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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October 8, 2020

미국 정치 이야기 #7, 권위주의의 그림자

 11월 선거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트럼프 재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전국적으로 10% 가량 앞서고 있고 선거의 판을 가를 경합주의 대부분이 아닌 전부에서 앞서고 있습니다. 이는 TV토론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토론을 완전히 망치고, 트럼프 본인이 코로나에 걸리면서 둑이 터지는 분위기입니다. 이제는 공화당 텃밭마저 걱정하는 분위기입니다. 조지아에서 바이든이 근소하게 앞서고, 텍사스에서도 동률입니다. 텍사스를 내어주면 역사적 선거가 될겁니다. 바이든의 승리가 아니라 앞도적 승리도 가능하죠. 

물론 2016년에도 전문가들이 이런 소리를 하다 큰 코 다쳤죠. 그래서 이번에는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저번만한 예측의 오류가 있다는 가정을 해도 바이든이 앞서고 있습니다. 코로나사태가 끝날 기미가 없고, 경제도 불안합니다. 그럴수록 트럼프의 언행도 더할수 없이 상스럽고 위협적이 되가고 있죠. 막 던지다 하나 걸려라는 식인데 그럴 수록 대중은 더 차가와지고 있습니다. 파국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선거 패배로만 끝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트럼프는 갑니다. 이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말이죠. 하지만 트럼프가 바꿔놓은 정치지형은 한동안 지속될겁니다. 그는 극우를 정치무대 한가운데 올려놓았습니다. 그들이 쉽게 내려갈 턱이 없죠. 이들을 이용해 정치적 성공을 맛본 정치인들중 누군가는 트럼프 행태를 이어갈겁니다. 극단적이고 황당한 음모론자도 공화당 티켓을 땄죠. 아마 의회에 진출할 겁니다. 기존의 정치인들도 극우에 놀아나고 있죠. 

극우의 성장은 장외에서도 큰 골치거리입니다. 인권운동을 견제하기 위해 무장을 한채 거리를 활보하고 대통령과 경찰은 이들을 환영했습니다. 이런 무리 중 하나는 심지어 미시건주지사를 납치하려다 체포됐죠. 이들은 스스로 극우로 보지 않습니다. 상인들의 재산과 공공의 안녕을 지킨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죠. 이들의 의도가 무엇이건 그 결과는 뻔합니다. 국내정치의 혼란은 가중되고, 극우의 정치공간만 넓어지고 있죠. 

한국의 정치깡패, 무장집단들은 이승만을 도왔고 정치퇴행을 가져왔습니다. 공공연한 위협과 폭행 뿐 아니라 암살도 서슴치 않았죠. 서청처럼 대규모 군사작전에 참여해 학살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 여파는 작지만 아직도 느껴집니다. 

트럼프가 저질러 놓은 정치만행덕에 미국은 시험에 들었습니다. 11월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치워야할 똥이 너무 많고 그 악취는 너무 독합니다. 바이든 정부가 과연 얼마만큼 치울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양분된 미국사회가 그 노력에 과연 동참할까요. 트럼프를 아직도 지지하는 40%의 유권자들은 이를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니 청소에 적극적이지 않을테죠. 그래서 그 그늘은 아주 길고 굉장히 어두울 듯 합니다. 트럼프가 보여준 것은 스스로의 기행뿐만 아니라 그 기행의 무대인 어두운 미국 사회의 맨얼굴이었습니다. 

Sunday, June 2, 2019

[세상읽기]‘공당 대표’ 황교안을 위한 기도

경향신문 (2019.05.30)

한 사람의 내면은 치열한 싸움 속에서 드러납니다. 그 싸움은 어딘가를 엄숙하게 향하기도 하죠.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던 고상돈이나 모두가 꺼리던 소록도를 향하던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싸움이 그랬습니다. 때로는 무엇인가를 반대하기 위한 싸움도 합니다. 하얼빈 역에서 방아쇠를 당기던 안중근의 손길, 1987년 종로 한 골목길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소녀의 눈물, 뻔히 질 것을 알며 부산으로 내려가던 한 정치인의 발길에는 아무 말 없어도 그 사람의 진심이 보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고개를 숙이게 되죠.

황교안도 진심을 솔직히 드러냈습니다.

5월17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반대한다 … 정치적 입장에서도 동성애는 우리가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하며 교육을 통해 동성애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했죠. 정체성 이슈인 동성애를 선택의 문제로 본 그릇된 시각보다 그 배경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의 반대, 그의 싸움이 어디 있는가. 바로 성경입니다.

2017년 한 기독교 강연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니죠. 황교안은 정치인이기 이전에 “50년 동안 주일 예배를 단 한번도 빠진 적이” 없는 독실한 기독교 전도사입니다. 검사 시절에도 부임하는 곳마다 예배 모임을 만들어 ‘검찰 복음화’를 외쳤죠. 가난하고 공부도 못했던 자기가 관직에 오른 것도, 총리 시절 가뭄을 극복한 것도, 법안 통과도 예수 덕이라며 자기 믿음을 자랑했다죠. 다른 종교를 어떻게 보는지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 한 절을 찾은 황교안은 합장도, 예법에 따른 반배도, 의식 참여도 거부했죠. 내 신만 정당하고 그의 가르침 그대로, 온전히 따르며 세상과의 타협을 반대한다는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시각을 기독교 근본주의라고 하죠.

어떤 종교건 근본주의가 활개를 칠 때는 정치적 이유가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디 왕가처럼 권력을 유지하고 공고히 하는 데 쓰곤 하죠. 정부가 역할을 못하면 그 공백을 채우기도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가자지구의 하마스가 그런 경우죠. 정책으로 승부가 안되니 종교를 동원해 표를 모으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 인도 모디 총리가 그랬고 미국의 공화당도 그랬습니다. 미국 공화당은 기독교 세력을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낙태, 동성애 등 가치 이슈를 들고나와 보수 기독교 표를 쓸어 모았죠. 덕택에 공화당은 부자 배를 불리는 경제정책을 내면서도 가난한 다수의 표를 끌어모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 삶은 점점 힘들어지고 그럴수록 성서의 외침을 더 크게 틀어댔죠. 대립과 불신은 커갔습니다. 극단적 정파성은 최근 유례가 없을 정도로 깊어져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교활한 정치가 공화당 자기 발등마저 찍고 있습니다. 극우 정치에는 종교와 가치뿐 정책이 상관이 없죠. 그러다 보니 정책에 무지하고 목소리만 큰 사람이 활개를 칠 판을 깔아준 셈이 되었죠. 거기에 트럼프가 등장한 겁니다. 이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어 공화당 주류를 다 삼켜버렸습니다. 하긴 공포정치와 전쟁도 벌어지는 마당에 이런 종교의 폐해는 얌전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문제는 심각합니다.

어떤 종교를 따르고 그 믿음이 근본주의적일지 아닐지 선택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교회가 아닌 공당의 대표라면 좀 생각해봐야겠죠. 황교안이, 자유한국당의 정책과 주장이 공익을 해치면서 자기 믿음만 따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당대표직을 맡은 지 두세달 만에 근본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는 듯한 황교안의 행보가 걱정스럽습니다. 다른 종교를 무시하는 것과 다른 정치세력을 무시하는 것. 자기 신만 신이라는 환상과 좌파독재를 물리쳐야 한다는 환상. 과연 무관한 것일까요?

