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December 7, 2017

[세상읽기]분권형 대통령제엔 분권이 없다

경향신문 2017.12.07

지난 11월 국회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투표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도 11월 말 논의를 시작했죠. 일정이 빠듯하지만, 개헌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커녕 특위 내 논의마저 아직 시작 단계입니다. 개헌의 주요 주제인 정부 형태는 정치 전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기본적 이해조차 부족하죠. 어떤 형태가 있는지, 그 효과는 어떤지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국민투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대통령으로의 권력 집중과 5년 단임으로 요약할 수 있는 현 체제의 수명이 다했다는 공감은 있습니다. 재선 걱정이 없는 대통령이 권력을 멋대로 휘둘러도 막기 힘들다는 것을 박근혜가 몸소 보여줬죠. 문제는 대안입니다. 지난 대선 전 문재인 후보는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제시했고 안철수 후보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했습니다. 홍준표 후보는 이 둘을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했죠. 문재인 대통령의 복안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분권형 대통령제의 면모를 포함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이 분권형 대통령제가 개헌 후 정부 형태의 큰 뼈대가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이원집정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 제도의 핵심은 국민이 직접 선거하는 대통령의 존재,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의회에 책임을 지는 총리와 정부의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정부 권력을 대통령과 총리가 나누고 동시에 의회의 행정부 견제를 강화할 길을 열어 놓았죠. 흔히 대통령은 국가원수직과 외교·안보·국방 정책 등을 담당하며, 총리는 내정을 맡는 형태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온전히 맞지도 않습니다.

우선 분권이라는 말이 문제입니다. 이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를 보면 대통령과 총리의 권력 배분은 정치적 배분이지 헌법적 강제력은 거의 없으니까요. 정치적 사정에 따라 분권이 일어나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죠. 여당이 총선에서 패하면 분권이 가능합니다. 우선 대통령의 총리 지명이 야당 주도의 의회에서 통과가 안됩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의회를 장악한 야당 지도자를 총리로 임명할 수밖에요. 복잡한 정치적 타협이 이어지고 이에 따라 행정부 권한도 나눠집니다. 하지만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카리스마적 리더가 대통령이 되고 그 여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 대통령은 자기 수하를 총리로 지명하고 의회는 이를 수용합니다. 그러면 대통령은 행정부를 오롯이 지휘하고 의회마저 휘두를 수 있습니다. 분권은커녕 거의 독재에 가까운 대통령이 나올 수 있죠. 오늘날 러시아는 좋은 예입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총리를 압도하는, 제왕적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즉 분권형 대통령제는 분권을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 그 반대죠. 그러므로 대통령 권력을 축소한다는 오늘날 한국의 시대 요구와 맞지 않습니다.

게다가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은 오늘날과 비슷한 정부 형태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되고 있습니다(67조 1항). 정부를 주도하는 총리 또한 존재합니다. 그리고 총리임명에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점도 명시돼 있습니다(86조). 국회가 총리 해임을 할 수는 없지만 건의할 수는 있습니다(63조). 즉 최소한 제도적으로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우리는 이미 갖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현 제도로도 정치적 조건만 맞으면 분권은 가능합니다. 실제로 김종필 전 총리는 김대중 정부의 대주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후보 시절부터 ‘책임총리제’를 통해 권력을 분산하겠다고 여러 번 밝혔죠.

결론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은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데 맞지 않고 굳이 필요치도 않습니다. 이를 대단한 개혁인 양 말하는 것이 의아할 수밖에요. 의아함과 의심을 해소할 활발한 개헌 논의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Tuesday, November 14, 2017

[세상읽기]미국의 쇠락, 한국은 준비하고 있나

경향신문(2017.11.09)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85년 영화 <란>은 한 영주 집안의 비극적 몰락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늙은 영주가 땅을 세 아들에게 나누어주며 시작합니다. 서로 도우라는 당부가 무색하게 내분과 살육으로 이어지죠. 게다가 그 내분으로 가족과 영토를 잃는데, 영주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와 복수를 꿈꾸던 이의 계책이었다는 스토리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아시아 정세를 살펴보면 강력한 지도자의 강경한 외교가 힘을 얻는 분위기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공산당 내 입지를 굳히면서 더욱 자신감 넘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베 일본 총리도 총선 압승을 통해 기존 우경화 외교를 더 밀어붙일 테죠. 북한 김정은 위원장 또한 경제 회복과 군사력 증강에 탄력을 받아 더 큰 목소리를 낼 듯합니다. 여기에 큰 목소리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각종 언행과 스캔들, 독단적인 외교 행보 등을 보면 걱정이 앞섭니다. 일본 방문에서도 노골적으로 미국 무기 구매 확충과 무역적자 해소를 되풀이했죠. 북핵 위기를 장사 기회로 삼는다는 비판이 커지는 만큼 미국의 국제적 지도력에 대한 불신도 늘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이나 한국처럼 국방을 미국에 기대고 있는 처지에서 속앓이가 깊어질 수밖에요. 미국 안에서도 걱정은 깊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자질이 있느냐, 대선에서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느냐 등의 논란이 그치질 않고 있죠. 게다가 행정부 자체를 위축시키고 있어서 제도적 문제로 번지고, 또 그 여파마저 오래가리라는 걱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걱정과 혼란은 대선 다음 날 바로 시작됐습니다. 각 정부 부처에서는 정권 이양에 분주했습니다. 당장 다음 날 인수위 맞이에 나섰죠. 주차장, 인터넷, 사무실 등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정작 인수팀은 오질 않았습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말이죠. 다들 당황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농무부의 경우 한참이 지나 기껏 나타난 이들이 부서 업무에 문외한들이었습니다. 엉성한 준비는 엉성한 부서 구성으로 이어졌죠. 농무부 최고 관료 직책 중 장관 딱 한자리 빼고는 대부분 국회 인준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농무부 책임 과학자에 지구 온난화뿐 아니라 과학 자체에 깊은 회의를 가진 이데올로그이자 극우 라디오 진행자가 임명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습니다. 농업과 자원 관리 업무를 떠나 과학 연구에 주요 역할을 하는 농무부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비판이 거세죠.

비슷한 상황은 국방부를 제외한 전 부서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핵무기를 관리하는 에너지부, 외교의 난제를 풀어가는 국무부 등 한국의 입장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서도 포함해서 말이죠. 에너지부 장관이 된 릭 페리는 후보자 시절 에너지부를 아예 없애겠다고 공언한 인물입니다. 거대 에너지 회사인 엑손모빌 최고경영자로 국무부 장관이 된 틸러슨은 국무부 축소를 주요 목표로 내세워 국무부 관료들을 아연실색하게 했습니다. 덕택에 고위 관리들이 은퇴하거나 물러나면서 전문가가 모자라 허덕이고 있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가 아직 공석인 게 우연이 아닙니다.

영화 <란>의 며느리처럼 일부러 정부를 약화시키려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 때문에 연방정부는 큰 혼란을 겪고 주요 업무에서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죠. 그사이에 백인우월주의 목소리, 흑백갈등, 좌우대립 등 정부의 개입이 절실한 문제는 악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냐는 논의는 오래됐습니다. 그만큼 미국의 지배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죠. 하지만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 정부의 행보는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문제는 미국의 세계 질서에 어떤 나라보다 기대왔고 그래서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대응입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논의는 북핵 문제를 넘어 지역 정세를 큰 틀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읽기]‘잘못을 고치는 게 잘못’이라는 억지

경향신문(2017.10.12)

오래전 한 유명 스님의 말씀에 아주 혼란스러웠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나 싶었죠. 게다가 사람들이 심각하게 논하기까지 하니 이상할 수밖에요. 아직도 심오한 불교 철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만 산을 산이라, 물을 물이라 부르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은 알게 됐죠.

미국엔 지금 한창 역사 논란이 뜨겁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탓에 안 그래도 악화되던 인종차별 문제가 더욱 날카로워졌습니다. 인종차별 문제가 트럼프 지지자와 반대자를 나누는 잣대와 겹쳐지며 정치 문제 전반에 떠올랐죠. 남부 연합군 장군들의 동상이 철거되는 것은 그 여파입니다. 철거 반대자는 트럼프 지지자와 많이 겹칩니다.

미국 남북전쟁은 노예제를 둘러싼 전쟁으로 남부 연합군이 패하며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남부의 정치,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흑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부활했죠. 백인우월주의도 당당히 돌아왔습니다. 큐 클럭스 클랜(KKK)이라는 백인 기독교 테러단체가 극성을 부리고 남부 연합군 장군들의 동상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동상들이 남부의 역사를 기린다기보다는 부활하는 백인우월주의를 대표한다고 봐야 하는 이유죠. 자연 흑인과 인권단체들이 철거를 요구해왔고 요즘 들어 지방정부가 이를 수용하는 분위기입니다.

