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9.05.02
<삼국지>를 보면 당대 최고의 재상 제갈량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죽은 제갈량이 적이자 최고의 라이벌이던 사마의를 쫓아낸 일화죠.
오랜만에 들른 광화문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한 건물에 걸린 독립운동가 초상화가 크기도 했지만 너무 현대적이고 세련됐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3·1운동과 임시정부 관련 행사가 많았습니다. 100주년이어서 그랬겠지만, 민간 행사뿐 아니라 정부 주도 포럼, 전시회, 기념회 등이 열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소녀상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황사처럼 전국을 강타했죠.
모든 사상은 한계를 갖습니다. 하지만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것은 한계가 더 도드라집니다. 정체성의 경계는 인위적이지만 결국 절대적이 되니까요.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민족’은 현대국가가 세워지며 생겼죠. 순수한 혈통은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민족주의에 환호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또한 역사에 기대는 사상이다 보니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진보적 미래를 꿈꾸기에는 부족하죠.
그러니 정치판이 과거에 머무를수록 나은 미래를 기다리는 국민은 피곤합니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닌 듯합니다. 이 정부는 그릇된 과거를 타파하는 사명으로 출발했습니다. 그것에 집중하는 게 당연했죠. 덕분에 도덕적 우위를 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옳고 저쪽은 적폐라는 구분은 그렇게 그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그어진 선은 정부를 옭아맸습니다. 적폐로 지목된 이들은 물러설 곳이 없었고, 배수진을 친 이들의 저항은 치열했죠. 과거에 대한 전투가 치열할 때 거리엔 촛불이 꺼졌습니다. 은행빚과 취업난이 그 거리를 채웠죠. 싸움이 힘들어질수록 쉬운 상대가 눈에 띄는 법. 100년 전 일본만큼 만만한 상대가 있을까요. 시선은 자꾸 과거로 가고 미래에서는 멀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가졌던 과거청산의 소명은 이제 그 유효기간이 지난 듯합니다. 박근혜와 주변 인물들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정치적 영역을 벗어난 셈이죠. 이제 정치에 충실할 때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노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첫째, 정치 외연을 넓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총칼 없는 전쟁이죠. 갈등 당사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논의하는 공적 장입니다. 상대가 좋건 싫건 말이죠. 싫다고 배척하는, 내가 옳다고 외면하는 순간 정치의 영역은 좁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갈등의 당사자들은 주먹과 칼에 기댈 수도 있죠. 둘째, 정치적 미래를 제시하는 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싸움을 과거로 몰아가도 판을 흔들어야 합니다. 불과 1년 전 평화가 있는 미래를 보여줬을 때 국민은 열광했죠. 남북평화가 중요한 미래이지만 그것뿐이라면 곤란합니다. 문재인 정부 탓만은 아니지만, 정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쥐고 있습니다.
정치판에서 미래를 보여주지 못하고 그 판마저 좁아지면서 싸움은 국민 사이로 파고든 형국입니다. 정치적 논쟁이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적 공간이 허약해집니다. 분노와 무시당했다는 감정은 해소되지 않고 쌓이기 쉽죠. 이들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고함에 쉽게 동화해 정치세력화할 수 있습니다. 벌써 그런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태극기부대죠. 오는 토요일이면 태극기집회는 122차에 접어듭니다. 그들은 열정과 확신이 있습니다. 울릉도에서 배를 타고 옵니다. 부산에서,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옵니다. 매주 오는 이도 많습니다. 사비를 털어 시위용 트럭을, 동지들 먹일 식사를 준비합니다. 명확한 비전도 갖고 있습니다. 맨주먹으로 정당을 꾸렸다는 자부심도 강합니다. 하지만 공존을, 다양성을 강조하는 진보는 이들만큼은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무시당한 이들을 모아 트럼프는 대통령이 됐죠. 브라질에서도, 독일에서도, 헝가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만 언제까지 예외일까요?
