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7.04.20)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발 태풍이 한반도에 몰아쳤죠. ‘전략적 인내’가 끝났다며 북한을 압박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말하며 한국을 당황케 했습니다. 그 때문에 한반도 안보가 한국의 아킬레스건임을 새삼 곱씹어야 했죠. 안보를 미국에 맡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운신 폭이 크지 않다는 현실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최선의 정책은 평화의 확장입니다. 평화는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럴수록 한국의 목소리는 커질 테니까요. 평화의 공간이 줄고 대결이 고조될수록 우리의 목소리는 강대국의 고함 속에 잠기는 법이죠.
안철수 후보는 평화에의 확신이 없어보입니다. ‘국민적 합의’를 강조하며 사드 배치를 반대했던 안 후보는 ‘국가 간 합의’를 외치면서 찬성으로 돌아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개성공단에 대한 입장도 재개에서 유보로 바꿨죠.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도 시기상조로 돌아섰고 햇볕정책에 대한 입장도 계승에서 침묵으로 바꿨습니다. 하나같이 중요한 외교 사안인데 모두 평화 쪽에서 대결의 방향으로 간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습니다.
게다가 그 변신에 대한 설명도 충분치 않습니다. 사드 입장 변화에 대해 안철수 후보 본인도, 박지원 대표도 사정이 바뀌었으니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바뀐 사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주변 정세나 북한 위협 등 사정은 기본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뚜렷이 달라진 것은 보수층 지지를 받기 시작한, 안철수 후보 본인의 사정입니다. 선거를 위해 안보를 가벼이 대하지 않나 싶어 우려스럽습니다.
말하지 않은 그 무슨 심각한 고려가 있었다 치더라도 걱정이 싹 가시지는 않습니다. 국가 간 합의가 자연의 법칙이 아닌 것은 정작 미국 부통령이 한·미 FTA 개정을 들고나오는 바람에 확인할 수 있었죠. 미국과 중국이 맞붙을 가까운 미래에는 유연한 입장을 통해 청과 명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광해군의 지혜가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안 후보의 인식은 교조적 외교로 병자호란을 불러들인 인조의 실수를 떠올리게 해 우려됩니다.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겠다던 안 후보의 호기를 기억하기에 더욱 안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새정치연합은 안철수 대표가 2014년 꾸리자마자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소멸했습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그 이름이 이어졌죠. 안 후보가 탈당하며 더불어민주당이 되면서 ‘새정치’라는 수식어도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안 후보 하면 ‘새 정치’였습니다. 그 새 정치를 위해 안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나와 새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의 승자독식 선거제가 양당제를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과감한 결단이었죠.
안 후보의 새 정치는 딱 여기까지였던 듯합니다. 천정배 의원을 공동대표로 내세우며 호남 민심을 노렸고 박지원 의원을 위시한 동교동계를 대거 받아들였죠. 국민의당은 호남당이 됐고 총선에서 호남을, 호남만을 휩쓸었습니다. 이를 안 후보는 ‘녹색바람’이라 불렀죠. 하지만 승자독식 선거제의 양당제 경향을 지역표로 극복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영국의 양당제하에서 스코틀랜드 민족당이 비슷한 예죠. 노동당과 보수당이 대변할 수 없는 특수한 이익, 즉 스코틀랜드 민족주의를 내세워서 이들은 제3당의 입지를 넓혔습니다. 바로 국민의당의 전략이었습니다. 즉 안철수표 새 정치, 국민의당은 한국 특유의 지역정치를 잘 이용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죠.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손을 맞잡은 순간을 모두들 기억하실 겁니다. 수많은 이들에게 평화의 희망을 주었고 살육과 대결로 이어진 반세기 남북관계를 돌려놓는 감격적 계기였습니다. 그해 8월 개성공단 사업이 첫걸음을 떼었고 금강산 관광사업도 탄력을 받았죠. 당장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던 남북은 화해의 무지개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남북관계에 한국의 목소리가 커졌고 세계는 노벨 평화상으로 박수를 보냈죠. ‘햇볕정책’은 말 그대로 새로운 장을 열어놓았었습니다.