철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하죠. 노예제는 좋은 일이 아니지만 남부는 노예제가 아니라 주정부 주권을 위해 싸웠다. 게다가 동상을 없애는 시도는 역사를 지우려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주정부의 주권은 노예제를 지키기 위한 주권이었죠. 게다가 동상을 치운다고 그들이 말하듯 역사가 지워지지 않습니다. 원래 동상은 기억을 넘어 기리고 자랑스러워하라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동상을 지키자는 이들은 그 과거를 기리고 내심 그리워하는 셈입니다. 연방군의 승리, 노예제 폐지도 중요하지만, 남부의 전통도 중요하다는, 산은 산이지만 물도 산이라는 억지입니다.

산은 물이고 물은 산이라는 억지도 있습니다. 최근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이 관제 데모에 동원할 목적으로 우파 단체를 지원한 정도가 아니라 직접 만들었던 정황이 파악됐습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죠. 그뿐인가요. 국정원, 군은 댓글부대를 조직해 여론을 조작했고 청와대를 비롯한 권력기관들은 공작과 음해로 민주체제의 근간을 손수 흔들었습니다. 부실 산업으로 수조원은 우습게 날렸고 블랙리스트로 언론과 개인의 자유마저 짓밟았습니다. 4대강사업을 통해 한반도 생명줄을 끊어놓았고 개성공단을 폐쇄해 평화 기반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아직도 이어지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대한 속보에 탄식도 그치질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가 고공행진을 하는 이유입니다. 거기에는 적폐청산에의 요구가 있죠.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이를 정치보복이라 하고 있습니다. 국정원 개혁을 개악이라고도 했죠. “정치보복의 헌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 굿판”이라며 적폐청산에 대응하기 위해 대책특위까지 만들었습니다. 내 잘못은 잘한 것이고, 그 잘못을 고치려는 게 잘못이라는 파렴치한 억지입니다.

짐작하건대 그 적폐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일수록 목청을 높이겠죠. 그러니 쉽게 물러서지도 않을 겁니다. 어디 메모라도 해두고 선거 때 확인해야겠습니다. 항의 전화도 괜찮겠죠. 이번 가을엔 성철 스님의 부리부리한 눈매가 생각납니다.

Friday, October 13, 2017

새 책 <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창비에서 "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게 됐습니다. 한국을 비롯 세계 이곳저곳의 정치를 이데올로기라는 렌즈로 조명해보려 했습니다.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온라인 구입예스24; 알라딘



"저자는 정치를 움직이는 도구로서 정치 이데올로기의 정의와 역할을 명확히 짚고, 민족주의·종교·사회주의·보수주의 등 대표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들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해설한다. 그리고 정치 이데올로기가 대중매체·조직·자본·사회제도 등을 통해 한 사회에 전파되고 유지되며 강화되는 과정을 구체적인 예와 함께 살피며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정치와 정치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낱낱이 드러낸다. 나아가 한국 사회에 다양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건강하게 공존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선거제도 개편이라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보도
  1. "보수단체는 집회할 때 왜 성조기를 들고나올까" 연합뉴스 (2017/10/18)
  2. "보수단체는 집회할 때 왜 성조기를 들고나올까" 파이낸셜뉴스 (2017/10/18)
  3. "보수단체는 집회할 때 왜 성조기를 들고나올까" 부산파이낸셜뉴스 (2017/10/18)
  4. "재미 정치학자 남태현 교수 '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출간" 매일경제 (2017/10/18)
  5. "이데올로기 큐대 지구촌 굴리다" 경인일보(2017/10/20)
  6. "[새책]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外" 경향신문 (2017/10/20)
  7. "[책꽂이-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정치 이데올로기' 어렵지 않아요" 서울경제 (2017/10/20)
  8. "재미 정치학자가 본 한국 정치… ‘보수’는 왜 왜곡되었나" 서울신문 (2017/10/20) 
  9. "‘태극기 집회’ 움직인 정치 이데올로기는…" 세계일보 (2017/10/20) 
  10. "[책의 향기]이데올로기는 위대하다? 정치 판단 돕는 도구일뿐" 동아일보(2017/10/21)
  11. "세계 정치의 흐름 ‘이데올로기’로 파악한다" 대구일보 (2017.10.25)
  12. "[김효진의 책 한 끼]한국 보수 왜곡시킨 분단" 아시아경제 (2017.11.10) 

Thursday, September 28, 2017

개헌 생각 01)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개헌 논의가 심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권력형태에 대한 이해는 쉽지 않죠.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개헌의 이런 저런 면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우선 현제도의 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권력을 의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나누는 제도죠. 1958년 프랑스 드골이 들고나온 5공화국 제도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고요.

‘분권형 대통령제’(semi-presidential government) 논의 선구자인 뒤베르제의 개념은 이렇습니다.
1.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선거권 행사로 선출.
2.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의 권한과 함께 상당한 실권을 보유.
3. 대통령과는 별도로 그 직이 의회의 선출권과 불신임권에 의해 유지되는 총리 및 장관들로 구성되는 행정부가 존재.

이걸 좀 더 살을 붙이면:
1.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선거권 행사로 선출 (대통령이 직접 선출됐으니 허수아비가 아니다)
2. 둘째,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의 권한과 함께 상당한 실권을 보유 (허수아비가 아닐 뿐 아니라 강력한 권한을 지닌다)
3. 대통령과는 별도로 그 직이 전적으로 의회의 선출권과 불신임권에 의해 유지되는 총리 및 장관들로 구성되는 행정부가 존재 (행정부 권한을 총리와 나눈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고 총리를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다만 의회의 지지가 필요하죠. 분권형 대통령제는 이름이 암시하듯 행정부 권력을 대통령과 총리가 나누는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흔히 대통령은 국가 원수직과 이른바 외치 영역에 해당하는 외교·안보·국방 정책 등을 담당하며, 총리는 내정과 관련된 그 나머지 정책들을 모두 맡는 형태를 생각하지만, 그것도 정치적 배분이지 법적 강제력은 없습니다.

권력의 분배가 제도적이 아니라 정치적이다 보니 분권이 잘 안 될 수 있습니다. 카리스마적 리더가 대통령이 되고 그 대통령의 정당이 의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죠. 대통령은 자기 수하를 총리로 임명할 테고 의회는 당연히 임명안을 통과할 겁니다. 나랏일, 정부 운영, 의회 활동까지 그 카리스마적 리더가 다 챙길 수 있죠.

한 극단적 예를 들자면 러시아가 좋겠습니다. 현재 러시아 대통령인 푸틴이 잠시 총리로 물러나 있을 때 메드베데프 대통령(현재 총리)이 실권을 행사하려다 큰 코를 다쳤죠. 반대로 푸틴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총리를 압도하는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권력분배가 별 의미가 없죠. 푸틴의 정당, United Russia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떡 주무르듯 합니다.

이런 상황은 사실 이상하지 않습니다. 제도의 창안자인 프랑스의 드골이라는 카리스마적 리더가 제왕적 대통령을 꿈꾸면 고안한 제도니까요. 드골은 2차대전 이후 4공화국이 의원내각제를 받아들이자 이를 반대했습니다. 이후 정치위기가 이어지면서 공화국은 결국 붕괴했고 드골은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5공화국 건설을 주도했습니다. 즉 권력을 나누기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 그 반대죠. (프랑스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할 권한도 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를 비롯한 비슷한 사정의 구소련 나라들이 이 제도를 선호한 겁니다.

다른 극단적 예는 프랑스처럼 대통령의 정당이 총선에서 지는 경우입니다. 대통령이 임명은 하지만 의회에서 승인이 안 되니 울고 겨자 먹기로 야당 지도자를 총리로 임명할 수밖에 없고 그런 과정에서 정치적 타협으로 권력을 실제로 나누죠.

한국 내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여기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앞서 살펴본 대로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려는 개헌의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공산이 크다는 점입니다. 드골처럼 제왕적으로 될 수도 있고 푸틴처럼 독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제에서의 총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앞서 살펴본 대로 정치적 현실에 따라 그 독립성의 크기는 왔다 갔다 합니다. 다당제 도입, 대통령과 총리 간 협의의 제도화 등 보안책을 제시하지만 기본 틀을 바꾸기엔 역부족(협의 제도화)이거나 상관없어(다당제) 보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이 얼마만큼 변화를 줄까 하는 점을 고려해 보죠. 앞서 살펴본 분권형 대통령제의 정의를 또 한 번 들춰보겠습니다.

1.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선거권 행사로 선출.
"제67조 ①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2. 둘째,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의 권한과 함께 상당한 실권을 보유.
외교(73조), 국군 통수(74조), 대통령령(75조)과 그 외 법률 효력의 명령 발동 (76조), 계엄 선포(77조), 공무원 임명(78조), 사면 복권(79조) 등등 광범위한 권위 보장.