이런 와중에 자유한국당 해산 국민청원이 2일 현재 170만명에 육박한다니 걱정스럽습니다. 통합진보당 해산의 광기가 생각나는 것은 저뿐인가요? 대화와 설득은 좋아서가 아니라 대안이 없어 하는 겁니다. 하루빨리 정치를 복원해야 합니다. 미래에의 비전을 두고 싸워야 합니다.
죽은 박정희 손에 산 문재인이 실패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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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May 2, 2019
Friday, August 24, 2018
[세상읽기]미래는 이미 도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향신문 (2018.08.23)
말레이시아 슈퍼리그. 말레이시아 프로축구리그의 이름입니다. 2017년 통계를 보면 총관중이 87만2108명이었습니다. 경기당 평균 6607명이 관람한 셈이죠. 2014년부터 우승을 휩쓸어온 조호르 다룰 탁짐(JDT)의 수치를 보면 작년 총관중이 18만7557명으로 경기당 1만7051명의 관중을 불러모았습니다. 비슷한 팀이 한국에도 있습니다. FC서울로 총관중 수 31만61명, 경기당 평균 1만6319명이었죠. 흥행이 비슷하다 싶지만 속사정은 너무 다릅니다.
서울 인구는 990만명, 수도권까지 합치면 2500만명입니다. JDT의 근거지 조호르바루 인구는 160만명, 조호르주는 300만명 정도입니다. 광역인구를 비교해 보면 서울이 8배 큰 셈이죠. 한국과 말레이시아 축구 열기가 비슷하다면 서울 평균 관중 수가 지금의 8배여야 맞습니다. 즉 13만명이 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단순한 계산이지만 한국 축구 열기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반대로 말레이시아의 축구 열기를 상상해 볼 수 있죠. 한국대표팀이 말레이시아에 진 것이 놀랍지만 예상할 수 있었던 미래가 온 셈이죠.
사실 텅 빈 축구장과 꽉 찬 골프장을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점입니다. 축구를 하지 않는 나라에서 축구 관중 수가 급감하는 것이 이상할 게 하나 없죠. 오히려 이상한 것은 축구 열기입니다. 월드컵 때만 되면 광장이 들어차고 ‘치맥’이 동이 납니다. 평소에 축구에 전혀 관심 없고, 심지어 규칙도 모르는 이조차 온몸을 빨갛게 물들이고 소리를 지릅니다. 축구에 대한 애정은 이미 식었으니 그 열기의 뿌리는 아마도 축구는 아닐 테죠.
이는 민족주의입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다는 우월감을 근간으로 하는 민족주의가 그 뿌리입니다. 일제 치하에서는 긍정적 에너지였을지 모르지만 21세기 한국에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민족주의는 우리가 특별하다는 환상을 만들어주는 증거를 필요로 합니다. 양궁, 태권도, 한글, 김치, 첨성대, 직지심체요절, 삼성. 세계 최고, 동양 최고라는 자부심에 감격합니다. 사실 세계 어디를 가도 자랑스러운 유물과 전통 없는 나라는 없죠. 다들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즉 아무도 최고는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은 중요치 않죠.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고인 것만 자랑스러워할 뿐 그 배경인 고려말 불교의 망국적 행태는 논하지 않습니다. 당시 구시대의 유물이었던 직지심체요절과는 반대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유럽 전체의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일으켰죠. 하지만 ‘우리가 더 빨랐다’는 데에만 만족해할 뿐입니다.
