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8.09.20)
한국에서 콜롬비아는 커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남미 성장을 주도하는 국가로 지난 6월 OECD에 37번째 가입했음은 잘 알려지지 않았죠. 물론 그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성장은 2016년 오랜 내전을 끝내고서야 가능했습니다. 내전은 폭력과 심해지는 빈부격차로 신음하던 농민들이 자위대를 구성하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초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으로 성장했죠. 길고 긴 내전이 이어졌고 20만명 넘는 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휴전 시도도 있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무장해제였습니다. 정부로서는 당연한 요구였지만 반군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무력은 이들을 정부가 심각하게 대화할 수밖에 없는 상대로 만든 바로 그것이니까요. 무력해제 후 정부가 말을 바꿀 수 있으니 협상은 어려울 수밖에요.
콜롬비아의 산토스 정부는 혁명군에게 공간과 시간을 내줬습니다. 여기서 반군은 제한적 활동을 이어가며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지 지켜봤습니다. 동시에 반군이 콜롬비아 사회에 참여할 기회도 주어졌죠. 이런 점진적 방식 덕에 2016년 평화협정이 가능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들이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산토스 대통령의 후임자인 두케 대통령이었죠. 평화협상을 재검토하겠다고 공언한 그가 대통령이 되자 옛 혁명군들은 들썩이기 시작했죠. 전 혁명군 지도자 몇몇은 조직 재건에 나서고 있습니다. 내전의 기운이 다시 꿈틀대는 상황입니다.
북한의 사정도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 아주 다르지 않습니다. 평화를 원하지만 북한도 핵무기를 쉽게 내줄 수는 없습니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하는 이유가 북한 핵무기가 이제 미국을 위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그러니 핵무기를 포기하는 순간, 북한은 대화 상대로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핵화 이후의 미국을 믿을 수 있을까요? 불안할 수밖에요. 협상이 더딜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산토스 정부가 그랬듯이, 미국과 한국도 북한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시간을 줘야죠. 북한은 단계적으로 핵을 포기하고, 한국과 미국도 이에 맞는 조치를 하나씩 취해나가야 합니다. 비핵화 이후에도 우리가 공존의 길을 함께 걸으리라는 확신을 줘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평양 정상회담은 의미가 깊습니다.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정상화, 서해경제공동특구와 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등 다방면 협력 강화 조치와 비무장지대의 확대, 비행금지구역 설정, 해상기동훈련 중지 등 군사 부문의 협약 모두 북한의 염려를 덜 수 있는 중요한 기재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복병은 한국에도 있습니다. 바로 자유한국당입니다. 이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에 발맞춰왔습니다. 평화와 안정보다는 북한 핵무기 제거에 초점을 맞춰왔죠. 긴장 고조는 2017년 한반도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반북 멸공 이데올로기를 태생적 근간으로 하는 이들로서 사태 해결보다는 극한 대결을 추구한 결과였죠.
촛불정국에 꿇은 무릎도 잠시, 이들은 다시 2018년 평화 분위기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4월 판문점 회담 당시 당대표는 “위장평화쇼”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적은 것” 등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심지어 “다음 대통령은 아마 김정은이 되려는지 모르겠다”며 그들의 속내를 내보였죠. 원내대표는 ‘4·27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 처리도 단칼에 거절했고 이번에는 “평양에서 점심으로 무엇을 드셨는지 모르지만 심각한 오류에 빠졌다”며 억지와 심술을 이어갔습니다.
이들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답은 뻔합니다. 남북 인민이 다 같이 환영하는 오늘의 성과가 개성공단 닫히듯 황당하게 사라질 테죠. 우리는 다시 전쟁 위협과 외세 놀음에 휘둘리게 될 겁니다. 촛불혁명에도, 6월 지방선거에서도 정신을 못 차린 사람들이니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겠죠. 우리의 안위를 위해서 당장 항의 편지라도 써야 합니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는 2020년 4월15일. 앞으로 570여일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