3. 대통령과는 별도로 그 직이 전적으로 의회의 선출권과 불신임권에 의해 유지되는 총리 및 장관들로 구성되는 행정부가 존재.
제86조 ①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제63조 ①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
제65조 ①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 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제87조 ①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쉽게 말해 처음 두 사항은 현재 헌법이 이미 충족하고 있습니다. 즉 국민 직접 뽑는 대통령(조건 1)이 실권이 있죠(조건 2). 조건 3도 상당히 갖추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일단 총리가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게다가 총리임명에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점도 명시돼 있죠. 국회가 총리 해임할 수는 없지만 건의할 수는 있습니다. 총리 임명과 해임에 의회의 입김이 작용한다고 봐야죠. (문재인 정부 첫 총리로 이낙연 총리 인준이 통과됐지만, 간신히 됐습니다. 하지만 이전 정부에는 낙마의 쓴 잔을 본 후보도 많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도 분권형 대통령제를 이미 갖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권력의 분립이 안 되니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이는 제도적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문제에 가깝습니다. 즉 한국에서도 정치적 타협만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는 가능하다는 말이죠. 김종필 총리는 김대중 정부의 대주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예를 곱씹어 볼 만합니다.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총리도 그 예로 거론됩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후보 시절부터 '책임총리제'를 통해 권력을 분산하겠다고 여러 번 밝혔죠.

분권형 대통령제는 개헌이 굳이 필요치 않으니 개헌 논의의 한 대안으로는 적합지 않습니다.

Tuesday, September 12, 2017

[세상읽기]북한의 생존방식 인정 외에 다른 길은 없다

경향신문 2017.09.07

북한 6차 핵실험과 예상되는 추가적 도발에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핵·미사일 분야 기술을 더 이상 고도화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며 “실제적이고 강력한 조처”를 다짐했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북한과 거래하는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미국과 무역을 중단할 수 있다며 압박 수위를 높였죠. 이번 실험을 “고립무원 속에서 김정은의 광기 어린 핵무기 집착”쯤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태를 왜곡해 목청 높이기에만 좋을 뿐 해결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해결은 올바른 인식에서 시작합니다. 첫째, 그 동기입니다. 아직도 북한 의도에 의아함을 표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북한 핵무기에 불안감을 느낀다면 답을 이미 알고 있다 하겠습니다. 1990년대 초 주한미군 전술핵 철수 때까지 북한은 코앞에서 미군 핵무기를 마주했었고 지금껏 인류 역사상 최강이라는 미군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미군은 태평양 전역을 둘러싸고 있고 실전 배치된 핵탄두만 1400여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의 거의 반을 쓰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북한 핵무기에 우리가 불안하다면 미국 군사력에 북한은 훨씬 불안한 겁니다.

미국은 북한 정권처럼 공격적이지 않다고요? 이라크 후세인 대통령은 한때 미국 중동 정책 교두보였지만 2003년 미국 침공으로 후세인은 처형당했습니다. 이에 겁먹은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는 핵무기를 포기하고 서방과의 교류확대에 나섰죠. 하지만 내란이 일어나자 미국은 카다피 정권을 공격했습니다. 카다피도 처형당했습니다. 힘과 무력만이 정권 안정에 필수적이라는, 미국이 신봉하기도 하는, 현실주의 이론에 딱 들어맞죠.

북한 김씨 왕조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안 봐도 훤합니다.

둘째, 북핵에 대한 대응입니다. 정권 안정에 사활이 걸린 핵무기를 포기할 리가 없죠. 이런저런 경제 제재가 논의되고 있지만, 그 무용함은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미 잘 드러나 있습니다. 북한 대외무역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정권 2기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게다가 북한을 흔들어 생길 실이 득보다 훨씬 큼을 알고 있죠. 설사 중국이 석유 금수 조치를 공세적으로 취하더라도 북한 인민만 괴롭히고 말 공산이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 주도의 경제봉쇄는 탱크에 화염병 던지기로 끝날 겁니다.

무력행사는 득은 작고 불확실하지만 실은 혹독하고 명확합니다. 외과 수술하듯 핵시설만 도려내는 폭격은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습니다. 성공해도 북한이 확전의 길로 갈 공산이 크죠. 폭격이 성공하고 확전이 안돼도 북한 내 혼돈, 중국 개입 등 그 결과는 한반도 일대의 혼란일 겁니다. 이제 북한은 미국과 한국이 어떻게 말하건 핵보유국입니다. 게다가 미국 서부까지 사정권 안에 있죠. 무력행사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기저기서 혼돈과 흥분에 가득 찬 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말이라도 하지 못하면 체면이 떨어지니까요. 유권자들한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곧 미국은 현실을 직시하게 될 겁니다. 벌써 미국은 주판알 튕기기를 시작했죠. 농산물 관세 철폐를 포함한 자유무역 협상을 재개하고 수십억달러어치 무기를 사라며 한반도 위기를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를 내주고 서울을 살릴 리 없는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테이블에 앉을 테고 북한의 요구, 즉 주한미군 철수와 북한 인정을 상당 부분 들어주게 될 겁니다. 싫어도 대안이 없으니까요.

그 미래는 애써 부정해도 옵니다. 시간문제죠. 이는 한국에 도전이자 기회가 될 겁니다. 중·미 수교에 완전 제외된 대만이 될 수도 있고, 통일을 주도한 독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장 발 벗고 나서서 정치적 해법을 준비해야 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생존, 통치 방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국을 설득해 한국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북한의 불안도 완화되고 남북의 평화적 공존이 가능합니다. 싫어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Saturday, August 19, 2017

범죄 드라마 리뷰 2 - 볼 만한 범죄 드라마

어려서 셜록 홈즈, 괴도 루팡 전집을 읽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커서도 범죄물을 즐겨보게 된 듯합니다. 그 동안 즐겨 보아온 범죄 드라마를 간단히 소개해볼까 합니다. 드라마 하나하나 소개하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제가 주목하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논해볼까 합니다.

탄탄한 스토리는 기본이죠. 범죄 드라마가 보통 한 두회에 사건 하나를 해결해 나가는게 전통이였습니다. 수사반장이 그랬죠! 제가 최근 즐겨 본 드라마 중에도 그런 예가 있습니다 (Henning Mankell's Wallandar; Setland). 한 시즌이 하나의 사건 해결하는 형식도 있죠. (Paranoid; Marcella; Deep Water; The Bridge). 그 중간도 있습니다. 한 시즌을 끌고 가는 중심 스토리가 있고 소소한 사건들이 해결되는 그런 식으로 말이죠 (Luther). 여러 시즌에 걸쳐 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대형 드라마도 있습니다 (Breaking Bad; Broadchurch; London Spy; The Killing).

어떤 형식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면 따라가기 쉽지 않다고 느낄 때도 있죠 (The Killing). 하루를 마치며 맥주 한 잔하며 즐기기엔 한 회로 끝나는게 딱이죠 (Henning Mankell's Wallandar). 하지만 그 긴 이야기가 길다고 느낄 틈도 없이 느껴지는 드라마(Breaking Bad; Broadchurch)를 만나는 것도 행운입니다. 이런 경우 주변 인물들까지 부각될 시간이 충분해 드라마가 좀더 깊어지기도 합니다.      

인물(보통 형사)에 공감이 가야합니다. 조금씩 그 삶이 보여질 때, 또는 사건과 관련이 있을 때 (Deep Water),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이 좋습니다. 삶이 보이고 고민이 느껴지면 마치 오랜 친구의 고민을 훔쳐 보는 듯한 느낌도 들죠 (Marcella; Setland). 특히 부모의 고민이 보이면 반갑습니다 (Setland; The Killing; Henning Mankell's Wallandar). 거칠지만 창호지처럼 약한 내면을 겨우겨우 숨기며 달려가는 모습에 연민이 가는 형사도 있고 (Henning Mankell's Wallandar; River; Paranoid) 영웅심이 없이 쿨하게 일하지만 그래서 더욱 강철같은 형사(The Bridge)를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사람의 깊은 본성인 애정이 그 와중에 들어난다면 더할 나위 없습니다(Luther; River; London Spy). 캐릭터의 성장을 보는 것(Breaking Bad; London Spy)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죠. 그래서 저에게 셜록 홈즈같은 번득이는 천재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면 Luther를 들겠습니다. 왜냐고요? 보세요 :)

현실에서 볼 만한 딱 그런 형사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꼽으라면 단연코 The Wire입니다. 사실 이 드라마는 아주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형사들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캐릭터, 스토리, 배경 등이 현실에 아주 가깝습니다. 미국 사회에 대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죠.