민족주의는 남을 비하해서 우월감을 충족시켜주기도 합니다. 똑같은 동포라도 미국에서 오면 교포고, 중국에서 오면 조선족이 됩니다.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인이 아니면 누구라도 낮게 보죠. 심지어 미국인도 흑인은 ‘깜둥이’라고 비하해 부릅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에게 우리는 무자비합니다. 선장은 선원을 바다에 빠뜨리고, 농장주는 노동자 가슴팍에 니킥을 날립니다. 성추행도 다반사고, 다치면 버려집니다. 휴일·휴식도 제때 보장하지 않고 임금체불도 흔하죠. 심지어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권력기관에 의한 폭행과 불법감금도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가게에서 나가라고 고함치기도 하고, ‘쟤들은 뭐야’라는 빈정거림은 너무나 일상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특정 집단을 향한 공공연한 증오발언·폭행 등 이른바 혐오범죄를 규제할 법조차 없습니다. 상식과 인권의 차원은 물론 실질적 이유에서도 이래서는 안됩니다. 2013년 기준 외국인 노동자는 25만여명. 매해 2만건이 넘는 국제결혼으로 2017년 전체 혼인 중 다문화 혼인의 비중은 7.7%. 다문화 학생은 2017년 10만명을 돌파해 5년 사이 2배 증가. 이런 수치만 보더라도 한국은 이민자 없이는 지탱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 고갈도 마찬가지죠. 인구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근본적 해결책은 젊은 노동력의 증가이고, 여기에 이민 문호 확대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이민 확대, 이민자 보호, 전반적 노동권 확대 등 정부가 할 일이 산적합니다. 게다가 민족주의적 반대와 두려움과도 다퉈야 할 겁니다. 정책을 마련하고 사회 인식을 바꾸는 노력에도 공을 들여야 하죠. 비정부기관의 활동도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국민연금 위기 같은 근본적 위기가 폭발할 한국의 미래는 이미 문 앞에 와있으니까요.
말레이시아 슈퍼리그. 말레이시아 프로축구리그의 이름입니다. 2017년 통계를 보면 총관중이 87만2108명이었습니다. 경기당 평균 6607명이 관람한 셈이죠. 2014년부터 우승을 휩쓸어온 조호르 다룰 탁짐(JDT)의 수치를 보면 작년 총관중이 18만7557명으로 경기당 1만7051명의 관중을 불러모았습니다. 비슷한 팀이 한국에도 있습니다. FC서울로 총관중 수 31만61명, 경기당 평균 1만6319명이었죠. 흥행이 비슷하다 싶지만 속사정은 너무 다릅니다.
서울 인구는 990만명, 수도권까지 합치면 2500만명입니다. JDT의 근거지 조호르바루 인구는 160만명, 조호르주는 300만명 정도입니다. 광역인구를 비교해 보면 서울이 8배 큰 셈이죠. 한국과 말레이시아 축구 열기가 비슷하다면 서울 평균 관중 수가 지금의 8배여야 맞습니다. 즉 13만명이 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단순한 계산이지만 한국 축구 열기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반대로 말레이시아의 축구 열기를 상상해 볼 수 있죠. 한국대표팀이 말레이시아에 진 것이 놀랍지만 예상할 수 있었던 미래가 온 셈이죠.
사실 텅 빈 축구장과 꽉 찬 골프장을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점입니다. 축구를 하지 않는 나라에서 축구 관중 수가 급감하는 것이 이상할 게 하나 없죠. 오히려 이상한 것은 축구 열기입니다. 월드컵 때만 되면 광장이 들어차고 ‘치맥’이 동이 납니다. 평소에 축구에 전혀 관심 없고, 심지어 규칙도 모르는 이조차 온몸을 빨갛게 물들이고 소리를 지릅니다. 축구에 대한 애정은 이미 식었으니 그 열기의 뿌리는 아마도 축구는 아닐 테죠.
이는 민족주의입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다는 우월감을 근간으로 하는 민족주의가 그 뿌리입니다. 일제 치하에서는 긍정적 에너지였을지 모르지만 21세기 한국에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민족주의는 우리가 특별하다는 환상을 만들어주는 증거를 필요로 합니다. 양궁, 태권도, 한글, 김치, 첨성대, 직지심체요절, 삼성. 세계 최고, 동양 최고라는 자부심에 감격합니다. 사실 세계 어디를 가도 자랑스러운 유물과 전통 없는 나라는 없죠. 다들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즉 아무도 최고는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은 중요치 않죠.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고인 것만 자랑스러워할 뿐 그 배경인 고려말 불교의 망국적 행태는 논하지 않습니다. 당시 구시대의 유물이었던 직지심체요절과는 반대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유럽 전체의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일으켰죠. 하지만 ‘우리가 더 빨랐다’는 데에만 만족해할 뿐입니다.