그냥 정치적 레토릭일 뿐 그의 종교적 신념과 아무 상관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주 고약한 길로 황교안은 향하고 있으니까요. 사상과 지역 갈등으로 찢긴 나라를 종교로 또 나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 일 없게 정화수 떠 놓고 간절히 기도라도 해야겠습니다.

Monday, February 18, 2019

미국 정치 이야기 #6, 비상사태 선포

결국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했죠.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은 선거 공약의 핵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하원을 민주당에게 빼앗기고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리자 장벽 카드를 빼냈습니다. 물론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이 50억 달러가 넘는 예산을 승인할리가 만무했죠. 트럼트는 정부를 셧다운하는 벼랑끝 전술을 썼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이후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은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민주당은 14억 달러를 장벽에 쓰라고 예산을 편성했죠. 트럼프는 마지못해 예산안에 서명했고 또다른 정부셧다운은 피했습니다. 대신 비상사태를 선포한거죠.

비상사태는 말 그대로 비상사태에 대통령이 선포해왔습니다. 9/11 공격 뒤처럼 말이죠. 그 위기를 공감하는게 보통이여서 정치적 논란은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죠.

첫째, 비상사태라고 할 만한 위기가 국경에 없습니다. 국경은 평화롭습니다. 밀입국자의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죠. 트럼프가 말하는 테러리스트, 마약 등은 국경을 몰래 건너는 사람들이 아닌 합법적 경로를 통해 몰래 들어오는게 훨씬 많습니다. 즉 위기는 허상인거죠.

둘째, 그 허상 덕에 정작 중요한 위기는 전혀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가짜라며 폄하하고 총기문제는 완전히 방치하고 있죠. 공화, 민주 모두가 찬성하는 인프라 구축은 논의조차 안 되고 있습니다.

셋째, 트럼프 스스로도 이 조치가 당장 필요한게 아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른 방법도 있지만 장벽을 빨리 지으려고 선포한거다라고 했죠. 그것도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그 자리(참 이상하고 기괴한 회견)에서 말입니다. 스스로 위기가 없음을 고백한 꼴이 됐습니다.

넷째, 그나마 트럼프가 하자는 대로 해도 그 장벽은 그가 말하던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굉장한 것이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국경은 1954 마일. 그 중 654 마일 (맨 오른쪽 옅은 파란색)은 이미 장벽이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통과한 예산 14억 달러로는 55마일쯤 (짙은 파란색) 새로 쌓을 수 있죠. 트럼프가 요구한 대로 57억 달러(이 숫자도 한참 오락가락했죠)를 통과했어도 234마일 정도밖에 지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군비를 유용하니 정작 써야될 때 예산이 모자랄 수 있어 걱정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 특유의 쌩깜을 시전했죠. "학교? 국경이 안전한게 학생들에게도 나아."

다섯째, 헌법상 명확한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조치입니다. 정부 지갑은 의회 고유 권한입니다. 그런데 의회가 돈을 안 쓰니 내가 알아서 쓰겠다는 셈인것이죠. 긴급조치 등 유신정권이나 독재국가에서 흔히 보는 수법입니다. 그래서 미국 정계는 당황하고 있습니다. 공화당측도 나중에 민주당 대통령이 비슷하게 할 수 있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나섰죠.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것인가? 민주당은 두 갈래 대응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첫째, 의회 차원의 대응입니다. 의회에서 비상사태를 거부하는 안을 체결할 수 있습니다. 공화당 상원의원이 몇명이나 동참할 것인가가 관건이죠. 이게 극복이 되도 문제는 남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의회안을 대통령이 서명해야합니다. 이를 거부하면 의회의 2/3가 찬성해야 합니다. 쉽지 않죠. 두번째, 법원(어느 쪽으로 판결 내던 힘든 결정이 될 전망입니다)을 통해 소송전을 펼지는 겁니다. 벌써 여기저기서 말이 나오고 있죠. 민주당이 직접 할 수도 있고, 텍사스 등 땅을 빼앗길 주민이 할 수도 있습니다. 어째 되건 최종 판결은 대법원까지 갈테고, 많은 시간이 흐를 겁니다.

정치적으로 트럼프는 쉽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오르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고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게 새로운 것도 아니죠. 이런 상황은 쭉 계속돼왔습니다. 지지율도 35%를 왔다갔다 하며 유지하고 있고요. 뭘해도 끄떡없는 지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당장 이번에도 장벽은 시작도 못 했지만 시작했다, 끝을 내자며 정치전을 벌이고 지지자는 환호하는 기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지만 트럼프 지지층에게는 잘 먹히고 있습니다. 문제는 공화당이죠. 당장 이 년 후 선거를 어떻게 치러야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대통령을 따르자니 중도층 표를 잃을 걱정. 거스르자니 예비선거에서 트럼프충성 후보에 밀릴 수 있는 걱정. 계산이 복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허풍과 억압으로 정계를 휩쓸고 있는 대통령. 하지만 한 방에 훅 갈 수 있는 가능성도 있죠. 그게 뭘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요.

Tuesday, January 29, 2019

미국 정치 이야기 #5, 미연방정부 셧다운 계산서

연방정부가 실질적으로 문을 연 오늘 (1월 29일) 상원 정보위에서는 흥미로운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FBI, CIA, 그리고 National Intelligence 국장들이 출석해 안보 위협에 관한 보고를 했죠. 이들은 북한과 이란의 위협을 진단했습니다. 북한 정권은 핵무기를 정권 안정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행정부 내에서 북핵 포기가 힘들거란 전망이 이렇게 공식적으로 나온 것은 최근에 드문 일이였습니다. 반대로 이란은 핵무기 포기에 관한 국제협약을 준수하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후보 시절부터 트럼프는 이란과의 협상을 비난했죠. 트럼프 행정부는 협약을 박차고 나오며 이란이 핵무기를 계발하고 있다고 목청을 높혔습니다. 반대로 김정은 위원장과는 밀월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즉 오늘의 청문회는 이들의 상관인 대통령의 평가를 공개적으로 뒤집은 셈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장악력이 흔들린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미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는 트럼프에게 치명적으로 보입니다. 2020년 대선전이 멀기는 하지만  그 시작이여서 부담이 될 수 밖에요. 그는 늘 '협상의 달인'이라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았죠. 하지만 이번 협상은 그가 겁박과 협박에 이은 구슬리기 말고는 아무 전략이 없음을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그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준 펠로시 의장이 여성이라는 면도 마초 성향의 지지자들에게는 감점요인일겁니다.  다양한 목소리와 정치 이데올로기를 품은 민주당의 대오가 흐트러질만도 했지만 펠소시 의장의 지도력이 이를 막고 대통령을 효과적으로 상대했대는 평가를 받습니다.

때마침 트럼프 골프장 등에서 이민자들을 불법으로 고용했었음이 밝혀졌죠. 트럼프가 욕했던 이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이민자들이 우리 취업자리를 뺏고 있다! 멕시코 국경 장벽로 이들을 막아야한다! 근데 정작 자기 사업체가 이들을 고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뮬러 특별 검사의 대통령 측근에 대한 조사가 점점 열기를 더해하고 있습니다. 며칠전에는 트럼프의 오랜 친구이자 참모인 로저 스톤이 체포됐죠. 곧 결과가 나오리나는 전망입니다. 그러면 정치적으로 트럼프에겐 큰 상처가 될겁니다.