메인 캐릭터와 주변 관계도 흥미를 더해주는 요소입니다. 형사 끼리 좋은 친구나 파트너로 툭탁 거리는 것도 재밌지만 적당히 긴장이 있는 것(Broadchurch; Hinterland; The Bridge)도 좋습니다. 그 관계가 꼬이며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도 볼만 하죠 (The Honorable Woman; The Bridge; River).

여기서 잠깐. 내맘대로 어워드! 
독특한 형사 어워드는 The Bridge;
독특한 범인 어워드는 The Wire;   
독특한 형사-범인 커플 상은 Luther

시청자들의 심미안이 발달되서인지 촬영도 예전같지 않습니다. 인물을 잡는 각도도 과감해졌습니다. 아름다운 배경을 강조하는 것도 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죠. 뉴욕 같은 대도시를 떠나 어디 시골 구석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Hinterland; Setland; Broadchurch)를 보고 있으면 배낭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한 두 시즌 보고 있노라면 거기 꼭 가보고 싶은 생각도 들죠.

Setland는 스코트랜드 영토이지만 문화적으로 노르웨이에 더 가깝다고 하더군요. 언젠가는 가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쓰고 보니 뻔한 이야기네요. 결국 좋은 스토리와 인물, 아름다운 화면이라는 소리이니까요. 훌륭한 드라마들이니 보고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드라마 추천도 완전 환영입니다!



언급된 드라마들:
Broadchurch
Breaking Bad
Deep Water
Henning Mankell's Wallandar
Hinterland
London Spy
Marcella
Luther
London Spy
Paranoid
River
Setland
The Bridge
The Fall
The Honorable Woman
The Killing
The Wire


Friday, August 18, 2017

[세상읽기]미군 없는 한국을 준비해야 한다

경향신문 (2017.08.10)

지난 6일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안 2371호는 북한 총 수출액의 3분의 1가량 타격을 주리라 예상됩니다. 게다가 이달 중순부터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되죠. 북한이 추가적 도발을 예고하면서 8월 위기설이 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북 제재, 한·미 군사훈련, 북한의 반발, 위기설 증폭 등에도 불구하고 이후 진정국면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한국 시민들은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구 언론에서 연일 뉴스로 다루고 있음에도, 이러한 평온함은 남북이 싸울 수 없는 한반도 현실을 반영한 겁니다.

이와 더불어 반세기 넘게 변하지 않는 현실은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입니다. 사드 배치는 가장 최근의 예입니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은 한국 안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결정적 요소는 아닙니다. 장사포 등 재래식 무기와 단거리 미사일이 주요 위협이죠. 사드는 이와 상관이 없는 무기체계입니다. 그나마 수도권은 성주 사드 방어권 밖에 있습니다. 사드가 한국 방어용이 아님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 안보와 사드를 연결하는 알쏭달쏭한 소리만 쏟아냈습니다. “사드 배치는 나날이 고조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국가적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내린 자위적 방어 조처”라거나 “잔여 사드 발사기의 조기 배치” 등을 통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시키고자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죠. 앞은 박근혜의 2016년 발언이고 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달 발언입니다. 이런 주장이 흐리고 있는 사실은 사드가 미국 방어용이라는 점, 한반도 안보의 정책은 미국 안보와 얽혀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와중에 한국 정부는 마땅히 꺼낼 외교카드도 없어 보입니다. 금강산 관광은 잊힌 지 오래고 개성공단은 어처구니없게 문을 닫았습니다. 지원을 ‘퍼주기’로 매도하는 정치공세도 사납습니다. 외교라는 것이 줄 게 있어야 하는데 한국이 쥔 것이라고는 헛기침뿐이죠.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코리아 패싱’을 걱정합니다. 북한이 대화의 상대로 한국을 무시하고 미국을 지목할 만합니다.

이번 ‘위기’가 일상적이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에 줄 ‘선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바로 미국과의 평화죠. 북한은 크고 작은 도발로 한반도의 평화를 깨뜨릴 수도, 이를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그 무대는 주로 한반도에 국한됐었죠. 이제 미국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굉장히 작은 가능성이지만 그 결과가 끔찍하기에 무시할 수 없죠. 거꾸로 평화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핵과 미사일이 발전될수록 북한과 미국은 테이블에 앉을 공산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오랫동안 원했던 것은 북·미관계 정상화와 미군의 철수입니다. 미국이 이를 당장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죠. 북핵이 현실적 위협이 되는 수준에 오르면 미국은 한국을 지킬 의지가 약해질 겁니다. 북·미 대립이 미국 본토로의 핵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한국을 지킬까요? 그러지 않을 공산이 있습니다. 북·미 간 타협으로 미군 감소나 철수도 가능합니다. 여기에 커져만 가는 중국 입김이 실리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지죠.

설마 싶지만 1979년 중국과 국교 정상화가 되면서 하루아침에 대만을 버린 전력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50년 맥아더 장군이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라고 부른 대만의 가치도 1979년 상황에서는 급락했듯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언제 폭락할지 알 수 없죠.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요? 미군이 없는 한국을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만의 국방정책, 자주적 대북외교 프로그램, 지역안보를 넓게 보는 독자적 프레임을 짜야 합니다. 준비할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끊이지 않는 군내 인권유린, 만성화된 방산비리, 성조기를 휘두르는 극우. 그 미래를 준비하기는커녕 논의를 시작하기에도 벅차보이는 한국의 모습을 보며 드는 질문입니다.


Friday, July 14, 2017

[세상읽기]광주·세월호에서 보존할 기억 찾기

경향신문 (2017.07.13)

‘광주사태’를 쉬쉬하던 시대에 자라난 저는 우연히 눈에 띈 ‘금서’를 보고 광주의 1980년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 충격적 상흔이 광주시민 가슴에 아직도 절절히 박혀있음을 알게 되기까지 또 많은 시간이 흘렀죠.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난 이번 여름,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전남도청을 찾았습니다.

광장 앞에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둘러진 테이블과 몇몇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끝에 계신 한 분에게 도청에 관해 여쭤보고 탄원서에 서명했습니다. 계엄군을 상대로 승산은 없지만, 마지막 저항을 벌인 바로 그곳에서 고작 이름과 주소를 적어놓고 뒤돌아서려니 새삼 죄송스럽더군요. 인사를 드린 뒤 멀어져가는 저를 그분이 따라오셨습니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손을 내미셨죠. 자그마한 핀과 5·18민주화운동 안내 책자를 건네며 멀리서 온 사람에게 줄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삼일빌딩 앞에서 총을 맞았다며 총상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며 멋쩍어하셨죠. 미안하다는 말에, 또 그 멋쩍어하는 얼굴에 터지는 울음을 참느라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약간은 더운 평일 아침이었습니다. 텅 빈 광장이었지만 혼자는 아닌 듯했습니다. “그때의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는 상투적 표현 말고는 달리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죠. 그 함성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 그래서 편안히 살아버린 저의 부채의식만큼이나 크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도청은 깔끔한 ‘아시아문화전당’이 돼 있었습니다. 1980년의 기억을 찾는 저에게 직원은 옆에 있는 기념관으로 가보라고 친절하게 알려줬죠. 그제야 도청을 둘러싼 논란이 기억났습니다. 2008년 시작한 문화전당 공사 탓에 항쟁의 흔적이 훼손되거나 사라져 반발이 심했고 논쟁은 아직 진행형이라는….

광주의 비극은 1980년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두환과 그 부하들은 오랫동안 굴종과 망각을 강제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헐뜯으며 그 장단에 춤을 추었죠. 전라도 출신이어서 승진에 밀리고, 결혼도 못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북한이 사주했다는 악담도 서슴지 않죠. 민주주의를 피와 몸으로 외친 광주 시민들로서는 어처구니없을 수밖에요.

한국 민주주의는 박근혜 정권을 끝내며 재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지만 이를 가능케 한 전남도청은 제 모습을 찾지 못한 채 남겨져 있습니다. 다행히도 문재인 대통령이 복원을 약속했지만, 복원의 정도와 비용, 기존 시설 이전 등 문제와 도전 과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약속, 광주 유가족의 염원으로는 부족한 게 현실이죠. 전 국민의 성원이 필요합니다.