민족주의는 남을 비하해서 우월감을 충족시켜주기도 합니다. 똑같은 동포라도 미국에서 오면 교포고, 중국에서 오면 조선족이 됩니다.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인이 아니면 누구라도 낮게 보죠. 심지어 미국인도 흑인은 ‘깜둥이’라고 비하해 부릅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에게 우리는 무자비합니다. 선장은 선원을 바다에 빠뜨리고, 농장주는 노동자 가슴팍에 니킥을 날립니다. 성추행도 다반사고, 다치면 버려집니다. 휴일·휴식도 제때 보장하지 않고 임금체불도 흔하죠. 심지어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권력기관에 의한 폭행과 불법감금도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가게에서 나가라고 고함치기도 하고, ‘쟤들은 뭐야’라는 빈정거림은 너무나 일상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특정 집단을 향한 공공연한 증오발언·폭행 등 이른바 혐오범죄를 규제할 법조차 없습니다. 상식과 인권의 차원은 물론 실질적 이유에서도 이래서는 안됩니다. 2013년 기준 외국인 노동자는 25만여명. 매해 2만건이 넘는 국제결혼으로 2017년 전체 혼인 중 다문화 혼인의 비중은 7.7%. 다문화 학생은 2017년 10만명을 돌파해 5년 사이 2배 증가. 이런 수치만 보더라도 한국은 이민자 없이는 지탱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 고갈도 마찬가지죠. 인구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근본적 해결책은 젊은 노동력의 증가이고, 여기에 이민 문호 확대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이민 확대, 이민자 보호, 전반적 노동권 확대 등 정부가 할 일이 산적합니다. 게다가 민족주의적 반대와 두려움과도 다퉈야 할 겁니다. 정책을 마련하고 사회 인식을 바꾸는 노력에도 공을 들여야 하죠. 비정부기관의 활동도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국민연금 위기 같은 근본적 위기가 폭발할 한국의 미래는 이미 문 앞에 와있으니까요.
Sunday, March 11, 2018
범죄 드라마 리뷰 3 - Berlin Babylon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독일 드라마 <베를린 바빌론>은 나찌가 일어나기 직전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 재미가 쏠쏠합니다. 우선 끄는 매력은 그 배경 자체입니다.
우선 독일영화하면 늘 나찌나 전쟁을 떠올리죠. 하지만 문화나 기술 면에서 최고의 수준이였던 사회 실상을 볼 기회는 많이 없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당시 최고의 도시 베를린을 구경하는 재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엘레베이터, 음악, 춤 등 신기할 뿐입니다.
전쟁이 끝났지만 아직도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극우와 군인들의 정서도 잘 들어나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시작하는 정치불안정, 좌우의 극한 대립, 나찌의 성장도 이곳 저곳 잘 맞춰져있어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두번째 재미는 단순하지 않고 계속 변하는 등장인물들입니다.
여주인공 샬롯떼의 발전을 보는 것도 큰 재미입니다. 어려운 삶에서도 희망, 강인함, 재치를 잃지 않는 그녀가 어떻게 커가는지 아주 흥미롭습니다.
악역인 브르노가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습니다. 정도 많고, 그가 품은 꿈이 그리 낯선 것만도 아니죠. 하긴 '악인'이라는 굴레가 너무 일반화시키는 거죠. 그래서 악인이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 주인공 게리온 또한 여러 면을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볼 때 비로소 그의 공포를, 그의 슬픔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외도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습니다. 우아한 자태와 멋진 노래를 부르던 여가수, 샬롯떼의 친구, 브르노의 아내 등을 포함해서 말이죠.