한 여론 조사를 보면 지지율은 37%대로 내려갔고 반대한다는 의견이 58%를 넘어섰습니다. 이미 공화당 상원의원들도 재선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이들은 셧다운을 반대했었습니다. 트럼프의 국정 장악력이 더 떨어지면 당 내 반대의 목소리도 커질 겁니다.

그 순간이 오면 트럼프 행정부는 아무 일도 못하는 상태를 맞겠죠.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는 감이 드네요.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체를 더 이상 외면하긴 힘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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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역시나 트럼프 대통령의 반론이 트윗으로 나왔습니다.

정보조직이 이란에 대해서 수동적이고 수동적이라고 꼬집고 학교로 돌아가 공부나 더 하라고 쏘아 붙혔습니다. 나중에 백악관으로 불러 수습을 하긴 했지만 중부를 휩쓸고 있는 북극발 추위만큼 그 사이가 얼어붙었다는 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화당 상원의원들도 서서히 트럼프의 명을 거스르는 움직임이 포착됐죠. 없던 일은 아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그 파장은 점점 더 커지지 않을까 합니다.



Friday, January 25, 2019

미국 정치 이야기 #4, 연방정부 셧다운

지금 막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정부 셧다운을 끝낼 법안에 서명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 미국의 셧다운은 의회가 보낸 정부예산안을 대통령이 서명하지 않아 생기죠. 가끔씩 있는 일인데 이번에는 여러모로 논란이 컸습니다.

첫째, 이 사태가 무려 35일이나 지속됐죠. 최장 기록입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셧다운을 위협/사용하는 사례가 늘었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예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특히 오늘은 금요일로 연방정부 노동자들이 두 번째 급여를 못 받는 날입니다. 미국은 통상 연봉을 나누어 두 주에 한번, 금요일에 받는데 오늘이 그 금요일이였던거죠. 80만여명의 직원들이 급여도 못받고 일을 했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습니다. 강제로 출근하니 사기도 떨어지고 교통비 등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고생하는 이도 많았습니다. 원성이 자자했죠. 비행장 안전 요원, 국제청 직원, 국방경비대 등 생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이들이 곤란을 많이 받으며 걱정을 더했습니다. 더우기 비행 관체탑 근무자들의 안위도 걱정이였죠. 항공안전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라고 단호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디씨 등 연방정부 노동자가 많은 곳 경기 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도 문제였죠. 사태가 길어질수록 백악관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대통령이 무릎을 꿇은 셈이죠.

둘째, 이런 고통이 별 일도 아닌 일로 불거졌습니다.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 지역이 위기 상황이다며 거짓 협박을 이어갔습니다. 멕시코 등에서 이민자가 막 몰려온다, 범죄자다, 테러범도 있다, 이들이 넘어와 국가안보가 흔들리다. 이런 말도 안되는 주장을 되풀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장벽을 지어야한다며 5억 달러를 예산안에 편성하라며 생때를 썼죠. 사실 그런 위기는 없습니다. 이민자의 수는 오히려 줄고 있죠. 이민자들의 범죄율은 오히려 낮습니다. 게다가 정작 기후 변화등 진짜 위기는 무시하고 있죠. 생때도 이런 생때가 없습니다.

셋째, 트럼프 행정부 지도층의 선민의식이 잘 들어났습니다. 안 그래도 직,간접적으로 고생이 많고 국민들 걱정이 깊어가는데 "밥 없으면 빵 먹으면 되지" 식의 발언으로 기름을 부어댔죠. 로스 상무부 장관은 "이해가 안 간다 ... 왜 은행 융자를 받지 않냐"며 일반인들의 고초에 무지한 발언을 했습니다. 트럼프 며느리는 "약간의 고통일 뿐 국가 장래를 위한 것이다"라는 발언으로 무리를 일으켰습니다. 이어 백악관 경제 참모인 커드로우는 셧다운을 "사소한 고장일 뿐이다. 내가 현실감이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라며 분노와 조소를 불러일으켰죠. 황금수저인 트럼프와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이들을 보며 트럼프 지지자들조차도 실망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넷째, 달라진 정치 지형이 잘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트럼프에 대한 지지가 공고하다고 해도 이젠 민주당이 하원을 차지하고 있으니 자존심 빼면 시체인 트럼프도 어쩔 수가 없었던거죠. 온갖 공격을 다 하던 트럼프도 펠로시 하원의장을 당할 수 없었습니다. 펠로시 의장은 연례 행사인 대통령의 의회 연설을 취소한다는 편지를 보냈죠. 의전에 중독되다시피 한 트럼프로서는 울화가 치밀 수 밖에요. 보복한답시고 펠로시 의장단의 아프카니스탄 방문에 딴지를 걸었습니다. 무리수였죠. 이 일로 (정치 첫 경험이 대통령인 정치 왕초보) 트럼프는 정말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 의장, 그것도 의장 하고 또 의장 하기로는 미국 역사 처음인 정치 구 단의) 적수를 만난 셈입니다. 러시아 게이트 등 트럼프를 정조준하고 있는 특별검사팀의 조사가 마무리 되고 있는 이 시점에 펠로시의 존재가 더 주목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Friday, January 18, 2019

미국 정치 이야기 #3, 트럼트의 인종차별



미국은 인종 문제에 예민합니다. 건국 자체가 유럽 백인의 원주민 학살로 시작했죠. 거기에 흑인을 노예로 삼았고 이를 두고 내전까지 치렀습니다. 이민은 계속 되면서 그 때마다 논란과 논쟁이 계속 됐습니다.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을 카톨릭 첩자로 봤고, 중국인 노동자에 대한 법적 차별도 있었죠. 지금은 그 대상이 중남미계 이민자입니다.

그 인종차별이란 어떤 것일까. 일단 그 기본은 한 무리가 같다고 보는 것이죠. 공통점이 있다는 것과 같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데 말이죠. 이런 무지에서 한 발 더 나가면 인종적 다름(피부색, 머리결, 키)을 가지고 그 외의 것 (지능, 감수성, 생활습관)을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흑인은 게을러." 
"백인은 정이 없어." 
"한국인은 정말 똑똑해."     
물론 똑똑하지 않은 한국인도 많죠. 똑똑한 한국인도 있습니다. 즉 인종 그 자체는 그 집단의 지능과는 무관합니다. (한 집단의 지능을 측정할 수 있지도 않죠. 한다면 뭘로 할까요? 대학 진학률? 한국 사람들이 제일 똑똑하겠네요. 하지만 북한에서는 그 수치가 떨어질텐데 그럼 북한 사람들은 안 똑똑한 셈이겠죠. 하지만 인종적으로 한 민족 아니였던가요? 과학 부문 노벨상 수여자 숫자? 그럼 한국은 아프리카 나라들과 전혀 차이가 없을테죠.)

그리고 그런 선입관을 그 인종에 속한 개인에게 적용합니다. 그러면서 인종에 대한 선입관도 강화시키죠: 
"마이클 일은 않고 어딨어? 누가 흑인 아니랄까봐." 
"제인은 백인이라서 그런지 정이 없어." 
"영희 이번에 하버드 갔데요. 역시 한국사람들은 달라."

여기에 더해 가치 판단, 정책 입안 등 전형적 반응까지 더하기도 합니다:
"흑인은 게을러. 그러니까 가난하지. 마이클 봐. 사회보장을 줄여야되. 일도 안 하는 놈들을 왜 도와줘?" 
"제인은 정이 없어. 뭐 백인들 다 그렇지. 그래도 일은 잘 해. 잘 생겼고. 코 봤어? 어쩜 그렇게 오똑한지. 눈도 파랗고 너무 부럽더라. 나도 코 그렇게 해야겠어." 
"영희는 하버드 갔고 걔 언니도 이번에 의사됐지? 참 대단해. 우리 애라고 못할게 뭐야. 한국사람인데." 