전 국민의 성원과 관심은 뉴욕 9·11 박물관을 가능케 했습니다. 정부와 유족, 전문가 사이에 오랜 대화 끝에 들어선 박물관은 참담했던 비극만큼이나 인상적이죠. 부서진 무역센터가 있던 그 자리에 들어선 박물관에는 휘어진 철근, 부서진 계단, 불타버린 소방차 등 건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습니다. 뉴스, 소방관 교신, 희생자에 대한 추억 등도 잘 전시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저리게 합니다. 꼼꼼히 보지 않아도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면 그날 느꼈던 충격과 슬픔이 온전히 떠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촛불항쟁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런 투쟁을 광주는 1980년에 외롭게, 피를 흘리며 해냈습니다. 그 의로운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가족과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전문가와 광주 시민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처절한 기억이 생생히 보존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광주를 지나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은 무엇인가. 광주처럼 지켜야 할 아픔은 무엇인가. 광주처럼 잊고 있는 것은 없는가. 저는 세월호가 그 시작이길 소망합니다. 선체와 유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오늘, 기억과 슬픔이 아직 생생한 오늘, 우리는 세월호가 어디서 어떻게 기억돼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수습과 조사가 끝나는 대로 그 기억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 훗날 우리 손자, 손녀에게 이 아픔을 그대로 전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읽기]문재인 정부 갈 길, 민의가 나침반


경향신문 (2017.06.15)

늘 그렇듯 이번 정부 인사청문회도 요란합니다. 비난과 고성이 오가고 사과와 변명이 따릅니다. 지지율이 14%인 제1 야당 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위장협치’ ‘독선’을 하고 있다며 비난을 퍼부었죠. 하지만 야당의 고함이 큰 것과는 달리 여론은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80% 안팎에 이르고 있죠. 아주 드문 일입니다. 논란이 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에 찬성이 62.1%로 반대 의견 30.4%에 두 배가 넘었습니다. 대통령의 임명강행을 주문하는 의견도 과반 이상이죠. 민의가 어디 있는지는 분명합니다.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 민주체제라는 가정을 놓고 보면 야당의 법석 떠는 모습은 이상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 기이한 풍경이 그렇게 낯설지도 않죠. 민의를 거스르는 자유한국당의 전통은 아주 오래된 탓입니다. 박근혜가 2012년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한나라당이었고, 이는 이회창이 1997년 15대 대선을 준비하며 꾸린 정당이었습니다. 그 전신인 신한국당은 1995년 김영삼이 당내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바꾼 이름이었고 그 전에는 민주자유당이었죠. 민자당은 1990년 3당 합당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 핵심인 민주정의당은 전두환의 정당으로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의 명맥을 이었습니다. 공화당은 5·16 군사정변을 주도한 군부 세력이 구 자유당 세력, 일부 시민사회단체를 흡수해 1963년 창당했죠.

굳이 독재와 총칼의 과거를 들추지 않아도 됩니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염원을 뿌리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4대강 사업을 강행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병적 독단과 저열한 음모로 헌법을 짓밟았습니다. 그의 정치보복은 정치세력을 넘어 문화예술인까지 무자비하게 짓밟았죠. 그 탓에 지지도가 4%까지 내려간 박근혜를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하겠다는 신념 하나”뿐이라며 감싼 이가 바로 자유한국당의 정우택 원내대표입니다.

억압과 의전에 익숙해져 온 사람들에게 민의는 다만 어르고 다스려야 하는 것일 뿐일지도 모르죠. 민의를 듣고 받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직도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듯합니다. 그러니 협치는 언감생심 꿈도 꾼 적이 없을 테죠. 여의도로 입성하는 첫날 한강 중간쯤에서 던져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1961년 한강 다리를 건넜을 때, 또는 1950년 인도교 폭파 때 이미 버렸을지도 모르죠.

2009년 이상적이고 젊은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게다가 첫 흑인 대통령이었으니 여러 소외계층의 기대가 컸죠.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 또한 정권 초기 협치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의료보험 개혁에 상당한 공을 들였죠. 야당이 된 공화당과 재계를 상대로 설득과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이어갔고 결국 개혁안에 한 표도 던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공화당은 오바마의 제안을 무조건 반대하는 정당으로 변모했고 오바마 정부도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죠. 애초에 그런 기대가 없었더라면, 애초에 현실을 직시했더라면 오바마 정권의 성과가 더욱 빛났을 겁니다.

자유한국당 또한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홍준표의 억지가 사그라지던 당의 불씨를 되살렸고, 청문회 분탕질에 보수층 지지가 모이는 것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20% 안팎의 지역표가 있는 이상 독단의 유전자는 활개칠 것이 분명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제 갈 길을 가야 합니다. 협치의 기억이 없어 협치할 의지도 없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 한가한 때가 아닙니다. 그 손길은 대신 그간 소외됐던 이들을 향해야 하죠. 노동자, 실업자, 성소수자, 이민자, 여성, 양심수 등의 손을 잡고 당당히 나가야 합니다. 길이 험하고 멀겠지만 도도한 민의의 물결에 몸을 싣고 가다 보면 이를 거슬러온 자의 쪽배와는 다른 내일을 맞이할 겁니다. 이는 얼마전 박근혜가 직접 보여준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죠. 그런 세상을 온전히 만드는 것이 문재인 정권의 사명입니다.

Monday, May 15, 2017

상표에 현혹되지 않기

스타리바리어스 바이올린, 실험해보니 훨씬 싼 것과 구분을 못하더라는...
와인도 사정은 비슷. 도!!  


Sunday, May 14, 2017

[세상읽기]안철수 ‘새정치’의 정체가 궁금하다

경향신문 (2017.04.20)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발 태풍이 한반도에 몰아쳤죠. ‘전략적 인내’가 끝났다며 북한을 압박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말하며 한국을 당황케 했습니다. 그 때문에 한반도 안보가 한국의 아킬레스건임을 새삼 곱씹어야 했죠. 안보를 미국에 맡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운신 폭이 크지 않다는 현실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최선의 정책은 평화의 확장입니다. 평화는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럴수록 한국의 목소리는 커질 테니까요. 평화의 공간이 줄고 대결이 고조될수록 우리의 목소리는 강대국의 고함 속에 잠기는 법이죠.

안철수 후보는 평화에의 확신이 없어보입니다. ‘국민적 합의’를 강조하며 사드 배치를 반대했던 안 후보는 ‘국가 간 합의’를 외치면서 찬성으로 돌아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개성공단에 대한 입장도 재개에서 유보로 바꿨죠.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도 시기상조로 돌아섰고 햇볕정책에 대한 입장도 계승에서 침묵으로 바꿨습니다. 하나같이 중요한 외교 사안인데 모두 평화 쪽에서 대결의 방향으로 간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습니다.

게다가 그 변신에 대한 설명도 충분치 않습니다. 사드 입장 변화에 대해 안철수 후보 본인도, 박지원 대표도 사정이 바뀌었으니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바뀐 사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주변 정세나 북한 위협 등 사정은 기본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뚜렷이 달라진 것은 보수층 지지를 받기 시작한, 안철수 후보 본인의 사정입니다. 선거를 위해 안보를 가벼이 대하지 않나 싶어 우려스럽습니다.

말하지 않은 그 무슨 심각한 고려가 있었다 치더라도 걱정이 싹 가시지는 않습니다. 국가 간 합의가 자연의 법칙이 아닌 것은 정작 미국 부통령이 한·미 FTA 개정을 들고나오는 바람에 확인할 수 있었죠. 미국과 중국이 맞붙을 가까운 미래에는 유연한 입장을 통해 청과 명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광해군의 지혜가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안 후보의 인식은 교조적 외교로 병자호란을 불러들인 인조의 실수를 떠올리게 해 우려됩니다.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겠다던 안 후보의 호기를 기억하기에 더욱 안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새정치연합은 안철수 대표가 2014년 꾸리자마자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소멸했습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그 이름이 이어졌죠. 안 후보가 탈당하며 더불어민주당이 되면서 ‘새정치’라는 수식어도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안 후보 하면 ‘새 정치’였습니다. 그 새 정치를 위해 안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나와 새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의 승자독식 선거제가 양당제를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과감한 결단이었죠.

안 후보의 새 정치는 딱 여기까지였던 듯합니다. 천정배 의원을 공동대표로 내세우며 호남 민심을 노렸고 박지원 의원을 위시한 동교동계를 대거 받아들였죠. 국민의당은 호남당이 됐고 총선에서 호남을, 호남만을 휩쓸었습니다. 이를 안 후보는 ‘녹색바람’이라 불렀죠. 하지만 승자독식 선거제의 양당제 경향을 지역표로 극복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영국의 양당제하에서 스코틀랜드 민족당이 비슷한 예죠. 노동당과 보수당이 대변할 수 없는 특수한 이익, 즉 스코틀랜드 민족주의를 내세워서 이들은 제3당의 입지를 넓혔습니다. 바로 국민의당의 전략이었습니다. 즉 안철수표 새 정치, 국민의당은 한국 특유의 지역정치를 잘 이용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죠.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손을 맞잡은 순간을 모두들 기억하실 겁니다. 수많은 이들에게 평화의 희망을 주었고 살육과 대결로 이어진 반세기 남북관계를 돌려놓는 감격적 계기였습니다. 그해 8월 개성공단 사업이 첫걸음을 떼었고 금강산 관광사업도 탄력을 받았죠. 당장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던 남북은 화해의 무지개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남북관계에 한국의 목소리가 커졌고 세계는 노벨 평화상으로 박수를 보냈죠. ‘햇볕정책’은 말 그대로 새로운 장을 열어놓았었습니다.