셋째는 물론 스토리입니다.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를 풀어가는게 전체 줄거리이긴 하지만 다양한 인물만큼이나 여러 이야기들이 얽혀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시원하게 풀어지지 않아서 좀 아쉽기는 하지만, 뭐 인생도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 시즌이 또 나오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아주 인상적인, 흥미로운, 재밌는 형사 드라마의 발견이였습니다.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우선 독일영화하면 늘 나찌나 전쟁을 떠올리죠. 하지만 문화나 기술 면에서 최고의 수준이였던 사회 실상을 볼 기회는 많이 없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당시 최고의 도시 베를린을 구경하는 재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엘레베이터, 음악, 춤 등 신기할 뿐입니다.
전쟁이 끝났지만 아직도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극우와 군인들의 정서도 잘 들어나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시작하는 정치불안정, 좌우의 극한 대립, 나찌의 성장도 이곳 저곳 잘 맞춰져있어 보는 재미를 더합니다.
두번째 재미는 단순하지 않고 계속 변하는 등장인물들입니다.
여주인공 샬롯떼의 발전을 보는 것도 큰 재미입니다. 어려운 삶에서도 희망, 강인함, 재치를 잃지 않는 그녀가 어떻게 커가는지 아주 흥미롭습니다.
악역인 브르노가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습니다. 정도 많고, 그가 품은 꿈이 그리 낯선 것만도 아니죠. 하긴 '악인'이라는 굴레가 너무 일반화시키는 거죠. 그래서 악인이 더 무서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 주인공 게리온 또한 여러 면을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볼 때 비로소 그의 공포를, 그의 슬픔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외도 흥미로운 인물들이 많습니다. 우아한 자태와 멋진 노래를 부르던 여가수, 샬롯떼의 친구, 브르노의 아내 등을 포함해서 말이죠.
셋째는 물론 스토리입니다.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이를 풀어가는게 전체 줄거리이긴 하지만 다양한 인물만큼이나 여러 이야기들이 얽혀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시원하게 풀어지지 않아서 좀 아쉽기는 하지만, 뭐 인생도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 시즌이 또 나오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아주 인상적인, 흥미로운, 재밌는 형사 드라마의 발견이였습니다.
꼭 봐/(난) 재밌어/볼만 해/그냥 그래
Friday, October 13, 2017
새 책 <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창비에서 "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게 됐습니다. 한국을 비롯 세계 이곳저곳의 정치를 이데올로기라는 렌즈로 조명해보려 했습니다.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온라인 구입: 예스24; 알라딘
"저자는 정치를 움직이는 도구로서 정치 이데올로기의 정의와 역할을 명확히 짚고, 민족주의·종교·사회주의·보수주의 등 대표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들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해설한다. 그리고 정치 이데올로기가 대중매체·조직·자본·사회제도 등을 통해 한 사회에 전파되고 유지되며 강화되는 과정을 구체적인 예와 함께 살피며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정치와 정치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낱낱이 드러낸다. 나아가 한국 사회에 다양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건강하게 공존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보도
- "보수단체는 집회할 때 왜 성조기를 들고나올까" 연합뉴스 (2017/10/18)
- "보수단체는 집회할 때 왜 성조기를 들고나올까" 파이낸셜뉴스 (2017/10/18)
- "보수단체는 집회할 때 왜 성조기를 들고나올까" 부산파이낸셜뉴스 (2017/10/18)
- "재미 정치학자 남태현 교수 '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출간" 매일경제 (2017/10/18)
- "이데올로기 큐대 지구촌 굴리다" 경인일보(2017/10/20)
- "[새책]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外" 경향신문 (2017/10/20)
- "[책꽂이-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정치 이데올로기' 어렵지 않아요" 서울경제 (2017/10/20)
- "재미 정치학자가 본 한국 정치… ‘보수’는 왜 왜곡되었나" 서울신문 (2017/10/20)