미국 인종차별은 정서적 차별로 끝나는게 아니라 정책, 나라의 정체성 등 논란으로도 이어집니다. 돈과 힘을 겨루는 정치문제이죠. 60년대 흑인 주도의 Civil Rights Movement를 시작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 주류의 목소리가 됐습니다. 남부에 있던 백인전용 식당 등이 없어졌죠. 흑인을 비하하는 용어도 금기시하게 됐습니다. 흑인들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졌죠. 덕택에 동양인 등 비백인 미국인의 지위도 덩달아 향상됐습니다. 게다가 이들의 인구가 백인의 앞지를 날도 얼마 남지 않았죠. 일부 백인들이 불안을 느꼈고 저항심마저 느꼈습니다. 이를 이용한 세력이 여럿 있었죠. KKK나 Aryan Nation 같은 테러집단 등 변방에 머물렀던 백인우월주의는 점차 주류로 스며들었습니다. 심지어 공화당도 커가는 백인우월주의에 조금씩 익숙해졌죠. 완전히 외면할 수 없게된  뿐 아니라 사안에 따라 이용/동참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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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변화는 트럼프를 낳았습니다. 사실 트럼프의 인종차별 발언을 보려했는데 너무 서론이 길어졌네요. 너무 많아서 대통령이 된 후의 주요 사례만 살펴보겠습니다.

언제발언인종차별
2017-03흑인의원들과 만난 자리. 한 의원이 사회보장 축소로 자기 지역구 사람들이 피해볼 것이다. 그 사람들이 다 흑인이 아니다라고. 그러자 트럼프, "정말? 그럼 그 사람들은 누구인가?"라고 되물음.  사회보장 혜택 받는 사람은 다 흑인으로 착각 
2017-06이민자들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아이티 이민자들은 "모두 에이즈 있어." 나이지리아의 집은 다 "오두막이야."특정지역 사람 (흑인)은 다 문제가 있다는 착각 
2017-08버지니아 샬롯츠빌에서 니오나치주의자와 이에 반대하는 운동가 남부군 리 장군의 동상을 두고 충돌. 한 극우참가자가 차로 운동가들로 돌진해 한명 살해. 트럼는 "양쪽 다 잘못이 있다... 운동가측도 굉장히 폭력적이였다."백인이면 살인적 인종차별도 두둔  
2017-11워런 상원의워(원주민 피가 섞여있다고 주장; 나중에 DNA 테스트로 입증)을 (전설적 원주민으로 디즈니 만화영화로도 제작된) "포카혼타스"로 지칭  한 집단을 한 사람으로 축약 (동양인은 다 재키찬)
2018-01정보브리핑 중 동양계 분석가에게, "어디 출신이냐?" "뉴욕인데요." 그래도 계속 추궁하자 부모가 한국계라는 대답을 듣고서야 멈춤. 이후 "저 한국 여자"가 북한과 교섭에서 빠저있냐고 질문.  동양외모는 미국외모가 아니라는 편견 
2018-01이민에 관한 발언. 아이티 등 남미, 아프리카 나라들을 "시궁창 (Those shitholes)"으로 여러번 지칭하며 노르웨이나 아시아 이민을 늘려야한다고 주장. 특정지역 사람 (흑인)은 다 문제가 있다는 착각; 특정지역 사람(백인, 동양인)은 다 괜찮다는 착각





결론:
인종차별적 발언이 일상적이고 지속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차별주의자다. 

관련 기사:
"Donald Trump’s Racism: The Definitive List" The New York Times (JAN. 15, 2018)
https://www.nytimes.com/interactive/2018/01/15/opinion/leonhardt-trump-racist.html

Thursday, November 15, 2018

[세상읽기]가짜뉴스에 기댄 그들


경향신문 (2018.11.15)


미국 중간선거를 곱씹어 보겠습니다. 대북정책의 미래가 큰 관심이죠.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선거를 위해 북·미관계 개선을 서둘러왔습니다. 선거가 끝났으니 진전이 이전만 할 순 없겠죠. 당장 고위급회담도 취소됐고 백악관에서 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민주당이 하원을 차지했으니 국정운영 전반이 경색되고 북·미관계가 경색될 가능성도 있죠. 북·미 협상을 비판하던 빅터 차의 기관이 북한 ‘비밀’ 미사일 기지를 찾았다며 호들갑 떤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북 접근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겁니다. 미국 정치는 2020년 대선 국면을 맞습니다. 대결이 더 치열해지면서 트럼프는 의회 견제가 작은 영역, 즉 외교에 집중할 겁니다. 핵문제 해결이 정치적으로 더 중요해지면서 북한과는 대화하고, 이란과는 대결하며 성공이라 자부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중요한 이슈도 있습니다. 이민 문제가 그중 하나죠. 이는 트럼프 정부 핵심 관심사입니다. 대선 캠페인 때 멕시코 국경에 벽을 쌓자고 해 재미를 봤죠. 올해는 ‘캐러밴’ 파동을 일으켰습니다. 수천명의 중미 난민이 미국으로 향하자 트럼프는 이를 침략으로 규정하고 군대마저 배치했죠. 덩달아 트럼프 지지자들은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민병대를 조직해 국경으로 향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난민 행렬을 안보 위협으로 믿고 있습니다. 난민에 범죄자가, 특히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다며 트럼프 선동에 환호하죠. 난민 수천명이 미국을 흔들 수 없습니다. 이미 1000만명이 넘는 불법 이민자가 일상의 일부가 돼 있는 마당에 몇만명이 와도 표도 안 날 겁니다. 게다가 군대로 막을 수 있는 국경도 아닙니다. 겁박과 생색일 뿐이죠.


이런 선동이 먹히는 데에는 뿌리 깊은 인종주의가 있습니다. 백인 땅에 유색인종이 몰려와 백인문화를 흐리고 그들만의 미국을 바꿔버리고 있다는 불안감이 있죠. 트럼프는 자기 정치력을 위해 이를 교묘히 이용합니다. 각종 정책이나 발언을 통해 인종주의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을 확산시킵니다. 이제껏 그런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이들은 대통령의 ‘재가’에 황송할 수밖에요. 여기에 각종 가짜뉴스가 이런 분노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공공연한 폭력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지난달 유대교 회당에서 백인 총기 테러로 11명이 목숨을 잃었죠.


왜 우리가 미국 이민 문제에 주목해야 할까요?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예멘 난민 논란으로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무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죠.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잔인성은 비밀이 아니니까요. 나와 다른 이를 타자로 구분해 무조건 적대시하는 경향은 ‘외국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 양심적 병역 거부자, 특정 종교 신자, 장애인, 정부 등 무차별적입니다. 가짜뉴스가 이들의 공포와 분노를 부추기고 있는 점도 미국과 비슷합니다.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이들의 선동과 극우행태도 폭력으로 이어졌죠. 미국 같은 극단적 사태가 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돌이켜 볼 점은 중간선거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미국 선거는 조금 복잡합니다. 상원의원 임기가 6년, 대통령은 4년, 하원의원은 2년이죠. 그러다 보니 2년마다 연방정부 선거가 있고 대선과 대선 중간의 선거, 즉 중간선거를 치릅니다. 덕택에 유권자들은 정부를 평가할 기회를 얻죠. 덕택에 트럼프 임기가 2년이나 남았지만 미국 유권자는 대통령과 공화당을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유권자도 그런 기회가 필요하지 않나요?


