (허수아비가 아닐 뿐 아니라 강력한 권한을 지닌다)
3. 대통령과는 별도로 그 직이 전적으로 의회의 선출권과 불신임권에 의해 유지되는 총리 및 장관들로 구성되는 행정부가 존재 (행정부 권한을 총리와 나눈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다만 의회의 지지가 필요하죠. 분권형 대통령제는 이름이 암시하듯 행정부 권력을 대통령과 총리가 나누는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흔히 대통령은 국가 원수직과 이른바 외치 영역에 해당하는 외교·안보·국방 정책 등을 담당하며, 총리는 내정과 관련된 그 나머지 정책들을 모두 맡는 형태를 생각하지만, 그것도 정치적 배분이지 법적 강제력은 없습니다.

권력의 분배가 제도적이 아니라 정치적이다 보니 분권이 잘 안 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적 리더가 대통령이 되고 그 대통령의 정당이 의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죠. 대통령은 자기 수하를 총리로 임명할 테고 의회는 당연히 임명안을 통과할 겁니다. 나랏일, 정부 운영, 의회 활동까지 그 카리스마적 리더가 다 챙길 수 있죠.

한 극단적 예를 들자면 러시아가 좋겠습니다. 현재 러시아 대통령인 푸틴이 잠시 총리로 물러나 있을 때 메드베데프 대통령(현재 총리)이 실권을 행사하려다 큰 코를 다쳤죠. 반대로 푸틴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총리를 압도하는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권력분배가 별 의미가 없죠. 푸틴의 정당, United Russia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떡 주무르듯 합니다.

이런 상황은 사실 이상하지 않습니다. 제도의 창안자인 프랑스의 드골이라는 카리스마적 리더가 제왕적 대통령을 꿈꾸면 고안한 제도니까요. 드골은 2차대전 이후 4공화국이 의원내각제를 받아들이자 이를 반대했습니다. 이후 정치위기가 이어지면서 공화국은 결국 붕괴했고 드골은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5공화국 건설을 주도했습니다. 즉 권력을 나누기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 그 반대죠. (프랑스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할 권한도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를 비롯한 비슷한 사정의 구소련 나라들이 이 제도를 선호한 겁니다.

다른 극단적 예는 프랑스처럼 대통령의 정당이 총선에서 지는 경우입니다. 대통령이 임명은 하지만 의회에서 승인이 안 되니 울고 겨자 먹기로 야당 지도자를 총리로 임명할 수밖에 없고 그런 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으로 권력을 실제로 나누죠.

한국 내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여기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앞서 살펴본 대로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려는 개헌의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공산이 크다는 점입니다. 드골처럼 제왕적으로 될 수도 있고 푸틴처럼 독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제에서의 총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정치적 현실에 따라 그 독립성의 크기는 왔다 갔다 합니다. 다당제 도입, 대통령과 총리 간 협의의 제도화 등 보안책을 제시하지만 기본 틀을 바꾸기엔 역부족(협의 제도화)이거나 상관없어(다당제) 보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이 얼마만큼 변화를 줄까 하는 점을 고려해 보죠. 앞서 살펴본 분권형 대통령제의 정의를 또 한 번 들춰보겠습니다.

1.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선거권 행사로 선출.
"제67조 ①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2. 둘째,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의 권한과 함께 상당한 실권을 보유.
외교(73조), 국군 통수(74조), 대통령령(75조)과 그 외 법률 효력의 명령 발동 (76조), 계엄 선포(77조), 공무원 임명(78조), 사면 복권(79조) 등등 광범위한 권위 보장.