새 정치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안 후보가 말한 새 정치의 정체가 궁금한 때이기도 합니다.

My partial Good bye to The New York Times

The New York Times. Growing up in South Korea, I nurtured a fantasy of picking it up in my pajamas and reading it everyday. In Korea, the Times were a big deal – when they reported a story about the country, the report itself became news. So it is today. The New York Times has been a mirror that Koreans have used to see themselves and examine how they are perceived by the world.

About two decades ago, I fulfilled the first step of my humble NYT dream after moving to the US. As a poor graduate student with equally poor English, I had to spend a lot of time going through page after page in the department reading room when I had a chance. Do you remember the first day when an ad appeared on Page One or colored pictures showed up? So I’d fulfilled the part of its daily reading, but, with my budget, not yet the part of getting it delivered on my doorstep. Still, it brought me tremendous pleasure and pride. I would read the international section first, then pause for the day, picking it back up during my lunch break or in the evening to finish. When I couldn’t, I suffered.

In my doctoral dissertation, I should have credited the Times since the first project that I did as a graduate student was coding articles from the Times and the Post. That experience gave me an idea for the dissertation about nine years later. So here it is now. “I thank The New York Times for my Ph.D. degree.”   

Now I teach political science in a university and the Times is a major source of teaching. Controversies over global warming, elections, the coup in Turkey, racial tensions in the South, the Koch brothers and on and on. I use the graphs and opinion pieces and the students love them. After all, it is The New York Times. How can they not?

You see, I have fulfilled my (American) dream. I bought a house and finished the upstairs attic on my own. I have The New York Times delivered to my house and, yes, I pick it up in my pajamas, more or less.

There is just one really tiny problem.  

When it rains or the sprinkler is on, sometimes the paper gets wet. Often it is double bagged; but not always. When thrown on the pavement, the bag cracks and gives in to the torrent of water. After years of frustration, I called The New York Times and asked the paper to be put under a small bin right beneath the mailbox. I had finally found a solution.

Like most solutions in our life it worked only for so long. For unknown reasons, the paper finds its way back to the ground as if gravity had played a trick. No matter what I or the managers from New York say, no matter how many times I call, gravity or the delivery grew rules the early morning.

About three weeks ago, I called again and had a long conversation with a nice and very helpful manager who explained what he would do to make sure my wish would be met. And yet, gravity won again. And it occurred to me that it may have something to do with my name. Maybe it is my foreign name that gave the sense of entitlement to ignore my small but sincere wish. And then I began to worry. Maybe I have to simply accept the reality of living the life of an immigrant. Maybe if I push too much, they will pull me back down as in the United Airlines flight.

I may be wrong. Maybe I am overly sensitive to so unimportant a matter as the intricacies of  my newspaper delivery. But, this is today’s worry of a legal immigrant with a respectable job. Now imagine how worrisome all the hardworking immigrants with legal issues may feel. Can you? I just can’t. But that is not the country that I dreamed of through The New York Times back in South (not North!) Korea.               

  

Thursday, April 20, 2017

파파이스 <더 플랜> 초간단 정리

파파이스 <더 플랜> https://www.youtube.com/watch?v=aGGikPMNn2w&t=1269s
일단 영화 관람을 강력히 권한다. 친절한 해석과 뛰어난 그래프로 이해가 아주 쉽다. 

전희경, 현화신, 김현승, 김어준, “A Master Plan 1.5 Using Optical Scan Counters: An Analysis of the 2012 Presidential Election Data in South Korea.” MPSA 2017.   


중심 주장은 '미분류'가된 표에 있다. 
일단 의심은 미분류표가 너무 많다는 것. 미분류표 비율 3.6%, 너무 높다. 보통은 1%정도. 그러니 정상이 아니다. 

여기서 시작된 의구심은 미분류표의 차이를 향한다. 아무 문제, 간섭, 이유가 없다면 정상표에서의 차이와 같아야된다. 하지만 분류표 득표율은 두 후간간 차이가 3.32%인데 비분류표 득표율에선 그 차이가 무려 17.2%로 커진다. 


박근혜 분류표 득표 51.48 - 문재인 분류표 득표 48.16 = 3.32
박근혜 미분류표 득표 52.79 - 문재인 미분류표 득표 35.77 = 17.02

이걸 돌려서 이게 얼마나 다른가를 측정하기 위한 공식을 만들었다:

박 미분류표/문 미분류표
박 분류표/문 분류표


정상이라면 이 수치는 1이여야 맞다. 분자(미분류표의 비율)와 분모(분류표의 비율)이 같아야 하니까.

그러나 251개 개표소를 보니 1.5에 수렴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 


즉 어떤 강제나 간섭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 한두군데도 아니고 보편적으로 일어났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이다. 여기서 선거에 어떤 강제나 간섭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놀라운데 영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개표기가 어떤 조정에 의해 특정 수치만큼 읽기도 하고 안 읽기도 했다는 (분류표로 보내고 미분류표로 보냈다는) 추측을 한다.

읽을 수 있는 (분류표가 됐어야 했을) 표를 미분류표로 지정하고 ... 


저 빈자리는 무효표로 몰래 채웠다. 그리고 해당 후보의 분류표로 둔갑했다는 것.
    
연구자들은 이 가정을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 돌려봤다. 그리고 거의 실제와 맞는 결과를 얻었다. 즉 이들의 가정이 맞다는 증거를 확보한 것. 뒤에 기계를 가지고 헤커가 시연을 해보이기도. 



학자로서 몇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하지만 일단 멋진, 용감한 작업을 했다는데 큰 박수를 보낸다. 













































Tuesday, April 18, 2017

요동치는 안철수 안보 인식


  • 사드 배치 
    • 안 후보는 정부의 사드 배치 발표 이틀 후인 지난해 7월10일 개인 성명에서 “사드 배치는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고 국민투표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드의 성능과 비용 부담, 대중국 관계 악화, 전자파 피해 등을 들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의 크기가 더 크다”고 했다. 의원총회에선 “사드 배치는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 -->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등을 거치며 ‘국가 간 합의’는 부득이하게 사드를 배치해야 하는 찬성 논리로 작용했다. 4월 들어 “사드 배치를 제대로 해야 한다”(6일 관훈클럽 토론회), “대통령은 국가 간 합의를 넘겨받아야 할 책임이 있다”(9일 연합뉴스 인터뷰) 등 찬성 입장이 강화됐다. 경향신문(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091746001#csidx6baf22580c25a2f8d85a37bb3953528)  
  • 개성공단 
    • 안철수 후보는 2012년 발간한 자신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는 금강산, 개성공단을 다시 시작하고 개성공단을 확대하며 개성공단과 같은 협력 모델을 다른 지역에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입장도 물었는데 안 후보는 “유엔제재국면”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조건과 시기에 협상테이블을 만들면 거기서 일괄적으로 논의하자는 입장”이라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6246#csidx4aa66d5ed7153b5a64bfbd532113ad2)  
  • 전시작전권 
    • 2012년 11월9일 안철수 당시 무소속 대선후보는 서울 종로구 공평동 캠프에서 열린 국방안보포럼 간담회에서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을 예정대로 하고 한미동맹 하에 튼튼한 안보태세를 갖추겠다”고 했다.
    • --> “작전권 회수 동의를 지금도 하냐”고 물었고 안 후보는 “저희들이 스스로 자강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답했다.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6246#csidx4aa66d5ed7153b5a64bfbd532113ad2)  

Tuesday, April 11, 2017

안철수의 새정치는 언제쯤?

우연히 보게된 옛 글. 안철수에 관한 글이 있었다. 딱 삼년 전에 썼는데 그 때 그 의문은 (놀랍게)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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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그 고집이 보여주는 새 정치의 폭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 훌륭합니다. 정치인들이 쉽게 약속을 어기는 마당에 약속을 지키려 노력한 것, 새롭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요? 과연 그가 말한 그의 새 정치는 무엇일까요?
그가 내놓은 대선 공약집을 보면 국민을 섬기는 정부, 공공기관의 혁신 등에서 교육, 문화로 이어지는 그의 비젼은 매력적이지만 과연 이게 새 정치인가하는 의문을 없애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강령/정강 정책을 들여다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근사한 말은 있지만 그것뿐입니다.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참신한 아이디어가 곧 새로운 정치일까요?
참신한 아이디어는 새 정치에 필요한 부분이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이들의 말을 잠시 내려놓고 하는 ‘정치’를 보면 새 정치와는 거리가 아주 멀어 보입니다. 안철수가 한 정치라는 것은, 선거의 승리라는 아주 전형적인 목표를 위해 통합이라는 아주 전형적인 방법으로 양당구조라는 전형적인 지형을 구축한 것이죠. 즉 안철수의 정치는 아주 구태의연하며 전형적이고 전혀 새롭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비극이 이런 실망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비극은 안철수는 아직도 자신이 새 정치를 하고 있다고 믿는 것이고, 우리는 그냥 막연히나마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죠. 더 큰 비극은 정치인들이 짜놓은 그 좁디좁은 새 정치의 틀에 갇혀 어떤 것이 새 정치일 수 있는지, 그 상상의 나래마저 꺾여버린 우리의 처지일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새 정치는 어떤 모습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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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새로운 정당을 꾸렸다. 양당 구조를 깨는 과감한 선택이었고 성공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는 지역구도에 기댄 선거였고 그래서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걸 새정치라고 말할 수는 없을테고... 지금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만 봐도 새정치를 구현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긴 이미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나만 궁금해하고 있나보다. 