자유한국당 의석수는 현재 112석으로 총 의석의 37%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정당 지지율은 20%에 불과하고 정책 대안은커녕 말도 안되는 생떼만 부리고 있죠. 이들 대부분은 박근혜 허깨비 정부에 조력, 방관하며 사또질을 해댔습니다. 처절한 반성도 모자랄 판에 가짜뉴스에 기대서 부활을 꿈꾸고 있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었던 게 불과 몇개월 전이었지만 이제 태극기세력은 우익의 근간이라며 들썩이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다 같이 밀고 나가도 힘겨울 판에 귤상자마저 걷어차며 씩씩거리고 있죠. 하지만 우리는 2020년까지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민주주의라면 참 모자란 민주주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그들의 고함에서 배웁니다.

Thursday, November 8, 2018

미국정치 이야기 #1, Voice of America - 중간선거 분석

2018년 중간선거 분석 인터뷰 - Voice of America

행정부의 큰 기조는 변화는 없을 듯.
특히 외교정책은 원래 행정부 소관이고 의회의 간섭 여지가 적다.
트럼프가 북핵 해결을 대선용으로 소비할 듯. 그렇다면 2018년처럼 급진전하지는 않을 수도.
국내정치에서는 이제 대선국면으로 갈 듯. 민주당도 벼르고 있었으니 하원에서 목소리를 올릴테고, 트럼프도 그런 대결 국면을 정치적으로, 개인적으로 즐길듯.
혹자는 민주당의 성과를 과소평가하기도 하나 이는 실수. 제리맨더링, 치솟는 경제, 이 모든 것이 공화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음. 이를 극복한게 민주당 지도부.

Thursday, October 25, 2018

[세상읽기]트럼프의 ‘승인’ 발언에 대한 씁쓸한 반응

경향신문 2018.10.18

2013년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직접 관여를 했습니다. 보잉사 F-15SE로 거의 기울었던 결정을 뒤엎었죠. 경쟁 기종보다 기술 이전, 가격 면에서 모두 뒤진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는 “정무적 결정”이라며 록히드 마틴사의 F-35A를 밀어붙였습니다. 7조원이나 쓸 사업을 이렇게 가볍게 처리해도 되나 싶었죠. 그 의문은 올해 조금 풀렸습니다. 김관진이 록히드마틴사와 연관된 로비업체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게 드러났죠. 무기 사업은 역시 복마전이구나 하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복마전의 정말 큰손은 미국입니다. 유럽 전투기는 유독 한국 시장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미국 주요 동맹국인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독일,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유럽산 전투기와 미국 제품을 동시에 사용하죠. 우린 사실상 100% 미국에 의존합니다. 게다가 한국의 미국 무기 쏠림은 전투기뿐 아닙니다. 액수로만 따지면 90%를 미국에서 사들이고 있죠. 기술 이전은 미미하고 품질 시비도 심심하면 터져 나와도 말입니다.

이 묘한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여럿이지만 그중 가장 강력한 주술은 한·미동맹입니다. 미군과 전략적 공조를 이루어야 하니 미국 무기를 쓰는 게 효율적이라고 합니다. 다른 미 동맹국은 그렇지 않은데 왜 한국만 그럴까.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말이 동맹이지 한쪽이 다른 쪽에 일방적으로 기대고 질질 끌려다니는 게 현실입니다. 군사를 부리는 권한은 한 국가의 고유 권한이자 국가라는 개념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전권은 이미 1950년 미국으로 넘겼고 전쟁이 끝나도 찾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1994년, 겨우 반만 돌려받았죠. 하지만 전쟁이 나면 한국군은 아직도 미군 지휘를 받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논란에도 미국 무기를 묵묵히 사대고, 범죄를 저지른 미군을 조용히 내보내는 게 오히려 당연하죠. 온전한 국가는 아닌 셈입니다.

그래서 트럼프의 승인 논란이 더욱 씁쓸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우리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연거푸 강조했습니다. 트럼프의 평소 태도를 보면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난리가 났죠. 그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한편에서는 미국 심기를 건드렸다며 좌불안석이었습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승인 발언은 외교적 결례지만,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크다”며 화살을 미국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로 돌렸죠. 한국당 의원들은 비슷한 성토를 토해냈습니다. 보수당이라면 한 나라의 전통과 민족주의를 중요시하는 게 보통이죠. 그런 정당이라면 성조기를 흔드는 대신 트럼프 발언에 분노를 표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당은 그 정체성이 극우와 종미 사이를 오가니 그런 반응이 무리였다고 할까요.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는 승인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데 초점을 모았습니다. “부적절했다”(심재권 의원), “적절치 않다”(송영길 의원). 정의당 대표 이정미 의원은 “국민에 대한 모욕” “외교적 갑질”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최고조로 올렸죠. 하지만 이들도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아무도 미국이 한국 외교, 군사, 안보에 비정상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을 지적하지 못했습니다. 국민에 대한 모욕은 트럼프가 어떤 단어를 써서가 아니라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현실임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그 현실을 바꾸려 시도조차 않는 자신들 행태가 더 큰 모독임을 감히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문제든 해결의 시작은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한국의 꼬인 외교를 푸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주권국가라면 할 수 있는 게 우리에겐 너무 모자란, 차가운 현실이죠.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사태를 바닥으로 몰고 간 것도, 그것 말고는 별로 할 게 없어서인 측면이 크죠. 사태를 호전시킬 방도가 마땅치 않으니 호통치고 겁박할 수밖에요. 그만큼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한국시리즈 7차전 9회 말 전력투구입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다 공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그 노력에 행운이 곁들여져 결실이 하루빨리 나길 고대합니다. 그래서 정상 국가로 한 걸음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그 걸음에 딴지를 거는 목소리가 한국 안에서만큼은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이선옥 작가, '나의 아저씨'가 여혐이라고?

이선옥 작가의 식견이 잘 들어나는 팟방입니다. 정치적 올바름, (작가가 PC주의, politically correct ism로 부르는)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휘두르는, 지적 폭력을 진단합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으로 어떤 타협도 거부하고 내 생각을 강요하는, 이를 지적만해도 적으로 돌리고 처단하는 이 폭력에 맞서기가 쉽지 않죠.



저도 최근 '나의 아저씨'를 울고 웃으며 보다 그 논란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의아했습니다. 이게 여혐이라니?!! 도데체 뭘 보고? 여러 폐단이 있지만 이 폭력은 오히려 사람들을 지치게해 더 극단적 선택을 하게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트럼프 당선이 예라는 지적에도 상당히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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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태가 나면 이들의 도덕적 우월감은 더더욱 강고해지고, 어떤 면에선 더 신나할 가능성도 있죠. 그럼 이들의 지적 자위행위더 더 강고해질 수 있습니다. 사회는 더 양분화되고 토론과 합의는 자리를 잃을겁니다.

가치의 진보를 멈출 수는 없지만 그 가치를 담을 그릇마저 깨부셔야 되겠습니까. 부시고 다시 만들자고 할지도 모르겠군요..