3. 대통령과는 별도로 그 직이 전적으로 의회의 선출권과 불신임권에 의해 유지되는 총리 및 장관들로 구성되는 행정부가 존재.
제86조 ①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63조 ①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제65조 ①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 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제87조 ①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쉽게 말해 처음 두 사항은 현재 헌법이 이미 충족하고 있습니다. 즉 국민 직접 뽑는 대통령(조건 1)이 실권이 있죠(조건 2). 조건 3도 상당히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일단 총리가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게다가 총리임명에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점도 명시돼 있죠. 국회가 총리 해임할 수는 없지만 건의할 수는 있습니다. 총리 임명과 해임에 의회의 입김이 작용한다고 봐야죠. (문재인 정부 첫 총리로 이낙연 총리 인준이 통과됐지만, 간신히 됐습니다. 하지만 이전 정부에는 낙마의 쓴 잔을 본 후보도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도 분권형 대통령제를 이미 갖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권력의 분립이 안 되니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이는 제도적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문제에 가깝습니다. 즉 한국에서도 정치적 타협만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는 가능하다는 말이죠. 김종필 총리는 김대중 정부의 대주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예를 곱씹어 볼 만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총리도 그 예로 거론됩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후보 시절부터 '책임총리제'를 통해 권력을 분산하겠다고 여러 번 밝혔죠.

분권형 대통령제는 개헌이 굳이 필요치 않으니 개헌 논의의 한 대안으로는 적합지 않습니다.

Monday, November 14, 2016

[왜냐면] 또 다른 박근혜를 막아야 합니다

한겨레 (2016.11.14)

드디어 사임했습니다. 최측근 권력 남용이 문제였죠. 여기에 뇌물 등 여러 혐의가 겹치며 여론이 악화됐고 더는 버틸 수 없었습니다.

2013년 6월 체코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페트르 네차스 총리 최측근이자 연인이었던 나기오바가 이혼 중이던 총리 부인을 감시하기 위해 공권력을 쓴 것이 큰 쟁점이었습니다. 뇌물 등 비리도 있었지만, 권력을 사유화했던 나기오바의 전횡은 공분을 샀죠.

체코 국민의 분노가 이해는 가지만 어디 우리 분노만 할까요. 그 분노는 광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두 주말 연속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잠을 자는 공주처럼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거국중립을 미끼로 시간을 끌고 있죠. 민주당 지도부도 하야, 탄핵, 거국내각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우리의 분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공권력 개입으로 선거의 정당성을 훼손했고 오만으로 남북관계의 파탄을 낳았습니다. 무능으로 국정운영은 무너졌고 무관심은 목숨을 앗아가기까지 했죠. 취업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경제성장률도 크게 둔화했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크게 위축됐고 사상의 자유마저 침해를 받았습니다. 관제 데모가 되살아났고 공작 정치도 판을 쳤죠. 이제 국민이 준 권력을 남에게 던져주고 놀이하듯 사리사욕을 채웠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헌법을 통째로 뒤흔든 그런 대통령을 몰아내는 게 이렇게 힘들다는 게 우리를 분노케 합니다.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지만 몇몇 검사의 판단과 의지에만 기대야 하는 이 현실이 우리를 분노케 합니다. 힘없는 이들은 죽이고 재벌들은 살렸지만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대통령의 미소가 우리를 분노케 합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임에도 체코 총리가 사임한 데에는 정치체제가 이를 강제했기 때문입니다. 체코도 다른 유럽국가들처럼 비례선거제도와 의원내각제를 바탕으로 민주체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권자는 의회선거만 하고 여기서 과반을 얻은 정당 또는 정당 연합이 정부를 꾸립니다. 비례선거 덕에 한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정당 연합이 주로 그 일을 하죠. 이렇게 꾸려진 정부의 수반, 즉 총리는 그 과반의 의석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반의 지지를 잃으면 정부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니까요.

권력을 잃을 가능성이 제도화돼 있으니 항상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의 마음입니다. 연합 내 소수정당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체코에서처럼 말이죠. 체코 민심이 싸늘해지자 연합정부를 이루던 다른 정당들로서는 불안했습니다. 그런 총리를 감쌌다가는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참패할 것이 뻔했고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차스 총리가 인격이 더 훌륭해서 자리에 물러난 것이 아닙니다. 정치체제가 정부 수반을 정치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스위치를 국민에게 줬기 때문이죠.

박근혜는 곧 물러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박근혜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를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부를 해고할 힘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의 헌법으로는 그럴 힘이 없죠. 개헌해야 합니다. 그 개헌은 의원내각제를 향해야 합니다.