Sunday, March 26, 2017

[세상읽기]미국을 향한 비극적 짝사랑


경향신문 (2017.03.23)

짝사랑은 누구나 한번은 하는 경험이지 않을까 싶네요. 새로 오신 선생님을, 이웃 학교 학생을, 이름 모를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성장기에 필요한 경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짝사랑은 비극입니다.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끙끙 앓다가 결국 저 사람은 내게 관심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되죠. 이 각성은 충격적입니다.


미국이 우리를 버리지 않을까, 관심이 적어지지 않을까 걱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015년 리퍼트 미국 대사 테러공격 이후 대응은 좋은 예입니다. 기괴한 부채춤 공연에서부터 엄마부대의 꽃바구니 시위 등 도가 지나친 반응이 이어졌죠. 정치인들의 병문안이 과도해 병원에서 이를 저지하기도 했습니다. 걱정을 넘어 버려짐에 대한 공포의 표출이었죠. 2017년 군가가 울려 퍼지는 태극기집회에서 엉뚱하게 등장한 성조기 또한 비슷한 원인에서 생긴 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미국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이 동아시아를 지나가며 남긴 여파가 꼭 초특급 태풍 같습니다. 특히 한반도는 말이죠. 여기저기에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틸러슨 장관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만찬을 했지만 유독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는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틸러슨은 일본을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 불렀지만,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로 지칭했습니다. 오바마 정부 때는 ‘핵심축’으로 불렸는데 말이죠. 결국 한국이 강등된 것은 아닌가, 트럼프 정부는 한·미동맹을 미·일동맹보다 더 낮게 보고 있지는 않나 걱정을 하고 있죠.

우리의 걱정은 온당한 것일까요? 트럼프 정부는 한국을 버리거나 최소한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닐까요?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북한을 “큰 걱정거리”로 보며 “새로운 제재 등 중대한 추가 조치들”을 강조한 것은 오바마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죠. 중국과 한국에서 큰 논란이 되는 사드도 오바마 정부 주도로 시작했습니다. 오바마 정부에서 한국을 ‘핵심축’으로 보았을 수 있지만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구상을 떠받드는 축이었죠. 중국의 전략적 위협을 견제하는 첨병으로 한국의 가치는 늘 비슷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2년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부른 것은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 1994년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려 한 것은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어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기본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미국의 마음은 애초에 변한 것이 없으니 우리의 걱정은 온당치 않습니다.

그 걱정이 온당치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을 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앞날이죠. 미국이 우리의 앞날을 지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우리가 ‘믿음’을 가져도, 애원해도, 무기를 사줘도 말이죠. 사실 미국은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습니다. 싸이가 잊혀 가면서 한국은 그냥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나라, 삼성과 현대의 나라 정도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안에 수천만의 사람들이 북한 포대에 인질로 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미국이 위협적인 발언만 해도 정국이 흔들린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격변하는 세계 정세에서 한반도의 안전을 모색하는 일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죠.

놀라운 것은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운명을 동일시하는 한국 내 목소리입니다. 아무리 제한적 군사행동도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큰 나라의 외교부 장관인 윤병세는 “군사적 억제방안”까지 언급했습니다. 미국의 시각이 한국 지도자들에게 투영돼 있음을 알 수 있죠. 문제는 이런 정치 지도자가 윤병세 장관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선주자들의 입을 지켜봐야겠습니다.

짝사랑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따라 해보기도 합니다. 비슷한 옷도 입어보고 그 사람 단골집도 가봅니다.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진 듯하고 그만큼 흐뭇합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짝사랑은 여전히 짝사랑으로 남습니다. 게다가 그런 노력과 공을 많이 들일수록 짝사랑의 결말은 더욱 비참하죠. 하지만 이런 짝사랑의 진실을 마주하기 힘든 것은 청소년뿐만은 아닌 듯합니다.

Wednesday, March 1, 2017

[세상읽기]경험을 나누는 것이 민주체제


기록적 한파의 경험과 지구온난화 간의 괴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경험이 중요한 자산임은 상식입니다. 취업 공고엔 경험자 우대라는 글귀가 자주 등장하고 역사가 소중하게 다루어지는 이유입니다. 논쟁에서도 경험을 앞세운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내가 직접 겪었다고 하면 주장에 힘이 실리게 마련이죠. 그래서 논쟁이 치열할수록, 경험이 많다고 생각할수록 이런 화법을 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정치인 중에도 꼰대가 많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표적인 경우죠. 2016년 선거전 내내 비즈니스 경험을 내세워 유권자들의 환심을 샀습니다. 자신의 엄청난 부는 곧 지도자가 지녀야 할 자질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떠들어댔죠. 비난과 반대도 컸지만 많은 이들은 고개를 끄떡이며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명박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치인입니다. 대통령 시절 그 유명한 ‘해봐서 아는데’ 시리즈를 쏟아냈죠. 장사를 해봐서, 배를 만들어 봐서, 민주화운동 해봐서 등등 경험을 강조, 과장하면서 주장의 근거로 즐겨 삼았습니다.상사나 연장자 등 경험이 많다고 여기는, 또는 여겨지는 층이 상대적으로 경험이 얇거나 그렇게 여겨지는 이를 향해, 경험을 무기로 일방적 말을 쏟아내는 경우 전자를 ‘꼰대’라고 부릅니다. 꼰대들의 말투도 굉장히 비슷합니다. 나는 이렇게 잘하는데 너는 왜 그러냐는 식의 말투가 그 전형이죠. 나는 생전 그런 실수가 없었는데 넌 매일 실수냐. 나는 더한 일도 참았는데 넌 왜 그것도 못 참냐. 내가 학생 때는 패기가 넘쳤는데 너희는 왜 열정도 없냐. 즉 꼰대는 경험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강조돼 의미 있는 대화나 검증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하겠습니다.

경험이 소중한 것은 맞지만 큰 함정도 있습니다. 경험은 기억이 되고 자아의 일부가 되는 까닭에 미화되기 쉽죠. 실수나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는 묻히거나 심지어 잊히기도 합니다. 트럼프의 경우 도산과 빚으로 고생했지만, 선거전 동안 이런 실패에 관해서 일언반구도 없죠. 또 한편으로 경험은 개인적일 수밖에 없기에 편협한, 또는 그릇된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눈보라의 경험과 지구온난화에 대한 의심은 좋은 예입니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쳐서 집이 완전히 묻히고 전기가 일주일 끊기는 경험을 했다 해도 이는 개인의 지엽적 경험일 뿐이죠. 하지만 이런 경험을 지구온난화 현상의 방증을 찾은 듯 으스대는 사람도 미국 여기저기서 볼 수 있습니다.

경험을 맹신하며 편협한 시각을 정치세력화한 이들은 그래서 위험합니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6·25전쟁의 경험, 전후 불안정한 시대를 산 경험이 정치적 열정의 근원이 됐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빨갱이’들에게 당했다는 기억은 빨갱이가 사라진 시대에서 빨갱이를 계속 찾게 하였을 겁니다. 그러니 그 빨갱이를 보지 못하는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가슴 시릴 만큼 아프게” 부모를 총탄에 잃은 박근혜는 자신의 불안감을 바탕으로 “국민을 각종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겠다며 사드를 밀어붙였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의 권한을 “선생님”에게 던져주고서 “컨펌”을 기다리는 것마저 정당화했습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들을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경험했다는 확신은 검증을 힘들게 해 위험합니다. 억지와 꼰대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각종 오류에 취약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경험을 무작정 버릴 수는 없죠.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을 모으는 지혜입니다. 어제 눈 폭탄을 맞았지만 겨울 전체를 보면 역사적으로 더운 겨울이었던 것, 이제는 저성장 경제의 구조적 제한이 젊은이들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 우리 집이 빨갱이 손에 몰락했지만 서북청년단의 총칼에 마을 전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경험을 서로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어제와 오늘을 살피고 나와 너의 대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민주체제는 이를 정치적으로 구체화한 겁니다. 서로의 경험을 비교해 목소리를 모으는 것이 민주체제이죠. 한 사람의 직관과 경험에 기댄 권력은 독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혹시 독재에 익숙해지지 않았었나요. 박근혜를 파면하며 느슨해진 경계의 줄을 바꾸어 매야겠습니다.