- "‘태극기 집회’ 움직인 정치 이데올로기는…" 세계일보 (2017/10/20)
- "[책의 향기]이데올로기는 위대하다? 정치 판단 돕는 도구일뿐" 동아일보(2017/10/21)
- "세계 정치의 흐름 ‘이데올로기’로 파악한다" 대구일보 (2017.10.25)
- "[김효진의 책 한 끼]한국 보수 왜곡시킨 분단" 아시아경제 (2017.11.10)
Friday, January 27, 2017
[세상읽기]트럼프 시대와 남북 평화
경향신문 2017.01.2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훨씬 더 요란했습니다. 미국 전역(토요일 워싱턴DC에서만 50만명)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반트럼프 시위가 퍼져나갔고 최저의 지지율(37%)로 취임하는 기록도 갖게 됐죠. 트럼프는 캠페인 내내 여성,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를 조롱했고 인종차별주의 언행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는 무역 정책이 가장 걱정스러운 주제인 듯합니다. 보호무역을 공언했기 때문이죠. 높은 관세로 국내 산업과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고 큰소리도 쳐왔습니다. 실제로 첫 업무날인 지난 23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명령했습니다. 기존 국제 무역질서를 흔들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역 의존이 심각한 한국으로서는 큰일이죠. 하지만 이것이 발등의 불이라면 머리에 붙은 불길도 있습니다. 트럼프의 대중국 적개심이 그것입니다.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를 중국의 사기라고 말해서 비웃음을 샀지만 여기서 그의 중국관이 비쳤죠. 선거전 내내 중국 환율정책을 걸고넘어지며 무역 보복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바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1979년 미·중 외교 정상화 이후 처음 있던 일이죠. 미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해왔고, 이는 대만은 반란 상태에 있는 중국 영토라는 중국의 시각을 수용해왔던 겁니다. 그러니 대만 총통과의 전화 통화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기였었죠. 게다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무역 불공정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하나의 중국 정책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경고도 보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이 걱정스러운 것은 중·미 간 긴장이 이미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중국의 힘은 나날이 커져 왔습니다. 경제적 성장은 군사적 팽창으로 이어졌고, 그 결실 중 하나는 항공모함 랴오닝입니다. 이달 초 랴오닝 함대는 태평양에 진출해 대만해협을 통과했죠. 대만과 미국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외교력 성장도 눈부십니다. 특히 필리핀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남중국해 영토분쟁 상대국들의 연합전선을 무력화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가만히 있을 미국이 아닙니다. 작년 5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고, 12월 화답으로 아베 신조 총리가 진주만을 방문했습니다. 이들의 외교적 춤사위는 미·일 군사 협력 강화라는 장단에 맞춘 겁니다. 일본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에 조응하고 군사동맹을 강화했습니다. 자위대는 항공모함급 헬기 호위함, 이지스함, F-15 등 최첨단 무기를 갖추었고 일본 방위비 지출은 세계 6위로 성장했죠. 게다가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법 개정을 통해 아프리카에 파견된 일본 자위대가 적극적으로 무기를 사용해 전투를 벌일 수 있게 했습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의 긴장이 높아만 가리라는 전망은 각국의 국내 사정을 보면 더 확실해집니다. 아베와 우파는 숙원이던 정상국가화의 꿈이 중국, 북한과의 대립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직감했죠. 일본의 군사 대국화는 저물어 가는 미국으로서는 환영할 일입니다. 서로의 국익이 맞아 떨어지죠. 중국도 물러설 자리는 넓지 않습니다. 중국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로 빠르게 대체돼왔습니다. 특히 시진핑 정권에서 그 경향은 더 짙어졌습니다. 중국의 부활은 곧 외세의 배척과 이어져 있죠. 미국의 간섭과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좌시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이 시점에 하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겁니다.