의원내각제가 익숙지 않은 듯하지만 이미 시행했었습니다. 바로 독재자 이승만을 몰아낸 4·19혁명의 기운으로 말이죠. 일인독재를 막기 위해 시작한 의원내각제 민주체제는 일인독재를 꿈꾸던 박정희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박근혜는 예를 찾아보기 힘든 유령독재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덕택에 그 아비가 파괴한 의회주의 전통을 되살릴 기회를 준 셈이죠. 국민의 정부 파면 권력을 되찾을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Monday, December 1, 2014

수능과 개헌

학력고사를 보고 난 이후가 생각납니다. 물론 기말고사가 남아있었지만 인고의 세월을 보낸 피끓는 학생들의 해방감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죠. 세월은 흘러 학력고사는 수능으로 바뀌고 입시도 복잡해지긴 했지만 수능 다음날의 상황은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수능이 또 끝났습니다. 정답논의가 또 일어났듯, 수험생 사정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 합니다.한쪽에서는 이곳저곳을 몰려다니며 못다한 유흥을 이어나고 다른쪽에서는 여행을 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겠죠. 등교를 해도 잠을 자거나 멍하니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지친 것은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측도 단축수업이나 각종 변칙운영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학부모들도 애들을 학교에 굳이 보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이때입니다. 교육청에서 아무리 공문을 내려보내고 대응책을 마련해도,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을 통제하기란 쉽지 않죠.

수능이라는 커다란 시험을 향해 달려온 모든이들에게는 더 이상 학업에 매달릴 여력도 없거니와 그럴 이유도 없는것이 사실입니다. 시험이 없는 학생이 공부할 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의 탈선을 묵인해 주는 것 일테죠. 돌아보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군대 가기전 휴학생, 전역을 코앞에 둔 말년병장, 은퇴를 오늘내일하는 직장인 등이 있죠. 모두들 일을 열심히 할 뚜렷한 이유가 없고, 그걸 주변에서도 알고 있다는 것이 비슷합니다.

여기에 추가할 또 하나의 부류가 있습니다. 바로 ‘선거 없는 정치인’입니다. 공부를 아무리 잘 하고 성실한 학생이여도 시험이 있어야 공부하는 것처럼 아무리 착한 정치인이라도 선거가 있어야 유권자들에게 몸을 낮추는 것입니다. 수능이 끝나면 공부할 의욕도, 이유도 없어지는 것이 학생이듯, 선거가 없으면 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의욕과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 정치인이죠. 그러니 아무리 민을 향해 도도하고 권위적이여도 다음 선거가 없으면 유권자들로서는 답답할지만 딱히 어쩔 수가 없는 것이죠. 한국엔 제도적으로 그런 정치인이 딱 하나 있습니다. 한번의 임기로 끝이 나는, 재선이 없는 대통령이죠.



민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낮추려고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도 치를 선거가 없으면 점점 민에서 멀어지기 쉽습니다.애초에 그럴 생각조차 없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다면 그것이 더 빨리, 더 염치없게, 더 확실하게 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필요한 것은 바로 대통령에게 시험을 되찾아 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선거 이전의 겸손을 되찾게 또는 애초에 잃지 않도록 강제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죠. 답은 개헌입니다. 4년 중임제면 중간고사가있는 셈이여 낫고, 내각제이면 시험의 불안이 항시 있어 더 좋겠죠.

개헌논의가 정국을 혼란케 하니 논의를할 수 없다는 말은 수능을 마친 학생이 할일도 많은데 학기말 시험이 왠말이냐고 불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 나와도 정국의 핵이 될 개헌논의는 이를 수록 좋고 시험이 많은 방향으로 끝나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기왕이면 박정희가 파괴한 제이공화국의 의원내각제를 박근혜의 손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Saturday, October 30, 2010

OhMyNews [주장] 구차한 개헌 논의, 하루 빨리 끝내자

2010.10.30 16:15 ⓒ 2010 OhmyNews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70074

[주장] 구차한 개헌 논의, 하루 빨리 끝내자
남태현 (polisci) 기자

최근 한 토론회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검토할 가치가 있다, 다만 다음 정권에 가서 개헌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최근의 개헌논의는 집권세력이 그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구차한 발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개헌 논의가 구차합니다. 그 이유를 살펴봅니다.

