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스런 안철수의 낡은 ‘새 정치’ - 남태현
인사이트 2014-04-17
http://insight.co.kr/content.php?Idx=1622&Code1=001
예상했던 대로 안철수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관심은 지대합니다. 당연한 것이겠지요. 한국에서 컴퓨터라는 물건을 만져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V3라는 안철수의 놀라운 바이러스퇴치 프로그램을 써보았을 테고 이를 공짜로 나눈 그의 배짱과 긴 안목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의사로 시작해 컴퓨터엔지니어로, 그리고 뛰어난 사업가로서 그의 성공적 삶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고 그가 정치인으로 변신해 서울 시장과 대통령의 자리를 노렸을 때 흥분했습니다. 아마도 제대로 된, 상식적인 지도자가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성원에 힘입어 이제 그는 당당히 야당의 한 대표로 성장했습니다. 민주당에 통합의 한 축으로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가 된 것이죠. 제일 야당을 이끌던 김한길 대표가 오히려 밀리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마도 안철수가 가지는 대권후보로서의 잠재력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안철수가 갖고 있는 정치적 가능성은 큰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우리가 안철수의 새 정치라는 것 자체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은요? 기초선거에 정당공천을 하지 않겠다던 그가 결국 새 당내의 볼멘소리를 무시할 수 없어 기존의 입장을 바꾸고 국민에게 사과를 구했습니다.
박근혜의 공약파기로 인해 생긴 소동인 만큼 비난을 받는다면 박 대통령이 가장 큰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사실 초등학생도 알 일입니다. 문제는 모두들 이를 갖고 안철수의 새 정치가 퇴색되었다고 비난하거나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양쪽 모두, 어쩌면 안철수 본인마저 기초선거의 정당공천 문제가 새 정치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다르게 말하면 정당공천처럼 사소한 일이 새 정치의 몸통이라는, 초라한 현실을 보여준 사건이라 할 것입니다.
대선의 공약이라는 것이 결코 가벼운 문제는 아닙니다. 후보자가 그럴싸한 공약으로 민중의 환심을 사고 권력을 얻은 후에 껌 종이 버리듯 무시하는 행태는 민주체제의 맹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안철수의 고집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죠.
안철수의 실망스러운 고집
사실 대통령이 공약을 어겼다고 비난하고 자기네는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느 정치인이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철수의 그 고집은 두 가지 면에서 크게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첫째로 그 공약에의 고집은 그다지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철수의 대선공약집을 보면 “기초단체장이 해당 선거구 국회의원에게 예속돼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종속”되고 “정당공천으로 인한 공천비리 및 부패 만연”되어 “현행 지방자치제도는 풀뿌리 자치를 구현하지 못”한다고 진단하며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를 그 해결책으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국민이 애초에 간절하게 원한 것은 아니었죠. 이 문제에 대해 민중이 깊은 이해를 하고 변화를 갈구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듭니다. 게다가 그는 대선을 완주하지 않았습니다. 즉 대통령이 되면 이런저런 것을 하겠다고 했으니 대통령이 되지 않은 이 마당에 그 약속이라는 것은 개인적 철학의 문제에 불과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는 자신의 신뢰와 철학을 위해 당 전체의 운명을 볼모로 대통령과 맞서려고 했습니다.
이는 그가 고집은 있지만 전략적 사고가 부족함을 엿보게 할 수 있었습니다. 혹자는 이 고집을 국회의원 노무현이 질 것을 알면서 서울의 지역구를 포기하고 부산에서 국회의원 자리를 노린 것에 비유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는 맞지 않는 비유죠. 노무현은 자신의 자리를 걸고 도전했지만 안철수는 남의 자리를 걸고 도박을 했으니까요.
둘째로 그 고집이 보여주는 새 정치의 폭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 훌륭합니다. 정치인들이 쉽게 약속을 어기는 마당에 약속을 지키려 노력한 것, 새롭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요? 과연 그가 말한 그의 새 정치는 무엇일까요?
그가 내놓은 대선 공약집을 보면 국민을 섬기는 정부, 공공기관의 혁신 등에서 교육, 문화로 이어지는 그의 비젼은 매력적이지만 과연 이게 새 정치인가하는 의문을 없애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강령/정강 정책을 들여다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근사한 말은 있지만 그것뿐입니다.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참신한 아이디어가 곧 새로운 정치일까요?
참신한 아이디어는 새 정치에 필요한 부분이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이들의 말을 잠시 내려놓고 하는 ‘정치’를 보면 새 정치와는 거리가 아주 멀어 보입니다. 안철수가 한 정치라는 것은, 선거의 승리라는 아주 전형적인 목표를 위해 통합이라는 아주 전형적인 방법으로 양당구조라는 전형적인 지형을 구축한 것이죠. 즉 안철수의 정치는 아주 구태의연하며 전형적이고 전혀 새롭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비극이 이런 실망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비극은 안철수는 아직도 자신이 새 정치를 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고, 우리는 그냥 막연히나마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죠. 더 큰 비극은 정치인들이 짜놓은 그 좁디좁은 새 정치의 틀에 갇혀 어떤 것이 새 정치일 수 있는지, 그 상상의 나래마저 꺾여버린 우리의 처지일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새 정치는 어떤 모습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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