양측의 대결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멀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 가까이는 한국전쟁, 군사독재까지 고래 싸움에 배와 등이 다 터져본 한국으로서는 심각한 고민이 절실한 때입니다. 우리가 고래가 될 수는 없죠. 하지만 새우로 남을 수도 없습니다. 어느 쪽에도 빌미를 주지 않을 정치력이 필요합니다. 한편에서는 사드도 재고하고 주한미군도 위축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발 위협도 누그러뜨려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모두에게 간섭할 이유를 주지 않을 수 있죠. 그 시작은 남북 간 평화이고 그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절박한 길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훨씬 더 요란했습니다. 미국 전역(토요일 워싱턴DC에서만 50만명)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반트럼프 시위가 퍼져나갔고 최저의 지지율(37%)로 취임하는 기록도 갖게 됐죠. 트럼프는 캠페인 내내 여성,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를 조롱했고 인종차별주의 언행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는 무역 정책이 가장 걱정스러운 주제인 듯합니다. 보호무역을 공언했기 때문이죠. 높은 관세로 국내 산업과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고 큰소리도 쳐왔습니다. 실제로 첫 업무날인 지난 23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명령했습니다. 기존 국제 무역질서를 흔들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역 의존이 심각한 한국으로서는 큰일이죠. 하지만 이것이 발등의 불이라면 머리에 붙은 불길도 있습니다. 트럼프의 대중국 적개심이 그것입니다.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를 중국의 사기라고 말해서 비웃음을 샀지만 여기서 그의 중국관이 비쳤죠. 선거전 내내 중국 환율정책을 걸고넘어지며 무역 보복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바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1979년 미·중 외교 정상화 이후 처음 있던 일이죠. 미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해왔고, 이는 대만은 반란 상태에 있는 중국 영토라는 중국의 시각을 수용해왔던 겁니다. 그러니 대만 총통과의 전화 통화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기였었죠. 게다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무역 불공정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하나의 중국 정책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경고도 보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이 걱정스러운 것은 중·미 간 긴장이 이미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중국의 힘은 나날이 커져 왔습니다. 경제적 성장은 군사적 팽창으로 이어졌고, 그 결실 중 하나는 항공모함 랴오닝입니다. 이달 초 랴오닝 함대는 태평양에 진출해 대만해협을 통과했죠. 대만과 미국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외교력 성장도 눈부십니다. 특히 필리핀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남중국해 영토분쟁 상대국들의 연합전선을 무력화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가만히 있을 미국이 아닙니다. 작년 5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고, 12월 화답으로 아베 신조 총리가 진주만을 방문했습니다. 이들의 외교적 춤사위는 미·일 군사 협력 강화라는 장단에 맞춘 겁니다. 일본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에 조응하고 군사동맹을 강화했습니다. 자위대는 항공모함급 헬기 호위함, 이지스함, F-15 등 최첨단 무기를 갖추었고 일본 방위비 지출은 세계 6위로 성장했죠. 게다가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법 개정을 통해 아프리카에 파견된 일본 자위대가 적극적으로 무기를 사용해 전투를 벌일 수 있게 했습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의 긴장이 높아만 가리라는 전망은 각국의 국내 사정을 보면 더 확실해집니다. 아베와 우파는 숙원이던 정상국가화의 꿈이 중국, 북한과의 대립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직감했죠. 일본의 군사 대국화는 저물어 가는 미국으로서는 환영할 일입니다. 서로의 국익이 맞아 떨어지죠. 중국도 물러설 자리는 넓지 않습니다. 중국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로 빠르게 대체돼왔습니다. 특히 시진핑 정권에서 그 경향은 더 짙어졌습니다. 중국의 부활은 곧 외세의 배척과 이어져 있죠. 미국의 간섭과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좌시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이 시점에 하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겁니다.
양측의 대결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멀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 가까이는 한국전쟁, 군사독재까지 고래 싸움에 배와 등이 다 터져본 한국으로서는 심각한 고민이 절실한 때입니다. 우리가 고래가 될 수는 없죠. 하지만 새우로 남을 수도 없습니다. 어느 쪽에도 빌미를 주지 않을 정치력이 필요합니다. 한편에서는 사드도 재고하고 주한미군도 위축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발 위협도 누그러뜨려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모두에게 간섭할 이유를 주지 않을 수 있죠. 그 시작은 남북 간 평화이고 그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절박한 길입니다.
곧 다가올 대선, 정치인들의 입을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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