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11, 2014

조현아의 '초능력', 차라리 소설이었으면


서울 시내에서 택시를 후진시켜본 일이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후진하자고 말했다간 욕만 실컷 먹기 딱 좋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뉴욕에서 버스도 아니고 대형항공기를 후진시키기도 한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말 한 마디에 뉴욕을 출발해 한국으로 가려던 대한항공 비행기가 공항 활주로로 이동하다가 후진을 해 사무장을 내려놓았다. 견과류 서비스를 제대로 못한 승무원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덕택에 수백 명의 승객의 객실 서비스와 안전을 책임지는 사무장이 없는 상태로 비행기는 한국까지 날라왔다. 조현아의 고함은 일등석 뒤의 일반석까지 들릴 정도로 컸다고 한다.

그런 일로 사람들 다 들리게 고함을 친 것이나 그 고함에 비행기를 '후진'한 것, 또 사무장이 없이 비행을 강행한 것 모두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자연히 지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슈퍼 갑질,' '진상 손님 조현아,' '이건 갑질을 초월해 법조차 무시' 등의 지탄이 따랐고 국토부조차 위법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해명은 이런 반응과 사뭇 달랐다. 회사측에 따르면, 사무장은 "부사장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규정과 절차를 무시했으며, 매뉴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히 둘러댔"고, 회사는 "승무원 교육을 더욱 강화해 대고객 서비스 및 안전 제고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승무원들만 혼난 것이다.

일반 대중들의 분노는 '너무 했다'는 느낌에 기초한 것이다. 너무 했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흔히 할 반응에 비교해 과했다는 것이다. 이는 조현아 부사장을 일반적인 대중의 잣대로 판단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전제가 과연 옳은 것일까? 조현아 부사장은 보통 사람일까?

조현아는 거대 자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큰딸로 미국 남가주대 경영학석사 취득 후 대한항공에 입사, 7년 만에 임원이 됐고 곧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계열사 '칼 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를 맡았고 한진관광 등기이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미생>을 봤건 대기업에서의 경험이 있건, 이런 승진이 보통 사람에게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본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시대에서 자본가들에게서나 일어나는 소설과도 같은 일이다. 그 소설에서는 자본가들은 고함으로 비행기도 후진시킬 초능력이 있는 것이다.

물론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세상은 소설이길 바란다. 나와는 전혀 다른 그들, 그들의 숨막히는 지배와 초능력에 가까운 권력이 소설에서나 나오고, 실제에서는 모두가 비슷하고, 서로 아껴주는 훈훈한 곳이길 바란다. 물론 이 또한 망상인 것을 우리는 뿌연 연무 뒤의 치솟은 빌딩을 보듯 알고 있다. 조현아의 갑질은 그 연무를 걷어내, 우리가 보기 싫은, 검고 높디 높은 빌딩을, 차가운 현실을 온전히 보게 한다.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현아의 갑질이 우연히 우리 눈에 띄었을 뿐 사실 당연한 것이다. 착한 양반도 있었고, 악독한 양반도 있었지만 어짜피 양반은 양반이었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과는 그 힘과 권위에서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면에서 대한항공의 반응, 조현아 부사장을 말그대로 윗어른으로 모시는 입장에서 나온 반응이 더 솔직하다 하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느끼는 분노는 번짓수를 잘못 적은 것인지도 모른다. 조현아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체제에 대한 분노와 성찰이 더 급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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