Thursday, June 28, 2018

[세상읽기]대통령만 바라보는 시민들에게

경향신문(2018.06.28)

2011년 사극 <뿌리 깊은 나무>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석규가 오랜만에 티브이에 출연해서 관심을 끌었죠. 팬으로서 침체기에 있던 배우가 걱정이었지만 이는 한낱 기우였습니다. 드라마는 세종과 밀본이라는 비밀조직의 다툼을 그렸습니다. 양측은 정반대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추구했죠. 세종은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고, 밀본은 정도전의 뜻에 따라 왕이 아닌, 재상 중심의 정치를 추구했습니다.

실제로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군주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고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다. 그러므로 재상은 군주의 아름다운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바로잡을” 임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능력 없는 이도 임금이 될 수 있으니 능력 위주의 관료가 중심에 서야 한다는 지적이죠.

드라마고, 왕조시대 이야기지만 밀본의 걱정은 오늘날 정치와도 무관치 않습니다. 정치 안정을 한 개인에게 기댈 수 없다는, 그래서 다수가, 민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점에서 현대 국가의 통치, 특히 민주주의와 닿는다고 할 수 있죠. 이런 점에서 최근 한반도 정세는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먼저 북핵 문제를 보면 개인의 영향력이 도드라집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로 대화의 물꼬가 트였고 평창 올림픽을 거쳐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렸습니다. 내부 사정을 잘 알 수는 없지만, 관료들을 제쳐놓고 김여정 부부장, 김영철 부위원장 등 소수의 최측근을 통해 거침없이 진행됐음을 짐작할 수 있죠. 더 특이한 것은 미국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특사를 만나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초청을 수락했습니다. 북·미 협상도 국무부는 쏙 빼놓은 채 최측근인 폼페이오 당시 중앙정보부 국장과 트위터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의 걱정과 반대도 완전히 무시했죠. 개인 치적과 자존심을 앞세운 트럼프에 의해 지난 반세기를 이어온 대북 정책이 뒤집힌 것입니다.

김정은과 트럼프라는 개인이 주도하는 협상이었던 만큼 일 처리가 KTX처럼 빨랐습니다. 하지만 신속했던 만큼 구체적 성과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웃는 얼굴로 악수했지만, 비핵화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 확인은 어떻게 할 것인지 어느 하나도 구체적으로 결정난 것이 없죠. 게다가 두 지도자의 추진력이 주요했던 만큼 둘 중 하나라도, 무슨 이유에서든, 마음만 돌아서면 상황은 쉽게 악화할 수 있습니다. 북·미 협상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입니다.

다행히도 한국이라는 중재자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지도자와는 달리 정부를 십분 활용하고 민심을 추스르며 남북 문제를 추진하고 있죠. 불안한 북·미 협상에 중심을 잡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정치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방선거가 민주당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습니다. 설마설마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월세 내는 날이 또박또박 오듯 예견된 결과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능숙한 외교를 통해 전에 없던 남북 간 평화를 끌어냈고, 70%를 오가는 지지를 받아왔죠. 자연히 민주당은 문재인마케팅에 올인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기대기는 민주당뿐 아닙니다. 시민도 대통령만 바라보는 형국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그 한 예죠. 이는 불통의 아이콘이던 박근혜의 추억을 지우기 위한 방책이었을 겁니다. 덕택에 막힌 하수구가 뚫린 듯 청원이 뜨겁습니다. 하지만 종편방송 허가 취소, 용의자 처벌 등 대통령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일마저 요구합니다. 권력은 나누어져 있고 법과 제도가 있지만, 시민은 대통령이 봐주고 처리해주길 바라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잘해서 인기도 얻고 국정운영도 잘되고 남북 문제도 잘 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개인에게 기대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그 업적도 쉽게 무너질 수 있죠. 그 여파가 국내정치에 그치지 않고 남·북·미관계에 여파가 미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박근혜에게 환호하며 올인했던 보수의 꼴이 보수만의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21세기, 아직도 덕이 많은 군주 덕에 태평성대가 오고, 폭군 때문에 난세가 오는 중세에 사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Tuesday, November 14, 2017

[세상읽기]미국의 쇠락, 한국은 준비하고 있나

경향신문(2017.11.09)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85년 영화 <란>은 한 영주 집안의 비극적 몰락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늙은 영주가 땅을 세 아들에게 나누어주며 시작합니다. 서로 도우라는 당부가 무색하게 내분과 살육으로 이어지죠. 게다가 그 내분으로 가족과 영토를 잃는데, 영주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와 복수를 꿈꾸던 이의 계책이었다는 스토리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아시아 정세를 살펴보면 강력한 지도자의 강경한 외교가 힘을 얻는 분위기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공산당 내 입지를 굳히면서 더욱 자신감 넘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베 일본 총리도 총선 압승을 통해 기존 우경화 외교를 더 밀어붙일 테죠. 북한 김정은 위원장 또한 경제 회복과 군사력 증강에 탄력을 받아 더 큰 목소리를 낼 듯합니다. 여기에 큰 목소리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각종 언행과 스캔들, 독단적인 외교 행보 등을 보면 걱정이 앞섭니다. 일본 방문에서도 노골적으로 미국 무기 구매 확충과 무역적자 해소를 되풀이했죠. 북핵 위기를 장사 기회로 삼는다는 비판이 커지는 만큼 미국의 국제적 지도력에 대한 불신도 늘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이나 한국처럼 국방을 미국에 기대고 있는 처지에서 속앓이가 깊어질 수밖에요. 미국 안에서도 걱정은 깊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자질이 있느냐, 대선에서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느냐 등의 논란이 그치질 않고 있죠. 게다가 행정부 자체를 위축시키고 있어서 제도적 문제로 번지고, 또 그 여파마저 오래가리라는 걱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걱정과 혼란은 대선 다음 날 바로 시작됐습니다. 각 정부 부처에서는 정권 이양에 분주했습니다. 당장 다음 날 인수위 맞이에 나섰죠. 주차장, 인터넷, 사무실 등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정작 인수팀은 오질 않았습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말이죠. 다들 당황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농무부의 경우 한참이 지나 기껏 나타난 이들이 부서 업무에 문외한들이었습니다. 엉성한 준비는 엉성한 부서 구성으로 이어졌죠. 농무부 최고 관료 직책 중 장관 딱 한자리 빼고는 대부분 국회 인준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농무부 책임 과학자에 지구 온난화뿐 아니라 과학 자체에 깊은 회의를 가진 이데올로그이자 극우 라디오 진행자가 임명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습니다. 농업과 자원 관리 업무를 떠나 과학 연구에 주요 역할을 하는 농무부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비판이 거세죠.

비슷한 상황은 국방부를 제외한 전 부서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핵무기를 관리하는 에너지부, 외교의 난제를 풀어가는 국무부 등 한국의 입장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서도 포함해서 말이죠. 에너지부 장관이 된 릭 페리는 후보자 시절 에너지부를 아예 없애겠다고 공언한 인물입니다. 거대 에너지 회사인 엑손모빌 최고경영자로 국무부 장관이 된 틸러슨은 국무부 축소를 주요 목표로 내세워 국무부 관료들을 아연실색하게 했습니다. 덕택에 고위 관리들이 은퇴하거나 물러나면서 전문가가 모자라 허덕이고 있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가 아직 공석인 게 우연이 아닙니다.

