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훨씬 더 요란했습니다. 미국 전역(토요일 워싱턴DC에서만 50만명)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반트럼프 시위가 퍼져나갔고 최저의 지지율(37%)로 취임하는 기록도 갖게 됐죠. 트럼프는 캠페인 내내 여성,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를 조롱했고 인종차별주의 언행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는 무역 정책이 가장 걱정스러운 주제인 듯합니다. 보호무역을 공언했기 때문이죠. 높은 관세로 국내 산업과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고 큰소리도 쳐왔습니다. 실제로 첫 업무날인 지난 23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명령했습니다. 기존 국제 무역질서를 흔들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역 의존이 심각한 한국으로서는 큰일이죠. 하지만 이것이 발등의 불이라면 머리에 붙은 불길도 있습니다. 트럼프의 대중국 적개심이 그것입니다.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를 중국의 사기라고 말해서 비웃음을 샀지만 여기서 그의 중국관이 비쳤죠. 선거전 내내 중국 환율정책을 걸고넘어지며 무역 보복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바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1979년 미·중 외교 정상화 이후 처음 있던 일이죠. 미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해왔고, 이는 대만은 반란 상태에 있는 중국 영토라는 중국의 시각을 수용해왔던 겁니다. 그러니 대만 총통과의 전화 통화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기였었죠. 게다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무역 불공정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하나의 중국 정책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경고도 보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이 걱정스러운 것은 중·미 간 긴장이 이미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중국의 힘은 나날이 커져 왔습니다. 경제적 성장은 군사적 팽창으로 이어졌고, 그 결실 중 하나는 항공모함 랴오닝입니다. 이달 초 랴오닝 함대는 태평양에 진출해 대만해협을 통과했죠. 대만과 미국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외교력 성장도 눈부십니다. 특히 필리핀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남중국해 영토분쟁 상대국들의 연합전선을 무력화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가만히 있을 미국이 아닙니다. 작년 5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고, 12월 화답으로 아베 신조 총리가 진주만을 방문했습니다. 이들의 외교적 춤사위는 미·일 군사 협력 강화라는 장단에 맞춘 겁니다. 일본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에 조응하고 군사동맹을 강화했습니다. 자위대는 항공모함급 헬기 호위함, 이지스함, F-15 등 최첨단 무기를 갖추었고 일본 방위비 지출은 세계 6위로 성장했죠. 게다가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법 개정을 통해 아프리카에 파견된 일본 자위대가 적극적으로 무기를 사용해 전투를 벌일 수 있게 했습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의 긴장이 높아만 가리라는 전망은 각국의 국내 사정을 보면 더 확실해집니다. 아베와 우파는 숙원이던 정상국가화의 꿈이 중국, 북한과의 대립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직감했죠. 일본의 군사 대국화는 저물어 가는 미국으로서는 환영할 일입니다. 서로의 국익이 맞아 떨어지죠. 중국도 물러설 자리는 넓지 않습니다. 중국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로 빠르게 대체돼왔습니다. 특히 시진핑 정권에서 그 경향은 더 짙어졌습니다. 중국의 부활은 곧 외세의 배척과 이어져 있죠. 미국의 간섭과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좌시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이 시점에 하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겁니다.
양측의 대결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멀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 가까이는 한국전쟁, 군사독재까지 고래 싸움에 배와 등이 다 터져본 한국으로서는 심각한 고민이 절실한 때입니다. 우리가 고래가 될 수는 없죠. 하지만 새우로 남을 수도 없습니다. 어느 쪽에도 빌미를 주지 않을 정치력이 필요합니다. 한편에서는 사드도 재고하고 주한미군도 위축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발 위협도 누그러뜨려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모두에게 간섭할 이유를 주지 않을 수 있죠. 그 시작은 남북 간 평화이고 그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절박한 길입니다.
곧 다가올 대선, 정치인들의 입을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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