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8, 2011

[왜냐면] 영어 망국병은 병이 아니라 사기다 2

[왜냐면] 영어 망국병은 병이 아니라 사기다 2 / 남태현
한겨레 기사등록 : 2011-04-08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472092.html

저의 ‘영어 망국병은 병이 아니라 사기다’(<한겨레> 3월26일치 왜냐면)라는 글을 읽고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트위트를 보내주셨습니다. 원래 해도 잘 안되는 것을 내 탓이려니 자책하며 더더욱 열심히 하고, 또 그럴수록 자신이 아닌 사회 기득권층의 권위만 더욱 세워주는 ‘사기’를 당하고 있는 이 기막힌 현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공감은 하지만 현실을 어쩔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또 어떤 분은 ‘방법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영어를 배워야 하는 중요성은 타당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국제화 시대의 중요 언어로서 그 쓰임이 확산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시각은 국제화라는 것이 ‘미국화’는 아니라는 것을 간과한 것입니다. 리비아의 내전이 세계 각지의 에너지 수급에 영향을 미치듯 우리는 분명 국제화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모든 것이 미국의 뜻대로 움직이는 미국화된 세상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어의 쓰임과 필요는 한정되어 있고 영어는 그에 맞는 사람들만 하면 되는 것이죠. 소수의 잠재적 영어 우수자를 가리기 위해 사회 전체가 영어로 멍드는 것은 낭비이자 파쇼적인 현상입니다.

많은 분들이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다들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현실이, 사실은 우리를 속이고 있음을 잊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 타협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일방적인 타협일 뿐 다른 쪽에선 애초에 타협할 마음조차 없던 짝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영어가 그냥 하나의 교과 과목인 시절이 있었습니다. 독일어 같은 발음으로 영어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에, 너덜너덜해진 <성문영어>가 다였습니다. 영어를 잘해봐야 거기서 거기였고, 경쟁은 있었지만 비교적 공평했습니다. 영어도 중요했지만 국어·수학·국사도 중요했고, 어제 있었던 축구 내기와 내일 있을 농구 내기도 꽤나 중요했죠. 하지만 이제 한국의 모습을 보면 이건 사람들이 비행기 안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인 듯합니다.

요즘 한국의 영어 공부는 무슨 미래 영화를 보는 듯합니다. 영어유치원이 있더군요. 금발의 선생님이 영어로 가르치고 아이들은 영어로 노래를 부르며 소풍을 가더군요. 이 아이들에겐 미국의 명절도 낯설지 않습니다. 저도 미국에 와서야 알게 된 핼러윈 데이가 버젓이 학교 행사입니다. 마이클, 클라라 같은 미국 이름도 있습니다. 그 부모는 물론 마이클 엄마, 클라라 아빠입니다. 가는 학교도 외국인학교입니다. 이젠 미국계 학교로 갈지, 영국계 학교로 갈지도 고를 수 있더군요. 물론 외국인이 아니어도 돈이 있으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연수도 갑니다. 휴가 때도 하와이에 해수욕을 가거나 로키산맥에서 스키를 타는 게 눈이 휘둥그레질 일이 아닙니다. 사는 게 이러하니 친구들을 만나도 “하이, 마이클”이고, 집에서 식구끼리 영어를 써도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이쯤 되면 영어는 그 집에선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습니다. 주제는 미국의 어느 대학에 갈 것인가도 아닌 미국의 어느 명문 고등학교에 갈 것인가입니다. 고등학교를 고르러 미국에 가서 이곳저곳 탐방도 합니다. 학교 행사가 있을 때 고등학생 자녀들을 보러 마이클 엄마, 클라라 아빠는 태평양을 휙 건너기도 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이런 사람들은 잘 보이지도 않았고, 있어도 이상하게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들은 선망의 대상이자 따라가야 할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미친 듯이 뛰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따라가자는 마음으로요. 사교육비로만 7조원을 쓰고, 나라에선 또 따로 원어민 교사를 고용하고, 영어 교사 재교육이다 뭐다 해서 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과연 저 사람들의 영어를 따라갈 수 있을까요? 이게 따라가지는 건가요?


한때는 명품이었던 핸드백을 너도나도 들게 되면,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더 귀하고 비싼 물건을 사서 자신들을 ‘차별’하지요. 쇼핑몰에 가면 이젠 읽기도 힘든 브랜드, 들어가기에도 멋쩍은 가게 천지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다들 영어학원을 다니면,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더 어릴 적부터 영어 공부를 시키거나 더 효과적인 그리고 비싼 방법으로 대응합니다. 하는 만큼은 따라해보지만, 빈부 차는 보통사람들의 영어 교육을 제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교육비로 가계가 흔들리고 무리한 기러기 생활로 가정이 무너져도 그렇게 시킨 영어 공부가 결국엔 그들을 따라잡는 데는 별 소용이 없는 것이죠. 보통사람들에게 영어 격차는 애초부터 극복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니 사기입니다.