영화 <란>의 며느리처럼 일부러 정부를 약화시키려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 때문에 연방정부는 큰 혼란을 겪고 주요 업무에서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죠. 그사이에 백인우월주의 목소리, 흑백갈등, 좌우대립 등 정부의 개입이 절실한 문제는 악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냐는 논의는 오래됐습니다. 그만큼 미국의 지배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죠. 하지만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 정부의 행보는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문제는 미국의 세계 질서에 어떤 나라보다 기대왔고 그래서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대응입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논의는 북핵 문제를 넘어 지역 정세를 큰 틀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읽기]‘잘못을 고치는 게 잘못’이라는 억지

경향신문(2017.10.12)

오래전 한 유명 스님의 말씀에 아주 혼란스러웠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나 싶었죠. 게다가 사람들이 심각하게 논하기까지 하니 이상할 수밖에요. 아직도 심오한 불교 철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만 산을 산이라, 물을 물이라 부르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은 알게 됐죠.

미국엔 지금 한창 역사 논란이 뜨겁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탓에 안 그래도 악화되던 인종차별 문제가 더욱 날카로워졌습니다. 인종차별 문제가 트럼프 지지자와 반대자를 나누는 잣대와 겹쳐지며 정치 문제 전반에 떠올랐죠. 남부 연합군 장군들의 동상이 철거되는 것은 그 여파입니다. 철거 반대자는 트럼프 지지자와 많이 겹칩니다.

미국 남북전쟁은 노예제를 둘러싼 전쟁으로 남부 연합군이 패하며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남부의 정치,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흑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부활했죠. 백인우월주의도 당당히 돌아왔습니다. 큐 클럭스 클랜(KKK)이라는 백인 기독교 테러단체가 극성을 부리고 남부 연합군 장군들의 동상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동상들이 남부의 역사를 기린다기보다는 부활하는 백인우월주의를 대표한다고 봐야 하는 이유죠. 자연 흑인과 인권단체들이 철거를 요구해왔고 요즘 들어 지방정부가 이를 수용하는 분위기입니다.

철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하죠. 노예제는 좋은 일이 아니지만 남부는 노예제가 아니라 주정부 주권을 위해 싸웠다. 게다가 동상을 없애는 시도는 역사를 지우려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주정부의 주권은 노예제를 지키기 위한 주권이었죠. 게다가 동상을 치운다고 그들이 말하듯 역사가 지워지지 않습니다. 원래 동상은 기억을 넘어 기리고 자랑스러워하라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동상을 지키자는 이들은 그 과거를 기리고 내심 그리워하는 셈입니다. 연방군의 승리, 노예제 폐지도 중요하지만, 남부의 전통도 중요하다는, 산은 산이지만 물도 산이라는 억지입니다.

산은 물이고 물은 산이라는 억지도 있습니다. 최근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이 관제 데모에 동원할 목적으로 우파 단체를 지원한 정도가 아니라 직접 만들었던 정황이 파악됐습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죠. 그뿐인가요. 국정원, 군은 댓글부대를 조직해 여론을 조작했고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기관들은 공작과 음해로 민주체제의 근간을 손수 흔들었습니다. 부실 산업으로 수조원은 우습게 날렸고 블랙리스트로 언론과 개인의 자유마저 짓밟았습니다. 4대강사업을 통해 한반도 생명줄을 끊어놓았고 개성공단을 폐쇄해 평화 기반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아직도 이어지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대한 속보에 탄식도 그치질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가 고공행진을 하는 이유입니다. 거기에는 적폐청산에의 요구가 있죠.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이를 정치보복이라 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개혁을 개악이라고도 했죠. “정치보복의 헌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 굿판”이라며 적폐청산에 대응하기 위해 대책특위까지 만들었습니다. 내 잘못은 잘한 것이고, 그 잘못을 고치려는 게 잘못이라는 파렴치한 억지입니다.

짐작하건대 그 적폐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일수록 목청을 높이겠죠. 그러니 쉽게 물러서지도 않을 겁니다. 어디 메모라도 해두고 선거 때 확인해야겠습니다. 항의 전화도 괜찮겠죠. 이번 가을엔 성철 스님의 부리부리한 눈매가 생각납니다.

Wednesday, March 1, 2017

[세상읽기]경험을 나누는 것이 민주체제


기록적 한파의 경험과 지구온난화 간의 괴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경험이 중요한 자산임은 상식입니다. 취업 공고엔 경험자 우대라는 글귀가 자주 등장하고 역사가 소중하게 다루어지는 이유입니다. 논쟁에서도 경험을 앞세운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내가 직접 겪었다고 하면 주장에 힘이 실리게 마련이죠. 그래서 논쟁이 치열할수록, 경험이 많다고 생각할수록 이런 화법을 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정치인 중에도 꼰대가 많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표적인 경우죠. 2016년 선거전 내내 비즈니스 경험을 내세워 유권자들의 환심을 샀습니다. 자신의 엄청난 부는 곧 지도자가 지녀야 할 자질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떠들어댔죠. 비난과 반대도 컸지만 많은 이들은 고개를 끄떡이며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명박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치인입니다. 대통령 시절 그 유명한 ‘해봐서 아는데’ 시리즈를 쏟아냈죠. 장사를 해봐서, 배를 만들어 봐서, 민주화운동 해봐서 등등 경험을 강조, 과장하면서 주장의 근거로 즐겨 삼았습니다.상사나 연장자 등 경험이 많다고 여기는, 또는 여겨지는 층이 상대적으로 경험이 얇거나 그렇게 여겨지는 이를 향해, 경험을 무기로 일방적 말을 쏟아내는 경우 전자를 ‘꼰대’라고 부릅니다. 꼰대들의 말투도 굉장히 비슷합니다. 나는 이렇게 잘하는데 너는 왜 그러냐는 식의 말투가 그 전형이죠. 나는 생전 그런 실수가 없었는데 넌 매일 실수냐. 나는 더한 일도 참았는데 넌 왜 그것도 못 참냐. 내가 학생 때는 패기가 넘쳤는데 너희는 왜 열정도 없냐. 즉 꼰대는 경험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강조돼 의미 있는 대화나 검증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하겠습니다.

경험이 소중한 것은 맞지만 큰 함정도 있습니다. 경험은 기억이 되고 자아의 일부가 되는 까닭에 미화되기 쉽죠. 실수나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는 묻히거나 심지어 잊히기도 합니다. 트럼프의 경우 도산과 빚으로 고생했지만, 선거전 동안 이런 실패에 관해서 일언반구도 없죠. 또 한편으로 경험은 개인적일 수밖에 없기에 편협한, 또는 그릇된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눈보라의 경험과 지구온난화에 대한 의심은 좋은 예입니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쳐서 집이 완전히 묻히고 전기가 일주일 끊기는 경험을 했다 해도 이는 개인의 지엽적 경험일 뿐이죠. 하지만 이런 경험을 지구온난화 현상의 방증을 찾은 듯 으스대는 사람도 미국 여기저기서 볼 수 있습니다.

