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28, 2018

[세상읽기]대통령만 바라보는 시민들에게

경향신문(2018.06.28)

2011년 사극 <뿌리 깊은 나무>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석규가 오랜만에 티브이에 출연해서 관심을 끌었죠. 팬으로서 침체기에 있던 배우가 걱정이었지만 이는 한낱 기우였습니다. 드라마는 세종과 밀본이라는 비밀조직의 다툼을 그렸습니다. 양측은 정반대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추구했죠. 세종은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고, 밀본은 정도전의 뜻에 따라 왕이 아닌, 재상 중심의 정치를 추구했습니다.

실제로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군주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고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서 한결같지 않다. 그러므로 재상은 군주의 아름다운 점은 따르고 나쁜 점은 바로잡을” 임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능력 없는 이도 임금이 될 수 있으니 능력 위주의 관료가 중심에 서야 한다는 지적이죠.

드라마고, 왕조시대 이야기지만 밀본의 걱정은 오늘날 정치와도 무관치 않습니다. 정치 안정을 한 개인에게 기댈 수 없다는, 그래서 다수가, 민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점에서 현대 국가의 통치, 특히 민주주의와 닿는다고 할 수 있죠. 이런 점에서 최근 한반도 정세는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먼저 북핵 문제를 보면 개인의 영향력이 도드라집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로 대화의 물꼬가 트였고 평창 올림픽을 거쳐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렸습니다. 내부 사정을 잘 알 수는 없지만, 관료들을 제쳐놓고 김여정 부부장, 김영철 부위원장 등 소수의 최측근을 통해 거침없이 진행됐음을 짐작할 수 있죠. 더 특이한 것은 미국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특사를 만나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의 초청을 수락했습니다. 북·미 협상도 국무부는 쏙 빼놓은 채 최측근인 폼페이오 당시 중앙정보부 국장과 트위터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의 걱정과 반대도 완전히 무시했죠. 개인 치적과 자존심을 앞세운 트럼프에 의해 지난 반세기를 이어온 대북 정책이 뒤집힌 것입니다.

김정은과 트럼프라는 개인이 주도하는 협상이었던 만큼 일 처리가 KTX처럼 빨랐습니다. 하지만 신속했던 만큼 구체적 성과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웃는 얼굴로 악수했지만, 비핵화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 확인은 어떻게 할 것인지 어느 하나도 구체적으로 결정난 것이 없죠. 게다가 두 지도자의 추진력이 주요했던 만큼 둘 중 하나라도, 무슨 이유에서든, 마음만 돌아서면 상황은 쉽게 악화할 수 있습니다. 북·미 협상을 보며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입니다.

다행히도 한국이라는 중재자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지도자와는 달리 정부를 십분 활용하고 민심을 추스르며 남북 문제를 추진하고 있죠. 불안한 북·미 협상에 중심을 잡아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정치가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방선거가 민주당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습니다. 설마설마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월세 내는 날이 또박또박 오듯 예견된 결과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능숙한 외교를 통해 전에 없던 남북 간 평화를 끌어냈고, 70%를 오가는 지지를 받아왔죠. 자연히 민주당은 문재인마케팅에 올인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 기대기는 민주당뿐 아닙니다. 시민도 대통령만 바라보는 형국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그 한 예죠. 이는 불통의 아이콘이던 박근혜의 추억을 지우기 위한 방책이었을 겁니다. 덕택에 막힌 하수구가 뚫린 듯 청원이 뜨겁습니다. 하지만 종편방송 허가 취소, 용의자 처벌 등 대통령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일마저 요구합니다. 권력은 나누어져 있고 법과 제도가 있지만, 시민은 대통령이 봐주고 처리해주길 바라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잘해서 인기도 얻고 국정운영도 잘되고 남북 문제도 잘 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개인에게 기대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그 업적도 쉽게 무너질 수 있죠. 그 여파가 국내정치에 그치지 않고 남·북·미관계에 여파가 미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박근혜에게 환호하며 올인했던 보수의 꼴이 보수만의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21세기, 아직도 덕이 많은 군주 덕에 태평성대가 오고, 폭군 때문에 난세가 오는 중세에 사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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