혹 다들 영어에 성공했다고 칩시다. 모든 젊은이들이 ‘오렌지’ 대신 ‘어륀지’라고 하는 날이 왔다고 칩시다. 그럼 이들은 모두 성공할까요? 아닐 테죠. 또다른 무언가를 찾아 경쟁에 나서겠죠. 그리고 그 경쟁에서 있는 자들은 항상 저 멀리서 시작할 것입니다. 그것이 중국어가 됐건 독일어가 됐건 또 우리 사회는 이 사기를 되풀이할 겁니다. 그러니 영어망국병의 핵심은 영어 격차가 아닌 벌어져만 가는 빈부 격차와 이를 숨기고자 하는 정치적 최면인 듯합니다.

이것이 사기라면 사기당한 사람이 “어쩌란 말이냐”라고 묻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피해자니까요. 대신 우리는 피해를 주고 있는, 피해를 방조하고 있는 자들을 추궁해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정책은 이제까지 이 사기를 악화시키는 데 큰 일조를 했습니다. 이제라도 정부는 문제가 아닌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한편으로 정부는 영어에 대한 국가적 특혜를 없애야 할 것입니다. 학교 교육에서 영어는 하나의 외국어일 뿐임을 강조하고, 대학 입시에서도 영어를 외국어 영역의 여러 외국어 중 선택할 수 있는 한 과목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극단적이고 비뚤어진 경쟁과 갈수록 악화되는 빈부 격차가 우리 모두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가를 돌이켜보고, 이를 치유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정책을 당장 마련해야 합니다.

Friday, March 25, 2011

영어 망국병은 병이 아니라 사기다

한겨레 [왜냐면] 남태현 미국 메릴랜드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기사등록 : 2011-03-25 오후 06:21:21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469926.html

얼마 전 캐나다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만난 한국 교수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화제가 영어로 옮겨졌을 때 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영어강의 능력이 신입교원의 필수 조건이다. 프랑스에서 박사를 딴 사람도 영어로 강의를 해야 되고, 동양철학도 영어강의가 있다”는 믿기 힘든 괴담을 서울의 유명 대학의 교수에게서 들으니 기가 막혔습니다.
믿기도 힘들었죠. 그런데 정말이더군요. 한 대학의 철학과 개설 과목을 보니 ‘포스트모더니즘과 동양사상(영어강의)’, ‘형이상학특강1(영어강의)’가 있었습니다. 일이 이 정도가 되었으니 영어 망국병이라고 한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전 이것은 병이 아니라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0년에 영어 사교육비로 7조원이 쓰였답니다. 이는 수학 사교육비를 훨씬 뛰어넘고(6조원) 전체 사교육비(21조원)의 3분의 1입니다. 그리고 부산시의 2010년 예산(7조8000억)에 거의 맞먹는 엄청난 돈입니다. 학원이다, 국제중이다, 연수다 해서 어린 학생뿐 아니라 대학생, 직장인까지 영어에 광기 어린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무엇을 얻었습니까?

제 지인 하나는 미국에서 고등학교, 대학 교육을 마치고 한국에서 유명한 회사를 다닙니다. 그 회사 부장님도 영어를 매일같이 공부한다더군요. 외국인도 회사에 있고, 외국 기업과 왕래도 많아 회사에서 영어를 강조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영어로만 회의를 한답니다. 그런데 회의를 다 하고 나서 같은 회의를 또 한답니다. 이번엔 한국말로요. 아니면 제 지인에게 와서 무슨 회의를 했느냐고 물어본답니다. 물론 조용히요. 광기 시퍼런 영어 투자의 초라한 성적표입니다.

하지만 우린 자신의 초라한 영어 실력을 자책하며 영어 공부를 계속합니다. 아침 라디오를 들어도, 거리의 광고를 봐도 온통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 반복합니다. 옆집 애도 연수 갔다 오니 다른 것 같습니다. 그뿐입니까? 티브이 쇼를 봐도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가수가 나옵니다. 영어를 못하면, 내 잘못인 듯하고 자괴감은 커져만 갑니다. 하지만 이건 사기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기당한 것입니다.

영어는 우리말과 완전히 다른 언어체계이자 사고체계이기도 하고, 하나의 문화입니다. 문법을 익히고 회화를 연습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제 영어의 밑천은 대학원 수업이었습니다. 영어로 글을 쓰고 토론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식 사고와 문화를 익혀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절박함이 영어선생이었던 셈이죠. 두 시간 죽어라 공부하고 나머지 22시간, 꿈까지 한국말로 꾸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 불가능한 것을 하려니 다들 힘들고 괴롭고 돈만 듭니다. 영어는 여건이 되는 사람만, 필요한 사람만 하면 되는 것이죠. 산책을 즐기면 되지 모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한국 사회는 성공하려면 무조건 영어를 하라고 강요합니다. 심지어 동양철학을 공부하려고 해도요. 말도 안 되는 것을 왜 강요하느냐는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사전에 막는 것은 강요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숙제입니다. 너도 할 수 있다는 달콤한 사탕발림은 그들의 가장 큰 무기이자 당하는 사람들에겐 처절한 사기입니다.