언제나처럼 이번에도 또 개헌 논의는 유력한 정치인의 소신 피력으로 계속 되다가 서로의 진정성을 매도하며 슬그머니 사라질 것 같습니다. 모두 자신의 정치적 계산만 하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는 것,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면, 또 유권자들은 으레 그려려니하며 쓴웃음을 짓거나 무심하게 넘어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정치적 계산 없이는 이런 논의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적 술수를 부린다고 욕하면서 언제까지고 정치인들의 진정성만 논할 수는 없습니다. 정치인의 진정성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가 요즘 말하듯 박정희의 진정성이 복지국가 건설에 있었든 아니든 알 수 없는 노릇이죠. 그보다는 그의 행위, 예를 들어 군사정권의 전통을 세웠다든가 노동탄압의 기원을 열었다든가 하는 것을 보고 그를 평가하는 것이죠. 김대중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압니까? 다만 그가 한 것, 예를 들어 남북 관계를 개선한 것을 보는 것이죠. 그러므로 누구의 진정성을 알 수 없으므로 반대한다는 식의 주장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알맹이가 없는 주장이자, 현재의 개헌 논의가 구차한 첫째 이유입니다.

정치권내 개헌의 논의는 대충 두 안으로 좁혀집니다. 분권형 대통령제와 4년 연임제가 그것이지요. 하지만,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총리에게 많은 권한을 내주는 분권형 대통령제도 말이 좋아 분권이지 운영하기에 따라서는 드골의 프랑스나 푸틴의 러시아처럼 대통령의 권한이 오히려 더욱 거대해 질 수 있습니다.

4년 중임제 또한 한 개인이 행정의 전권을 독점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인들, 특히 대권후보들은 이 두 제도를 선호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고 싶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이러한 식으로는 개헌을 설사 한다해도 우리가 지금 지긋지긋해 하는, 그리고 정작 없애고자 하는, 제왕적 대통령의 전횡을 막는 것은 제도적으로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안들이 문제를 해결할 듯 공허하게 주장되는 것은 현재의 개헌 논의가 구차한 두 번째 이유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문제가 없는 제도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합의와 그에 맞는 선택을 함으로써 그 제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그의 단점은 모두가 치러야할 값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사회가 헌법을 통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지난 정치사를 잠시만 돌아보아도 우리네 정치지도자들은 정말 무섭게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방직후에는 서로 폭력과 살인도 서슴지 않았고, 전쟁통에는 국민을 짐승처럼 처단하기도 했죠. 전쟁은 끝이 났어도 전쟁같은 정치는 계속됐습니다. 폭력은 피를 뿌렸고 고문은 비명을 불렀습니다.

수백만 호남사람들은 순식간에 간사한 놈들이 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바보가 되었습니다. 광주는 피바다가 되었고, 청송은 생지옥이 되었습니다. 우리네 백성이 믿고 따르기엔 위정자들의 왕좌를 향한 정쟁은 너무나도 서슬이 퍼렇지 않았습니까? 덕택에 우리는 선거랍시고 해도 누가 잘하고 못 하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내 편이냐가 유일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덩달아 우리도 치열한 정쟁에 휘말렸습니다. 이러니 국민은 정말 피곤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편안하고 따를 수 있는 정치, 그리고 그것을 위한 제도입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이에 대한 자각이 없는 듯합니다. 현재의 개헌 논의가 구차한 세 번째 이유입니다.

문제는 이런 구차한 논의를 탈피 하루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 빨리, 한 개인의 야심과 무능으로 정치를 좌지우지하게 하는 대통령을 없앨 수 있는, 화합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할 수있는 정치제도를 만드는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에겐 정치화합이라는 역사적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