Friday, January 27, 2017

[세상읽기]트럼프 시대와 남북 평화

경향신문 2017.01.2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는 반대의 목소리가 훨씬 더 요란했습니다. 미국 전역(토요일 워싱턴DC에서만 50만명)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반트럼프 시위가 퍼져나갔고 최저의 지지율(37%)로 취임하는 기록도 갖게 됐죠. 트럼프는 캠페인 내내 여성,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를 조롱했고 인종차별주의 언행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는 무역 정책이 가장 걱정스러운 주제인 듯합니다. 보호무역을 공언했기 때문이죠. 높은 관세로 국내 산업과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고 큰소리도 쳐왔습니다. 실제로 첫 업무날인 지난 23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명령했습니다. 기존 국제 무역질서를 흔들 신호탄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역 의존이 심각한 한국으로서는 큰일이죠. 하지만 이것이 발등의 불이라면 머리에 붙은 불길도 있습니다. 트럼프의 대중국 적개심이 그것입니다.

트럼프는 지구온난화를 중국의 사기라고 말해서 비웃음을 샀지만 여기서 그의 중국관이 비쳤죠. 선거전 내내 중국 환율정책을 걸고넘어지며 무역 보복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바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1979년 미·중 외교 정상화 이후 처음 있던 일이죠. 미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지지해왔고, 이는 대만은 반란 상태에 있는 중국 영토라는 중국의 시각을 수용해왔던 겁니다. 그러니 대만 총통과의 전화 통화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기였었죠. 게다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무역 불공정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하나의 중국 정책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경고도 보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트럼프의 대중국 정책이 걱정스러운 것은 중·미 간 긴장이 이미 높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중국의 힘은 나날이 커져 왔습니다. 경제적 성장은 군사적 팽창으로 이어졌고, 그 결실 중 하나는 항공모함 랴오닝입니다. 이달 초 랴오닝 함대는 태평양에 진출해 대만해협을 통과했죠. 대만과 미국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외교력 성장도 눈부십니다. 특히 필리핀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남중국해 영토분쟁 상대국들의 연합전선을 무력화한 것은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가만히 있을 미국이 아닙니다. 작년 5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고, 12월 화답으로 아베 신조 총리가 진주만을 방문했습니다. 이들의 외교적 춤사위는 미·일 군사 협력 강화라는 장단에 맞춘 겁니다. 일본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에 조응하고 군사동맹을 강화했습니다. 자위대는 항공모함급 헬기 호위함, 이지스함, F-15 등 최첨단 무기를 갖추었고 일본 방위비 지출은 세계 6위로 성장했죠. 게다가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법 개정을 통해 아프리카에 파견된 일본 자위대가 적극적으로 무기를 사용해 전투를 벌일 수 있게 했습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의 긴장이 높아만 가리라는 전망은 각국의 국내 사정을 보면 더 확실해집니다. 아베와 우파는 숙원이던 정상국가화의 꿈이 중국, 북한과의 대립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직감했죠. 일본의 군사 대국화는 저물어 가는 미국으로서는 환영할 일입니다. 서로의 국익이 맞아 떨어지죠. 중국도 물러설 자리는 넓지 않습니다. 중국 공산주의는 민족주의로 빠르게 대체돼왔습니다. 특히 시진핑 정권에서 그 경향은 더 짙어졌습니다. 중국의 부활은 곧 외세의 배척과 이어져 있죠. 미국의 간섭과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좌시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이 시점에 하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겁니다.

양측의 대결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멀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 가까이는 한국전쟁, 군사독재까지 고래 싸움에 배와 등이 다 터져본 한국으로서는 심각한 고민이 절실한 때입니다. 우리가 고래가 될 수는 없죠. 하지만 새우로 남을 수도 없습니다. 어느 쪽에도 빌미를 주지 않을 정치력이 필요합니다. 한편에서는 사드도 재고하고 주한미군도 위축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발 위협도 누그러뜨려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모두에게 간섭할 이유를 주지 않을 수 있죠. 그 시작은 남북 간 평화이고 그것만이 우리에게 남은 절박한 길입니다.

곧 다가올 대선, 정치인들의 입을 지켜봐야겠습니다.

Monday, January 23, 2017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 이용하기(1)


미국 국립문서기록 관리청. 무시무시한 양의 정보가 가득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연구자들이 늘 끊이질 않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 절차가 간단치 않은데 이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해볼까 합니다.

우선 현장에 오기 전에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사서들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죠. 내가 이런 주제로 연구를 하고자 한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먼저 보냅니다. 그러면 사서가 나름 둘러 봅니다. 원하는 기록을 찾아주는 것은 아니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서도) 대충 맞는 방향을 살펴보는 것이죠. 그리고서 답을 해줍니다. 이런저런 기록을 들여다 보면 좋겠다는 이메일을 합니다. 밑은 제가 받은 이메일의 일부입니다. 

"It is possible that you will find high level U.S. government records relating to XXX in the following collections at the National Archives at College Park:
RG 59 State Department Central Decimal Files, 1945-49, Box 7388 File 895.00
RG 218 Entry UD 4 Records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Geographic Files, 1946-47, Boxes 38-39 Korea
RG 218 Entry UD 47 Records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Chairman Leahy Files, Box 8 Korea
RG 319 Entry NM3 153A Records of the Army Staff Plans and Operations Division. Decimal Files, 1946 - 1948, Boxes 87-89, File 091 Korea
RG 319 Entry NM3 154A Records of the Army Staff Plans and Operations Division. Top Secret Decimal Files, 1946 - 1948, Boxes 20-22, File 091 Korea
Please let me know when you plan to visit us again, so that I can help you request the relevant records."  

자 그럼 일단 시작은 한 셈이죠. 현장으로 가볼까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은 와싱턴 디씨 근처에 있습니다. 메릴랜드 주립대 바로 옆에 붙어있습니다.

Address: 8601 Adelphi Rd, College Park, MD 20740
Phone:(301) 837-2000
Hours: Open today · 9AM–5PM


차로 가면 가장 편합니다. 위의 지도는 덜레스 공항에서 관리청까지의 디렉션을 보여줍니다. 순환도로를 타고 오면 그리 복잡하지도 않죠. 주차도 무료입니다! 도착하면 경찰 한 명이 아이디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보여주고 바로 오른쪽에 있는 주차장으로 들어가서 아무데나 세우면 끝. 그리고 들어오던 방향으로 걸어가면 출구가 있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바로 건물이 보입니다. 



건물에 들어가서 시큐리티 체크를 하면 일단 진입은 성공. 하지만 연구를 시작하기엔 아직 할 일이 더 있습니다.
일단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곳에 가서 아이디를 만들어야 합니다. 간단한 컴퓨터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서 본인 정보 입력하고 사진 찍고 나면 바로 발급.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 방에서 나와 앞을 보면 가운데 떡하니 엘레베이터가 있죠. (그 오른쪽으로 보면 경비가 있습니다. 연구실은 거기로 들어가죠. 그 오른쪽에는 통로가 있는데 카페테리아로 가는 길입니다.) 엘레베이터를 탑니다. 어디로 가느냐?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갈 수 있는 곳은 지하 뿐이기 때문입니다. 지하는 꽤 넓은데요 오른쪽에 보면 'Telephones and Researcher Lockers'라고 쓴 벽이 있습니다. 그 뒤에 라커가 있죠. 공중전화가 그 벽 뒤에 있었겠죠? 물론 지금은 없습니다. 빈 라커에 짐은 모조리 다 넣습니다. 필요한 것 말고는 전부! 가방, 봉지, 심지어 모자 등 뭔가 쌀 수 있는 것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보면 문 안쪽에 쿼터 동전을 넣는데가 있습니다. 쿼터 넣고 문 닫고 열쇠로 잠급니다. 라커 번호 메모해 놓아야겠죠? 

자 이제 올라가죠. 다시 엘레베이타 타고 일층으로. 일층에 가서 시큐리티에게 가면 카드 보여달라고 합니다. 체크인 하고 컴퓨터 있으면 열어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들어가죠. 뭐는 가지고 갈 수 없다면 당황하지 말고 다시 라커로 가서 넣고 오면 됩니다. 그리고 통과하면 정면에 보이는 엘레베이타를 타고 3층으로 갑니다. 자 이제 연구를 할 수 있는 준비가 거의 다 됐습니다.