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아침을 저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바로 9ㆍ11테러가 나던 날이죠. 저만 아니라 그날 미국에 있었던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미국사회의 충격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충격만큼이나 심각한 군사적, 정치적 대응들이 뒤따랐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2002년 꾸려진 ‘9ㆍ11 위원회’였죠. 이들이 2004년 내놓은 보고서는 막을 수 있었던 테러를 막지 못한 정부에 대한 일갈로 유명해졌습니다.
9ㆍ11 보고서가 미국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던 중요한 근거는 바로 이 위원회의 구성원이였습니다. 국가안보의 중요한 일이니 정쟁이 가당치 않다는 판단 아래 여야 인사 5명씩 총 10명으로 꾸려졌습니다. 더군다나 이들은 정계의 인사들뿐 아니라 법조계, 군, 행정가 등 다양한 전문가를 포함했죠. 한편으로는 보고서의 전문성을 높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이는 신뢰를 얻는, 좋은 보고서로 이어졌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한꺼번에 죽어가는 것을 빤히, 다들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자괴감은 그 충격을 더했습니다. 진상 규명이 그만큼 더 다급한 이유이죠. 하지만 이런 노력을 위한 정부의 시행령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상 규명 대상을 ‘정부 조사 결과의 분석’ 및 ‘원인 규명에 관한 조사’로 국한해 특별법이 정한 ‘참사의 발생원인…의 사실관계와 책임소재의 진상을 밝힌다’는 목적을 축소 내지 왜곡할 수 있어 우려됩니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주요직을 공무원으로 채우는 것이죠. 특위 주요 업무를 맡을 사무처 담당자들과 진상규명국 조사1과장에 공무원이 임명되는 것을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이 일 못할 것을 우려하는 것은 아닙니다. 걱정은 바로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정부는 선박안전 관리, 운행감독을 외면해 대형사고를 낼 토양을 일구었고 세월호 침몰시 대응을 제대로 못한 것을 지나 적절한 대응마저 막았습니다. 책임자의 검거와 조사에도 문제가 많았죠. 정부가 문제의 큰 일부이지만 정부의 수반은 자신의 일이 아닌 양 대응했고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탄압까지 서슴지 않은 것도 모자라 이제 조사마저 그 정부가 담당할 기세인 것입니다.
이를 보고 있으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조사하겠다니요. 혹시 정부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스스로 고칠 능력과 의사가 있다고 믿는 걸까요? 아니면 혹시나 정부는 스스로의 과오를 감추거나 미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요?
정부에 대한 신뢰가 지하갱도 막장 끝까지 떨어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보면 국민의 신뢰를 한껏 얻고 있는 정부라 하더라도 힘들 조사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당장 유가족들의 목소리도 무시하고 있습니다. 정부안이 의미 있는 결과를 내기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정부의 진정한 의도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이미 1,000명이 넘는 해외 학자들이 한국정부의 행태를 지적하는 성명서에 동참 했습니다. 한국계 학자들뿐 아니라 동서양 막론하고 세계의 지성들이 우려를 표명했죠. 하지만 정부는 의아한 행태를 고집해왔습니다. 이에 또 다시 학자들의 지적이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이들은 최근 새로운 성명서에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제출한 시행령(안)을 정부 시행령으로” 바꾸고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하고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번에도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할까요?
박근혜정부가 이제라도 불신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다면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유족을 위로하고 미래의 사고를 막는데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현 시행령을 즉각 폐기하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제출한 시행령안으로 이를 대체하길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