경험을 맹신하며 편협한 시각을 정치세력화한 이들은 그래서 위험합니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6·25전쟁의 경험, 전후 불안정한 시대를 산 경험이 정치적 열정의 근원이 됐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빨갱이’들에게 당했다는 기억은 빨갱이가 사라진 시대에서 빨갱이를 계속 찾게 하였을 겁니다. 그러니 그 빨갱이를 보지 못하는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가슴 시릴 만큼 아프게” 부모를 총탄에 잃은 박근혜는 자신의 불안감을 바탕으로 “국민을 각종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겠다며 사드를 밀어붙였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의 권한을 “선생님”에게 던져주고서 “컨펌”을 기다리는 것마저 정당화했습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들을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경험했다는 확신은 검증을 힘들게 해 위험합니다. 억지와 꼰대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각종 오류에 취약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경험을 무작정 버릴 수는 없죠.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을 모으는 지혜입니다. 어제 눈 폭탄을 맞았지만 겨울 전체를 보면 역사적으로 더운 겨울이었던 것, 이제는 저성장 경제의 구조적 제한이 젊은이들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 우리 집이 빨갱이 손에 몰락했지만 서북청년단의 총칼에 마을 전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경험을 서로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어제와 오늘을 살피고 나와 너의 대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민주체제는 이를 정치적으로 구체화한 겁니다. 서로의 경험을 비교해 목소리를 모으는 것이 민주체제이죠. 한 사람의 직관과 경험에 기댄 권력은 독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혹시 독재에 익숙해지지 않았었나요. 박근혜를 파면하며 느슨해진 경계의 줄을 바꾸어 매야겠습니다.

Wednesday, September 28, 2016

[시론]‘백인우월주의’와 미국의 현실


경향신문 (2016.09.28)


지난 26일 오는 11월8일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분수령으로 평가됐던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1차 TV 토론이 열렸다. 토론 때마다 억지와 호통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며 공화당 주자들을 무장 해제시켰던 트럼프가 백전노장 클린턴을 상대로도 승리할 수 있을까 걱정과 기대가 넘쳤다. 덕택에 미국의 가정과 직장, 학교에서는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TV를 지켜봤다. 승패는 곧 갈렸다. 한마디로 트럼프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클린턴은 사안마다 구체적 사례와 통계, 관련자들의 이름을 제시하며 토론을 이어갔다. 정치인과 관료로서의 오랜 관록이 묻어나왔다. 트럼프는 그의 장기라고 여겨지는 임기응변조차 발휘하지 못하고 어물쩍대고, 토론에 임하는 자세에서도 보는 사람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클린턴의 발언 시간에 사사건건 끼어들 뿐 아니라, 난데없이 “아닌데” “틀렸어”라며 김을 빼다가, 나중에는 “내가 대통령이 될 기질이 있다”며 소리쳤다. 그 덕택에 트럼프는 ‘대통령 자질이 없음’을 몸소 보여주며, 토론을 지켜보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황당한 웃음을 선사했다.

TV 토론이 끝나고 나온 CNN 여론조사에서도 60%가 넘는 응답자가 클린턴의 승리였다고 답했다. 이 판정에는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압도적 승리에도 클린턴은 고전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직도 신뢰의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고, 덕택에 많은 잠재적 민주당표가 제3후보에게 가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TV 토론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클린턴으로 마음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무리 트럼프가 횡설수설에 억지, 거짓, 무능력을 보여줬어도, 그를 향한 지지자들의 믿음은 굳건하기 때문이다.

상당수 공화당 지도자와 당원마저 지지를 포기한 트럼프가 이렇게 선전하는 이유가 뭘까. 바로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공유하는 ‘백인우월주의’ 덕분이다. 클린턴이 토론에서 지적한 대로 사업가 트럼프가 정치를 시작한 것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출생을 문제 삼으면서였다.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따라서 시민이 아니므로 오바마의 대통령직은 무효라는 주장이었다.

트럼프는 흑인 대통령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미국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이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그는 곧바로 이민자 문제에 집중했다. 멕시코에서 범죄자, 강간범들이 몰려온다고 주장하고, 이들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했다. 게다가 국경 수비를 위한 비용도 멕시코 정부가 부담하게 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지난 26일 열린 1차 TV 토론에서 트럼프가 ‘법과 질서’를 되풀이한 것도 이런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 이민정책 말고는 별다른 정책이 없는 것이 트럼프 캠프의 현실이기도 하다.

‘백인우월주의’라는 괴물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눈앞에 놓인 미국의 현실 때문이다. 이민자가 늘면서 이들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있고, 향후 30년, 불과 한 세대 후에는 어쩌면 백인이 소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근거 없는 불안에 휩싸인 일부 백인들은 과거 좋았던 시절, 즉 백인이 절대다수이고 우대받던 시절을 내심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가는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 찍히니 조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미국인들의 마음을 트럼프가 파고든 것이다. 덕택에 이들은 공화당 지명자라는 정당성 뒤에 숨어 이제껏 발산하지 못했던 ‘뒤틀린 욕망’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일그러진 정치이데올로기가 한 사회를 망가뜨린 것은 나치 독일뿐만이 아니다. 트럼프의 등장을 보며 우리네 괴물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들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Friday, December 18, 2015

정치인의 거짓말

뉴욕타임즈에서 아주 재밌는 칼럼이 실렸습니다: All Politicians Lie. Some Lie More Than Others. - The New York Times

정치인들이 거짓말 하는 것은 뭐 새삼스러울 것이 없죠. 하지만 여기서는 이들의 거짓말을 정도를 비교해 놓은 것이죠. 이렇게 해놓으니 재밌는 결과가 나왔네요. 밑의 표는 2007년 이후 대선 후보들의 거짓/진실 비교를 보표로 나타낸 것입니다.



일단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맨 위의 두 정치인들 이름입니다. 현재 미국 공화당 대선 유력 주자인 벤 칼슨과 도날드 트럼프는 거의 입만 열면 거짓말(각각 84%; 76%)을 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 중 진실된 것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각각 4%, 7%). 인터뷰 어디를 틀어보아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꽉차 있는 사람들이니 놀랄 것이 하나도 없죠. 뒤를 이어 테드 크루즈, 딕 체니 등 공화당 후보들이 그 뒤를 쭉 잇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민주당 후보들의 스코어입니다. 꽤 진실에 충실에 보이려는 노력을 한 흔적이 보입니다. 한참 밑으로 가야 조셉 바이든 현부통령이 나오면서 민주당 사람들 이름이 보이니까요. 클린턴 부부는 반은 대체로 진실을 이야기한 것으로 평가받네요. 빌 클린턴은 거짓말 비율이 24%로 이들 중 가장 진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결과를 가지고 민주당 정치인이 진솔하고 공화당 사람들이 거짓말을 많이 한다고 일반화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요즘 공화당의 토론을 보고 있으면 정말 구리다 하는 느낌이 나는데 그 느낌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라는 증거는 되겠죠.

다만 트럼프처럼 뻔히 거짓말을 하고, 말도 안되는 억지에, 인종차별 발언을 뻔뻔히 해도 그 지지율이 떨어질 지도 모른다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겠죠.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미국 중하층 백인 남성의 분노일 것입니다. 유색인종이 싫은데 흑인 대통령이 나오고, 테러에 화나는데 정부는 당장 쳐들어 갈 생각은 안 하고,  자기 주머니 사정은 좋지않은데 정부는 돈을 펑펑 쓰는 것 같고. 말은 못하고 끙끙 속으로 앓고 있다가 트럼프처럼 부자에 똑똑한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니 신이 날 수 밖에요. 거짓말인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도 없죠. 일단 속이 시원하니까요.

정치지도자가 속이 시원한 말을 해주는 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 집단을, 아무 근거도 없이 공격함으로써 통쾌함을 준다면 이는 한 나라를 이끌 정치지도자가 할 소리는 아니죠. 사실 굉장히 위험한 일입니다. 당장 듣기는 좋을지 몰라도, 그런 정치인을 경계하는 것도 우리의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