새 정치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안 후보가 말한 새 정치의 정체가 궁금한 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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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y 14, 2017
Tuesday, April 18, 2017
요동치는 안철수 안보 인식
- 사드 배치
- 안 후보는 정부의 사드 배치 발표 이틀 후인 지난해 7월10일 개인 성명에서 “사드 배치는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고 국민투표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드의 성능과 비용 부담, 대중국 관계 악화, 전자파 피해 등을 들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의 크기가 더 크다”고 했다. 의원총회에선 “사드 배치는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 -->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등을 거치며 ‘국가 간 합의’는 부득이하게 사드를 배치해야 하는 찬성 논리로 작용했다. 4월 들어 “사드 배치를 제대로 해야 한다”(6일 관훈클럽 토론회), “대통령은 국가 간 합의를 넘겨받아야 할 책임이 있다”(9일 연합뉴스 인터뷰) 등 찬성 입장이 강화됐다. 경향신문(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091746001#csidx6baf22580c25a2f8d85a37bb3953528)
- 개성공단
- 안철수 후보는 2012년 발간한 자신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는 금강산, 개성공단을 다시 시작하고 개성공단을 확대하며 개성공단과 같은 협력 모델을 다른 지역에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입장도 물었는데 안 후보는 “유엔제재국면”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조건과 시기에 협상테이블을 만들면 거기서 일괄적으로 논의하자는 입장”이라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6246#csidx4aa66d5ed7153b5a64bfbd532113ad2) - 전시작전권
- 2012년 11월9일 안철수 당시 무소속 대선후보는 서울 종로구 공평동 캠프에서 열린 국방안보포럼 간담회에서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을 예정대로 하고 한미동맹 하에 튼튼한 안보태세를 갖추겠다”고 했다.
- --> “작전권 회수 동의를 지금도 하냐”고 물었고 안 후보는 “저희들이 스스로 자강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답했다.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6246#csidx4aa66d5ed7153b5a64bfbd532113ad2)
Tuesday, April 11, 2017
안철수의 새정치는 언제쯤?
우연히 보게된 옛 글. 안철수에 관한 글이 있었다. 딱 삼년 전에 썼는데 그 때 그 의문은 (놀랍게)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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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그 고집이 보여주는 새 정치의 폭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 훌륭합니다. 정치인들이 쉽게 약속을 어기는 마당에 약속을 지키려 노력한 것, 새롭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요? 과연 그가 말한 그의 새 정치는 무엇일까요?
그가 내놓은 대선 공약집을 보면 국민을 섬기는 정부, 공공기관의 혁신 등에서 교육, 문화로 이어지는 그의 비젼은 매력적이지만 과연 이게 새 정치인가하는 의문을 없애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강령/정강 정책을 들여다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근사한 말은 있지만 그것뿐입니다.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참신한 아이디어가 곧 새로운 정치일까요?
참신한 아이디어는 새 정치에 필요한 부분이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이들의 말을 잠시 내려놓고 하는 ‘정치’를 보면 새 정치와는 거리가 아주 멀어 보입니다. 안철수가 한 정치라는 것은, 선거의 승리라는 아주 전형적인 목표를 위해 통합이라는 아주 전형적인 방법으로 양당구조라는 전형적인 지형을 구축한 것이죠. 즉 안철수의 정치는 아주 구태의연하며 전형적이고 전혀 새롭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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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그 고집이 보여주는 새 정치의 폭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 훌륭합니다. 정치인들이 쉽게 약속을 어기는 마당에 약속을 지키려 노력한 것, 새롭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요? 과연 그가 말한 그의 새 정치는 무엇일까요?
그가 내놓은 대선 공약집을 보면 국민을 섬기는 정부, 공공기관의 혁신 등에서 교육, 문화로 이어지는 그의 비젼은 매력적이지만 과연 이게 새 정치인가하는 의문을 없애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강령/정강 정책을 들여다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근사한 말은 있지만 그것뿐입니다.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참신한 아이디어가 곧 새로운 정치일까요?
참신한 아이디어는 새 정치에 필요한 부분이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이들의 말을 잠시 내려놓고 하는 ‘정치’를 보면 새 정치와는 거리가 아주 멀어 보입니다. 안철수가 한 정치라는 것은, 선거의 승리라는 아주 전형적인 목표를 위해 통합이라는 아주 전형적인 방법으로 양당구조라는 전형적인 지형을 구축한 것이죠. 즉 안철수의 정치는 아주 구태의연하며 전형적이고 전혀 새롭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비극이 이런 실망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비극은 안철수는 아직도 자신이 새 정치를 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고, 우리는 그냥 막연히나마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죠. 더 큰 비극은 정치인들이 짜놓은 그 좁디좁은 새 정치의 틀에 갇혀 어떤 것이 새 정치일 수 있는지, 그 상상의 나래마저 꺾여버린 우리의 처지일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새 정치는 어떤 모습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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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새로운 정당을 꾸렸다. 양당 구조를 깨는 과감한 선택이었고 성공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는 지역구도에 기댄 선거였고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걸 새정치라고 말할 수는 없을테고... 지금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만 봐도 새정치를 구현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긴 이미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나만 궁금해하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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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새로운 정당을 꾸렸다. 양당 구조를 깨는 과감한 선택이었고 성공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는 지역구도에 기댄 선거였고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걸 새정치라고 말할 수는 없을테고... 지금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만 봐도 새정치를 구현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긴 이미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나만 궁금해하고 있나보다.