그들은 영어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미국 교육으로 승진하거나 남보다 많은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권력을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영어로 이미 득을 본 사람들이고 자식들에게 미국 문화를 통째로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사회 전체의 영어 숭배가 자기들의 이익인 셈이지요.

한국에서 영어의 고질적 병폐가 고쳐지지 않는 것은 교육의 문제로 보고 교육에서 답을 찾기 때문인 듯합니다. 하지만 이미 영어의 문제는 계급과 정치의 문제가 된 지 오래이고 답도 그곳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Monday, March 7, 2011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 믿기 어려워

한국일보 (와싱턴 디씨판)"이명박 대통령 지지도 믿기 어려워"
http://dc.koreatimes.com/article/648102

남태현 솔즈베리 대학 정치학 교수, MD
입력일자: 2011-03-07 (월)

한국일보 오피니언란(2월 28일자)에 실린 정진영 경희대 교수의 글 (http://dc.koreatimes.com/article/646621)을 반박하고자 한다.
정 교수의 글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한국국민의 놀라운 지지를 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50% 정도의 지지도를 얻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 지지의 주요한 원인으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그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 “적극적인 경제외교의 전개” 그리고 “한미 관계의 강화와 대북정책의 정상화”를 그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정 교수의 글은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이 썼다면 C를 주기도 힘든 글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말하는 이명박에 대한 지지도 자체가 허황되다는 점이다. 그 놀라운 50% 정도의 지지율을 보라. 이 지지율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는 한나라당 의원들조차도 의심하는 것이다. 지역구를 돌아본 많은 의원들이 수치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대통령 지지율 50%에 대해 “대체 그런 조사는 어디서 나온 거냐?(한나라당 박성효 최고위원)”는 힐난 섞인 질문이 나왔다(경향신문 2월 16일자).

더구나 지역에 따라서는 민심이반이 더욱 심하다. 그럼, 왜 이렇게 지지도와 실제 피부로 느끼는 지지의 정도가 다른 것일까? 이는 바로 여론조사 방식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여론조사는 전화로 하는데, 이는 주로 집 전화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요즘 집 전화로 전화를 하는 한국 사람은 대부분 핸드폰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에 국한된다. 그러므로 이 대통령의 지지도는 나이 많은 기존 지지층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많이 반영된 조사라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지지가 저조한 중년, 청년들의 목소리는 조사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으로, 이 대통령의 지지가 놀랍다는 그의 관찰은 학자로서는 더욱이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다.

결론이 허황되므로, 그 결론을 입증하는 그의 논의는 더욱 허망하다. 사실 논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살펴보자.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라는 말은 도무지 무슨 소리일까. 여기 계신 동포들은 미국 뉴스를 조금이라도 보셨다면 아실 듯이, 20개국의 정상이 모였다고는 믿어지기 힘들만큼 이 정상회담은 지면을 장식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성공이라면, 아무 탈 없이 이루어졌다는 것 외에는 도대체 무엇을 이루었는지 알 수 없는 벌써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가는 아무 성과가 없는 것이었다.

“적극적인 경제외교의 전개”라는 것도 한미자유협정을 말하는 것인데, 이 또한 이대통령이 아닌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이었다. 글의 시작에 “세계 금융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건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겠다. 1997년의 위기라면, 김대중 대통령이 극복했고, 현재의 세계 금융위기라면 미국과 유럽의 위기를 말하는 것일테니까. “녹색성장”이라는 그의 표현은 사실 이 대통령도 들으면 웃을 일이다. 4대강 사업으로 강산이 파헤쳐지고 있는데 이걸 녹색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억지나 무지다.

“한미관계의 강화와 대북정책의 정상화” 또한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일 수 없다. 한미 관계는 미국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이지 한국의 대통령이 어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결국은 손을 들고 미국에 굴복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대북정책의 정상화 또한 정 교수의 안목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북한에 적대적이건 아니건, 현재 이명박의 정책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그의 정책은 결국 평화를 지키는데 실패했고, 이를 가리켜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태풍으로 무너진 집터에 남아 짖고 있는 개를 보고 집 잘 지켰다고 칭찬하는 것과 같다.

말도 안 되는 근거로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뒷받침하려는 정 교수의 글은 정말이지 말이 안 된다. 평생 공부와 글쓰기로 시간을 보낸 정진영 교수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형편없는 글이 한국 어디도 아닌, 이 먼 타향에 실린 이유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