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2018.05.03)
“완벽한 군인이다. 늘 용감하고, 잠들지 않으며, 적을 놓치지 않는다.” 로봇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인 지뢰를 평한 말이죠. 이렇게 효과적인 무기가 또 저렴하기까지 합니다. 지뢰 하나를 생산, 설치하는 데 싸게는 3달러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적은 다리를 잃고 목숨마저 잃을 수 있습니다. 인기가 있을 수밖에요. 1960년대 이후 세계 곳곳에 1억개가 넘는 지뢰가 설치되어왔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뢰의 공포는 전쟁이 끝나도 쉬 가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문제죠. 숨겨진 지뢰 제거에는 하나에 300달러에서 1000달러나 듭니다. 비용이 많이 드니 뒷전으로 밀리기 쉽고, 이 때문에 민간인 희생이 커집니다. 밭을 일구다, 공을 차다 지뢰를 밟는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개인과 가정의 비극임은 물론 경제 개발에 큰 걸림돌이기도 하죠. 지뢰 제거는 그래서 인권의 문제이자 사회 발전의 당면 과제이기도 합니다.
한번 심어 놓으면 제거하기 힘든 것은 지뢰뿐 아닙니다. 비 올 때마다 한 뼘씩 솟아나는 대나무도 있고, 날마다 뿜어져 나오는 공장 굴뚝의 검은 연기도 있죠. 공포도 그렇습니다.
한국 사회 공포의 근원에는 좌우 대립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친일 세력은 해방과 더불어 몰락의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군정의 은혜를 입은 이들은 ‘빨갱이’에 대한 공포 때문에 부활하죠. 그 공포는 신앙이고 복음이었습니다. 사활이 달린 문제였으니 필사적으로 전파했죠. 한국전쟁으로 정권을 거의 잃을 뻔했던 이들은 자신도 공포를 마음 깊이 심었습니다. 그 공포가 깊어질수록 미국에 대한 애정은 깊어만 갔죠.
그래서 이들은 공화당, 민정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이름도 바꾸고 얼굴도 바꿨지만, 친미, 반공 말고는 별 사상적 기반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죠. 그 공포만 지키면 권력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공포 장사는 또 얼마나 쉬웠던가요. 북한은 간간이 도발을 해주었고 필요하면 간첩사건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몸서리 치며 입을 닫고 눈을 감았습니다. 유럽에서도 북한 식당 들어가기 겁이 났고, 온라인에서도 종북이란 딱지가 붙을까 눈치를 봤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K팝이 전 세계를 흔들어도 공포는 그렇게 떨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해방부터 이제껏 공포로 연명해온 자유한국당 대표의 최근 발언들은 하나도 놀랍지 않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위장평화쇼” “주사파들이 남북관계를 보는 눈”이라는 독설을 이어갔죠. ‘비핵화 논의’가 안되면 무의미하다며 투정부리다 논의가 되자 ‘북핵 폐기’가 아니라 소용없다며 생떼도 썼습니다. 극우표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자의 정치쇼일 수도 있고 민심을 못 읽는 무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웃을 수만은 없죠. 우리 모두의 공포를 대변하는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다행히도 그 공포를 걷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촛불집회에서, 미투 운동을 통해서 공포를 극복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용기와 연대가 당장 해결책은 아니지만, 괴물에 대한 공포만큼은 이기게 해준다는 경험을 말이죠. 공포가 없어지면 괴물도 허수아비일 뿐임도 수의를 입은 전직 대통령을 통해 보았습니다.
남북 문제의 절반은 우리 마음속의 공포입니다. 그러니 용기와 남북 연대만 되살릴 수 있다면 문제는 뜻밖에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이 더더욱 성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만남보다 용기를, 그리고 연대에의 희망을 주었으니까요. 갈 길은 멀고 험합니다. 실패와 실망에도 대비해야죠. 하지만 ‘빨갱이에 대한 공포’를 걷어낸 것만으로도 큰 성과입니다.
그 질기고 오래된 공포를 없애는 참에 지뢰도 제거해야겠죠. 한반도에는 100만개도 넘는 지뢰가 묻혀있다고 알려졌습니다. 휴전선 지뢰 제거는 꼭 필요한 일이고 남북 간의 연대가 필수적입니다. 남과 북이 더 가까워지고 휴전선 일대가 진정한 평화의 영토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죠. 공포와 지뢰가 없어진 그 땅 너머로 우리의 아이들이 농구공을 주고받고 웃음을 이어갈 미래가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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