Thursday, April 17, 2014
고집스런 안철수의 낡은 ‘새 정치’
고집스런 안철수의 낡은 ‘새 정치’ - 남태현
인사이트 2014-04-17
http://insight.co.kr/content.php?Idx=1622&Code1=001
예상했던 대로 안철수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관심은 지대합니다. 당연한 것이겠지요. 한국에서 컴퓨터라는 물건을 만져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V3라는 안철수의 놀라운 바이러스퇴치 프로그램을 써보았을 테고 이를 공짜로 나눈 그의 배짱과 긴 안목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의사로 시작해 컴퓨터엔지니어로, 그리고 뛰어난 사업가로서 그의 성공적 삶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고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해 서울 시장과 대통령의 자리를 노렸을 때 흥분했습니다. 아마도 제대로 된, 상식적인 지도자가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성원에 힘입어 이제 그는 당당히 야당의 한 대표로 성장했습니다. 민주당에 통합의 한 축으로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가 된 것이죠. 제일 야당을 이끌던 김한길 대표가 오히려 밀리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마도 안철수가 가지는 대권후보로서의 잠재력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안철수가 갖고 있는 정치적 가능성은 큰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우리가 안철수의 새 정치라는 것 자체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은요? 기초선거에 정당공천을 하지 않겠다던 그가 결국 새 당내의 볼멘소리를 무시할 수 없어 기존의 입장을 바꾸고 국민에게 사과를 구했습니다.
박근혜의 공약파기로 인해 생긴 소동인 만큼 비난을 받는다면 박 대통령이 가장 큰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사실 초등학생도 알 일입니다. 문제는 모두들 이를 갖고 안철수의 새 정치가 퇴색되었다고 비난하거나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양쪽 모두, 어쩌면 안철수 본인마저 기초선거의 정당공천 문제가 새 정치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다르게 말하면 정당공천처럼 사소한 일이 새 정치의 몸통이라는, 초라한 현실을 보여준 사건이라 할 것입니다.
대선의 공약이라는 것이 결코 가벼운 문제는 아닙니다. 후보자가 그럴싸한 공약으로 민중의 환심을 사고 권력을 얻은 후에 껌 종이 버리듯 무시하는 행태는 민주체제의 맹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의 고집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죠.
안철수의 실망스러운 고집
사실 대통령이 공약을 어겼다고 비난하고 자기네는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느 정치인이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철수의 그 고집은 두 가지 면에서 크게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첫째로 그 공약에의 고집은 그다지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철수의 대선공약집을 보면 “기초단체장이 해당 선거구 국회의원에게 예속돼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종속”되고 “정당공천으로 인한 공천비리 및 부패 만연”되어 “현행 지방자치제도는 풀뿌리 자치를 구현하지 못”한다고 진단하며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를 그 해결책으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국민이 애초에 간절하게 원한 것은 아니었죠. 이 문제에 대해 민중이 깊은 이해를 하고 변화를 갈구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듭니다. 게다가 그는 대선을 완주하지 않았습니다. 즉 대통령이 되면 이런저런 것을 하겠다고 했으니 대통령이 되지 않은 이 마당에 그 약속이라는 것은 개인적 철학의 문제에 불과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는 자신의 신뢰와 철학을 위해 당 전체의 운명을 볼모로 대통령과 맞서려고 했습니다.
이는 그가 고집은 있지만 전략적 사고가 부족함을 엿보게 할 수 있었습니다. 혹자는 이 고집을 국회의원 노무현이 질 것을 알면서 서울의 지역구를 포기하고 부산에서 국회의원 자리를 노린 것에 비유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는 맞지 않는 비유죠. 노무현은 자신의 자리를 걸고 도전했지만 안철수는 남의 자리를 걸고 도박을 했으니까요.
둘째로 그 고집이 보여주는 새 정치의 폭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 훌륭합니다. 정치인들이 쉽게 약속을 어기는 마당에 약속을 지키려 노력한 것, 새롭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요? 과연 그가 말한 그의 새 정치는 무엇일까요?
그가 내놓은 대선 공약집을 보면 국민을 섬기는 정부, 공공기관의 혁신 등에서 교육, 문화로 이어지는 그의 비젼은 매력적이지만 과연 이게 새 정치인가하는 의문을 없애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강령/정강 정책을 들여다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근사한 말은 있지만 그것뿐입니다.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참신한 아이디어가 곧 새로운 정치일까요?
참신한 아이디어는 새 정치에 필요한 부분이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이들의 말을 잠시 내려놓고 하는 ‘정치’를 보면 새 정치와는 거리가 아주 멀어 보입니다. 안철수가 한 정치라는 것은, 선거의 승리라는 아주 전형적인 목표를 위해 통합이라는 아주 전형적인 방법으로 양당구조라는 전형적인 지형을 구축한 것이죠. 즉 안철수의 정치는 아주 구태의연하며 전형적이고 전혀 새롭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비극이 이런 실망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비극은 안철수는 아직도 자신이 새 정치를 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고, 우리는 그냥 막연히나마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죠. 더 큰 비극은 정치인들이 짜놓은 그 좁디좁은 새 정치의 틀에 갇혀 어떤 것이 새 정치일 수 있는지, 그 상상의 나래마저 꺾여버린 우리의 처지일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새 정치는 어떤 모습일 수 있을까요?
Wednesday, March 5, 2014
安 비판마라, 걱정할 일 따로 있다
安 비판마라, 걱정할 일 따로 있다 - 남태현
Insight 2014-3-5
http://insight.co.kr/content.php?Idx=858&Code1=001지난 3월 2일을 시작으로 한국 정치 뉴스는 거의 한 가지 소식만 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김한길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과 안철수의 새정치연합의 통합이 그것이었죠.
당장 있는 지방선거와 다가올 총선,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승리를 막고 새 정치를 구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워낙에 갑작스레 있는 일이어서였는지 논란이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논란들을 살펴보고 한국정치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논해보로록 하겠습니다.
안철수‧김한길, 밀실정치 구태 답습?
일단은 비난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조선일보(2014.3.3)가 말하듯 ‘구(舊)정치에 대한 새 정치의 백기 투항’이라는 비아냥이 그 것이죠. 그도 그럴 것이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안철수와 그의 세력은 민주당을 싸잡아 낡은 정치세력이라고 비난했더랬죠.
그러더니 며칠 사이 그 낡은 정치 세력과 통합이라니 놀랄만한 일입니다. 이러한 비난은 한나라당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진영에서도 들립니다. 정의당은 3월 2일 논평에서 "한국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인 양당기득권 독점체제를 깨고 '새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열망이 좌초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안철수 의원은 그동안 누차 양당독점체제를 허무는 새로운 정치를 주창해 왔으나 결국 스스로가 기득권 독점체제에 편승한 결과를 낳았다”고 했고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도 3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신당 창당이 … 혁신 대상인 양당 기득권 체제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 (새정치) 명분은 상실됐다”고 꼬집었습니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합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들어난 밀실정치의 구태를 비판합니다. 공적인 정치세력의 합당이란 것이 가벼운 일일 수 없고 최소한 그 조직 내에서만이라도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절차가 바람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밀실통합이었죠. 민주당의 김광진 의원은 "아니! 언제부터 민주당이 당대표 1인에게 당해산, 합당, 신당 창당의 권한을 줬냐"며 "이런 중대차한 일을 당원, 의원단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기자회견 5분 전에 '미리 상의하지 못해 양해를 구한다'는 문자하나 달랑 보내고 끝낼 수 있습니까"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새정치연합 윤여준 의장도 합당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린 2일 오전까지도 신당 창당 결정을 통보받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민주체제의 핵심, 선거의 승리
이러한 비난과 실망의 목소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민주체제의 핵심을 간과한 비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체제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양당기득권의 독점체제를 깨는 것인가요? ‘새정치’를 구현하는 것인가요? 밀실정치를 타파하는 것인가요? 물론 이들 모두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민주체제의 핵심일까요?
민주체제의 핵심은 다른 것이 아닌 선거의 승리입니다. 왕정체제에서도 당파정치를 깨는 것이 중요했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밀실정치를 욕하는 목소리도 있었죠.
하지만 이는 나라를 운영하는 이들의 숙제이었지 체제를 안정시키는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왕위의 계승과 유지였습니다. 소위 민주국가라고 불리는 곳에서도 이런 저런 과업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 나라가 추구해야할 숙제이지 체제의 정체성은 아닌 것이죠.
민주체제의 정체성은 선거에서 나오고 권력은 선거의 승리에서 나옵니다. 숙제는 그 후에나 할 수 있는 것이죠. 즉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민주체제라는 것입니다. 이 당위를 곱씹어 본다면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이기고자 하는 욕망을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는 학생이 공부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크다고 뭐라 하는 것과 똑 같은 것이죠.
그런 면에서 합당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모두 선거에 고전할 것이라 예견되었었고 합당은 두 당 모두에게 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해결책인 것이었던거죠. 그런 면에서 합당의 목표나 대의가 불문명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감정적인 반응일 뿐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자신의 정치적 취향에 따라 야합, 정치공학, 구국의 결단 등으로 불리는) 합당은 늘 있어왔던 일입니다. 1990년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제2야당이던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을 해 거대 여당을 만들어 정권을 재창출했습니다.
1997년의 대통령 레이스에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과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이 손을 잡고 신한국당의 이회창을 간신히 이겼습니다. 2002년엔 민주당의 노무현은 국민통합21의 정몽준과 과감하게 손을 잡으면서 이회창을 역전했죠. 합당 또는 그에 준하는 연합이 선거에 힘을 발하는 것을 보여주는 뚜렷한 예입니다.
신당창당, 6‧4 지방선거에 활력
당장에 지지부진할 것으로 예상했던 야당의 지방선거에도 활력이 띄고 있습니다. “두 세력이 통합하면 각자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확장할 여지가 많았고, 견제도 협력도 못하는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도 견제할 것은 견제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관계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경향신문 사설 3.2)가 있고 실제로 야당의 지지율도 치솟았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국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신당 지지율은 30%로 2월 21~22일 실시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나온 민주당 10.3%, 새정치연합 13.7%를 단순 합산한 24.0%와 비교할 때 지지율이 6%포인트 가까이 오른 것입니다.
하지만 새누리당 지지율은 39.9%에서 39.3%로 0.6%포인트 줄어 별다른 변화가 없었죠. 새누리당에서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입니다. 야권이 민주당과 안철수 지지세력, 진보세력으로 갈갈이 나누어져 쉬운 싸움이 예상되었던 새누리당으로선 황당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왜 이렇게 정치판이 돌아가냐는 것입니다. 왜 계속 합당 또는 야합이 나타날까요? 이를 구태적인 정치라고 욕하던 이들도 합당을 하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고질적인 병폐인 양당기득권 독점체제를 깨기’가 이렇게 힘든 것은 왜일까요? 질문은 조금씩 다르지만 사실 대답은 하나입니다. 바로 우리의 선거제도 때문이죠 (남태현 2014 <왜 정치는 우리는 배신하는가>).
우리의 선거제는 각 선거구에서 최대의 득표를 한 후보만이 승리하는 제도입니다. 당연히 승자는 한 명일 뿐이죠. 그 선거구에서 노태우 후보처럼 36.6%의 득표를 하건 박근혜 후보처럼 과반수를 넘건 일등만 하면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거꾸로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한명만 이기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솔직한 지지보다는 전략적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동자의 정당에 투표하고 싶어도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으므로 그나마 조금 더 비슷한 민주당에 투표하게 되는 것이죠.
‘새누리당보다는 낫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건 아니건 우리의 선거제도에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투표형태는 결과적으로 양당제를 공고하게 만듭니다.
한국의 양당제, 안철수 혼자 바꿀 수 없다
좌건 우건 이념의 잣대에 가운데에 서있는 두 정당 말고는 살아남기 힘든 것이죠. 노동정당의 지지가 민주당에 흡수되는 것처럼, 극우정당의 지지도 새누리당으로 흡수되어 살아남기 힘든 것은 이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양당이 무슨 기득권을 조작하고 독점하는 흉계를 꾸미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스레 제도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죠. 거꾸로 양당제는 안철수 혼자 바꿀 수 있는 것도 애초에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실망을 하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기대를 한 면이 큽니다. 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판에 반영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정당 둘이 사회의 다양성을 대변할 수는 없죠.
그러므로 다양한 정당이 정권을 다투는 건전한 민주체제를 이루는 길은 선거제도를, 그리고 더 나아가 헌법을 바꾸는데서 찾아야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이번 합당을 보고 생각해봐야할 숙제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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